본문 : 요한계시록 1:1-3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내용분해 : A.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적 계시의 기록을 시작하는 말(1-2절)
1.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것임 (1a절)
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장차 속히 될 일에 관한 예언으로서
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 요한에게 전해진 것임 (1b절)
3. 기록자 요한은 자신이 본 예언적 환상 곧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에 대해 모두 증언하였음(2절)
B. 본서를 읽고 듣는 자들에 대한 복의 선언(3절)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음(3a절)
2. 이는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임(3b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계시를 통해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음을 말씀하시며, 재림의 때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 다같이 우리의 생과 사를 주관하시며, 우리의 영원하신 주인이신 주님을 전심으로 찬양하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계시록 1:1-3절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천명하는 일반적 서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속히 될 일들’ 에 대해 기록하였다는 점에서(1:1) 내용상 예언서(a prophecy) 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한계시록은 하나의 서신(an epistle)으로서, 시작 부분과 종결 부분에 비록 불완전하나마 서신으로서의 형식상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본 서를 서신서의 기본 구조에 따라 구분해 보면 1:1-8의 시작하는 말과 1:9-22:5의 본론부, 그리고 22:6-21의 끝맺는 말로 크게 삼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론부 1:9-22:5을 1:19의 ‘본 것, 이제 있는 일, 장차 될 일’ 에 따라 구분해 보면,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1:9-20은 ‘본 것’ 에, 제2.3장은 ‘이제 있는 일’ 에, 4:1-22:5은 ‘장차 될 일’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시작하는 말인 1:1-8은 일반적인 머리말과 서신 형식의 머리말이라는 이중 머리말로 되 어 있는데 모두 이후에 전개될 본서 계시의 신적 기원과 권위를 강조합니다. 그중 1-3절이 일반적 인 머리말로서 성경의 여타의 책들의 머리말과 같이 본서의 성격과 목적, 집필 동기, 저자 등을 기록하고 있다면, 4-8절은 형식상 당시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양식으로 된 머리말로서 본서의 수신자들을 향하여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축도와 그리스도께 대한 송영 및 재림 예언과 예언의 진정성을 확증하기 위한 알파와 오메가로서의 하나님의 자기 선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사실이 보여주듯이 본서의 시작하는 말인 1:1-8에서는 본서의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의 ‘계시’ 라고 하는 점이 매우 강조되고 있는데, 즉 종말에 관한 본서의 예언이 인간의 문학적 상상력이나 헛된 환영의 산물이 아니라, 신적 계시(divine revelation)의 산물임을 강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처럼 본서 앞머리에서 본서가 신적 계시로서의 예언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며 강조 하는 것은, 요한 당시 성행하던 유대 묵시 문학과의 본질적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에는 소위 ‘묵시(apocalyp se)’ 라고 하는 유대 문학 형태가 상당히 번성하였는데, 이는 내용상 종말에 대한 관심 집중 및 문학 기법상 고도의 상징 주의 (symbolism)의 사용으로 특징지어지 는 문학 장르입니다. 요한계시록 역시 내용상 현우주와 역사의 종말을 통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와 관계된 종말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또한 심오한 상징주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 묵시 문학과 공통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신적 계시의 산물이라고 하는 점에서 유대 묵시 문학과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신적 계시의 산물이라는 것은 독자가 이 책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주는데, 즉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인류의 미래 문제에 대한 홍미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동기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마음과 귀를 기울여 읽고 듣고 순종해야 할 주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접근해서는 안되는 비서(秘書)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 취급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입니다(계1:3),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성도는 하나님의 시간법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본서의 내용과 관련하여 말하기를 ‘속히 될 일’ 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현우주와 역사의 대 종말에 대한 묵시를 기록하고 있는 본서의 내용이 속히 이루어질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속히 될 일’ 이라는 표현은 본서의 묵시들이 시간적으로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히’라는 말은 이미 ‘확실히’를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여기서 ‘속히 될 일’이라는 말 앞에 ‘반드시’ 라는 말을 첨가하여 본서의 묵시가 틀림없이 성취될 진리라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왜 이 처럼 본서의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본서의 예언을 들을 때 사람의 시간 개념 속에서 듣기 때문입니다. 즉 요한이 말한 ‘속히 될 일’ 을, 사람의 시간 개념 속에서 매우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그것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신속히 이루지지 않으면 본서의 묵시를 거짓으로 치부할 것을 염 려하여,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종말과 주의 재림이 자신들의 세대에 이루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임박한 종말 사상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유무상통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던 것(행2:44,45 ; 4:32-35)도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임박한 종말 사상이 그것을 결정적으로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이 지연되자 그러한 유무 상통의 공동체 생활이 지속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는 점차 주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심지어는 세상의 극심한 박해가 닥쳐오자, 신앙에 회의를 품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본서는 이처럼 세상의 박해가 극심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어 믿음을 수호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서의 내용들이 ‘속히 될 일’ 이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도들은 더욱 실망하고 신앙마저 버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속히 될 일’ 이라고만 해도 될 것을, 그 앞에 ‘반드시’라는 말을 첨가하여, 본서의 묵시가 확실히 성취될 일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반드시’ 라는 말은 본서가 기록될 당시의 성도들보다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더욱 필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본서가 기록될 당시보다 무려 2천여년의 시간이 더 흘러서 ‘속히 될 일’ 이라는 말에 대하여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시간 계산법으로 하면 2천년은 장구한 세월입니다. 그래서 본서에 기록된 많은 예언들이 폐기 처분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식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 55:11).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와 신약의 다른 서신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이 지체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의 시간법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나 약속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의 시간 계산법에서 바라보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처음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유한한 인간에게나 적용되는 개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과 같습니다(벧후 3:8).
여러분, 하루살이의 입장에서 그 시간을 계산하면 하루는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2천년은 인간에게 매우 긴 세월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그것도 한 순간의 경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바른 믿음 위에 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언제나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종말은 속히 될 일이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은 오늘도 될 수 있고 내일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녕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에 익숙해지심으로 임박한 종말을 대비하여 성숙하고 바른 신앙 생황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