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대학의 문과대 건물 옆엔 스팀목련이 한 그루 있다 해서 진달래 개나리보다 한참은 먼저 핀다 해서 해마다 봐야지 봐야지 겨울난방 스팀에 쐬여 봄날인 듯 피어나는 정말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철부지 목련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졸업을 하고 벼르고 벼르다 후딱 십년도 넘어버린 나는 늘 봄날을 놓치고 엎치락뒤치락 추위와 겯고트는 때 아닌 스팀목련도 놓치고 내가 대학 다니던 청춘도 놓치고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나는 늘 나도 놓치고 /강연호, 스팀목련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브로콜리너마저, 졸업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인 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엔 흉하고 절멸하기에는 아깝다.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나는 알지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다. 단지 나 자신의 삶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첫댓글 놓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