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詩-집시의 기도◆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아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 돼" 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5월 22,2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에 의하면
1949년생 장모씨는 2009년 6월 1일 부천 대성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업을 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부산이 집이라는 말도 있는 장모씨!
그는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노숙인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집시의 기도'라는 시를 남겨 놓았다.
'집시의 기도는 서울 영등포 노숙인 쉼터 '행복한 우리집'의 식당 벽에
붙어 있으며 쉼터 관계자는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시"라고 했다.
'집시의 기도'는 화자(話者)가 노숙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노숙인 김모(68)씨는 "밥 먹을 때마다 (시를) 쳐다보는데,
'이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현재 망우동과 서대문에 노숙인 쉼터를 운영 중인 구세군 김도진(47)
사무국장에 의하면 노숙인 장씨는 1999년 봄 이 시를 썼다.
장씨는 1998년 사업이 망했다며 찾아왔는데(당시는 '대방동 사랑방'),
160cm 정도의 키에 머리숱도 적고 이(齒)도 많이 빠진 왜소한 사람으로
그런 그가 '집시의 기도'를 단숨에 써냈는데, 모두들 글 솜씨에
놀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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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감사히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