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삼태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역사참여마당 백제 백제 무왕의 죽음에 소복을 입고 통곡한 당태종과 백제의 황칠
신완순 추천 2 조회 401 13.07.01 16:11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첫댓글 백제의 세 개의 섬(三島)에서 나는 황칠(黃漆)을 갑옷 표면에 입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황칠이 나오는 나무들은 완도지역이였습니다..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백제의 기후는 온난하며 오곡 잡과와 채소가 많으며 내지(內地)와 같다.
    백제 해도(海島)에는 황칠나무가 있는데 모습은 작은 종려나무와 비슷하나 크다.
    6월 중에 즙을 채취하여 기물(器物)에 칠을 하면 황금과 같고 그 빛이 눈이 부시다.”

    백제 해도(海島)란 코리아 대칸이 태어난 다도해 지역인 완도지역을 의미합니다..

  • 수.당 시기는 백제가 중국 동해안 지역을 중국에게 상실하고 동백제 지역인 열도지역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 태종 시기에 황칠이 난다는 것은 <흠정만주원류고>"백제 해도(海島)"기록내용대로 바다의 섬지역인 완도 지역 밖에 없습니다..

    완도의 황칠나무 http://durl.me/5ahav4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한때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했다는 제주도는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에만 남아 있다.

  • 13.07.01 18:45

    당은 동이민족으로 일제의 조선사 편수회에 의하여 왜곡이 되었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왜곡 되었는지는 감을 아직도 못 잡고 있으니 허구 반도설이 아직도 설쳐대는 것이조 일제의 왜놈들의 조작한 역사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 난후에 삼국을 이야기 해야지 허구 반도설에 억매여 있으면 진실을 왜곡 할수 있기에 중공은 대조선 망국후 손문이 대조선의 역사를 바꾸어치기하여 역사를 조작 했으니 중공사는 한 백여년 정도의 역사로 백년 역사를 가지고 허구 중화족을 만들어 사천년의 역사조작으로 속이고 있습니다 ,,,,,,,

  • 작성자 13.07.02 10:57

    태양해님 고맙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린 것만으로 서럽고 억울한데
    그 잃어버린 역사를 이야기해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역사 철부지들은
    역사를 왜곡한 자들보다도 더 쓸개빠진 자들입니다

  • 황칠은 옻칠처럼 나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받아낸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 도료이다. 성질이 맑고 투명하여 장식물이 가진 본연의 재질을 살려주면서도 스스로 화려한 황금 빛을 내뿜는다. 그 빛은 매혹적이나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황칠나무는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 수종이다.삼국이 정립한 이래, 백제는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인삼과 황칠, 모시저포를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하였다. (홍사준1972) 따라서 백제에서 산출되는 황칠은 이미 인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 백제 무왕 25년(627), 당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다.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조)

    당시 당고조는 618년에 일반 백성들이 의복을 적황(赤黃)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 시킨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빛으로 우러나는 갑옷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당태종도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신당서, 동이 고려전)

  •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금칠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은 아주 깊었다. 당나라 때 두우(枓祐)는 『통전(通典)』에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 즉 제주도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후 ≪당서≫를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금칠에 주목하였고,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등 황실과 이 땅에 온 많은 사신들이 황칠을 요청했던 것도 신비로운 금칠나무였기 때문이었다.

  • "신비의 금빛 천연도료로 알려진 1,000년 전 황칠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의 황남동 신라제사(祭祀) 유적에서 흙 그릇에 담긴 채 발견된 유기물 덩어리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 맡겨 성분분석을 한 결과 황칠로 확인됐다고 8일 발표했다. 보존과학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물질은 전남 해남에서 자라고 있는 황칠나무의 황칠과 성분이 똑같고, 해남과 완도 산 황칠에만 들어있는 베타 셀리넨 성분도 검출됐다."-(오미환기자 mhoh@hk.co.kr)// 고로 1만년을 전후한 마고성 서남해 지역은 봉황과 무궁화의 텃밭이면서 삼지창 모양을 하고 있는 황칠나무의 텃밭이기도 합니다.

  • 13.07.02 08:54

    어?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군요. 이렇게 훌륭한 분이 왜 그토록 비열한 글을 올리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에게는 신과 같은 거룩한 신성과 아름다운 마음씨도 이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당신의 얼굴은 당신 자신이 만드는 겁니다.

  • 13.07.03 01:23

    좌우현왕제도와 황칠에 대한 내용은 윤복현님의 말씀이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 서울 사나이 이 친구 골때린 친구네..내 게시글에 비방욕설반말로 악플다는 인간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았는데..너 운영진이면 그런 애들부터 탈퇴시키던지 경고조치하던 해야 완장친 자격이 있는거 아니야?

  • 13.07.01 22:08

    역사는 때가 되면 소리치며 일어난다라....
    백제담로제국방으로 스크랩 합니다. 자료 감사드려요.

  • 작성자 13.07.02 10:57

    넵 호두님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 13.07.02 08:11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은 명쾌한 글이네요.
    '잘못된 역사를 고정화시키는 편견은 낙화암 저편으로 사라져야 한다.'
    '역사는 때가 되면 소리치며 다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주 명문입니다.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 13.07.02 10:58

    박도사님 고맙습니다^^

  • 13.07.02 08:55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 13.07.02 10:58

    천부님 고맙습니다^^

  • 13.07.02 09:08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3.07.02 10:58

    넵 고맙습니다^^

  • 13.07.02 09:15

    대륙의지명이 담겨있긴하네요

  • 작성자 13.07.02 11:00

    천겁님 고맙습니다^^
    저들(지나인)들이 쓴 사서에 기록을 했다는 것은
    백제가 현재의 저들의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대백제 구다라의 영역..[구당서]"백제 영역은 (본국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본국 서남해 마한지역을 중심으로 서해를 건너 서백제 지역에 해당하는 중국 동해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기록내용입니다.<송서(宋書)> 권97 동이열전 백제 조에는 우현왕(右賢王) 여기(餘紀)와 좌현왕(左賢王) 여곤(餘昆)에 대한 기록내용은 백제대왕이 거처하는 본국 서남해 마한지역을 중심으로 서백제 지역은 좌현왕이 다스리고, 열도지역에 해당하는 동백제지역은 우현왕이 다스렸다는 의미가 됩니다..그리고 서남해 해상네트워크를 통해서 백제 담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 [한단고기 - 단군세기檀君世紀]乙未五十二年右賢王高登薨基孫索弗婁襲爲右賢王帝巡狩國中南至海城大會父老祭天歌舞仍召五加與之議傳位自謂老倦于勤欲委政於徐于餘 環薩水百里而封之命爲攝主號曰奇首右賢王聞之遣人勸帝止之帝綜不聽

    "을미 52년(B.C.1286), 우현왕 고등이 죽으니, 그의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세습하여 우현왕(右賢王)이 되었다. "

    흉노.백제가 계승한 좌.우현왕 제도는 이미 단군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통치방식이였음을 알 수 있으니, 흉노제국이 단군조선에서 분가한 갈래이며, 백제는 단군조선(부여)을 계승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니다..단군조선의 좌.우현왕 제도가 흉노의 영향인 것 처럼 날조하면 안 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