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240814_제291차 최고위원회 회의
정청래 최고위원: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조지오웰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 보다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 - E.H.카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일기
역사와 관련된 정의와 명언들은 많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며 체념적 역사관을 가르치기도 하고, 역사는 다 지나간 일이며 따지지 말자고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합니다.
과거를 두려워하는 세력에게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후회와 통탄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나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제 치하 35년간 조선의 백성들은 일본의 총 칼 앞에 강제노역, 강제징역에 끌려갔으며 꽃다운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영혼을 말살당했습니다.
전쟁물자를 만든다며 쇠붙이를 빼앗아 가고, 놋그릇, 숟가락까지 수탈해 갔습니다.
일제 치하 일본의 탄압에 순응한 사람도 있고, 저항한 사람도 있습니다. 목숨 걸고 독립운동한 애국 열사들도 있고, 목숨을 구걸하고 친일 앞잡이 노릇을 한사람들도 있습니다.
친일파도 종류가 여럿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생존형, 소극적 친일도 있고, 매국적, 적극적 친일파도 많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적극적 나치 부역자는 선별해 내서 처형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반민특위 좌절로 악랄한 적극적인 친일파도 척결하지 못했습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것도 역사가 되었습니다.
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하지 못했기에 거꾸로 물구나무선 반역의 준동이 때만 되면 고개를 듭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그것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키고 발전시켰으니 오히려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 그것이 제정신입니까?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돈 벌러 다녔던 매춘’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이 제정신입니까?
일본의 수탈을 ‘수출로 돈을 번 무역’이라 주장하면 그것이 제정신입니까?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이라면 일제 치하를 미화하고 찬양까지 한다면, 그자는 오늘의 친일파고 일본의 앞잡이입니다.
100년 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죽이고, 빼앗아 갔던 그 일본 앞잡이들이 오늘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반역의 되풀이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왜구도 있었고, 왜구와 내통한 밀정도 있었고, 토착 왜구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 수탈자도 있었고, 일본과 내통하는 밀정도 있었고, 아예 대놓고 일본사람을 자처한 토착 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역사 왜곡, 식민지 찬양하는 일본 극우도 있고, 일본 극우와 똑같은 주장을 하는 한국인도 있고, 일본과 내통하는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밀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밀정과 토착 왜구는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사를 기생하며 한국에서 같이 살고 있는 거머리 같은 친일파가 명줄 길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일의 역사를 단죄하지 못한 후과가 이리도 깊습니다.
'독립기념관 관장' 문제로 불거진 또 하나의 역사전쟁, 또 하나의 역사해석관, 역사해석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리적 쟁투가 한창입니다.
작금의 또 하나의 역사전쟁에서 정의가 승리할 것인가, 불의가 승리할 것인가. 이것도 또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민족정기의 수호자냐, 아니면 반민족 반역의 앞잡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