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정원에 꽃을 심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꽃씨를 찾았다. 첫눈에 앙증맞은 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몽둥이 같은 형태의 꽃인데 그 몽둥이의 끝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있었다. 이름이 특이하다. `치통 꽃`이란다. 왜? 하고, 자세히 읽어보니, 이 꽃이 예로부터 이가 아플 때 입에 물면 아픈 부분을 마비시켜서 여느 진통제보다 낫다는 설명이었다. 이 예쁜 꽃이 그런 효과까지?
주문해 놓고 매일 우체통만 열어봤다. 그것이 온 것 같다. 발신인이 모 씨 회사로 되어있는 보통 편지 봉투였다. 봉투 안엔 쪽지 한 장이 달랑 들어 있었다. 접힌 쪽지 안엔 작은 플라스틱 봉투가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플라스틱 봉투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봉투 벽에 무슨 먼지나 혹은 흙 부스러기가 묻어 있긴 하지만 씨앗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실망이다. 실수로 씨를 넣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쪽지를 읽어보니 "먼지 같이 보여도 먼지가 아닙니다. 조심해서 다루어 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씨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먼지는 작은 플라스틱 봉투의 벽에 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아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고생하다가 봉투 입구를 조금 동그랗게 하여 공기를 넣어주고 살짝 흔들어 주니까 먼지는 봉투 벽에서 떨어져 나와 내 왼쪽 손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와 앉았다. 쪽지에 적힌 지시사항은 `심으려 하지 말고 흙 위에 그냥 놓으라.`는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흙 위에 놓고`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부드러운 흙을 살짝 뿌려주었다. 다 됐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어졌다. 가볍게 맨손으로 흙을 토닥거리며 나도 모르게 `잘 자라라` 혼잣말을 하면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이 먼지 같은 것도 흙에 닿으면 움터서 자라고 꽃을 피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치통 꽃이라고 부르는 생명에겐 그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신 같은 존재인 인간인 `나`. 나의 근원도 먼지라고 하지 않는가. 별이 만든 먼지, 우주의 먼지로 우주 공간을 떠돌며 억겁의 시간을 지나 어떻게 이 지구라는 행성에 왔고, 또 지구의 생명의 시간, 40억 년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을 얻어 인간으로 존재하는 `나`. 어떻게 나는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면서 꽃씨를 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단 말인가. 지구의 녹색 외투, 생명 그물망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먼지는 지구의 생명 시스템에서 아주 중요하다. 먼지는 구름의 씨앗이다. 공기 중의 먼지는 주변의 수분을 응집하여 구름을 만든다. 구름은 공기 중의 수증기를 비나 눈으로 만들어 땅에 뿌리어 지구의 강과 바다로 흐르면서 모든 생명 활동의 근원이 된다.
먼지가 없으면 구름도 없다. 구름이 없으면 비도 눈도 올 수가 없다. 한마디로 생명 그물망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모든 생명들이 다양하게 번성해 왔고 다양한 자기 모습과 역할로 서로 협동하고 상호의존하여 생명 그물망은 더 튼튼해져 왔다.
생명 다양성이 생명 그물망을 더 안전하고 튼튼하게 만든다. 다양한 생명들이 서로 협력하여 공존하고 의지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치통 꽃과 나의 DNA는 적어도 10%는 같을 것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우리 모두가 지구의 옛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의 씨앗 세포에서 나왔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별 먼지였었고 지금은 생명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지구의 얇은 녹색 외투, 생명 그물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누릴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 졸업 오크라호마주립대학 교육심리학 박사과정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한국어 교수 미주한국일보 시부문 최우수상 코스미안 고정 칼럼리스트 전 환경부 국가정책자문위원 콜롬비아 칼리지 부학장 워싱톤문인회 회원 동양정신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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