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사무실.
컴퓨터 화면 속 영화가 조용히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윤 씨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영 님?"
그녀가 불쑥 나를 불렀다.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
서윤 씨는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저… 오늘, 처음으로 컴퓨터로 영화 봐요."
"정말요?"
나는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네. 보육원에서는 TV로만 봤어요. 컴퓨터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나를 옛날로 데려갔다.
작은 방 안.
나란히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기억.
동생은 늘 내 곁에서 영상을 보면서, 소소한 감상을 나누곤 했다.
'언니, 이 장면 좀 봐! 이 캐릭터 진짜 멋지지 않아?'
'언니는 어떤 장면이 좋아?'
그런데 지금, 같은 질문을 해주던 동생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는—
"아영 님도… 어릴 때 이런 영화 보셨나요?"
나는 한순간 말을 잃었다.
서윤 씨는 모니터 불빛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내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많이 봤어요. 동생이랑."
그 말을 내뱉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조여왔다.
그리고, 감춰야 할 감정이 서서히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
그러나 더 가까워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
나는 손을 말아 쥐었다.
"그렇구나…"
서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아영 님이랑 같이 영화 보니까, 저도 언니가 생긴 것 같아요."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삼켰다.
"언니가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어서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따뜻하고, 안심되는 기분."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러나 나는 떨리고 있었다.
'안 돼.'
나는 생각했다.
이런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대체물" 이 아니고, 나는 과거에 갇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감정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척하며, 서윤 씨를 몰래 바라봤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그녀의 옆모습.
눈동자 아래 드리워진 속눈썹의 그림자.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 줬으면 했다.
그리고—
나는 두려웠다.
이 감정이 들켜버릴까 봐.
이 사람마저 잃어버릴까 봐.
나는 그녀를 향한 감정을 애써 삼킨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러나, 화면 속 영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사무실은 조용했다.
창밖에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서윤 씨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눈에 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조용히 숨을 삼켰다.
'가까이 가고 싶다.'
그 감정이 점점 뚜렷해졌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무언가를 눈치채지 않도록.
그 순간—
"아영 님."
서윤 씨가 나를 불렀다.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
그녀는 모니터를 바라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영 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가족을 잃으면… 어떤 기분인가요?"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묻죠?"
서윤 씨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왠지 슬퍼 보였다.
"그냥… 문득 궁금해서요."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이유가 있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윤 씨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저는… 가족이 없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하게 공허했다.
"어릴 때부터 혼자였어요. 보육원에서 지냈지만, 거기 있는 애들은 전부 친구였지, 가족은 아니었거든요."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가끔 생각해요. 만약 제가 누군가를 가족처럼 여겼다면… 잃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고."
나는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감정을 모른 채 살아온 거구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잃는다는 건."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이 없는 순간을 계속 떠올리는 일이에요."
서윤 씨가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문득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는 거죠."
나는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그러니까… 가끔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지기도 해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럼."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영 님은, 저를 보고 그 빈자리가 채워지나요?"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깊이 나를 꿰뚫고 있었다.
마치, 내가 숨기고 있던 감정을 알고 있다는 듯.
나는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거짓말."
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말아 쥐었다.
"…서윤 씨."
"저도 알아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영 님이 저를 특별하게 대하고 있다는 거."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를 뽑았을 때부터 느꼈어요. 이유가 있구나, 하고."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근데, 저도 아영 님이 신경 쓰여요."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저는… 아영 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을 넘어갈 용기가 없었다.
가까이 가고 싶으면서도, 멀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 감정을 들켜서는 안 돼.’
하지만—
그녀가 지금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그녀는 조용히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중한 직원이에요."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마치,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서윤 씨는 내 대답을 듣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의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어른거렸다.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다.
'소중한 직원이에요.'
방금 내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 꼭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가슴속에서 파도처럼 출렁이는 감정은,
단순한 "직원"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요?"
서윤 씨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그녀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앞으로 더 열심히 배워야겠네요. 소중한 직원이라면, 능력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녀의 말투는 밝았지만, 나는 어딘가 낯설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기대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대를 외면했다.
하지만—
'그래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것이 나를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윤 씨가 시선을 돌릴 때,
그녀의 눈길이 잠시 흔들린 걸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상처 입혔다는 증거라는 것도.
나는 조용히 손을 말아 쥐었다.
"…내일 일찍 오세요."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천천히 익히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서윤 씨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한밤의 바람이 조용히 불어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나와 똑같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걸까.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수도 없었다.
첫댓글 갈아엎고 새로 썼다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미코 계정 두개이긴 하다녜
요즘 발할라 서바이버 하고있는케도-
아레스? 작년에 접었는케도-
환불도 안해준다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