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도 돼요?"
그녀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흘러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하죠."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썼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혹시 오늘은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서윤 씨의 자리를 바라보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사무실 정문 앞,
낮은 노크 소리.
나는 그 문을 열면서,
조용히 숨을 삼켰다.
"정말 왔네요."
그녀는 눈가가 살짝 붉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너무 많은 것들이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오고 싶었어요."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조여오는지 몰랐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처음으로.
그녀가 내 팔 안에서 조용히 숨을 내쉬는 걸 들었다.
그 순간, 나도 알았다.
아, 이 감정은,
도망치면 안 되는 거구나.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작업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서윤 씨는 가만히 커피 잔을 감싸쥔 채
손끝으로 테두리를 따라 문질렀다.
눈은 내려다본 채, 무언가를 곱씹는 듯한 표정.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하지 못했다.
"…무섭지 않아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을 ‘딸’이라고 부르면,
그게 정말 좋은 일일까,
아니면 다시 혼란스러워지는 일일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늘 아영 님의 메시지를 보고,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나를 낳았느냐보다,
누가 나를 지금 기다려주느냐가
더 소중하다는 거요."
나는 웃으려고 했지만,
표정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왜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면서도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걸까.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기적처럼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나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서윤 씨를
동생과 닮아서 곁에 두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사실은 처음부터,
다른 감정이었다는 걸.
그녀가 웃으면
나는 그걸 다시 보고 싶어졌고,
그녀가 슬퍼하면
내가 대신 그걸 덜어주고 싶었다.
그런 감정을,
예전엔 사랑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아마, 그렇겠지.
"서윤 씨."
내가 조용히 부르자,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당신이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
나는, 당신을 내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네…"
"동생을 닮았다고 생각했었고…
지금까지 그 핑계로, 감정이라는 걸 계속 속여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말 못 해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이,
누굴 닮았든 상관없이
그저 ‘서윤’이라서 좋은 거예요."
조용한 밤,
무너지는 목소리.
"누군가 당신을 데려가 버릴까 봐…
그래서 매일, 겁났어요."
말끝이 떨렸다.
숨을 삼킬 틈도 없이,
가슴속에서 밀려올라온 말들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당신이 내게서 떠나버릴까 봐…"
"…아영 님."
그녀가 조용히 불렀다.
그 이름이,
그 순간,
모든 울음을 삼키는 주문처럼 들렸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당신을 아끼는 이유는,
닮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이에요."
"…"
"그러니까… 부탁이에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아요."
그녀는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조심스럽게 내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
하지만 그 감촉 하나에
나는 벅차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도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아영 님이 나를 불러줄 때마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이라는 게,
누군가를 부르면 대답해주는 것이고,
그게 곁에 있다는 증거가 된다면—
나는,
평생 이 사람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날이 와도,
나는 계속,
부르고 있을 거다.
서윤.
내가 처음으로
잃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
밖은 조용했다.
밤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조용한 고백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우리 둘만의 시작이 되길 바랐다.
.
.
.
창밖은 조용했고,
방 안의 시계는 가만히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핸드폰 화면이 꺼진다.
다시 켠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녀의 메시지를 다시 꺼내 보려다,
멈췄다.
굳이 읽지 않아도
이미 가슴 속에 새겨져 있으니까.
"나는 당신이, 닮아서가 아니라,
그저 서윤이라서 좋은 거예요."
그 말이
밤하늘에 떠 있는 듯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불러준 것은.
조건도, 이유도 없이.
누구의 대체도 아니고,
가여운 아이도 아니고,
불쌍한 고아도 아닌—
그냥 ‘서윤’이라는 사람으로.
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간 기분.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어릴 때,
보육원 담장 너머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엄마일지도,
아닐지도 모를 그 누군가.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기다리는 것조차
습관처럼 잊혀져 갔다.
그렇게 ‘기다림’은
포기해야 하는 감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바보같이."
이제 와서야 깨닫다니.
누구보다 늦게,
누구보다 절박하게.
아영 님이 말했었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누군가를 그렇게 떠나보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의 틈에 스며들었다.
그게 애초에 잘못된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는 확실히.
침대 옆 서랍에서 작은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 사람이 주고 간 것.
‘가족일지도 모를 누군가’가.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
나는 천천히 그걸 바라보다,
조용히 다시 접어 넣었다.
"미안해요."
작게 중얼였다.
"그 사람이 날 찾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영 님 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 “아영 님.
내일은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그리고… 저도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손이 잠시 멈췄다.
심장이 천천히,
하지만 깊게 뛰었다.
그녀가 읽고 대답해주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은 더 이상 내 안에만 둘 수 없다는 것.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 속에 사랑이 담겨 있길 바랐다.
밖은 아직 새벽이었다.
어디선가
작은 바람이 창틀을 흔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밤이 끝나면,
내가 먼저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녀의 곁으로.
내가 선택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때는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무너지는 고백에
어떤 마음으로 숨을 삼켰는지.
그리고,
그 숨이
결국 사랑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
.
.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서윤 씨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햇빛이 들지 않은 조용한 아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그리웠는지 모른다.
"…메시지 읽었어요."
내가 조용히 말하자,
서윤 씨가 돌아보았다.
"제가 먼저 기다리고 싶었어요."
그녀의 눈은 맑았고,
이상하게 슬픈 웃음이 담겨 있었다.
"왜요?"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며,
잠시 고개를 떨궜다.
"아영 님이 그랬잖아요.
기다리는 게 무서웠다고."
"…"
"그래서 이번엔… 제가 먼저 기다려보고 싶었어요."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제, 편지 받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분이 정말 제 어머니일지도 몰라요.
사진도 있었고,
편지에는 '미안했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녀는 손끝을 천천히 깍지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상하죠."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나도 울고 싶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
"그냥, 아영 님의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어요."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저한테 말했잖아요.
‘당신이 서윤이라서 좋다’고."
나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 말을 계속 곱씹었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게, 저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손끝이 떨렸다.
"서윤 씨…"
"저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처음엔,
아영 님이 저를 보면서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
"근데 지금은 알아요.
그 기억은 아영 님의 일부고,
그걸 껴안고 있는 아영 님이니까—
그 안에서 저는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조용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가까운 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전 이제,
그냥 누군가의 딸이 되고 싶진 않아요."
그녀는 숨을 삼켰다.
"아영 님이,
제가 돌아가고 싶은 ‘누군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 말이,
나를 그대로 무너뜨렸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그 감촉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이번엔 떨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되나요?"
내가 조용히 물었다.
"어떤 이름이요?"
그녀가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슬픔도, 아픔도, 다 녹아내린 웃음.
"그냥, 서윤이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는 평생, 그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게요."
창밖엔
아직 아침의 햇빛이 완전히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곳보다 따뜻한 공간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 곁에 있는 지금,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말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제, 시작이야.
동생의 그림자도, 잃어버린 시간도 아닌—
서윤과 아영이라는 두 이름으로,
처음부터 새로 쌓아가는 시간.
첫댓글 아영이는 남자에요 여자에요?
여자다녜!
둘 다 여자다요-
김아영, 하서윤
야설로 노선변경하면 카페관리자들도 좋아하겠다능..
.. 정말이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럴줄 알고 미코가 수위 낮춘걸카나!
판타지 장르 섞어주세요 헌터물.. 아스가르드 신들 소환.. 악덕기업 마카오(카카오 아님) 소환은 렌덤가챠..
헤에-
다음 것도 기대해주라녜!
느그 부모가 너 여기서 이런거 쓰는거 아시냐?
남자둘 장르는 없나요
에또-
그건 익숙하지 않은케도. 재밌을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