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원전거(歸園田居)3-도연명(陶淵明)(전원으로 돌아와서)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남산 기슭에 콩을 뿌렸더니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풀만 우거져 콩 싹은 드물다
晨興理荒穢(신흥이황예) 새벽에 일어나 잡초를 뽑고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달이 뜨면 호미 메고 돌아온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길은 좁고 초목이 우거져
夕露霑我衣(석로점아의) 저녁 이슬 내 옷을 적신다
衣霑不足惜(의점부족석) 옷이야 젖은들 아쉬울 것 없지만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다만 내 바람이 어긋나지 않았으면 한다(바라기는 콩싹이 제대로 자랐으면 한다)
*도연명[陶淵明, 365~427, 자는 원량(元亮), 송나라가 들어선 다음 이름을 잠(潛)으로 고침]은 중국 동진(東晋)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대(宋代)초기에 걸쳐 생존한 중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으며, 그의 시풍은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 등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주요 작품으로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귀거래사”등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성장하여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리생활을 하다가 41세 때 유명한 귀거래사를 읊으며 마지막 관직인 팽택 현령 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여 농사를 짓고 술을 벗삼아 시를 지었습니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으로 시인이 41세 때 팽택 현령(彭澤縣令) 자리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작품으로 5수 연작 중 위 시는 그 세 번째 작품이며, 같은 무렵 쓰여진 것이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입니다. 속세를 떠나 조용히 밭이나 갈고 지내겠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이후 죽을 때까지 22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합니다.
*형식 : 오언고시(五言古詩)
*園田居(원전거) : 園田은 논밭, 논밭 안에 있는 주거
南山(남산) : 여산廬山의 별칭,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남쪽에 위치한 명산으로, 웅장하고 기이하기로 유명함, 이백의 ‘망여산폭포’로 더욱 유명해졌다.
晨興(신흥) : 새벽에 일어나다
理(이) : 제거하다
荒穢(황예) : 잡초
帶月(대월) : 달을 데리고
鋤(서) : 큰 호미
長(장) : 伸과 같음, 성장함
違(위) : 기대에 어긋남.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댓글에 깊이 감사드리고,
무더위에 건강하시고,
늘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