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농구팀의 창단이 가시화 된것은 94년입니다. 당시 농구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던때였고,
5대그룹에 들어가는 대우그룹도 당연히 농구팀창단계획을 새웁니다.
94년 창단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고 본격적인 실업농구참여는 96년으로 잡습니다.
당시 농구연맹측에서는 신생팀에 한하여 한 대학의 선수를 우선지명으로 할수 있게 했는데
대우증권이 창단되는 시점에 맞춰 대학을 졸업하는 선수는 전희철 우지원 김병철 김훈 조성훈 정재헌 김희선 정진영과 같은 좋은 선수들이었습니다.
규칙에 따르면 대우증권은 전희철 김병철이 있는 고려대, 우지원 김훈이 있는 연세대, 조성훈 정재헌이 있는 명지대가 유력한 지명팀으로 거론되었습니다. 고려대의 경우엔 전희철과 김병철도 좋지만 박준영,김승민과 같은 선수들도 있어 팀창단시 가장 빠르게 전력을 정비할수 있었죠. 연세대의 경우엔 최고의 스타 우지원,김훈,석주일이 있지만 다들 슈터에 가까운 선수들이고 고려대에 비해 밸런스가 고르지 않았죠.
재밌는것은 감독마저도 전설의 감독인 박한감독을 잠재적인 후보 1순위로 놨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코치로는 유재학 당시 연세대코치를 내정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창단하기로한 동양제과측에서 우선지명으로 고려대를 지명함에 따라 당초 고려대를 지명하고자했던 연세대의 계획은 틀어집니다. 고려대가 안된다면 당연히 차선택으로는 연세대일수밖에 없었구요. 당연히 연세대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창단하기로 한 대우증권과 동양증권은 팀에서 우선지명한 학교의 감독을 감독1순위로 내정합니다. 그럼에따라 대우증권은 최희암, 동양증권은 박한을 내정하지만 모두 결렬되고 대우증권은 최종규, 동양증권은 박광호를 감독으로 내정합니다.
대우증권팀에 대한 얘기만 쓰려고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과정으로 창단한 동양증권을 빼놓고 말하기도 힘든것 같네요.
어쨌든 당시 94년을 보면 농구의 ㅎㄷㄷ한 인기에 힘입어 무려 3개기업에서 창단의사를 밝힙니다. 세계경영을 외치던 대우그룹, 그리고 제과업계의 최고 동양제과, 럭키와 금성의 합병으로 탄력받은 럭키금성까지 3개기업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대로 신생팀은 한개 대학선수들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할수 있고 더불어 연고대학의 2명의 선수를 추가로 지명할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구단들에게 반발을 샀고, 실제로 3개구단이 모두 창단할수 있을정도로 대학졸업선수들의 선수층이 두터운것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농구팀창단 계획을 밝힌 대우증권과 동양제과가 먼저 창단을 하고 럭키금성은 97-98시즌에 맞춰 팀창단을 하게 됩니다.
다시 대우증권으로 돌아오면 실업팀이었던 대우증권의 베스트5는 조성훈 김훈 우지원 정재헌 구장환이었을겁니다.
꽤 옛날이라 과거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지만 아마 이렇게 됐을겁니다.
간략하게 당시 베스트 5를 소개하자면
명지대 출신의 조성훈은 신장은 큰편이 아니었지만 3점슛만 따지면 당시 농대 최고의 3점슛터였던 김훈,우지원에 비교해도 전혀 꿀릴게 없던 좋은 선수였습니다. 더불어서 정통2번이라 리딩력도 좀 되는 선수였습니다.
팀사정상 1번을 수행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좋은 활약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태생적인 2번이었던 선수였기에 어디까지나 '생각보다'좋은 활약이었을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당연히 대우증권은 고질적1번문제를 안게 됩니다.
스마일슈터 김훈은 공익근무이후 부상등으로 인해 조기은퇴하지만 수비력에서 당대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던 선수였고 더불어 슛팅력이 좋았고 간간히 좋은 패스를 하는 선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김훈선수의 열광적인 팬이었는데 크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늘 실실 웃는 그 미소때문에 여성팬들도 많았죠.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늘 악착같은 수비와 슛팅력을 가진 살림꾼역할을 해주던 선수였습니다.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은 개인적으로 역대 케비엘 선수중 가장 저평가된 선수라고 보고 있고, 나중에 우지원선수의 커리어를 정리한 글을 쓸 예정입니다만, 어쨌든 이글을 통해서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면요. 이때도 거품논란은 있었습니다. 굉장한 득점력을 가지고 있고, 에이스기질도 있던 선수지만 아무래도 잘생긴 외모 때문에 저평가된면이 굉장히 강했고 거품논란도 있었습니다. 193의 스몰포워드치고 (당시)큰 신장이었고 뛰어난 스피드와 3점슛능력만큼은 손꼽힐만한 선수였죠. 더불어서 당시만 하더라도 돌파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얼굴때문인지 뺀질댄다는 평과 수비가 약하다는 평, 그리고 얼빠들의 영향으로 인해(동방신기가 저평가 받듯이) 반복하듯 저평가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4번롤을 수행한 정재헌의 경우엔 우지원과 같은 신장의 선수였는데 웨이트가 굉장히 좋고(살이었나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성도 갖춘 선수로 3점슛능력도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비큐가 생각보다 좋지 못하고 기본기가 약해 다재다능함을 살리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92 소띠 선수들의 경우엔 대표적인 선수가 전희철(당시 유일한 92학번 국가대표)김병철 우지원 김훈과 같이 고대,연대에 스타들이 몰려있었지만 명지대의 조성훈과 정재헌도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던 선수였습니다.
190살짝 넘는 초단신 센터 구장환의 경우엔 팀내에서도 김택훈 서장훈에 밀려 많은 출전 시간을 받던 선수는 아니었으나 때맞춰 좋은 활약해준 동기들 덕분에 대우증권에 입단하였고 기량이 어땠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나네요.
그외 좋은 선수로는 석주일선수가 있었는데요. 역시 3점슛이 굉장히 좋은 선수였지만 신장이 작고 수비가 약한 선수라 점점 시간이 흘러가며 도태된 선수죠. 이 선수도 잘생긴편이라 여성팬들을 몰고다니던 선수입니다.
어쨌든 이정도의 선수가 주축이 되어 탄생한 팀이 대우증권이었습니다.
원래 알려진바로는 대우그룹은 농구팀이 아닌 야구팀창단을 계획하고 있었고, 실제로 대우그룹의 연고지라 할수 있는 인천지역의 야구팀 태평양돌핀스를 인수하려 했으나 400억에 이르는 인수금액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때마침 프로화진행중이던 농구팀에 매력을 느껴 농구팀을 창단하게 되죠.
당시 법에 따르면 증권팀은 농구팀을 창단할수 없어 첫해에만 대우증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운영되다 다음해부터는 대우제우스라는 독립법인으로 운영됩니다.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좋은글 잘봤어요~ 전 연대팬여었다가 그대로 대우를 응원하고 지금은 전랜을 응원하게됐다능....
대우 ? 전랜 ? 의 전성기는 얼 아이크가 있던 때로 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플옵 4강에서 무릎꿇던때가 아닐지..ㅠㅠ
그때 아이크 부상만 아니였어도..ㅠㅠ
근데 석주일선수는 수비 전문선수로 기억하는데요... 연대때부터.. 아니가요 ? 헷갈리네요 ㅋ
아ㅏ아아ㅏ 맞습니다. 석주일 선수 수비 굉장히 좋은 선수죠. 잘못썼네요. 01-02시즌은 제가 생각할때도 가장 좋은 시즌인데요. 최명도-조동현-문경은-맥도웰-얼아이크로 구성된 베스트5로, 당시 충분히 우승전력이라고 볼수 있었죠. 얼아이크선수가 부상당할 시점에서 제 기억으로는 1위였고,, 얼아이크가 2개라운드 정도 끝나고 돌아오고 시즌마감할때는 4위였습니다. 얼아이크선수가 빠지고 화이트라는 대체선수가 들어와서 그럭저럭 해주었지만 그게 한계였을겁니다. 돌아온 아이크도 예전만한 몸상태가 아닌지라 아쉽게 4강플옵에서 탈락하죠.
문경은 있고 하면.. 대우 시절은 아니고.. 신세기 빅스. 시절이네요.. 암튼.. 이름이 대개 자주 바꾸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전자랜드 이지만.. 팀명 정말. 자주 바뀐...
문경은이 있던 시절은 SK빅스죠.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저 역시도 우지원 선수는 저평가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었다면 우지원의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잘생긴게 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자들한테요....
듣기론 유재학 감독이 연세대 코치였지만 연대 선수들보다는 고대 선수들을 원했다고 들었는데(김병철 전희철 있으니 저라도 슈터 포지션이 많은 연대보단 고대가 끌릴듯 합니다) 유재학 감독이 대우증권 창단할때 코치였었죠?? 제가 들은 얘기가 성립하려면;; ㅋㅋ 기억이 가물가물
원래 대우증권이 고대선수들을 지명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방열감독-유재학코치로 내정된 상태에서 동양제과가 고대를 지명하기로 바뀌면서 방열감독은 파토났구요. 유재학코치가 연대를 지명하구요 후에 최종규 당시 연대총감독이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최종규감독-유재학코치체제로 출발합니다.
woo ji won.. number 1 player..
저 또한 우지원,김훈때문에 현 전자랜드를 여태 응원하고있습니다. 위글 보면 자칫(?)하다간 전희철,김병철 선수가 대우로 입단할뻔 했는데. 그랬다면 전 지금 전자랜드가 아닌, 대구를 응원했을 수도 있었겠네요. 만약 그랬다면,, 전자랜드 창단하고 4강 이후 매번 하위권을 유지하는 전자랜드,, 휴...;;;;; 매 시즌 하위권 맴돌던 팀이지만 떠날 수 없는 정이 깊게 박혀버렸네요.
당시 우지원 선수의 전호장 머리(?!)가 기억나네요 ㅎㅎ
당시가 아니라..군복무후였나 다시 복귀할떄 아니었나요.
군복무전에 머리를 길게 길렀죠. 그땐 정말 황태자 그자체의 포스였습니다
동양선수들이 그랜트 힐이 신던 필라 농구화 많이 신고나왔죠 원년 크블 스폰서가 필라라 그거 신고 뛰는 선수가 많았던 기억나네요. 대우의 마이클 엘리엇이랑 네이트 터브스하고...매직 존슨이랑 뛰던 것도 기억나고요
교회형들이랑 예배 끝나고 교회 근처 사는 형 집에 가서 프로농구 개막전 보던 기억이 나네요...;;;;;ㅋㅋㅋㅋㅋㅋㅋ
조성훈 슛폼이 되게 여성스럽지 않았나요? 그렇게 기억하는데 ㅋㅋ 첫년도에 용병이 앨리어트랑 터브스엿나? 가물가물하네요 ㅋ 전 윌리암스있을시절의 대우가 젤 기억이 남군요 ㅎㅎ
엉덩이 빼고 쏘던게 기억나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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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깡시골이지만 당시 도원역 근처는 야구장에 종합운동장에 농구장 수영장 등 인천 스포츠의 중심이었죠 ^^
ㅋㅋ 지금이야 완전... 허접한 동네지만 그당시만 해도 정말 스포츠의 메카이고 동인천이라는 초호화 럭셔리 동네를 지닌 곳이었죠.
도원역근처 실내체육관에서 얼마 안있다가 부천체육관으로 옮겼죠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인거같은데 그때 부천농구 열기 엄청났습니다.. 그립군요
그때까지도 LG 대신 럭키금성이란 이름이 쓰였었군요. 가전업계의 전설 금성.....요즘은 LG도 GS와 LS로 그룹분리를 하는거 같은데......아직 전자만은 LG를 쓰고 있죠. 국내외 너무 많이 알려져있는 터라.....
프로농구 원년에 대우제우스 응원했는데 진짜 오랜만에 대우에 관련한 글을 읽네요^^ 지금은 팀을 갈아탔지만;; 아 추억의 이름들이네요 김훈ㅠ
조성훈 선수 명지대에서 1번을 보던 선수가 아니였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슛폼은 좀 특이했습니다. 앞쪽에서 약간 밀어쏘는 느낌.. 하지만 적중률은 엄청났구요. 우지원선수랑 추승균선수는 얼굴때문에 피해를 본 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량은 두선수모두 정말 뛰어나죠 ^^; 정재헌선수는 예전 윌리포드에게 반칙했던것이 생각나네요. 윌리포드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노발대발 했었죠~
백인센터 스탐도 생각나네요..ㅎㅎ
스텀 별명이 슈퍼맨이었죠.. 잘생긴 백인센터..
리바만큼은 리그 워투쓰리에 들 정도로 립 하나는 잘해주던..
기억나는게 있다면.. 경기중에 대우가 속공을 나갔는데.. 스텀이 멋진 투핸드덩크로 박력있게 마무리해줬던 기억이..
준수??스텀은 역대 전자랜드 센터용병중 3손가락안에 들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였쬬
겨드랑이 털이 길고 노란색이라 충격을 줬던 선수..
스텀은 원래 재계약하기로 했는데, 우지원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의 입대로 공격력 약화를 우려해서 수비가 강하고 공격은 좀 떨어지는 스텀에 대한 재계약은 결국 구단이 포기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역시 대우하면..
우지원-김훈 쌍포..
그리고 고 카를로스윌리엄스..ㅠㅠ
우지원 선수가 전형적으로 떨어지면 쏘고, 붙으면 파는 스타일의 슈터었죠. 이지승 선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상대 슈터 중 누가 가장 막기 힘든가란 질문에 주저없이 우지원이란 대답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우지원 선수, 상당히 빠르고 개인기가 뛰어난 슈터였습니다.
맞습니다. 전형적인 스몰포워드스타일의 스코어러인데 이상하게 저평가많이됐죠. 배컴이 프리킥만 잘차는걸로 아는것처럼요.
김훈, 조성훈 둘이서 3점 미친 듯 쳐넣던게 생각나네요...
전 대우제우스 최고의 선수는...故 카를로스 윌리엄스라고 생각합니다...ㅠ.ㅠ
기억나네요.. 다양한 공격 재주를 가졌던 선수인데 총격을 당하다니..
로즈그린...ㅠㅠ
제 기억에..대우증권에 우지원보다 1년선배 이상민과 동기로 김성헌 이라는 단신 포인트가드가 있었습니다..고교시절부터 가드넘버 2..이상민에 가려 연세대에서 못봤던 빛을 대우증권에 와서 보나보다 했는데..선수생활을 오래하지는 않고 은퇴..구단에서 주무를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176단신이지만 당시 꽤 화려한 드리블링과 스피드를 보여주던 선수였습니다..대우증권이라는 신생팀을 기억해보니..갑자기 생각나서..ㅎㅎ
지금은 전자랜드 구단 프론트에서 과장님이십니다!
농구대잔치시절 명지대를 좋아했기 때문에 조성훈,정재헌 선수가 생각 나네요. 조성훈-고상준-조성원 트리오의 활약으로 연세대를 잡았던 경기는 아직도 생생 합니다. 박재일-장영재-정재헌-윤제한 같은 빅맨들도 매력 있었죠. 그런데, 정재헌 선수의 경우에는 오히려 BQ가 좋았던 선수로 기억 합니다. 워낙 느리고 키가 작아서 대성하지는 못했지만,튼튼한 신체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괜찮은 바스켓 센스를 보여줬던 선수죠...
우지원이 저평가된 선수라는데 동감합니다. 우지원은 돌파도 되고 슛도 좋고 수비도 구멍이 아니었죠...경기중에 봐도 굉장히 열심히 뛰고....이미지라는게 참 무섭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