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마흔 번째로 화성 융건릉의 융릉(隆陵, 추존 장조와 헌경황후) 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隆陵, 추존 장조와 헌경황후)
위치 :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조성 연도 : 1762년(영조 38), 1789년(정조 13), 1816년(순조 16), 1899년(광무 3)
왕릉 형식 : 합장릉
합장릉(合葬陵)
합장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이다. 영조 이전의 합장릉은 혼유석을 2좌씩 배치하였으나 영조 이후에는 혼유석을 1좌씩 배치하였다. 대표적으로 세종 영릉, 인조 장릉, 정조 건릉 등 8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순종황제 유릉은 황제와 황후 두 분을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동봉삼실(同封三室) 합장릉이다.
▷ 융릉(隆陵) 이야기
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융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1762년(영조 38)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이후 무덤을 수은묘(垂恩墓)라 불렀다. 1776년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에게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존호(尊號)를 올렸고,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이는 장헌세자가 왕세자의 신분도 있었지만, 왕의 생부이기 때문에 무덤의 이름을 원으로 정한 것이다. 이후 정조는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1789년(정조 13) 수원 화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원의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1815년(순조 15) 헌경황후(혜경궁)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현륭원에 합장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장헌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하였다.
융릉은 원으로 조성되었으나 정조가 특별히 예를 갖추어 화려하게 조성하여 다른 조선시대 왕세자 무덤의 형식과 다르다. 봉분은 병풍석만 둘렀고 난간석은 생략하였는데 병풍석은 인조의 장릉(長陵)의 예에 따라 모란과 연꽃무늬로 새겼고, 병풍석의 인석(引石)은 꽃봉오리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그리고 무석인을 추가로 설치하였고, 문석인은 금관조복을 입은 형태이며 석마, 석양, 석호는 각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2개의 표석이 있는데 1비는 정조 대에 세운 ‘사도장헌세자 현륭원’ 표석이고, 2비는 조선시대 ‘헌경혜빈’ 표석을 대한제국 때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로 바꾼 표석이다. 홍살문 앞에는 동그란 모양의 연못인 곤신지(坤申池)가 있는데, 이는 풍수적 논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 장조(莊祖) 이야기
장조(재세 : 1735년 음력 1월 21일 ~ 1762년 음력 윤5월 21일)는 영조와 영빈 이씨의 아들로 1735년(영조 11)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나 다음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3세가 되었을 때 이미 『효경』을 외울 정도였으며, 수시로 글을 쓰고 시를 지어 대신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왕세자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갖춰 영조의 기대가 매우 컸다.
그러나 1749년(영조 25) 영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자(대리청정), 왕세자를 경계하는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고 영조와도 불화가 자주 생겼다. 특히 1762년(영조 38) 나경언이 왕세자의 비행을 고변하자 크게 노한 영조는 나경언을 처형하고 왕세자에게 자결할 것을 명하였다. 결국 영조는 왕세자를 폐위한 후 창경궁 휘령전(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신주를 모신 곳, 현 문정전) 앞에 있던 뒤주에 가두었고, 왕세자는 8일 만에 28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자신의 행동을 곧 후회하고 폐위하였던 왕세자의 신분을 회복한 후 사도세자(思悼世子)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이후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호칭을 올렸으며, 1899년(광무 3) 고종의 직계 5대 조상의 자격(고조부)으로 장종대왕(莊宗大王)으로 추존되었다가 곧바로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존되었다.
▷ 헌경황후(獻敬皇后) 이야기
헌경황후 홍씨(재세 : 1735년 음력 6월 18일 ~ 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본관이 풍산인 영풍부원군 홍봉한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딸로 1735년(영조 11) 반송방 외가 사저에서 태어났다. 1744년(영조 20) 왕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1762년(영조 38) 장조가 세상을 떠나자 혜빈(惠嬪)에 봉해졌다.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호칭을 높여 혜경궁(惠慶宮)이라 하였다. 헌경황후는 본인의 삶을 비롯하여 친정 가문, 그리고 남편 장조의 참변에 관한 이야기를 자전적 수필로 쓴 『한중록』을 남겼다.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왕실의 어른으로 생활하다가 1815년(순조 15) 창경궁 경춘전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헌경왕후(獻敬王后)로 추존되었고, 곧바로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추존되었다.
*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華城 隆陵 개비자나무)
개비자나무는 개비자나무과의 늘푸른 바늘잎 작은키나무로 보통 높이 3m 이내로 자란다. 융릉 재실에 위치하고 있는 이 개비자나무는 높이가 4m에 이르고 줄기 둘레도 80cm에 이르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어 융릉 재실 조성 당시에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우리나라 개비자나무를 대표하여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커 200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첫댓글 존아침입니다 위원장님
11월도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베라루빈
최근은 안가봤는데
가볼만 합니다
산책하기 좋음
옆에 아들인 정조의 릉과 함께 수원 시민들께서 자주 찾아주시는 곳이죠.
@베라루빈 ㅋㅋㅋㅋㅋㅋ 뭐이래 진지하셔
아무튼 산책겸 가볼만 합니다. 산책 한번하고 근처에 밥묵고
@마데스요
ㅋㅋㅋㅋ
저는 마데스요님께서 섹스가 아니라 산책 같은 고급진 얘기를 하시길래 ㅋㅋㅋㅋㅋ
@베라루빈 그 소나무숲 그늘진곳에서
야외쓰엑스도 하면 좋죠
@마데스요
야떡
루빈 36세
이제 30세 넘었으니, 안전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