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나와 들녘 마을로
그제 소한을 넘긴 일월 초순 화요일이다. 새벽잠을 깨 전날 낙동강 하구 둔치도로 탐조를 다녀온 동선에서 ‘둔치도 아침’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조만포 물길 닿은 을숙도 합류 지점 / 실려 온 모래흙은 삼각주 섬을 이뤄 / 둔치도 이름 붙여서 농사짓고 살았다 // 갈대가 시든 강가 겨울새 먹이 찾는 / 오륙도 솟은 해는 승학산 너머 비쳐 / 낙동강 서쪽 물길에 주황 윤슬 빛난다”
둔치도는 을숙도 인근 삼각주로 낙동강 하구에서 가장 남단으로 벼농사를 짓는 섬이다. 그곳으로 찾아온 겨울 철새를 보러 갔다가 무척 이른 시각이라 아침 일출도 같이 봤다. 하늘에서는 주남저수지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을 기러기들이 떼 지어 날아 낙동강 하구로 이동하는 행렬을 봤다. 먼저와 물에서 노니는 고니와 물닭은 색이 배랜 갈대숲에 은신해 평화로이 먹잇감을 찾았다.
주중 화요일은 가술로 나가 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려고 길을 나섰다. 원이대로에서 도계광장을 지날 때 교통섬을 지키는 청청한 적송이 눈길을 끌었다. 20여 년 전 어디선가 산림이 개발되면서 잘려 나가야 할 처지의 소나무가 도심으로 옮겨져 뿌리 내려 자랐다. 추사가 제주 유배지에서 남긴 ‘세한도’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추운 겨울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함을 실감한다.
창원역 앞으로 나가 근교 농촌 지역으로 운행하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동읍 일대 식당이나 찻집으로 일터를 삼은 부녀들이 출근하는 시간대여서 평소 그 시간에 움직이는 몇몇 승객들과 함께 갔다.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서 일부가 내려 버스는 혼잡하지 않았다. 주남삼거리를 지나는 습지에 고인 물에는 살얼음이 얼어 아침 햇살이 비치자 반짝였다.
장등에 이르러 대산 일반산업단지로 출근한 이가 내리니 혼자 남아 가술 국도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예전 면사무소 청사를 평생학습센터로 꾸며 운영하는 마을도서관을 찾아갔다. 열람실로 오르는 계단에는 해가 바뀌어 평생학습 프로그램 강좌를 소개하는 홍보물이 비치되어 있었다. 지역민이 문화생활을 누림에 불편하지 않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배려가 따라야 할 듯했다.
사서와 센터장이 근무하는 열람실에서 월수금은 한글 문해반과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 화요일은 열람실에서 열리는 강좌가 없어 열람석에서 혼자 머물기 일쑤였다. 책 수레에는 앞서 서가에 뽑아 읽다 접어둔 김탁환의 소설 ‘혜초’ 1, 2권이 그대로 있었다. 1권은 독파했고 2권의 중반에 멈춰 있는데 혜초가 동천축 중천축 남천죽을 거쳐 북천축에서 서천축을 가는 여정이다.
낯선 지명의 순례길이라 책을 읽는 속도감이 느렸다. 당나라 광주를 떠난 신라인 혜초가 바닷길로 동천축에 닿아 시작된 ‘왕오천축국’ 이야기다. 신라 상인 김란수와 고구려 유민으로 인도 정벌에 나선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고원 설산을 넘어 둔황으로 가는 후반부 여정이었다. 낙타나 당나귀를 탄 행로에서 도보로 가는 장면은 손을 엎뎌 짚어 네 발로 아찔한 벼랑을 타기도 했다.
소설 후반 남은 부분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점심때가 되어 열람실을 나와 떡만둣국으로 한 끼 때웠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으나 볕살이 퍼지는 오후라 들녘을 걷고자 가술 거리를 지나 죽동 천변으로 나갔다. 죽동에서 시작된 물길이 유등으로 흐르는 천변을 따라 걸어 안면을 트고 지낸 모산리 양 씨를 찾아갔다. 내보다 연장인 양 씨는 지역 토박이로 평생 흙과 더불어 일흔에 이르렀다.
양 씨 댁을 찾으니 내외가 반갑게 맞으면서 고구마와 들깨강정을 앞에 두고 농사 얘기를 나누었다. 고구마와 들깨는 북면 무동 밭에서 손수 가꾼 수확물이라고 했다. 양 씨는 젊은 날에는 수박 농사를 짓다가 10여 년 전부터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 당근을 키운다고 했다. 지난가을 추수 무렵 우리 지역 많은 비가 와 논바닥이 마르지 않아 논갈이가 늦어 애가 쓰인 얘기도 들었다. 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