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우아한 도시 루체른에서 만나는 절경,
스위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그 중에 한 곳이 루체른이고, 루체른시에서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이 빈사의 사자상이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뢰벤 광장이고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빈사의 사자상이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은 작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들어 졌다, 이 상징물은 1792년 프랑스 혁명에서 마지막까지 루이 16세를 지킨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한 작품인데, 덴마크 조각가 토르 빌센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자의 등에 꽂힌 부러진 창과 방패를 배고 잠든 사자의 모습에서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함과 쓸쓸했던 최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사자상 아래쪽에는 그 당시 전사한 용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스위스 용병들이 목숨을 걸고 자켰던 루이 16세는 누구인가?
루이 15세의 둘째 손자로 1761년 형이 죽고, 1765년에 부친이 세자 루이 페르디낭이 사망하자 1774년에 왕으로 즉위했고, 그의 아내가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루이 16세가 집권하고 있던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파리의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던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여 수비군을 죽이고 무기고를 탈취했다.
바스티유 감옥은 전제정치 하에 희생된 죄 없는 사람들이 감금되어 악랄한 옥고를 치루고 있던 곳이다. 이 습격이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였으므로 훗날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이 되었다.
그날 국왕 루이 16세의 일기에는 무無라는 말만 쓰여 있었다. 국왕이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늦게 국왕의 최측근인 랑쿠르 공이 바시티유 감옥 습격사건을 보고하자 국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무엇이라고? 그건 반역이 아닌가?“
그러자 랑쿠르 공은 다음과 같이 말다.
“폐하. 반역이 아니고 혁명입니다.”
결국 혁명정부를 믿지 못한 루이 16세는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혁명군에 붙들려 프랑스 왕 중에 유일하게 재판을 받고 1993년 1월 21일 콩쿠르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해 10월 16일에 처형당하면서 프랑스 왕조가 막을 내렸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루체른을 감싸고 있는 이 호수는‘네 개의 숲을 가진 호수’라는 뜻처럼 커다란 산과 숲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아름답다고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고,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사람의 인식이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말 한 것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하는 곳이 루체른이다.
현지어(독일어)로는 '피어발트슈퇴터 호수(Vierwaldstättersee)'로 불리고 있으며, 커다란 알프스산과 숲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파도 위에서 떠도는
수천개 의 별들의빛,
뽀얀 안개는 빙빙
주욱 뻗어 있는 원경遠景을 삼켜버리네,
아침 바람이
그늘 덮인 만을 감싸며 부네.
그리고 호수 물 위에
잘 익은 열매가 비추인다.“
괴테의 <호수 위에서>라는 시가 떠오를 것 같은 루체른 호수가에 자라잡은 루체른이라는 도시를 두고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우아한 도시 중의 하나라고 예찬하고 있다.
피어발트슈퇴터 호숫가에 위치한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면 역사적인 길을 따라 호수를 여행할 수 있는데, 리기와 필라투스, 그리고 티틀리스 등 중부 스위스 알프스로 떠날 수 있다.
루체른에서는 매 순간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이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다. 출렁거리는 호수 너머로 하얀 눈이 덮인 알프스 산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고 시간 여행으 통해 중세시대로 들어간 듯 여기저기 우뚝우뚝 각양각색으로 서 있는 작은 탑들과 지붕 있는 중세의 나무 다리인 카펠교 옆에 루체른의 상징처럼 바서투룸이 호수위에 서 있다. 팔각저수탑인 바서투룸은 성곽의 일부로 1300년대에 지어졌는데, 지금도 강의 마스코트처럼 루체른을 찾는 사람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1890년대 조선을 답사했던 이사벨라 비숍여사가 서울에서 충북 단양의 영춘까지 배를 타고 가면서 본 바로 한강에는 다리 하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서울 한강의 삼남대로가 지나던 동작진이나 영남대로가 지나던 한강진에 이런 다리 하나쯤 있었을 법 하지만 아쉽게도 하나의 다리도 없이 배로 건너다녔다.
정조 때 정조임금이 이버지 묘를 참배하러 다닐 때 일시적으로 놓았던 배다리만 있었으니,
카펠교와 몇 개의 나무 다리가 있는 강가 옆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오일장 형태는 아니지만 수많은 상인들이 야채들과 빵을 비롯한 음식물들을 팔고 있다.
루체른의 7월과 8월은 온 시내가 축제로 들썩인다. 음악가들이 콘서트와 발레, 그리고 오페라와 무용, 연극 등이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데,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루체른이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자연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선 꼭 올라가야 하는 눈 덮인 필라투스 산은 훗날 오르기로 하고 돌아서던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의 책 이름인데, 달리 말한다면“세계는 넓고 비경은 많다.”를 실감했던 답사가 스위스 알프스 몽블랑 답사였다.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도 화려하게
나를 향해서
빛나는 것일까.?
태양은 저렇게 반짝이고
풀밭은 저렇게 다정한 것일까.“
독일의 작가인 괴테가 자연을 두고 예찬한 글이다. 이렇게 찬탄해야 할 풍경들이 이 세상에는 지천에 널렸는데, 우리들은 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과연 얼마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서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
2023년 7월 1일,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우아한 도시한 도시라는 루체른에서 만나는 절경,
스위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그 중에 한 곳이 루체른이고, 루체른시에서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이 빈사의 사자상이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뢰벤 광장이고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빈사의 사자상이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은 작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들어 졌다, 이 상징물은 1792년 프랑스 혁명에서 마지막까지 루이 16세를 지킨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한 작품인데, 덴마크 조각가 토르 빌센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자의 등에 꽂힌 부러진 창과 방패를 배고 잠든 사자의 모습에서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함과 쓸쓸했던 최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사자상 아래쪽에는 그 당시 전사한 용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스위스 용병들이 목숨을 걸고 자켰던 루이 16세는 누구인가?
루이 15세의 둘째 손자로 1761년 형이 죽고, 1765년에 부친이 세자 루이 페르디낭이 사망하자 1774년에 황제로 즉위했고, 그의 아내가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루이 16세가 집권하고 있던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파리의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던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여 수비군을 죽이고 무기고를 탈취했다.
바스티유 감옥은 전제정치 하에 희생된 죄 없는 사람들이 감금되어 악랄한 옥고를 치루고 있던 곳이다. 이 습격이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였으므로 훗날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이 되었다.
그날 국왕 루이 16세의 일기에는 무無라는 말만 쓰여 있었다. 국왕이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늦게 국왕의 최측근인 랑쿠르 공이 바시티유 감옥 습격사건을 보고하자 국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무엇이라고? 그건 반역이 아닌가?“
그러자 랑쿠르 공은 다음과 같이 말다.
“폐하. 반역이 아니고 혁명입니다.”
결국 혁명정부를 믿지 못한 루이 16세는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혁명군에 붙들려 프랑스 왕 중에 유일하게 재판을 받고 1993년 1월 21일 콩쿠르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느 그해 10월 16일에 처형당하면서 프랑스 왕조가 막을 내렸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루체른을 감싸고 있는 이 호수는‘네 개의 숲을 가진 호수’라는 뜻처럼 커다란 산과 숲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아름답다고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고,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사람의 인식이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말 한 것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갖게 하는 곳이 루체른이다.
현지어(독일어)로는 '피어발트슈퇴터 호수(Vierwaldstättersee)'로 불리고 있으며, 커다란 알프스산과 숲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파도 위에서 떠도는
수천개 의 별들의빛,
뽀얀 안개는 빙빙
주욱 뻗어 있는 원경遠景을 삼켜버리네,
아침 바람이
그늘 덮인 만을 감싸며 부네.
그리고 호수 물 위에
잘 익은 열매가 비추인다.“
괴테의 <호수 위에서>라는 시가 떠오를 것 같은 루체른 호수가에 자라잡은 루체른이라는 도시를 두고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우아한 도시 중의 하나라고 예찬하고 있다.
피어발트슈퇴터 호숫가에 위치한 루체른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면 역사적인 길을 따라 호수를 여행할 수 있는데, 리기와 필라투스, 그리고 티틀리스 등 중부 스위스 알프스로 떠날 수 있다.
루체른에서는 매 순간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이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다. 출렁거리는 호수 너머로 하얀 눈이 덮인 알프스 산봉우리이 에워싸고 있고 시간 여행으 통해 중세시대로 들어간 듯 여기저기 우뚝우뚝 각양각색으로 서 있는 작은 탑들과 지붕 있는 중세의 나무 다리인 카펠교 옆에 루체른의 상징처럼 바서투룸이 호수위에 서 있다. 팔각저수탑인 바서투룸은 성곽의 일부로 1300년대에 지어졌는데, 지금도 강의 마스코트처럼 루체른을 찾는 사람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1890년대 조선을 답사했던 이사벨라 비숍여사가 서울에서 충북 단양의 영춘까지 배를 타고 가면서 본 바로 한강에는 다리 하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서울 한강의 삼남대로가 지나던 동작진이나 영남대로가 지나던 한강진에 이런 다리 하나쯤 있었을 법 하지만 아쉽게도 하나의 다리도 없이 배로 건너다녔다.
정조 때 정조임금이 이버지 묘를 참배하러 다닐 때 일시적으로 놓았던 배다리만 있었으니,
카펠교와 몇 개의 나무 다리가 있는 강가 옆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오일장 형태는 아니지만 수많은 상인들이 야채들과 빵을 비롯한 음식물들을 팔고 있다.
루체른의 7월과 8월은 온 시내가 축제로 들썩인다. 음악가들이 콘서트와 발레, 그리고 오페라와 무용, 연극 등이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데,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루체른이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자연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선 꼭 올라가야 하는 눈 덮인 필라투스 산은 훗날 오르기로 하고 돌아서던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의 책 이름인데, 달리 말한다면“세계는 넓고 비경은 많다.”를 실감했던 답사가 스위스 알프스 몽블랑 답사였다.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도 화려하게
나를 향해서
빛나는 것일까.?
태양은 저렇게 반짝이고
풀밭은 저렇게 다정한 것일까.“
독일의 작가인 괴테가 자연을 두고 예찬한 글이다. 이렇게 찬탄해야 할 풍경들이 이 세상에는 지천에 널렸는데, 우리들은 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과연 얼마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서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
2023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