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오정국, 박주택, 박만진과 함께
별 내용 들어 있지 않은 민짜 여행시를 하나 쓰자.
잘난 경치도 없고
타곳에서 불현듯 돋을새김되는 삶의 요철 쓸어보고
그동안 뭘 살았지? 하며 맥 놓고 버스에 오르거나
숨 막히는 경관에 마음 쩌릿쩌릿하지 않고
보통 풍경과 그저 한때 같이 보낸 시.
2008년 5월 중순 어느 오후 서산시 서쪽,
팔봉산을 등 뒤에 부려놓고 나앉은 구도나루,
가로림만이 눈앞에 호수처럼 떠 있고
건너편 언덕들이 담채(淡彩)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우고
배들이 충청남도 말씨처럼 천천히 들락날락하는,
그렇다고 예찬(倪瓚)의 속도 줄인 물 그림이 풍기는
쓸쓸한 고요도 없는,
별 볼일 없이 편안한 곳.
며칠 동안 철모르고 서해안에 몰려든 광어 떼
식당 속까지 헤엄쳐 들어와
시인 넷이 5만8천 원에 소주 한잔 곁들여
회와 매운탕을 띠 풀고 먹은 곳.
일하는 후배들 먼저 가고 혼자 남아
포구의 저녁과 버스 막차 시간이 남아
갈매기 불규칙하게 나르는 조그만 부두를 거닌다.
하늘 한가운데로 점점 높이 솟던 봉우리 구름 꺼지고
기다렸다는 듯 저녁별 하나 건너편 하늘에 돋는다.
잔잔한 바다가 들판처럼 어두워진다.
제 느낌을 타려다 타려다 채 못 타는
외로움 이전의 날 외로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은 곳.
* 예찬: 중국 원(元)나라 화가.
- 겨울밤 0시 5분, 현대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