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과 나눈 대화
소한 이후 아침 최저 기온이 여전히 영하권에 머문 일월 초순 수요일이다. 어제 오후 반송시장을 지나오다 만두 가게에서 흑미영양빵을 한 개 샀다. “서민이 발길 잦은 반송동 저잣거리 / 삼겹살 구워 팔다 만두로 바꾼 가게 / 전보다 손님이 많아 주인 손길 바쁘다 / 반죽을 빚으면서 곁가지 차림으로 / 진열대 펼쳐 놓은 흑미빵 먹음직해 간편식 도시락 대용 점심 한 끼 때운다”
아침 식후 무동 최윤덕도서관으로 가려고 어제 마련한 흑미빵을 가방에 챙겨 현관을 나섰다. 도관에서 때울 한 끼 점심으로 삼기 위해서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원이대로를 거쳐 가는 버스를 타고 명곡교차로를 지나 북면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로 갈아탔다. 학생들은 거의 방학에 들어도 출근 시간대여서 일터로 가는 일반인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리를 채웠다.
도계동에서 소답동을 거쳐 천주암을 지났다. 해가 뜬 이후인데 구름이 끼어 창밖은 햇살이 비치지 않아 바깥 풍경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천주암 일대는 볕 바른 남동향이라 아침 햇살이 먼저 닿는 곳인데 구름이 해를 가려 날이 덜 밝아온 듯했다. 굴현고개를 넘어간 버스를 외감에서 화천리를 앞두고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둘러 동전 일반산업단지를 거쳐 무동으로 향했다.
봄날이면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양미재로 오르거나 작대산 기슭으로 가끔 들린 감개와 무동 일대다. 여름과 겨울에는 자주 올 일 없는데도 지난해 여름에도 몇 차례 다녀갔고 올겨울에도 서너 번 된다. 북면에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행정당국에서 덩그런 도서관을 지어주어 내가 사는 생활권과 떨어져도 가끔 찾는다. 일전에는 인문학 코너 서책을 뽑아 한나절 펼쳐 읽었다.
무동에서 고개를 넘어간 버스가 온천장에 있던 중학교가 옮겨온 터를 지날 때 내렸다. 최윤덕도서관으로 향하니 차량이나 인적이 뜸해 휴무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요일별로 각기 다른 도서관 휴관일 정보를 꿰뚫고 있는지라 거기는 금요일이라 문을 여는 날임은 분명하다. 현관은 문을 열어두어도 2층 열람실로 오르니 사서가 출근 전이라 복도에서 10여 분 기다려 입실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들리면 그날의 읽을 책을 미리 구상해 그쪽 서가에서 책을 가려 뽑아 열람석에 앉음이 버릇이다. 이번에는 기후와 관련된 코너에 읽으려고 제목을 봐두었던 책이 보이질 않아 건축 서가에 서원과 정자에 관한 책을 뽑아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선지 도서관을 찾은 이용자가 드물어 고요와 적막에 싸여 독서 여건이 아주 좋았다.
우리 문화재로 이미 여러 차례 접한 서원에 관한 책인데 처음 접한 저자라 새롭게 느껴져 펼친 ‘한국의 서원’이다. 그동안 서원에 관한 책은 대개 목조건축 장인이나 문화재 전문가가 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건축 복원과 재생 건축을 공부하고 온 이였다. 글쓴이 김희곤을 서문에서 ‘인간은 집을 짓지만 집은 인간의 삶을 길들인다.’는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유네스코에서는 우리나라 목조 문화재로 산사 사찰에 이어 유학 사상을 구현한 구심점이 되는 9개 서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헬릿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공자의 사상과 유학이 발상지 중국보다 조선 왕조 5백 년에서 더 찬란한 문화로 꽃을 피웠다. 오늘날 서원은 교학 공간 기능은 잃어도 선현의 제향 공간 맥을 이어온다.
저자와 같이 떠난 서원 순례길은 안향을 향사하는 백운동서원이 소수서원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퇴계가 후학을 기른 서당에 들어선 도산서원으로 이어졌다. 영남 사림을 대표한 서애의 병산서원과 회재의 옥산서원과 한훤당의 도동서원도 지난날 내 발길이 모두 닿은 곳이지만 서책에서 다시 접했다. 일두를 기리는 남계서원, 돈암서원, 무성서원과 필암서원 순으로 소개되었다. 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