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列國志 제12회
정나라 사신이 陳나라에 가서 우호를 청하자, 진환공은 거절하였다. 아우 공자 타가 간했다.
“어진 사람을 친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국가의 보배입니다. 정나라가 사신을 보내 우호를 청하는데,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진환공이 말했다.
“정백은 교활하고 속임수가 많아 예측할 수가 없으니, 어찌 경솔하게 믿을 수 있겠는가? 정백이 속임수가 없다면 송나라와 위나라 같은 대국과 강화하지 않고 어찌하여 먼저 우리나라로 왔겠나? 이건 바로 이간하는 계책이네. 게다가 우리는 지난번에 송나라를 따라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지금 우리가 정나라와 우호를 맺으면 송나라가 필시 노할 것이네. 정나라를 얻고 송나라를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마침내 진환공은 정나라 사신을 쫓아내고 만나지 않았다.
정장공은 진환공이 강화를 거절한 것을 알고 노하여 말했다.
“진나라가 의지하는 것은 송나라와 위나라뿐이다. 하지만 위나라는 이제 겨우 내란이 진정되었으니,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는데 어찌 남을 도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먼저 노나라와 우호를 맺은 다음, 제·노의 군대와 연합하여 먼저 송나라에 원수를 갚고 다음에 진나라로 진격하면 파죽지세(破竹之勢)가 될 것이다.”
[‘파죽지세’는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제족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나라는 강하고 진나라는 약한데, 우리가 먼저 우호를 청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이간하는 계책이라고 의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진나라와의 국경을 지키는 장수에게 명하여, 저들이 대비하지 않고 있는 틈을 타서 국경을 침범하여 약탈하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구변 좋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 포로와 약탈한 물건을 돌려보냄으로써 우리가 저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십시오. 그러면 저들은 필시 우리 제안을 따를 것입니다. 진나라와 평화를 유지한 후에, 서서히 송나라 치는 일을 의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족은 참으로 지모가 많은 자인데, 그의 과연 선한 사람일까 악한 사람일까?]
장공이 말했다.
“좋소.”
장공은 국경을 지키는 두 장수로 하여금 병사 5천을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것처럼 꾸미고, 진나라 국경으로 잠입하여 남녀 백성과 치중(輜重) 1백여 수레를 약탈하게 하였다.
[‘치중’은 군수물품을 말한다.]
진나라 국경을 지키는 관리의 보고를 받은 진환공은 크게 놀라, 신하들을 소집하여 상의하였다. 그때 또 보고가 들어왔다.
“정나라 사신 영고숙이 본국의 서신을 가지고 알현을 청하며 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약탈해 간 포로와 노획물도 반환하겠다고 합니다.”
진환공이 공자 타에게 물었다.
“정나라 사신이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왔을까?”
공자 타가 말했다.
“사신을 보낸 것은 좋은 뜻이니, 다시 물리치지 마십시오.”
환공은 영고숙을 불러들이라고 명하였다. 영고숙은 재배하고 국서를 바쳤다. 환공이 국서를 펼쳐 보니,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오생은 재배하고 진후전하께 서신을 올립니다.
군후께서는 지금 주왕의 총애를 받고 계시고, 과인 역시 주왕의 신하이니, 서로 우호를 맺어 함께 왕실의 울타리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근래에 과인이 우호를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변방의 관리가 우리 두 나라 사이에 틈이 있는 것으로 잘못 의심하여 제멋대로 침략하였습니다.
과인은 그 보고를 받고, 잠자리에 누워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포로와 치중을 모두 반환하고, 저의 신하 영고숙을 보내 사죄드립니다. 과인은 군후와 형제의 우호를 맺고자 하니, 군후의 허락을 바랍니다.
진환공은 서신을 보고 나서, 비로소 정나라가 수호하려는 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영고숙을 후한 예로써 대접하고, 공자 타를 답례로 정나라로 보냈다. 이로부터 진나라와 정나라는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정장공이 제족에게 말했다.
“진나라와는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으니, 이제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어떻겠소?”
제족이 아뢰었다.
“송나라는 작위가 높고 나라가 강대하여, 왕실에서도 빈객의 예로 대우하고 있으니, 경솔하게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에 주공께서 왕실에 입조하려다가, 제후(齊侯)와 석문에서 맹약하는 일이 있었고, 또 주우가 쳐들어오는 바람에, 지금까지 지연되어 왔습니다.
이제 마땅히 먼저 주왕실에 입조하여 주왕을 알현한 다음, 왕명이라 거짓으로 칭하고 제·노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치십시오. 군대를 일으킬 때 명분이 바로 서면 반드시 승전하게 됩니다.”
정장공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경이 일을 도모하는 것은 만전지책(萬全之策)이라 할 수 있소.”
때는 주환왕 즉위 3년이었다. 장공은 세자 홀에게 국정을 맡기고, 친히 제족과 함께 주왕을 알현하러 주왕실로 갔다.
그때는 마침 11월 초하루였는데, 주나라 달력으로는 11월이 새해였기 때문에, 신하들이 왕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날이었다. 주공 흑견이 왕에게 정나라를 비롯한 열국을 예로써 대우하도록 권하였다. 하지만 환왕은 평소 정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또 변경을 침략하여 보리와 밀을 베어 간 일이 떠올랐기 때문에, 노기가 발하여 정장공에게 말했다.
[제9회에, 환왕이 정장공의 경사 직을 박탈하자, 제족이 주나라 변경의 곡식을 약탈했었다.]
“경의 나라는 올해 수확이 어떻소?”
장공이 대답했다.
“왕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하늘이 복을 내려 수해나 가뭄이 없었습니다.”
“올해는 다행히 풍년이 들어, 온읍의 보리와 성주의 벼가 짐이 먹고 남을 만하오.”
장공은 환왕의 말에 가시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고 물러나왔다. 환왕은 정장공을 위해 연회를 열지도 않고 아무런 예물도 하사하지 않고서, 기장과 쌀을 열 수레 보내면서 말을 전했다.
“이걸로 흉년에 대비하시오.”
장공은 이번에 온 것을 몹시 후회하면서, 제족에게 말했다.
“대부가 권하여 과인이 입조했는데, 지금 주왕은 이렇게 나를 홀대하고 있소. 입으로는 원망하는 말을 하고, 기장과 벼를 보내 나를 비난하고 있소. 과인은 곡식을 물리치고 받지 않으려 하는데, 어떤 말로 거절하는 것이 좋겠소?”
제족이 대답했다.
“제후들이 정나라를 존중하는 것은 대대로 경사로서 왕을 보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하사한 것은 많든 적든 간에 모두 천총(天寵)이라 합니다. 만약 주군께서 거절하고 받지 않으시면, 주왕실과 틈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정나라가 주왕실을 잃게 되면, 어떻게 제후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의논하고 있는데, 홀연 주공 흑견이 방문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흑견은 비단 두 수레를 은밀히 선물하고, 친절한 말만 한동안 하다가 돌아갔다. 장공이 제족에게 물었다.
“주공이 왜 왔을까요?”
제족이 대답했다.
“주왕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장자는 타(沱)이고 차자는 극(克)입니다. 주왕은 차자를 총애하여 주공으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필시 장자의 자리를 빼앗는 음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공이 오늘 먼저 우리나라와 우호를 맺음으로써 외부의 원군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이 비단을 받아두십시오. 쓸 곳이 있습니다.”
[귀신같은 제족의 예언이 과연 들어맞을까? 타와 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디에 쓰려 하오?”
“우리 정나라가 왕실에 입조한 것을 이웃에 모르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 주공이 선물한 비단을 수레 열 대에 나누어 싣고 그 위에 비단 보자기를 덮고서, 도성을 나가면서 왕께서 하사하셨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다시 동궁(彤弓)과 화살을 더하여, 송공(宋公)이 오랫동안 조공을 하지 않아 주군이 왕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토벌한다고 거짓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열국을 불러 군대를 일으켜 따르라고 하고, 응하지 않는 자는 왕명에 항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는 겁니다.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제후들은 필시 믿고 따를 것입니다. 송나라가 비록 대국이지만, 왕명을 받드는 군대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동궁’은 붉은 칠을 한 활인데, 천자가 정벌의 공이 있는 제후에게 하사하는 물품이다.]
장공은 제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경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오! 과인은 경의 말을 그대로 따르겠소.”
농서거사가 시를 읊었다.
綵繒禾黍不相當 비단과 곡식은 서로 뜻이 다른데
無命如何假託王 왕명도 없이 어찌 거짓으로 왕을 핑계 대는가?
畢竟虛名能動眾 필경 헛된 명분으로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睢陽行作戰爭場 수양성을 전쟁터로 만들었도다.
[‘수양(睢陽)’은 송나라 도성이다.]
장공은 주나라 경계를 벗어나자 왕명이라고 선전하면서, 송공이 신하의 예를 다하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 소문을 들은 자들은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 소문은 송나라에까지 퍼졌다. 송상공은 심중으로 놀라고 두려워, 은밀히 사신을 위선공에게 보내 알렸다. 위선공은 제희공과 만나, 송나라와 정나라를 화해시키기 위해 날짜를 약정하여 와옥(瓦屋) 땅에서 만나 삽혈하고 동맹을 맺어 묵은 감정을 풀게 하자고 의논하였다. 이러한 의논을 위선공은 송나라에 알리고, 제희공은 정나라에 알렸다.
위나라로부터 연락을 받은 송상공은 많은 예물을 위나라로 보내고 먼저 만나기로 약정하였다. 약정한 날짜가 되자 송상공과 위선공은 견구(犬邱)에서 만나 정나라 일을 상의한 후에 어가를 나란히 하여 와옥에 도착하였다. 제희공 역시 날짜에 맞춰 도착했는데, 정장공은 오지 않았다.
제희공이 말했다.
“정백이 오지 않았으니, 화의는 실패입니다!”
제희공이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송상공은 억지로 붙들고 세 나라만이라도 동맹을 맺자고 하였다. 제희공은 겉으로는 응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관망하겠고 생각하였다. 송나라와 위나라는 우호를 맺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두 나라만 깊이 맹약하고 헤어졌다.
그때 주환왕은 정백의 경사 직을 박탈하고 괵공 기보로 대신하려고 하였다. 주공 흑견이 극력 간하자, 환왕은 기보를 우경사로 임명하여 국정을 맡기고 정백은 허명만 있는 좌경사에 임명하였다.
정장공은 소식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주왕이 내 작위를 박탈하지는 못하는구나!”
얼마 후 정장공은 제나라와 송나라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족과 상의하였다. 제족이 말했다.
“제나라와 송나라는 원래 우호가 깊지 않은데, 위후가 중간에서 규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동맹을 맺었다 해도 실은 본심이 아닐 겁니다. 주군께서 이제 제나라와 노나라에 왕명임을 선포하시고, 노후로 하여금 제후(齊侯)를 규합하게 하여 송나라를 토벌하는 데에 협력하라고 하십시오.
노나라와 제나라는 국경이 맞닿아 있고 대대로 혼인한 관계이기 때문에, 노후가 함께 거사하자고 하면 제나라는 필시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채·위·성(郕)·허(許) 4국에도 격문을 전하여 부르고 함께 토벌에 나서게 하십시오. 만약 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군대를 그리로 옮겨 토벌하면 됩니다.”
장공은 그 계책에 따라 사신을 노나라로 파견하여, 군대를 일으킬 날짜를 정하고 송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은 모두 노나라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노나라의 공자 휘는 탐욕하고 멋대로 날뛰는 자여서, 기꺼이 승낙하였다. 공자 휘는 노후에게 아뢰어 齊侯와 약속하게 하였으며, 정나라와 중구(中邱) 땅에 모이기로 하였다.
[제10회에, 석후가 말하기를, 노나라의 국사는 공자 휘가 쥐고 있으며 노나라 군주는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었다. 과연 공자 휘가 노나라에서 어떤 일을 벌일까?]
제희공은 아우 이중년(夷仲年)을 장수로 삼아 병거 3백승을 거느리고 출전하게 하였다. 노은공은 공자 휘를 장수로 삼아 병거 2백승을 거느리고 가서 정나라를 돕게 하였다.
정장공은 친히 공자 여, 고거미, 영고숙, 공손 알 등의 장수를 거느리고 스스로 중군이 되었다. 쇠꼬리로 장식한 독(纛)이라는 큰 깃발을 만들어 ‘모호(蝥弧)’라 이름하여 ‘봉천토죄(奉天討罪; 천명을 받들어 죄인을 토벌한다.)’라고 쓰고서 수레에 꽂고, 주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고 거짓 선전한 동궁(彤弓)과 화살을 수레에 매달아 ‘주왕실의 경사가 죄인을 토벌한다.’고 내세웠다. 이중년은 좌군이 되고, 공자 휘는 우군이 되어, 위세를 떨치며 송나라로 진격하였다.
공자 휘가 먼저 노도(老挑) 지방에 당도하자, 그곳을 지키는 송나라 장수가 병력을 이끌고 나와 대적하였다. 공자 휘가 용맹을 발휘하여 앞장서서 돌격하여 송군을 무찔렀다. 송군은 갑옷을 내던지고 무기를 끌면서 달아나기 바빴다. 포로로 잡힌 송군이 250여 명이었다.
공자 휘는 정백에게 승첩을 알리고, 정장공을 영접하여 노도에 하채하였다. 공자 휘가 포로를 바치자, 장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칭찬하고 이번 전쟁의 첫 번째 공으로 기록하라고 명하였다. 정장공은 소를 잡아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사흘 동안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그 후 정장공은 병력을 나누어 진격하게 했다, 영고숙은 공자 휘와 함께 고성(郜城)을 공격하고 공자 여는 그 뒤를 접응하게 하고, 공손 알은 이중년과 함께 방성(防城)을 공격하고 고거미는 그 뒤를 접응하게 하였다. 정장공은 노도에 본영을 두고서 승첩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편, 송상공은 3국의 군대가 국경을 침범했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라 안색이 흙빛이 되어 급히 사마 공부가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공부가가 아뢰었다.
“신이 왕성(王城)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송나라를 토벌하라는 왕명은 없었습니다. 정나라가 왕명을 받들었다고 선전하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제나라와 노나라는 그 술책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3국이 이미 연합하였으니, 그 기세는 참으로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계책은 오직 하나뿐으로, 정나라가 싸우지 않고 물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송상공이 말했다.
“정나라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어찌 갑자기 물러나려고 하겠소?”
“정나라는 거짓 왕명을 핑계대고 열국을 소집했는데, 지금 따르는 자는 제나라와 노나라뿐입니다. 지난번에 정나라의 동문을 포위한 나라는 송·채·진·노였습니다. 그런데 노나라는 정나라의 뇌물을 탐하고, 진나라는 정나라와 우호를 맺어 모두 정나라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아직 정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은 나라는 채나라와 위나라입니다.
정백이 지금 친히 이곳에 와 있으니, 거느리고 온 병거와 병사가 필시 많을 것이므로, 정나라는 비어 있을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정성껏 후한 예물을 위나라에 보내 위급을 고하고, 채나라를 규합하여 가볍게 무장한 병력으로 정나라를 기습하게 하십시오. 정백은 자기 나라가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면 필시 회군할 것입니다. 정나라 군대가 철수하면, 제나라와 노나라가 머물러 있겠습니까?”
“경의 계책이 좋긴 하지만, 경이 친히 가지 않으면 위나라 군대는 출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병력을 이끌고 가서 위나라의 향도(鄉導)가 되겠습니다.”
송상공은 병거 2백승을 선발하여, 공부가를 장수로 삼아 황금·백벽·비단 등의 예물을 가지고 밤새워 위나라로 달려가게 하였다. 공부가는 위나라로 가서 위선공에게 군대를 출전시켜 정나라를 기습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위선공은 예물을 받고, 우재 추로 하여금 병력을 거느리고 공부가와 함께 샛길을 통해 불의에 형양을 기습하게 하였다.
정나라 세자 홀은 제족과 함께 급히 명을 내려 성을 지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송·위 연합군이 성 밖에서 한바탕 크게 약탈하여 노획해 간 사람과 가축, 치중 등이 무수하였다.
우재 추가 곧장 형양성을 공격하려 하자, 공부가가 말했다.
“무릇 기습하는 군대는 적이 방비가 없는 틈을 타서 공격하고 한번 승리했으면 거기서 그쳐야 합니다. 만약 이런 견고한 성을 함락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가, 정백이 군대를 돌려 구원하러 오게 되면, 앞뒤로 적을 맞이하여 앉아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차라리 대(戴)나라로 가는 소로를 통해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 아군이 정나라를 떠날 때쯤이면, 정백 역시 송나라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재 추는 그 말에 따라, 사람을 대나라로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하지만 대나라에서는 자기 나라를 공격하러 오는 줄 알고, 성문을 굳게 닫고 성루에 올라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공부가는 크게 노하여, 대성(戴城)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우재 추와 함께 앞뒤로 두 개의 영채를 세우고 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대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는 한편 몇 차례 성을 나가 교전하기도 하였다. 공부가는 사신을 채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때 영고숙 등은 이미 고성을 깨뜨렸고, 공손 알 등도 역시 방성을 깨뜨렸다. 그리고 각기 노도에 있는 정백에게 사람을 보내 승첩을 보고하였다. 정백이 두 곳으로부터 승첩을 받은 그때 마침 제사 홀이 위급을 고하는 문서가 당도하였다.
첫댓글 나라가 여러나라 일때 어느나라와 친하고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해야하나?
이게 각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이 있습니다
결국 전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옛날엔 힘있는 나라가 장땡이었나 봅니다
충성 푸하하하하하하하
춘추시대 전국시대 할 것 없이 아니 전 중국사에 걸쳐 아니 세계사 자체가 전쟁의 역사입니다.
꼴까닥 죽어버리면 그로서 다 끝나고 마는데 뭘 얻자고 죽기살기로 싸움을 일삼았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는 월남전에 참전했지만 솔직하 왜 갔는지? 아무 생각이 안납니다.
그때는 힘으로 눌러 빼앗던거
같습니다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