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짱"… '팔등신' 나무들 자태 뽐내
벚꽃, 진달래 진 자리에 참나무, 편백나무, 서어나무 숲이 자리잡았다. 너무 고요해 한 발 내딛기가 떨렸다. 금정산 둘레길 9차 구간은 다양한 숲들이 내내 이어진다.
지난 1월 초 한겨울에 답사팀은 범어사 입구에서 '금정산 둘레길'의 첫발을 뗐다. 겨울 숲을 지나 초봄 오솔길과 바윗길을 걸었다. 부산 금정구에서 양산 땅을 거쳐 부산 북구·사상구·부산진구·동래구를 밟으며 '둘레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걸었다. 노란 안내 리본도 촘촘하게 매달았다. 구간마다 제대로 된 길을 보여주려고 제 몫의 길을 걸으려 애썼다.
눈이 오고, 언 땅이 녹고, 새순이 돋더니 어느새 꽃이 피었다. 아홉 개의 멋 있고 격 있는 길이 연결됐다. 하나 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갈 봄 여름 없이' 피는 꽃처럼 길이 있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길은 살아 숨 쉴 것이다.
9차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화려한 길의 연속이다. 금정산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을 지나고, 조붓한 숲길을 만난다. 범어사 주변에서는 편백, 삼나무, 서어나무들이 반긴다. 9차 구간은 부산대 효원재 입구에서 출발해 남산동 부산외국어대 운동장과 상마마을을 거쳐 범어사로 접어든다. 간간이 오르막이 나오지만, 아이와 어르신들도 충분히 걸을 만하다. 다만 8차 구간처럼 이번 구간도 금정산 등산로와 연결되는 갈림길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8차 구간의 종점인 부산대 효원재 입구 삼거리를 기점으로 잡았다. 효원재 쪽으로 1분 정도 시멘트 길을 오른다. 효원재는 부산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국가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머무는 기숙사이다. 효원재 입구와 일반 학생 기숙사인 웅비관 샛길로 걷는다.
웅비관이 끝날 무렵 왼쪽 길로 방향을 튼다. 290m쯤 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번 구간의 첫 갈림길인데 여기서 헷갈리면 낭패를 보기 쉽다. 검정, 노랑이 섞인 끈이 소나무와 소나무에 묶여 있다. 등산로 안내 밧줄인데 부산시가 향후 이 구간을 둘레길로 정비할 계획이다.
줄을 통과하면 묘가 나오는데 다시 오른쪽으로 붙어야 한다. 왼쪽 발아래 계곡을 보다가 바위를 딛고 건너면 곧바로 길 좋은 등산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왼쪽으로 다시 오른다. 8분쯤 걸으면 장전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해 10분 정도 걸으면 아담한 묘 1기가 나온다. 주변에 텃밭이 있다. 양파, 마늘, 파, 당근도 있고 녹차, 당귀도 보인다. 작물 종류로 보아 하니 농사 내공이 보통은 넘어 보였다.
잠시 뒤 나무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부터 갈림길이 어지럽게 나온다. 짧은 구간에서 방향이 자주 바뀌는 터라 일일이 지도에 표시하기 쉽지 않다. 대신 둘레길 안내 리본을 참고하길 바란다. 일부 등산객이 둘레길 안내 리본을 고의로 훼손한다는 제보와 목격담을 간혹 듣곤 한다. 이 바람에 기사를 보고 답사하는 독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답사팀은 자연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수준에서 리본을 부착한다. 리본을 달 때는 등대에 불을 켜는 마음처럼 간절하다. 부디 리본을 훼손하지 않길 바란다.
다리에서 잇따라 갈림길을 지나 10분 정도 가면 쉼터가 나온다. 이 쉼터에서 왼쪽 언덕으로 난 길로 붙어야 한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금강아파트 철조망을 따라 오른다. 자연보호 비석을 지나 곧 방화수 보관소가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3분 정도 오르면 갈림길이다. 이 길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 쓰자.
갈림길에서 5분 정도 내려오면 숲을 반쯤 빠져나와 텃밭에 닿는다. 텃밭을 구경하면서 내려오면 또다시 철조망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꺾는다. 운세를 보는 달마명상원이 보인다. 명상원을 지나면 서서히 오르막이다. 배드민턴장을 가로질러 언덕에 오른다. 여기서부터 길가에 심심찮게 노랑, 검정 빨랫줄 끝이 보인다. 금정구에서 둘레길 안내를 위해 매단 것이다. 답사팀 리본이 없는 곳에서는 이 줄을 따라 걸으면 된다.
5분 정도 가면 '동문 2.3㎞'가 새겨진 119 나무 푯말이 있다. 길이 나뉘는데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내리막이 끝나는 데서 산성로·3망루·남산동 부산외국어대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남산동 부산외국어대 이정표를 따라가면 나무다리가 나온다. 3~4분 정도 바윗길을 걸으면 물망골 약수터에 닿는다.
약수터를 지나 조금 올랐다가 내려선다. 20분가량 2푼 능선을 걸으면 또다시 남산동 부산외국어대 방면 이정표가 나온다. 주변에 등산로 안내도 간판이 있다.
오르내리막이 완만한 길을 따라 7분 정도 가면 '구서동 체육공원 안내도'가 서있다. 10분쯤 더 가 어린이 쉼터에 닿는다. 쉼터에서 빠져 나와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올랐다. 부산외국어대 아래쪽 운동장이 오른쪽에서 조금씩 나타난다. 두 개의 운동장 사이로 난 오솔길 끝에 위쪽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가장자리로 걷는다. 왼쪽을 보니 금정산 주능선이 보인다. 나비암, 의상봉이 녹음 위에 솟아 있다.
운동장을 나와 시멘트 도로를 따라 불광사 방면으로 올랐다. 허름한 음식 가게들이 눈에 띈다. 불광사 입차 제한 쇠말뚝 앞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금정산 숲길 안내판이 있다.
텃밭이 지천이다. 계통 없이 봄나물과 채소 향이 날린다. 그 덕에도 눈, 코가 신이 난다. 10분쯤 가면 상마마을 방향 이정표가 있다.
이 길부터 고즈넉한 숲길이 이어진다. 산새 소리도 하나 없다. 드문드문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고령자 쉼터와 범어사 경계석까지 이런 길이 이어진다. 범어사 경계석에서 왼쪽 능선으로 오른다. 상마마을 이정표부터는 오르막이 약간 가파르다. 오른쪽 건너편에 1차 구간을 걸을 때 만난 계명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답사팀은 감회에 잠시 젖었다.
이정표에서 만성암까지는 500여m. 범어사에서 울리는 염불 소리가 산자락을 감싼다. 만성암 정문 바로 오른쪽에 제3등산로 안내간판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초소를 지나자마자 음식점인 '손씨집' 뒷문이 있다. 이 지점에서 길을 잃어버릴 우려가 크다. '손씨집'을 오른쪽 허리춤에 끼고 우회전한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를 구경하면서 철조망 아래를 통과해 5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답사팀은 여기에 금정산 둘레길의 마지막 리본을 매달았다. 답사팀 사이에서 절로 환호가 나왔다.
이 길부터 범어사 입구까지는 '버라이어티한' 숲의 장관이다. 대나무, 느티나무, 삼나무, 편백, 삼나무, 서어나무가 '나 좀 봐 달라'는 듯 운치를 뽐낸다. 군데군데 나무 안내 패가 있다. '휴쉼터'와 무명폭포를 지나 드디어 범어사에 도착했다. 평일이지만 상춘객들로 북적거렸다. 범어사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서 9차 구간을 마감했다. 9.5㎞, 쉬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정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