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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모두 미쳤다.
"그걸 받아오믄 우야노, 미친나!"
불꽃이 확 튀었다. 성냥불은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꺼졌다. 나는 조바심에 성냥갑을 떨어트렸다. 답답하고 성이 나서, 성냥을 줍는 대신 드럼통에 라이터를 던졌다. 목이 메었지만 난 소리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통보다는 한풀이에 가까운 외침이고 발악이었다.
"미친나, 미친냐고……"
만원 지폐의 연둣빛으로 가득한 드럼통에서 뱀 소리가 나면서 불똥이 튀겼다. 라이터가 몇 번 터졌고, 차가운 밤 공기엔 침묵과 돈 타는 냄새만 가득했다. 솟아오른 불꽃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섬뜩했다. 질려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질렸다. 나에.'
"다시는 이런 거 받아오지 말그라. 알았나."
아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작은 눈동자에 낯선 이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집사람이 '입을 연'것은 아이를 낳고 정확히 1년 만이었다.
"자(쟤), 자 죽어. 자는 죽을끼다. "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난 아내의, 아니 어머니의 모습에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그건 감당하지 못할 커다란 충격에 일부러 여유를 부리는 짓이었다. 식은땀이 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짐짓 태연하게 서 있었다.
아내는 이내 등을 구부정하게 말더니 생전에 어머니 당신이 쓰시던 참빗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그 빗은 당신이 돌아가시면서 태워버린 지 오래였다.
"빗 어딨노. 빗, 내 빗."
아내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놓으셨던, 어머니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아내의 음성이 갈라지면서 탁하게 변했다. 난 곧 그 모습을 수긍할 수 없었다.
"여보, 왜 이라노. 당신."
난 아내의 어깨를 부여잡고 메인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지선아, 왜 이래. 너 왜 이래. 아이는 제 엄마의 기괴한 모습에 얼굴이 발개져서 울기 시작했다. 막 첫돌을 치른 참이었다. 난 아이를 달랠 생각도 못하고 아내의 어깨를 부여잡고만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되어 빗을 원하고 예언을 해댔다. 그리곤 2시간쯤 지나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곤 싱긋 웃는 것이었다.
"몇 시야 여보?"
지선, 김 지선의 음성이었다. 그제야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아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보,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아내는 꽤 놀란 모습이었다.
"당신, 기억 안 나나?"
응? 뭐가. 아내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난 웃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의 가슴팍에 콧물 범벅을 해가지고는 웃었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그때 난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문풍지로 빛이 아른거렸다. 분명히 잠이 들었던 것 같지만 영 개운하지 않았다. 2시간쯤 잔 것 같았다. 세상의 종말에 서 있는 듯 깊고 아득한 허무가 가득했다. 아이는 방안에 없었다. 난 갈라지는 음성으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4년 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당시엔 최신형으로 세련된 디자인을 뽐내던 물건이었다. 지금은 녹이 슬고 홈이 파여 있었다. 폴더를 열자 구식의 전자음이 났다. 매번 그 소리가 거슬렸지만 바꾸거나 없앨 생각을 못했다, 안 했다. 난 여유나 어떤 만족에 겨워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최근 몇 년 나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8시 44분. 액정에 음울하게 박혀 있는 검은 숫자들. 한순간에 08:45로, 또 여차 했을 때 08:46으로 바뀔 것이었다. 그렇게 보낸 3년이었다. 아이가 6살이 되던 해에 난 아이를 데리고 강릉으로 도망치듯 왔다. 아내를 남겨두고서.
오래된 폐가를 개조한 지금의 집은 안락한 쉼터보다는 임시 거처의 느낌이 강했다. 이곳에서 3년을 버텼다. 대관령에서 넘어오는 찬 겨울바람까지를 견뎌냈다. 물론 내 얘기였다. 아이는 몇 번이나 응급실을 전전했다. 영양실조가 심했고 체력이 약했다. 아이가 매일 끙끙 앓았지만 난 병명도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난 떠나올 때 챙긴 노잣돈을 야금야금 축내며 스스로를 허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3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는 와중에 말문을 열었다.
'신이 깃들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람의 몸을 빌려 예언을 하고 꿰뚫는 말을 하는 것이야. 말문을 연다고 하제.'
"이 놈 죽을끼다. 죽을끼라. 곧 뒤지삘 끼라……."
섬뜩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사무친 노인의 그것과 같이 나무껍질처럼 날카롭게 갈라졌다. 제 엄마의 교육으로 사투리도 쓰지 않던 아이였다.
"뒤질 끼라꼬!"
고열에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아이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내 코앞에 대고 아이는 똑똑히 말했다. 난 아이의 눈에 담긴 내 모습을 봤다. 하얗게 질린 내 모습은 엄마 잃은 아이처럼 왜소하고 가엾어 보였다.
아침 공기가 찼다. 아이는 검은 재만 가득한 드럼통 앞에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9살 아이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몸은 아이의 것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다른 누구였다. 영양실조니, 선천적인 심장기능의 약화니. 애초에 아이는 건강했다.
"일찍 일났네. "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태연한 척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구부러진 등, 미약하게 떨리는 한쪽 다리. 누굴까, 넌 누구냔 말이다.
"언제 깼……"
"좋은 말로 할 때 뭔 수를 쓰거라. 아니면 정말 죽는다. 확 뒈지삔다꼬!"
아, 어머니. 어머니! 난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덫에 걸린 짐승처럼 거칠게 손톱을 세웠다. 난 아이의 등을 바짝바짝 긁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대체 왜 나에게 이러는 겁니까.
'죽지만 죽는 게 아니다. 닌 내 새끼, 내 새끼란 말이다. 니는 낼 버리고 떳떳이 살지 몰라도 여그(여기), 여그! 니 시뻘건 속! 여그는 절! 대로 떳떳지 못할 거다. 칵!'
비수처럼 박히는 말이 있었다. 말투 하나 단어 하나 공기까지 사진처럼 가슴에 남아있는 그 날. 찔리고서 속으로 피를 철철 흘렸던 당신의 그 말.
"아, 아파, 아빠."
정신이 돌아온 아이가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안하다, 다 괜찮다. 괜찮아."
무릎 꿇은 나는 같은 눈높이에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비쩍 마르고 눈 밑이 퀭한 아이. 사흘에 한 번 생사를 넘나드는 고열로 끙끙 앓는 아이. 이따금 말문을 여는 아이. 내색은 안 하지만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 내 아들. 내 어머니의 손자…… 핏줄.
아버지는 소경이었다. 소경이 됐다. 당신 뜻으로 소경이 되셨다. 1월, 대구에 이례적으로 발목까지 차는 눈이 내린 날이었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조심스레 퍼다가 눈에 비벼 발랐다. 아버지는 바닥을 뒹굴고 기면서 신음을 흘렸다. 기척에 방에 들어온 어머니는 비명을 꽥 지르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나는,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아버지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리고 죽었나 안 죽었나 찔러보는 몸짓으로 아버지를 만졌다. 아버지가 눈을 번쩍 떴다. 흰 자가 두 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난 그게 신기해서 무슨 재주냐고 물어볼 참이었는데 아버지는 썩은 나무처럼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버지는 해가 어둑해져서야 정신을 차리셨는데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연방 눈물을 찍어 바르고 계셨다.
"아이고, 정신이 좀 드시는교."
하지만 어머니는 다시 혼절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귀신같이 매섭게 빛을 내는 흰 자. 스스로 장님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그 상태로 몇 년을 더 사셨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기운 넘치는 몇 년이었다. 돌아와선 안 될 사람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여동생이 있었다. 이름이 구휼이었다. 구휼, 뜻은 기억나지 않는다. 화초보다 작았던 그 아이는 말문을 열고 저 이름을 쓸 수 있으면서부터 영특한 기질을 보였다. 말은 또래보다 두 세 살 위 수준으로 잘하는가 하면 애교도 곧잘 부리고 산수 문제도 척척 풀어냈다. 집안의 자랑거리고 보석이었다. 아버지는 구휼이를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할 생각까지 하셨다. 커다랗고 말똥한 눈으로 오빠, 하고 부르던 구휼이의 모습이 그렇게나 어여뻐 보일 수 없어 장난감처럼 데리고 놀던 나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5살이 되던 해였나, 죽어버렸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강물이 불어날 대로 불어나 황소 몇 곱만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구휼이는 둑으로 종종걸음을 걸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그 사실이 죄책감이 되어 온 가족을 짓눌렀다. 며칠 뒤 퉁퉁 불어 나타난 구휼이 앞에 모두가 엎드려 오열했다. 왜 죽었을까,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을까. 집에는 찬 바람만 불었고 사람 사는 기운이 없었다. 흡사 폐가였다. 특히 아버지가 폐인이 되셨다. 옆에 가면 비릿하고 큼큼한 냄새가 나서 난 옆에 가길 꺼렸다. 그 냄새가 무엇이었느냐, 자식 잃은 아비의 비릿하고 큼큼한 그 냄새. ……시체 썩는 그것과 가장 비슷했다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처음엔 병원, 다음엔 한의원, 그다음엔 요양원, 또 그다음엔 기도원까지. 아내는 처음엔 이유를 모르고 끌려다니다가 하루는 정색하며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나 어디 아프대? 아무 말도 못했다. 면목이 없었다. 가장 눈앞에 있는 현실을 기어이 피하고 있었다.
"여보, 어머니가 다녀가신다."
1년 만에 말할 수 있었다. 그게 어머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고 죄책감을 덜고 덜어 털어놓을 수 있었다. 아내는 헛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자인 씨. 괜찮은 거야?"
아내는 내게 물었다. 괜찮냐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난 대답했어야 했다. 괜찮다고, 아니, 안 괜찮다고라도. 뭐라고든 대답을 해야 했었다. 아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날 밤에 다시 어머니가 오셨다. 집이 난장판이 됐다. 정신을 차린 아내는 주위를 둘러보고 겁에 질린 쥐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내, 내가 그랬어? 그런 거야?"
난 아내를 안아주지 못했다. 대신 울어주지도 못했다. 차가운 새벽에 아내의 깊고 낮은 울음이 퍼졌다. 난 잠도 들지 못한 채 환각에 시달렸다. 그건 고문이었다. 아버지가 오셨다. 천장에 붙은 채로 날 마주 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눈을 떴다. 나무 밑동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환영은 몇 번이고 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신당을 가보자고 했다. 아내는 놀랍도록 밝은 모습이었다. 일단 부딪혀봐야 하지 않겠어.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지역별로 영험함이나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에 서울이며 제주도며 안 가본 데 없이 다녔다. 처음엔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우리도 종례엔 반半 점쟁이가 됐다. 말주변으로 상대하는 사기꾼도 있었지만 신통력을 갖춘 무속인도 많았다. 우리는 그 영험함에 탄복하면서도 나오면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이었다.
"무巫병은 무병인디…… 그런디."
"신神병이라고 아시지요? 그런데 이 처자는, 어, 그래요. 그래……"
뭡니까, 신병인데요, 그런데요? 난 다급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것일까.
"무병은 무병인디…… 그런디. 팔자가 무당 팔자가 아녀."
"신병이라고 아시지요? 그런데 이 처자는, 어, 그래요. 그래……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처자는 신을 받을 운명이 아닙니다."
"운명이 아니네."
"이를 어쩐다, 병을 고치긴 고쳐야 할 것인데. 내림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네."
"운명이."
"운명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 말이, 몰려들었다.
구휼이가 돌아왔다. 아무도 믿지 않 았지만 아버지만 눈을 반짝이며 그 아이를 반겼다.
"아빠, 아부지. 눈깔사탕 먹고 싶어예."
아버지는 찬장에서 사탕을 꺼내 어머니의 입에 넣었다. 어머니는 까르르 웃으면서 사탕을 입안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며 빨았다. 새치름하게 머리를 넘긴 어머니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아버지를 이끌었다. 아버지는 언뜻 당황한 듯도, 딸의 귀환에 감격스러운 듯도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그래, 그래. 구휼이. 우리 딸내미."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멈칫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깃든 게 딸이라는 데는 확신이 있었지만 다만 아직 낯선 모양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구휼이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구휼이인 어머니가 다가오면 멀찍이 피해 섰고 그런 내 모습에의 반응인지 어머니도 특별히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구휼이가 되곤 했다. 아버지는 내심 딸이 더 자주 오기를 바라는 듯했다.
"아니, 그 집 딸내미 안 있나. 구휼인가, 규휼인가."
"아 그 똑똑이? 가가 들렸단 말이가."
그 시절 그 촌. 소문은 빨리 퍼졌다. 항간엔 우리 아버지 내외가 딸을 잃은 충격에 반쯤 미쳐들 있다는 비밀 아닌 비밀이 돌았다. 어머니는 귀신 들리고 아버지는 귀신 딸을 사랑하고. 난 그것이 미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해할 것도, 이해할 의지도 없었다. 그것이 내 가족의 삶이었다. 또 난 그 일부였다.
아이가 바들바들 떨었다. 열이 방 전체에 훅 끼쳤다. 3년, 몇 번이고 있던 일이었다. 이젠 담담해질 때도 됐지만 늘 똑같이, 아니 갈수록 더 힘들었다. 아이는 끙끙 앓지도 제 아빠에 의지하지도 않았다. 속으로 고통을 곱씹으며 참아낼 뿐이었다. 차라리 아프다고 엉엉 울고 나에게 달려들어 풀었으면 그랬으면 내가 덜 힘들었을까. 그랬을지도.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실에 빗대는 건 나약한 짓이었다. 난 이미 충분히 나약하다. 아이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돈을 태우던 날 난 봤다. 표정없는 표정, 그 동공에서 초록빛으로 타던 돈. 그게 돈이었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넌 뭘 어디까지 아니. 얼마나 속으로 참아내는 거니. 할머니가 오는 걸 알고 있니. 알고 있으면, 막을 순 없는 거니. 좀, 막아보란 말이다. 도망만 다니는 아비다. 달이 무너지는 소리, 조각나 유성이 되어 떨어졌다. 아이가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 있으면 어머니가 오실 것이다. 열이 이렇게나 오른 밤이면 늘 그랬다. 그래요 어머니. 오실 것이면 얼른 다녀가세요. 않 오실 순 없는 거지요? 내가 무슨 수를 쓰긴 해야 하는 거지요?
추웠다. 춥다? 어둠 속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조용했다. 조용하다? 없었다. 어둠 속,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소경이 된 아버지는 늘 규휼이를 옆에 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규휼이가 든 어머니였다. 사탕을 입에 문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릎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버지는 허공에 눈을 박은 채 몇 번이고 어머니의 머리를 쓸었다. 어머니가 온전하실 때면 아버지는 늘 규휼이를 찾았다. 초조해 보였다. 규휼아, 규휼아! 그러면 그날 밤엔 어김없이 규휼이가 왔다. 아버지는 어딜 가 있었느냐고 규휼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도랑에서 가재를 잡았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어느 날은 산에 가서 도라지를 캐왔다고도 했다.
"아부지. 먹고 싶어예. 사탕, 눈깔사탕."
어머니는 사탕을 맛있게 먹었다. 깨 먹지 않고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2년, 내지 3년, 아버지는 행복하셨던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규휼이를 광적으로 사랑했다. 집착, 인지 몰랐다. 눈을 버린 아버지. 그렇게 해서라도 규휼이가 살아서 집안에 돌아다닌다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규휼이는 시도때도없이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섹스할 때도.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알몸으로 비명을 꽥 지르며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그럼 그 뒤로 아버지가 속옷 바람으로 따라나와 규휼이를 달래곤 했다.
"아니, 그게 아이고. 규휼아, 규휼아이?"
규휼이는 제 아버지는 엄마와 사랑도 나누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죽기 전과 달리 규휼이는 어머니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 서로 흉을 보기도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규휼이 편이었다. 어머니가 규휼이가 그릇 깬 일을 말하면 아버지는 호통을 쳤다. 어린 애가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냐면서. 그리고 그런 밤이면 규휼이가 찾아와 제 엄마 흉을 봤다. 그릇 하나 깼다고 엄마가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면서. 그럼 아버지는 사탕 두 개를 꺼내 하나는 입에 넣어주고 하나는 손에 쥐여줬다. 어머니는 까르르 웃으며 아버지에게 안겨들었다.
몇 년 만의 폭우였다. 꼭 규휼이가 죽던 날, 그 날과 같은 날이었다. 시커멓게 불어난 강물이 매섭게 출렁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리에 누웠다. 3개월째 규휼이가 찾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규휼이는 실종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대체 왜 신고를 하지 않느냐면서 어머니와 나를 윽박질렀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는 꼭 규휼이가 그랬던 것처럼 퉁퉁 불어 나타났다. 우리는 꼭 규휼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앞에 앉아 오열했다. 난 당신이 그 난리에 규휼이를 찾아나선 걸 몰랐음에 꼭 규휼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오열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그건 규휼이었다. 3개월 만에 나타난 아이.
날이 추웠다. 털 점퍼를 입고 나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강원도의 밤공기는 치명적이었다. 집 뒤의 언덕을 올랐다. 아이가 갈 곳은 이곳뿐이었다. 날이 좋을 때 늘 산책을 왔었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간 것일까. 짐을 지운 걸 아이도 느낀 것이었을까. 그랬다면, 정말 난 죽일 놈이었다.
'죽을 끼다, 죽을 끼다.'
매서운 바람이 어머니의 음성이 되어 날아들었다. 이젠 한계인 것일까. 더는 숨을 곳이 없는 것일까.
있었다. 찾고야 말았다. 계곡 근처의 낭떠러지. 아이는 그 앞에 고고히 서 있었다. 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달려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 손을 잡고, 그 몸을 끌어안고 말할 것이었다. 이제, 내가 찾아갈게. 벌써 오래전에 찾아갔어야 했던 그 짐. 너와 네 엄마를 죽일 듯 괴롭혔던 그 짐. 내가 찾아가겠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업業을 받겠다. 등 뒤로 아이를 안았다. 아니, 어머니를 안았다. 이제 그만하자고, 제발 그만 좀 하자고 말하려 했다. 어머니가 내 점퍼를 잡았다. 아이는 몸을 쏙 빼더니 내 뒤로 뜀박질했다. 어머니가 씩 웃었다. 채 몸을 가누기도 전에, 난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눈이 지독하게 차가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도저히 정신을 못 차렸다. 3개월을 억눌렸던 규휼이는 그에 대한 앙갚음인 듯 하루 대부분을 어머니에 들어앉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홀로 서울로 도망했다. 어머니 혼자에겐 넓은 집일지 몰랐다. 규휼이가 함께이니까 괜찮아, 라고 나는 자위했다. 아닌 걸 알면서도.
20년, 20년이었다. 다른 모든 게 바뀌었어도 집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폐가였다. 난 마당을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니와 아버지, 규휼이와 돌아온 규휼이를 회상했다. 인기척이 났다. 거미줄이 가득 쳐진 문풍지 너머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문을 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흡사 귀신이었다. 백발을 산발로 한 어머니는 신당으로 차려놓은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가 가가 왔지. 그 망할 것이 와삤어. 죽일 년. 이 년을 두 번 죽였어야 하는데. 아, 당신입니꺼? 대답을 좀 해보이소. 얼굴이 왜 이럽니꺼. 잘 좀 챙겨 드시지. 눈은 또 왜 그라고! 아, 그래. 니가 쳐발랐지예! 아이고 인간아, 인간아! 아이다, 내가 죽일 년이지. 다 그냥 죽어삤어야 돼."
"어무이."
"누고!"
어머니가 홱 돌아봤다. 살기가 가득했다.
"어무이. 자인입니더, 자인이."
어머니가 비틀댔다.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귀에 소곤댔다.
"하이고, 귀신이네. 내 오늘 죽을 건 어떻게 알고 또 왔노. 참말로 귀신 같데이."
난 그 자리에 얼었다. 어머니는 다시 구석에 앉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담배를 물었다. 방에 들어오니 어머니는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켰다. 눈이 뒤집히고 쇳소리를 냈다. 난 구급차를 부르지도 차에 태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망찰했다. 어머니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날 죽일 듯 흘기며 소리를 질렀다.
"죽지만 죽는 게 아니다. 닌 내 새끼, 내 새끼란 말이다. 니는 낼 버리고 떳떳이 살지 몰라도 여그, 여그! 니 시뻘건 속! 여그는 절! 대로 떳떳치 못할 거다. 칵!"
어머니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난 비명을 지르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매서운 눈매의 장군이 조용히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앞을 본다. 거기 뭐가 있나. 희미하게 빛나는 내가 있다. 옅게 빛을 내는 그 형체는 사이다 페트병의 굴곡 같다. 형체의 주변을 진한 어둠이 둘러싸고 있다. 빛이 옅어 보이는 것은 그 강렬한 어둠 때문인지 모른다. 한없이 서 있을 것 같던 형체가 한쪽 빛을 머리 위로 들어 힘없이 흔든다.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면 거부의 표시다. 나는 자신마저 나를 거부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회피해왔다. ……탈출구가 없다, 가장 잔인한 선고. 차라리 자살이 낫다고…… 나는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그렇게 해석했다. 흔들흔들, 빛의 내가 손을 흔든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다. 아무리 열쇠를 찾아 열고 열어도 이 문들은 끝이 없다, 혹은 아예 열쇠가 없다. 탈출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그 어디에도 나, 자신이 아닌 것이 없다. 나는 거의 정신착란에 가까운 환각을 본다. 나는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눈을 떠도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나…… 몇 번을 되짚는다. 어딘가에 그래도 돌파구가 있을 거다.
천천히, 상하로 붙어 있는 속눈썹들이 서로 떨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눈을 뜨기 위해, 눈꺼풀을 씰룩이는 대신 온몸에 태동과 같은 진동을 보낸다. 이제 어둠에 묻혀 그나마 희미했던 내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빗물 어린 창문으로 보는 도시의 풍경처럼, 나는 느릿느릿 주변의 어둠에 나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어깨의 외곽선을 파묻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애무하듯 매만지며 어둠과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나는 '나'가 자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본다. 거절하는? 작별? ……환영하는? '나'의 나머지 팔이 파도에 휩쓸리듯 어둠에 뒤덮힌다. 이제 '나'는 손을 흔들지 못한다. 남은 것은 거의 점에 가까운, 티끌보다 작아 빛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런 요소 몇 개들의 구성이다. '나'는 무심한 듯 혹은 안타까운 듯, 자신의 몸을 내어주던 그 어떤 때 보다 느리고 무기력하게 어둠에 동화된다. 나는 쥐어짜듯 비틀며 이제 눈을 뜬다.
병실이다. 하얀 병실. 몇 개의 흐릿한 형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온다.
"박 자인 씨? 정신이 좀 드세요."
의사, 인 모양이다.
"아이가 구급차를 불렀다네요."
내 옆으로 아이가 엎드려 잠들어 있다.
"우선은 안정을 좀 취하시고, 삼 주에서 사 주 정도 입원을 하셔야 합니다. 곧 아내 분이 오실 겁니다."
아. 내 아내. 지선이.
"아이가 자기 때문에 아빠가 이렇게 됐다고 한참 울더군요."
"이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