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는데, 비사인님의 글로서 거의 대부분 질문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습니다.
1. 명광개가 백제 고유의 갑옷입니까 아니면 명광개 중에서 백제 것도 있고 고구려나 신라의 것도 있는 겁니까?
--> 비사인님의 글에도 나오지만 명광개는 백제의 고유 갑옷이 아닙니다. 따라서 명광개가 마치 백제의 고유 갑옷인양 쓴 신문 기사는 잘못된 것입니다.
2. 명광개에는 반드시 황칠을 했습니까, 황칠은 안하면 명광개가 아닙니까?
--> 이는 마치 "자동차에서 4륜 구동이 내비게이션을 의미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명광개와 황칠은 관련이 없습니다.
3. 황칠이 아니라면 옻칠이라도 반드시 했습니까 아니면 칠 여부와는 무관한 갑옷입니까?
--> 옻칠 여부와 명광개인지의 여부는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쓴 신문기사의 내용은 무시해도 됩니다.
3. 명광개는 백제 말기 즈음에 처음 출현한 것입니까 아니면 더 오래 전의 유물이나 기록이 있습니까?
--> 비사인님이 쓴 것처럼 더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양식입니다.
4. 명광개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입니까?
--> 여러 사이트를 찾아 보았는데, 비사인님이 쓴 것처럼 명광개의 가장 큰 특징은 가슴 앞면과 뒷면에 커다란 원형 또는 타원형의 금속으로 만든 甲板을 붙이고 그것을 연마하여 햇빛 아래서 반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비사인님이 인용했던 삼국 사기의 기록은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신구당서을 기초로 해서 삼국사기의 해당 구절을 쓴 것 같습니다.
먼저 삼국사기 백제 무왕 27년조를 보면 "遣使入唐, 獻明光鎧"(당에 사신을 보내 明光鎧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신당서 열전 동이전에도 "五年, 獻明光鎧"라고 하여 백제가 明光鎧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3년조를 보면 "百濟上金髹鎧, 又以玄金爲文鎧"(백제가 金髹鎧(황칠 갑옷)을 바치고, 또 검은 쇠로 만든 무늬 갑옷(玄金爲文鎧)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신당서 열전 동이전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 기록을 보면 황칠을 한 갑옷을 金髹鎧(금휴개)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해(보장왕 3년)의 삼국사기를 보면, "獲馬五萬匹, 牛五萬頭, 明光鎧萬領"(당나라가 고구려로 부터 말 5만 필, 소 5만 두, 明光鎧 1만벌을 노획하였다)는 기록이 나오고, 신당서 열전 동이전에도 "獲馬牛十萬, 明光鎧萬領"라는 기록이 나오고, 구당서 동이열전 고려조에도 "獲馬三萬疋, 牛五萬頭, 明光甲五千領"(당나라가 고구려로 부터 말 3만 필과 소 5만 두 및 명광갑(明光甲) 5천 벌을 노획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정리를 해 보면, 明光鎧는 오래 전부터 중국 쪽에서 발전을 해온 갑옷 양식이었습니다. 중국 사이트의 자료를 참조하면, 先秦 시대에는 피혁을 주종으로 하는 갑옷을 가리켜 甲, 介, 函 등으로 부르다가, 전국 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鐵이 갑옷에 사용되면서 쇠가 들어간 鎧과 가죽만 사용하는 甲으로 구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당송 시대에는 재료를 구분하지 않고 甲, 鎧, 鎧甲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용어의 변천으로 부터 明光鎧가 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철로 만든 보호 갑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당서 열전 동이전에 나오는 金髹鎧가 황칠을 한 갑옷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明光鎧를 다른 말로 金髹鎧라고 한다면, "金髹鎧卽明光鎧也"라는 식으로 부연 설명이 있었을 겁니다. 같은 기록에 나오는 以玄金爲文鎧도 明光鎧가 아니라 玄金, 즉, 쇠(鐵)로 무늬를 넣은 갑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고대 사료에서 黃金은 금(gold)를 의미하고, 白金은 은(銀, silver), 赤金은 동(銅, copper), 玄金은 쇠(鐵, iron)를 의미합니다. 그 부분에서도 明光鎧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갑판에 반짝거리도록 윤을 내는 형식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보장왕조의 기록이 중요한데, 당나라가 고구려로 부터 明光鎧 5천벌(구당서) 또는 1만벌(신당서)을 노획했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구려로 부터 노획한 明光鎧가 황칠을 한 갑옷(金髹鎧)이었다면, 같은 년도의 기록에서 한 부분에서는 明光鎧라고 기록을 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金髹鎧라고 기록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明光鎧=金髹鎧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황칠은 산출량이 매우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明光鎧=金髹鎧라고 보아 고구려의 병사들이 수천벌 규모(5천벌 또는 1만벌)로 金髹鎧를 입고 있었다고 보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주필산 전투에서 사망하거나 항복한 고구려 병사가 6~7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전투에서 수천벌 규모의 明光鎧를 노획했다는 것은 明光鎧가 가장 낮은 지휘관인 십장 정도면 다 입을 수 있었던 흔한 갑옷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십장도 황칠을 한 갑옷을 입을 정도로 황칠이 넘쳐 났고, 고구려가 그것을 그렇게 흔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통전에 그런 식으로 귀한 토산품이라고 기록을 했을리가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삼국사기 기록 등을 토대로 明光鎧=金髹鎧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明光鎧라는 것은 가슴 앞뒤에 보호 갑판을 장착한 것을 의미하고 金髹鎧는 갑옷에 황칠을 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요 부위에는 갑판을 장착해서 보호를 하고 나머지 부분은 황칠을 한 갑옷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였다면 金髹明光鎧라고 부를 수는 있었을 테지만, 明光鎧가 곧 金髹鎧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동차의 네 바퀴에 다 동력이 전달되는 4륜 구동 방식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한 경우, 그 것을 두고 "4륜 구동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자동차"라고 할 수 있지만, "4륜 구동 = 내비게이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복원품인 것처럼 보이는데, 다음 사이트에 가면 아래의 사진과 같은 大唐紅漆麒麟明光甲이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http://www.madefuns.com/bbs/viewthread.php?tid=862
만일 백제가 당나라 황제에게 보낸 갑옷이 황칠을 한 명광개였다면 아마도 이런 식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을 해 봅니다.

첫댓글 이번 유물이 명광개라는 것, 그리고 어느국가의 유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이 있어봐야 알듯 합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백제의 명광개가 우리가 아는 형태와는 다른 형태일 가능성 또한 없진 않겠지요. 앞서 저도 글을 적어 여러 견해를 밝혔지만 제가 아는 부분보다 모른 부분이 더 많을테니 일단 좀 더 기다려보고 생각해봐야하지 않나란 생각이 드네요. 아마 이번 유물에 대해서는 오래지나지 않아 후속보도나 해석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명광개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주필산 전투에서 6-7만의 고구려 병사가 전사했다고 하시는데...어느 기록에 근거한 것인지요?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4년조에 나오는 기록을 대충 보고 어림잡아 계산한 것인데, 잘못 계산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정확한 자료가 있으면 보완을 부탁드립니다. 고연수가 이세적과 싸워 패한 기록에서 죽은 사람이 3만여명이라 하였고, 나중에 항복한 숫자가 3만6천8백명이라고 하여, 어림잡아 6~7만 정도가 죽거나 항복을 하여 무기를 빼았겼다고 보았습니다. 당이 노획한 명광개는 5천벌(구당서) 또는 1만벌(신당서)라고 하니, 대충 죽거나 항복한 사람의 1/10 정도가 명광개를 착용했던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림잡아 본 것이기 때문에 잘못 계산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보정을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고구려 토론방에 글 올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글에 달만한 댓글은 아니라서요.
근데 36800은 고구려군의 총 손실일텐데요?
항복한 36,800명은 손실은 아니지만 모단님이 갑옷 개수를 추정할 때에 포함해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전사자 3만은 달리 보는게 타당합니다. 즉 다수의 사료에서 전사자를 2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부 사료는 1만으로 기록하고 있지요. 따라서 전사자를 2만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이것이 1차 전쟁 총전사자수 4만과도 더욱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백제의 명광개는 중국의 명광개와 달리 호심경이 달려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호심경은 당나라 갑주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백제의 명광개는 호심경 위주의 당나라 명광개와 달리 상반부를 칠하여 반사할 가능성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