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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45) - 우리 강산 좋을시고
지난 주말에 서울에서 내려 온 친지들과 강진의 영랑생가와 다산초당, 진도의 울돌목을 거쳐 영암의 월출산자락을 지나 광주로 돌아오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화창한 날씨와 의기가 투합한 일행 덕분에 모처럼의 나들이가 흥겨웠고 경관이 수려한 울돌목의 녹진 전망대에서 현란하게 펼쳐진 다도해의 절경을 바라보며 해외의 어느 유명한 경승지보다 아름다운 장관인 것을 기뻐하였다.그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는데 병영 설성식당의 한정식이 생일상처럼 푸짐하였고 다산초당에서는 이날부터 다산제가 열리고 있어서 한복 차림의 안내원이 따라주는 차 맛도 좋아서 더 즐거운 나들이였다.
오래만에 찾은 울돌목의 우수영은 쌍으로 연결된 현수교의 웅장한 모습과 새로 조성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비롯하여 공연무대와 주변 공원시설도 잘 가꾸어져 볼만하였는데 찾는 이들이 적어 약간 쓸쓸하다. 울돌목 행은 전혀 계획에 없는 즉석결정이었는데 서울의 친지들은 너무 멀어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진도 땅에 들어선 것을 이번 남도나들이의 큰 수확으로 여기기도.
오후 6시 넘어 울돌목에서 영암의 도갑사까지 차를 몰아 이틑날 월출산을 등반하는 서울의 친지들은 그곳의 월출산장에 숙소를 잡아 묵고 나와 아내는 저녁 식사후에 광주로 항하였다. 서울의 친지는 다음날 8시간에 걸친 월출산 종주를 무사히 마친 후 서울로 올라가고.
경관이 수려하고 역사의 흔적이 알알이 서린 다산초당과 울돌목을 돌아보며 4년 전인 2006년 11월, 학부의 현장학습 때 돌아보았던 남도탐방의 추억이 떠올라 그때 적은 글 ‘장보고의 영혼과 다산의 향기를 좇아서’를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였는데 이를 옮겨 싣는다.
장보고의 영혼과 다산의 향기를 좇아서
경찰․법․행정학부에서는 학부전환이후 점점 사라져가는 수학여행 ․ 졸업여행의 전통을 되살리고 거대학부 출범으로 점차 소원해져가는 교수 ․ 학생들의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2006년 11월 1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라남도 서남 해안지역을 답사하는 현장학습행사를 마련하였다.
학생 44명과 교수 4명 등 총 48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늦가을의 화창한 날씨와 행사를 기획한 학부장의 열정, 참여 학생들의 넘치는 기개가 조화를 이루어 참여자 모두가 만족할 만큼 뜻 깊은 현장학습의 기회가 되었다. 당초 더 많은 인원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여 두 대의 버스를 동원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참석자가 줄어든 것이 약간 아쉽기도 하였다.
1. 진월에서 남악으로
9시에 정문 극기탑에서 집결한 일행은 학교 버스에 몸을 싣고 9시 반에 학교를 출발하여 200만 전라남도민의 희망을 가득 안고 새로운 도약의 날개를 활짝 열어가겠다는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의 전라남도청 신청사로 향하였다.
광주에서 남악신도시까지는 1시간 10여분이 소요되었는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걷이가 끝난 나주, 함평, 무안의 들녘과 새로운 서남지방의 발전을 견인하는 서해안 고속도로, 맛과 멋 그리고 빛의 도시를 표방하는 목포시의 모습들에서 풍요와 번영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10시 40분, 우리 일행이 허허벌판에 우뚝 선 전라남도청사에 도착하자 박내영 전라남도 의회사무처장이 현관에서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23층 전망대로 안내하였다.
‘
장보고 전망대’라 이름 붙여진 확 트인 전망대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데 우리가 둘러 본 시간에도 해남에서 온 북일 초등학교 학생들과 중 ․ 노년의 단체 관람객들로 크게 북적거렸다. 전망대는 남악신도시와 목포시가지, 영산강하구언, 목포앞 바다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다짐하는 주민화합의 광장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2000년부터 2010년 까지 894만㎡(약270만평)의 면적에 83.500명(27.800세대)의 인구를 포용하겠다는 남악신도시는 드문드문 아파트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도청 청사만 넓은 공간에 홀로 자리 잡고 있어서 약간 쓸쓸한 모습이다. 한 시간여 도청청사 여러 곳을 돌아본 일행은 주차장에서 도청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버스에 올랐다.
2. 남악에서 땅끝으로
11시 40분경에 도청을 출발한 일행은 하당 땜과 영산강 하구언, 영암 대불공단을 거쳐 4차선으로 잘 뚫린 목포-성전-해남 간 국도를 따라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군 송지면 땅끝으로 향하였다.
땅끝까지는 한 시간 반가량 소요되었는데 한반도의 머리꼭지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정기가 발끝에 응축된 남악에서 땅 끝에 이르는 여정에서 우리는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역동하는 기세와 통일에의 염원을 되새겼다.
오후 한 시경 가지런히 정리된 해창만의 간척지, 해송이 잘 가꾸어진 송호리 해수욕장을 지나 백두에서 남녘 끝까지 하나의 통일된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 지점에 잠시 멈춰서 ‘땅끝, 이 땅의 시작, 희망의 땅끝’ 이라는 표어가 새겨진 입석(立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젊은 청년들이 한반도 종주(縱走)의 기점(起點)으로 삼는 뜻 깊은 곳에서 심호흡을 하였다
3. 땅끝에서 청해 포구로
토말하우스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들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일행은 오후 2시 반에 차에 올라 완도군 완도읍 대신리에 자리 잡은 KBS 대하드라마 ‘해신(海神)’ 청해 포구 세트장으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배로 건넜다는 남창 - 완도 간에는 두 개의 다리가 세워져 육지와 연결되고 작년 12월에 개통한 완도 - 신지 간 연육교, 고금 - 약산 간에도 연육교가 이어져 있는데 두 번째 대교를 건너 완도군 입구에 붙여진 ‘신 해양시대, 군민과 함께 열어 가는 청해진 완도’의 표어가 완도에 들어서는 우리 일행들에게 신선함 느낌으로 다가선다.
KBS가 100억을 들이고 전라남도와 완도군, 대산기업이 각 25억씩 총 175억 원을 투자하여 설치하였다는 해신 청해 포구 세트장에는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유영인 씨와 문화해설가 강미영 씨가 미리 와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유영인 씨는 드라마 ‘해신’이 한참 인기리에 방영될 때는 매일 수 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주말에는 15,000명에서 25,000명이 몰려들기도 했다며 IMF 때보다도 더 힘들었던 완도경제의 위기를 해신 열풍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1200년 전에 해상을 누비며 한민족의 기개를 드높이던 장보고가 오늘의 완도를 다시 일으켰음을 강조하면서 청해 포구 해신 세트장의 효용과 완도의 주된 생업인 김, 미역, 다시마, 톳 등이 불로초에 버금가는 좋은 식품이라며 주변 해양 자원 등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해주었다.
세트장의 바로 앞 바다에는 아까 차안에서 읊었던 ‘떠나가는 배’를 연상시키는 돛단배가 한가로이 떠 있고 그 밑을 걸어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운치 있어 보이는데 바로 그 곳이 드라마 ‘해신’에서 염장의 배신으로 청해진의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간 장보고가 남은 가족들의 손에 의해 몸과 영혼까지 뜨겁게 타올랐다는 ‘장보고의 영혼을 불사르다’라는 설명문이 적혀 있다. 위대한 인물들의 당대에 못다 이룬 꿈이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민중의 가슴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시간이 촉박하여 완도군의 다른 명소들을 뒤로한 채 차에 오르자 문화해설사 강미영 씨가 동승하여 완도대교까지 가는 동안 완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완도 앞 바다는 바다목장이라 일컫기에 알맞을 정도로 김, 미역, 다시마, 톳 양식 외에 전국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는 전복양식, 광어․ 도다리 등의 가두리 양식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청해진의 장보고 유적지 외에도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 유적지, 고금도에 있는 노량해전의 지원기지인 이순신 유적지 등 3대 유적지가 유명하다는 것, 남창 - 완도간의 첫 번째 대교 옆의 통행이 중지된 다리의 자재가 1950년의 한국전쟁 때 파괴된 한강인도교 잔해를 옮겨와서 건설했다는 일화 등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4. 청해 포구에서 다산초당으로
완도대교를 건넌 일행은 남창을 거쳐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으로 향하였다. 남창에서 다산초당에 가는 30여분 사이에 차안에서는 학생들의 노래와 시낭송이 이어졌고 오전에 도청 전망대에서 조우하였던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해남 북일 초등학교를 지나치며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소중함을 되새겼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오후 4시 반, 오늘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다산유물전시관에 당도하였다.
다산유적지 관리사무소의 윤희선 소장이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해박한 지식과 빠른 말솜씨로 다산의 가계와 행적, 학문과 사상 등에 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 조선의 위대한 선각자요 개혁가였던 다산 정약용의 면모를 소상히 알게 되었다.
1762년에 경기도 마현에서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남양 홍씨 사이에서 태어나 1836년 7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다산의 파란만장했던 생애와 그의 업적 대부분을 이곳 다산초당에 머물던 유배생활 16년 동안에 집대성한 사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저술로 알려진 600여권의 문집과 경제, 행정, 법률 사회, 과학, 건축, 서예에 이르기까지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적 재능을 구도적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음은 오늘의 현장학습을 총결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우리학부의 지방자치연구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학술행사를 다산의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에서 따온 ‘목민각 한마당’이라고 정한 것, 매년 발간하는 책자의 제호를 ‘목민행정’이라 이름 지은 그 취지를 학생들이 제대로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전시관의 유물들을 돌아보다가 토지제도 개혁안인 여전제를 설명하는 곳에 전시된 ‘적성촌에서’ 인용한 부분을 적었는데 이를 소개한다.
‘적성촌에서 중의 일부’
‘
시냇가 부서진 집 뚝배기 같고
묵은 제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제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드네
집안에 있는 물건 보잘 것 없어
모조리 팔아도 칠팔푼이 안되겠네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이 비틀어진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 새는 곳은 헝겊으로 때웠는데
무너 앉은 선반 대는 새끼줄로 얽었도다.’
윤 소장의 설명 중 베트남의 호치민 대통령이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놓고 숙독한 것에 영향을 받아 베트남인들 중에 지금도 강진을 다산의 목민심서와 연관하여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 프랑스의 유명한 신문 르몽드가 세계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가운데 한국의 가을하늘, 강진의 청자, 다산 정약용의 빼어난 학문 등이 들어있다는 것도 기쁜 소식이었다. 일행은 왕복 40여분이 소요되는 인근의 다산초당까지 운치 있게 가꾸어진 주변을 돌아보며 늦가을의 어스름 때에 우리의 훌륭한 스승 다산의 그윽한 향기를 가슴속에 담았다.
5. 다산초당에서 진월골로
날이 어두워진 오후 6시, 현장학습 코스를 다 돌아본 일행은 버스에 올라 광주로 향하였다. 한 시간 반 동안의 귀로에는 몸이 피곤하여 눈을 붙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차안의 비디오에서는 2005년에 크게 히트했던 국산영화 ‘데이지’가 방영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서울의 대한극장에서 당시 최초로 소개된 70㎜ 시네마스코프 대형영화 ‘벤허’를 관람하며 학교 공부도 영화 보는 것 같이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의 희망이 이루어진 듯, 기쁜 마음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 비디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학교 앞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일어서니 저녁 8시, 하루 종일 알차고 보람된 현장학습이었다.
글을 마치노라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표현처럼 오늘의 현장학습에 ’장보고의 영혼과 다산의 향기를 좇아서‘라는 이름을 붙여 그 의미를 되새긴다면 그 뜻이 우리를 통하여 꽃처럼 활짝 피어 우리의 가슴속에 ’장보고의 기상과 다산의 경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첫댓글 늘 기리며 계획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남도의 명소를 함께 둘러 본듯하여 감명 깊게 읽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문화, 고귀한 정신이며 위대한 인물을 값진 글을 통하여 알게되니 정말 고맙습니다. 김교수님의 인생은 진실로 아름답습니다. 주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며 영육간 늘 강건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