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화요일 새벽기도회 설교
딤후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첫째로 바울은 디모데가 로마에 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이 요청은 21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데 앞선 본문6-7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노사도 바울은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외로운 로마의 어두운 감옥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바울의 이 요청에서 우리는 그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자기 곁에 오직 누가만 남아 있음을 말합니다.
지금 바울 곁에는 누가만 남고 그 전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 중에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다른 사역을 위해 파송되어 떠났습니다. 그런데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그 사역을 버리고 세상으로 떠나갔습니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그들에 대한 설명은 간단합니다. 그들이 바울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들은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데마에 대해선 바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데마는 몬1:24 이나 골4:14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한 때 바울의 사역을 돕는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지어 바울이 신임하던 누가와 동시에 언급될 정도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울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떠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그곳이 그의 고향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그가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는 의미는 복음을 사랑하고 바울과 함께 고난 받기를 거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쾌락을 쫓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히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세상을 사랑했다는 표현에서 그 사랑은 ‘아가파오’ 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10절에서의 ‘사랑’ 과 앞선 8절에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에서 ‘사모’ 와 원문이 같은 단어인데 사랑의 결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데마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린 사람입니다.
또 여기서 버리고로 번역된 ‘엥카텔리펜’은 단순히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내버렸다고 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칼빈(Calvin)은 데마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거센 로마의 핍박을 피해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바울을 저버린 것이라고 해설했습니다. 데마는 바울을 떠났던 것이 분명하거니와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신앙을 버렸다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여정에서도 유다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바울의 위대한 사역 여정에도 이렇게 안타까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그리스도를 배반한 배교자 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끝까지 가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는 신실한 신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셋째 누가가 곁에 있다고 말합니다.
음침하고 축축한 로마의 토굴 감옥에 수감되어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는 노사도 곁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인물은 바로 누가였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서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행했습니다. 행27장을 보면 누가와 바울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유대에서 로마까지 멀고도 험한 바닷길을 생명의 위험을 넘어가며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요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골4:4절에 나타난 대로 사랑을 받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죽음에 직면한 노사도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 해 온 바울에게 너무도 고마운 동역자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넷째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디모데가 올 것을 확신한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행12:12절) 으로 마가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 바울 일행을 떠나 개인행동을 했다는 불명예스러운 이유로(행13:13) 2차 전도 여행 때 바울에게 동행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일로 바나바와 바울이 결별하기도 합니다.(행15:36-41) 그러나 골4:10. 몬1:24을 보면 마가는 바울이 로마에 수감되었을 때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몬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또한 벧전5:13절에 따르면 마가는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제 마가는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유다가 결국 세상으로 나아갔다면 바울을 따르던 데마가 세상으로 갔고
예수님을 따르다가 실족한 베드로가 회복되어 수제자가 되었다면
바울에게 있어 마가는 실족하였다가 다시 회복되어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수한 후에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다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실수 후에 어떻게 만회 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이용)는 사람입니까?
교회를 사랑하고 동역자들을 사랑하십니까?
누가와 디모데와 같이 사역자와의 관계에서 마지막 까지 기억에 남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십니까?
데마와 같이 고난을 피해 교회와 사역자의 곁을 떠나갈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