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 제인>은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아니라 그녀 자신을 알려준다. 이것은 사랑에 실패한 후 제인 오스틴이 여성으로, 작가로 얻게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위대한 대문호들에게도 계기가 있었을까? 글을 쓰게 된 계기, 대작을 착안하게 된 계기 같은 것 말이다. 인생의 어떤 결정적 순간이 예술과 만났을 때 대작이 탄생할 것이라는 추측, 사람들은 그 결정적 순간과 예술적 영혼을 결부시키곤 한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르를 만났을 때, 괴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엄밀히 말해 대작은 어느 순간이 아닌 그 사람의 전 생애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폭풍의 언덕>이 에밀리 브론테의 전 생애이며 <죄와 벌>이 톨스토이의 전 생애의 일부이듯 말이다. 하지만 한 작품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 생애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작품 속에 전 생애가 압축돼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줄리언 재롤드 감독의 <비커밍 제인>은 작가 제인 오스틴을 뼛속까지 깊이 알고 싶어하는 사랑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랑은 이미 고인이 돼버린 제인 오스틴에 대한 후대 관객들 그리고 독자들의 사랑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제인 오스틴은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채 작품만 쓰다가 여섯 작품을 남기고 42세에 죽었다. 그녀의 죽음까지 함께했던 언니, 카산드라는 일부러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비밀에 부쳤다. 그녀의 일기를 퍼즐처럼 흩뜨려 놓기도 하고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편지들은 없애버린 것이다. 이는 한편 뛰어난 연애소설을 쓴 제인 오스틴의 생애가 그녀의 소설들과 깊이 연루되기를 바라지 않은 언니의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연애소설이 그녀의 삶과 무관하리라 보지 않는 독자들은 늘 있어왔다. 이 호기심의 끝에 <비커밍 제인>이 놓여 있는 셈이다.
<비커밍 제인>은 세 가지 단서에서 시작됐다. 하나는 스무 살 때 제인 오스틴이 톰 리프로이와 만났다는 사실, 두 번째 제인 오스틴이 약혼을 했다가 파혼했다는 것, 세 번째, 톰 리프로이의 첫째 딸 이름이 공교롭게도 제인이라는 것. 이 작은 단서들은 경우의 수로 거듭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 중 하나가 <비커밍 제인>의 이야기, 제인 오스틴이 첫사랑의 통증을 겪고 난 후 진정한 작가가 된 이야기로 거듭난 것이다. <비커밍 제인>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이 실제 연애의 실패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극복했는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별 볼일 없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방황하던 제인 오스틴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강렬한 연애서사의 전범을 갖게 된다. 그 전범은 바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결국 이뤄지는 환상의 결말, 지금껏 모든 로맨스영화들이 답습하고 있는 해피엔딩의 서사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서사는 로맨틱 코미디라 부르는 현대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남녀가 만나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비커밍 제인>에서 약혼자를 잃은 카산드라는 제인에게 질문을 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니?” “두 명의 아가씨들 그리고 자신의 처지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가진 남자들이. 나쁘게 만나.” “그리고는?” “더 나빠져. 조금의 유머와 함께.” “어떻게 끝나니?” “둘 다 승리하고 행복하게 끝나. 찬란한 결혼식.” “그래 성대한 결혼식이겠구나.” 제인과 카산드라가 나누는 이 대화는 대개의 독자 그리고 관객들이 원하는 제인 오스틴풍 서사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지적이지만 가난한 처녀들과 오만하고 부유한 청년들의 만남, 서로가 오해하지만 궁극적인 해피엔딩 말이다. 이는 <오만과 편견> <설득> <센스, 센서빌리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이 이야기들은 흥미롭게 반복 재생된다. 로맨틱 코미디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많은 부분 제인 오스틴의 덕을 보고 있다는 추측도 여기서 비롯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로맨틱 코미디라는 말은 결국 희극으로 끝나는 로맨스임을 그 이름에서부터 명명백백히 선언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이뤄지지 않는 인연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식의 곤란을 겪는다 할지라도,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들은 결혼을 하든, 연인이 돼든 둘 중 하나의 상태에서 관객에게 결별을 고한다. 그 이후의 연애, 결혼생활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몰라도 관객은 뿌듯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선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마지막 챕터명이 둘만 잘 되면 만사형통인 까닭도 아마 이 얄팍한 기대에 대한 조롱과 상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이 뻔한 연애서사를 다루는 솜씨다. 제인 오스틴은 연애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인생의 서사에 섬세한 심리 묘사를 제공한다. 그 심리 묘사는 때로 섬뜩할 정도로 치밀한데, 그 치밀함은 당대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부정 때문이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 영국에서 노처녀들의 삶이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기에 20대에 고스란히 부모의 짐이 되거나 형편없는 임금의 가정교사로서 일생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면 대부분 낭만적 연애 끝에 결혼에 도달하지만, 당대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혼은 낭만보다 조건, 사랑보다 금전에 따라 결정됐고 연애는 그 이후 문제였다. 낭만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19세기 영국의 결혼! 그런 의미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타난 낭만적 연애서사들은 현실이라기보다 환상이자 꿈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21세기 들어 제인 오스틴이 이처럼 열광적으로 재조명되는 까닭도 이와 관련된다 할 수 있다. 낭만적 연애와 점차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의 연애 그리고 결혼 때문에 말이다. 사람들은 19세기처럼 눈에 띄게 행동하지는 않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행동수칙이 있는 듯 상대방의 조건과 재산을 따진다. 외모의 수려함이나 성격의 활달함에 반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 서사는 현실에 없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가 입은 옷의 브랜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백화점에서 산 것일까 아니면 철지난 아웃렛 상품인가까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는 19세기보다 더 험난하고 신랄한 결혼 격전지일지도 모른다. 낭만적 서사는 현실엔 없는 것이다. <비커밍 제인>이 <오만과 편견>과 결별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느끼겠지만 <비커밍 제인>과 <오만과 편견>은 어느 정도 유사하다. 유사성은 시작 부분에서 도드라진다. 괜찮은 가문의 똑똑한 딸, 부유하면서 재미없는 남자, 활달하고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남자로 이뤄진 인물군은 <오만과 편견>이나 <센스, 센서빌리티>에 등장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도시에서 잘생긴 청년이 내려오자 시끌벅적해진 시골풍경 역시 유사하다. 무도회 장면, 두 남녀의 설전, 약간의 힘겨루기와 같은 과정들은 소설이나 재구된 제인 오스틴의 삶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이야기들이 서로 달라지는 것은 결혼에 즈음해서다. 제인 오스틴은 톰 리프로이와 결혼하기 위해 런던에 간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고 결국 서로 각자 다른 사람과 약혼하게 된다. 감정을 속이는 데 지친 톰과 제인은 마침내 사랑의 도피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은 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톰의 처지를 살핀 제인은 그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가족이 무너지면 사랑도 무너질 것이라며 제인은 결국 사랑도 그것을 지켜줄 현실적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비커밍 제인>은 현실적 조건을 수긍함으로써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의 서사를 환상의 소설로 완성해가는 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은 톰과의 사랑에 실패하자 그 사랑을 <오만과 편견>으로 완성해간다. 그런 점에서 <비커밍 제인>은 해피엔딩인지 혹은 비극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작품이다. 결혼을 꿈꾸는 19세기 여자 제인 오스틴으로 보자면 제인 오스틴의 생애는 분명 비극이다. 그녀는 한 번도 결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상속받지도 못했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실패한 사랑과 해보지 못한 결혼으로 인해 우리는 그토록 섬세한 로맨스를 얻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에 의해서 말이다. 영화는 바로 이 부분 톰 리프로이의 아내가 되지는 못했지만 성을 떼고 제인으로 홀로 서기한 작가 제인 오스틴을 보여준다. 딸아이를 둔 옛사랑 톰 리프로이를 웃으며 대할 만큼, 그의 딸에게 자신의 친필서명을 직접 전해줄 만큼 제인 오스틴은 달라져 있다. 이 지점에는 사랑에 실패한 한 여자가 아니라 사랑보다 더 한 가치를 얻은 여성, 제인 오스틴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