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되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TV 단막극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였습니다. 꽤나 예쁜 여자 용사였지요. 남자에게는 슈퍼맨이 있었다면 여자로서는 바로 ‘원더우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원더우먼의 시작이 무엇이고 어디 출신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대단한 여성 영웅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이야기 정도라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이어졌지요. 그래서 지난 이야기를 몰라도 당일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인기 있는 프로였습니다. 그 때의 그 원더우먼이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마존의 여인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상상의 산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는 신화와 접속이 됩니다. 제왕적 신인 제우스는 인간 세계를 지키도록 비밀의 왕국을 세웁니다. 악의 신인 ‘아레스’로부터 인간 세계를 보호할 목적으로 세워둔 것이지요. 잠시 약화되어 피해있기는 하지만 언제고 돌아와 인간 세계를 초토화시킬 위험이 있는 존재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건설된 아마존의 ‘데미스키라’ 왕국은 여인들만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전사들이지요. 무시무시한 훈련으로 달궈진 용사들입니다. 그 속에서 여왕의 딸 다이애나가 성장합니다. 어미의 특별한 요청으로 제우스에게서 소위 생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운명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모진 훈련 속에서 단단한 용사가 되어 있지만 또한 신에게서 부여받은 특별한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대한 구원의 열망은 대단합니다. 신은 선하게 만들었지만 악의 신이 선한 인간들을 미혹하여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탐욕으로 짓눌러 서로 싸우고 스스로 멸망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을 저지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인간 세계를 선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받은 것이지요. 악의 신이 언제 자기들 세상까지 쳐들어올 지도 모릅니다. 항상 대비하고 있습니다. 낙원 같은 곳이지만 그 위험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지요.
세상은 1차 세계대전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비행기가 그 세계로 날아듭니다. 마침 다이애나가 그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물속으로 달려들어 그 조종사를 구해냅니다. 여인들의 세계 속에 이방인입니다. 그를 통해서 인간 세계 속에 무시무시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조종사를 찾던 독일군이 바다를 뒤지다 바로 그 지역으로 들어옵니다. 연합군 측 스파이인 ‘트레버’ 대위를 사이에 두고 양측이 교전하게 됩니다. 아무리 용사들이라 할지라도 총 앞에는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들을 물리치기는 하지만 희생이 큽니다. 다이애나는 결심하지요. 가야겠다. 저 인간 세상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막았던 어머니인 여왕도 운명의 시간이 왔음을 인지하고 놓아줍니다.
수백만의 생명이 죽음을 당하던 1차 세계대전의 현장으로 들어옵니다. 이런 악한 상황은 바로 악의 신이 조종하기에 발생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그 주체를 찾아 없애야 하는 것이 다이애나의 사명이고 숙제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사고를 이해할까요? 인간 속에 신이 들어와서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 믿어질까요? ‘트레버’에게는 그냥 전쟁이 현실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입니다. 다이애나의 사고방식은 다르지요. 결국 인간들이 하는 짓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나니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 선하다고 해서 총을 쏘지 않습니까? 웬만한 희생은 눈 감아야 합니다. 그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다이애나와 트레버는 한 곳에서 서로 다른 전쟁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속에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설령 신을 믿고 종교생활을 하는 신자들조차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사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보이는 세상에서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들 합니다. 단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적인 대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육체 밖의 일이나 죽음 뒤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마음을 두는 자에게만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살든 말든 개인의 선택입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로 고민하던 다이애나는 트레버의 희생을 통해 깨닫습니다. 인간 세상이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악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것만으로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추하고 악한 모습 속에서도 인간 들을 구원해내고자 하는 자기희생을 감내하는 사람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지금도 그 인간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의 일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인간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트레버의 사랑, 용기, 희생이 다이애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영화 ‘원더우먼’을 보았습니다. 낙원과 같은 아름다운 데미스키라 왕국, 시원스런 전투 장면들, 문화 충돌 속에서 빚어지는 유머, 그리고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소재들 – 그다지 아깝지 않습니다. 추억의 ‘원더우먼’과는 좀 다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