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전문병원 개원 붐에 KTX 2단계 개통 등 겹쳐
1년여 동안 병상 20% 급증… '뷰티 메디컬 관광' 메카로 과잉투자·진료 우려도 제기
대형·전문병원의 개원이 잇따르고 의료관광·산업을 겨냥한 체제 구축이 시도되면서 부산지역 의료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또 오는 연말 KTX 2단계(대구~부산) 구간과 부산~거제 간 연결도로(일명 거가대교) 개통 이후엔 의료시장 권역 자체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는 부산권 주민들에게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막대한 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과잉진료를 야기시키는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선택 폭이 넓어진 만큼 현명한 선택을 위한 소비자들의 고민의 양 역시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부산권 의료시설의 급성장
요즘 부산의 의료계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대형·전문병원의 개원 러시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듯 문을 열고 있는 형국이다. 이 경쟁은 지난달 1일 부산진구 당감동 지하철2호선 부암역 인근에 '온종합병원'이 환자를 받으면서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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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시와 부산진구가 동북아 성형₩미용 의료관광 허브로 조성할 부전동‘메디컬 스트리트’전경. 부산시 등의 이 계획은 최근 보건복지부의‘지역선도 우수의료기술산업 육성지원 사업’공모에 1등으로 당선됐다.
400억원을 투입, 세워진 이 병원은 지하 3층·지상 12층에 186병상 규모다. 부산의 대표적 도심인 서면에 처음 생긴 종합병원이다. 뇌신경·내시경수술·척추관절·인공신장 등 모두 16개의 전문센터 시스템을 도입하고 당뇨·부정맥 등 10개 이상의 전문 클리닉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백병원이 지난달 초 본격진료에 들어갔다. 지하 4층·지상 16층에 1004병상 규모다. 3000억원이 들었다. 이 병원은 생체 간 이식·외상전문·로봇수술·암·간질·뇌혈관센터 등 전문진료 센터를 운영하고, 국내 최초로 온천수를 개발해 수(水)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국립 한방병원 1호인 양산부산대병원 한방병원도 지난달 12일 한방내과·침구과 등 8개 과와 18개 전문 클리닉에 200병상 규모로 진료에 들어갔다. 또 부산 기장군 장안읍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23일 준공식을 가진 뒤 2~3개월의 시험운영을 거쳐 오는 7월쯤 정식 개원할 예정이다. 1775억원을 들여 304병상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이 병원은 꿈의 암치료기라는 중입자가속기를 2015년까지 도입, 운영할 계획으로 있다.
이에 앞서 2008년 말~2009년 3월 사이 양산부산대병원(555병상 규모)과 양산부산대병원어린이병원(192병상 규모)이 문을 열었다. 또 연제구 연산동 대장·항문·위 등 소화기 전문의 새항운병원(100병상)과 북구 화명동 화상전문의 베스티안부산병원(150병상) 등도 최근 문을 열고 성업중이다. 이처럼 최근 1년 남짓 사이 부산권에서 문을 연 병원은 2600여 병상 규모에 이른다. 이는 1년여 전 부산의 전체 종합병원 1만1000여 병상의 약 20%에 달한다. 짧은 시간에 병상 수가 엄청 늘어난 것이다.
이런 양적인 성장에 더해 의료의 전문성도 차츰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어린이·한방·소화기·화상 등 전문병원들이 좀 더 늘어났다. 여기에 동아대의료원이 최근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부산·울산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로, 작년엔 보건복지가족부 국가임상시험사업단의 지역 임상시험센터로 각각 선정됐다.
부산대병원과 인제대의대도 지난 해 국립암센터의 암정복 추진연구 개발사업자나 암전문연구센터 등으로 지정됐다. 특히 지난해 부산대병원의 '부산지역 암센터'가 개설된 데 이어 오는 7월 암 치료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인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문을 여는 등 부산은 '암치료 메카'의 토대를 서서히 쌓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부산시와 부산진구는 서면 일대를 동북아의 성형·미용의료 중심으로 조성하겠다는'글로벌 뷰티 메디컬 스트리트 조성을 통한 동북아 의료관광 허브조성'으로 최근 보건복지부의 '지역선도 우수의료기술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응모, 1등으로 당선됐다. 성형·미용 분야 의료의 전문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급성장의 그늘은 없나?
지역 의료계에선 의료서비스의 질은 의료진과 의료장비의 수준, 그리고 환자 대응 체계 등으로 이뤄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산권 의료시설의 급성장이 질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3가지 요소들을 고루 만족시켜야 한다. 먼저 의료장비의 수준. 최근 개원한 대형병원들은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예컨대 해운대백병원은 3000억원,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1775억원을 들였다. 각 병원이 병상당 3억원과 5억8000만원을 투입했다는 얘기다.
이는 그만큼 첨단 장비를 사들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은행에서 빌렸고, 그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전액을 빌린 해운대백병원의 경우 매년 300억원씩 10년 이상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개원한 다른 병원들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익률 제고의 압박은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지역 의료계는 보고 있다.
때문에 일부에선 "이런 금융부담이 수익 제고를 위해 과잉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또 1년 남짓 사이 종합병원급 병상 수 20% 급증은 병원 간 과당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단기간에 일어난 대형병원들의 개원 붐은 질 높은 의료진 수급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관계자는 "사람들이 교육·가족 등의 문제로 부산으로 오기를 꺼려해 국가기관인 우리도 서울의 최고 전문가를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러니 다른 곳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그늘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의료계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산시 배태수 복지건강국장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원자력의학원 본원 등 서울의 유명병원들과 네트워킹을 하고, 중입자가속기 가동에 들어가면 동남권 주민들은 종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이는 지역 의료계 성장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부산을 동북아 의료관광의 허브로 만드는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