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머리에서 사니 고요하고 ,양달을 잡으니 따뜻하여
이 겨울도 일없이 바쁩니다.
마르고 삭고 우거진 땔감들이 무단히 나를 불러냅니다.
그래, 기왕 북풍받이에서 홀로 나뒹굴 바에야
이 가난한 처사에게도 네 존재의 마지막 공덕을 배풀어주렴.
목재부후균 버섯들에게 보시하고 그 길로 둘레의 벗들도 먹이고
몇몇은 기필고 살아나야 할 말벌이며 잎벌레며 굼벵이며 흰개미들에게도 나눠주면서
반갑잖고 볼품없는 이 세입자,
녹색갈증증후군환자의 아린 겨울을 위해서도 네 멋진 마지막 뿌리를 나누어주렴!
이 초보 숲정이에서는 늙어서 절로 죽은 나무는 없죠.
떡갈나무류와 햇볕 경쟁하던 친구들이거나 더러 벌초꾼들에게 주기적으로 베어진 것들이
세월을 머금고 앙상하여졌나니 그 가운데서도 오롯 '밤나무'렷다.
밤나무는 시간따라 제 무른 살질들이 다 녹아 없어지고 나면
홀로 강단져서는 이 간절한 추위의 톱날도 잘 안 들어가는 뼈다귀로 불거지죠.
단단하여서 귀하고, 뚫리고 파이고 굽고 뒤틀려서 아름다운
고상한 소품을 남겨주고 갑니다.
그리하야, 쉽게는 썩지 않을 제 갈빛 뼈들을 땅속에 오래 눌러두었다가
엔간하면 쑥- 뽑아주어 이렇게들 제 썬룸에 매달려주는 것입니다.
이곳에 세간을 푼지 4년이 지나서야 실내의 작은 초록이 골똘해졌습니다.
화분은 매달기가 어려우니 행어화분을 사도 좋겠지만
제 입맛은 이 편이 더 당기니 어쩝니까.
뒤 산비탈을 둘러보니 이 겨울의 덤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목각이거나 목부작에 줄 관심은 없어요. 그 시간이면 갤러리 작업실을 앉아야죠.
때문에 불필요한 데를 자르고 그라인더 휠 사포로 살짝 벗긴 다음
대강 무게중심을 보아 뚫린 구멍에 와이어를 걸면 되겠죠.
더 쉬운 방법은 소나무분재철사를 이용하여 연처럼 멱줄을 만드는 거죠.
갤러리에 쓰고 남은 '걸이'들을 이용했으니 돈 쓸 일이 없었어요.
나무는 습도 유지에 좋고 안벽으로 착근하기 좋은 데다 어딘가로 새어나가는 화분구멍도 쉽고
나사를 박거나 줄을 매달기도 용이한 소잽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요 빈 것들의 주둥이도 나와 마찬가질 것입니다.
윗쪽 나무동가리들은 살빛이 희고 허리가 곧은 두충나무 아짐이죠.
ㅎ 수피는 '두충'이라는 약재로 다 벗겨져서 내 허한 오장의 겨울을 쓰다듬고
나머지는 이렇게 현관에 올라 녹색갈증으로 퉁퉁 부은
내 눈두덩이를 달래줄 것입니다.
아래쪽 나무는 개옻나무입니다.
역시 단단하고 곧아서 불쏘시개로 던지기는 아까워요.
목부작 만들기를 참 즐기던 벗들이 떠오릅니다.
구멍파기 공구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찾아보았더니 역시 가장 비싸요.
세밀한 조각이나 잔다듬, 미끈한 사포질과 착색, 괴형상 만들기들은
이런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죠. 시간 상 목공예는 포기했죠.
누더기의 먼지만 터는 식으로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는 범위가 좋겠어요.
'덤'이 죽은 나무의 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호자나무는 살아서 뿌리를 옆으로 길게 뻗어 모체와 적당한 거리가 되면
새로운 개체가 뾰족이 솟아오릅니다.
물론 빨간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갤러리에서 잘린 수통을 옮겨 세운 뒤
농사용 굵은 철사를 붙여 끈으로 고정하고
그 동안 '아이비'와 복잡하게 뒤엉켰던 '호야'를 풀어 이 기둥으로 감아놓았죠.
꼭대기엔 선풍기 캡을 얹고 촉이 없는 큰 전구를 올려놓아 꽃탑처럼 삼았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요걸 언능 못 알아보는 겁니다.
반대쪽에는 또 선풍기 캡의 동그란 테를 잘라내고 살대를 아래로 굽힌 다음
빠끔살이 반지며 열쇠고리 따위를 걸었습니다.
시집 간 딸의 옷장을 맘대로 치울 수 없어 대강 정리하는데,
서랍에서 저런 간난이 손톱만한 악세서리들이 나왔습니다.
처음에 서넛을 걸었더니 ㅎ 아내가 또 딸 방에서 한 움큼 쥐고 와서는 배시시 웃습니다.
딸이 와서는 지 딸을 보듬고 서서 저것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웃어요.
행복한 추억의 크리스마스트리래요.
이 그루터기를 캘 땐 덩치만큼이나 긴 시간을 썼죠.
그 위에 딸아이 부부처럼 다정한 두루미 한 쌍을 올려놓았답니다.
밑에는 우리덜 씨암탉처럼 통통한 어미와 꽁지깃 다 빠진 아비가 나란히 앉았네요.
블랙앤드화이트 아우님이 선물한 목각 새들이죠.
쭈꾸미처럼 매달려서 캥거루처럼 다육이를 키우는 저 '덤'들을 바라보며
세밑의 매서운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매달려고 하니 뭐든 매달겠어요.^^
사용하지 않는 가죽모자에 커다란 소라껍질, 채반과 광주리 등...
산 나무의 지상부는 더러 오목하게 웅덩이가 파였더라도 깊지 않고 모양도 밋밋하죠.
생짜의 묵지근한 줄길랑 다 털어버린 가뿐한 뿌리맛에 댈 바가 아니에요.
요기까지의 손놀림이 이 공간 완성의 끄트머리가 될 겁니다.
더는 들일 필요가 없으므로 나머지 여백, 휴식, 초록도 다 보호해야죠.
가운데 구불구불한 나무 역시 밤나무의 뿌리랍니다.
임도 가에서 말라죽었는데 옆으로 길게 뻗은 채 노출된 뿌리의 길이가 저렇습디다.
사포로 살짝 털고 거실 화분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만데빌라'를 옮겼지요.
왼쪽 가늘고 늘씬한 나무기둥은
이 현관의 천정 유리까지 가 닿는데, 예의 개옻나무죠.
밤나무, 참나무, 편백나무들 숲에서 모가지를 들어올리느라 사철 애쓴 아에요.
페네르바체의 배구선수 김연경의 기럭지 같죠?
바위 위의 미니어처 보이죠?
신데렐란지 공준진 몰라도 매다는 고리가 없어서 딸애의 '트리' 축엔 못 끼고
아놔 여기서 요정짓이나 맘껏 해라 했죠^^!
블랙 아우님이 위의 나무 새들 한 해 앞에 실어온 꽃사슴 선물입죠.
이 공간에 딱 어울리는 크기와 맵시와 내구성으로 오시는 손님을 즐겁게 맞이한답니다.
천사의눈물(엔젤스티어)이 융단처럼 깔리고 그 틈틈을 워터코인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두 사이는 제법 어울리는 바가 있어서 '연출'로 보이지만 전혀 아니죠.
엔젤스티어는 작년 가을에 카펫처럼 둘둘 말아서 밖에 버렸는데
남은 뿌리들이 다시 힘을 낸 것이고
워터코인은 돌확에서 탈출하여 사방으로 지 길을 내는 중이랍니다.
햇살이 부족하여 몇은 시들해지고
기온이 떨어지니 크로톤계 식물은 넓은 잎을 다 지워버렸어요.
바깥 약체의 화분짜리들은 이 공간으로 옮겨지고
이 공간을 못 견디는 약골들은 또 거실과 화장실,
딸방의 창가로 옮겨져서 호사를 누리며 이 겨울을 난답니다.
'호야케리'라는, 잎이 하트모양인 다육성 식물이 꽂혔네요.
조곳이 자라 엉성하게 가지를 치며 또 똑 같은 모양의 잎사귀를 피웁니다.
참 어이없고 요상하고 귀여운 식물도 다 있죠?
그림 꽃이 핀 화분에서도 새봄이 오면 진짜 꽃이 피겠죠?
매달리지 못해 한이던 원이 제 가슴속에도 도사리고 있었나 봐요.
무대에 오르는 듯, 날고 싶은 듯 허공이 주먹만하게 얹힙니다.
모두들 안녕하신지...
들꽃 만남을 잊으셨는지...
꽃편지 같던 날들을 지우고 계신지...
다만 그립고, 아리고, 서럽습니다.
이 한적한 카페를 오래 사랑해주신 분들을 내년엔 꼭 만나고 싶습니다.
지리산 혹은 오대산, 계룡산, 혹은 태백, 설악 아니 개천산이라도 올라
눈썹 위의 일출이든 발꿈치의 운해라도 몇 띄우면서
세밑과 새해를 향해 뜨거운 입김을 날려야 옳을 일이로되
게으르기 짝이 없이 둔눠서 지 거실의 창문도 열지 않고 안부 말씀 여쭈어 죄송합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고 소원 성취하시고,
행복하게 살으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하나하나 다 예술작품입니다
따님의 추억이 조롱조롱 매달린 바람을 일으키던 트리도 정말 멋져요
연말이 되어버렸네요
건강하시고 얼른 찾아뵐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착한 아이들, 좋은 아빠, 예쁜 엄마... 더불어 온가족의 새해 첫 나들이 행복했나요? 잠시라도 함께해서 저도 즐거웠어요. 영광 백수시절 이후 관우가 그렇게나 커서 놀랐어요. 다람쥐 막내가 내 눈에서 지금 왔다갔다 하네요.^^ 참 귀여워요. 네... 새해에도 온가족이 건강하시고 여러 행운이 함께하기 바랄게요.
아이들 모데놓으니 정신없었네요 ㅎㅎ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