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광천(廣川)은 중국 북부지방의 하북성(河北省) 조강현(棗强縣)에 속한 지명으로 지금의 북경(北京) 근처이며, 중국의 중요 산업지대로 유명하다.
성씨의 역사
동씨(董氏)는 전한(前漢) 시대 동중서(董仲舒)를 시조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 화북성(華北省) 사람으로 유교 기반을 수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씨는 동중서의 43세손 동승선(董承宣)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명나라 접위사(接慰使)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영천군(榮川君)에 봉해지면서 영천(榮川: 영주)에 정착하였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함경도 북청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천(영주)를 관향으로 쓰게 되었으나, 함경북도 명천에 살던 후손들이 원주(原州)로 칭관하는 등 관향을 달리하다가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으로 우리나라에 온 동일원(董一元)의 소장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 출생지인 중국 광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계파는 동승선의 아우인 동인선(董印宣)으로 아버지 친구인 서달(徐達)의 천거로 태조 때 지휘사가 되어 전공을 세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 그의 8세손으로 명나라 장군으로 정유재란 때 우리나라에 온 동일원(董一元)의 차남 동대순(董大順)이 계보를 잇고 있다.
이 두 계파는 1924년 갑자보(甲子譜)를 계기로 결합, 본관을 광천으로 하게 되었고, 광천동씨는 동중서를 시조로 하고 동승선과 동인선을 각각 일세조로 하고 있다.
분적종 및 분파
동씨는 광천을 비롯해 광주(廣州), 영천(榮川), 풍천(豊川) 등 25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동원분파(同源分派)으로 추정된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정양동리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용연리
함경남도 함흥시 관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둔전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성구동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성적동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광천동씨는 1,299가구 총 4,13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