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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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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4)
▶ 3월 31일 (금요일) * [EBC 트레킹 제5일]
<벵카르>→ <몬조>→ <조르살레>→ <라르자 도반>→ <남체바자르>
* [벵카르의 아침] — 담세르쿠 설봉의 장관
미명(未明)의 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계곡 사이의 북쪽으로 거대한 설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담세르쿠(Thamserku, 6,608m) 설봉이었다. 어제 이곳에 들 때에는 날씨가 흐리고 이내 또 날이 저물어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아침, 시간이 지나면서 산봉이 황금색의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신비한 일출(日出)의 장관이었다. 간밤에 비가 약간 내려서 버드나무 가지의 연둣빛 신록(新綠)이 생기를 더했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벵카르롯지에 바라본 담세르쿠(Thamserku, 6,608m) 설봉
우리가 유숙한 벵카르의 타쉬롯지 (앞 건물)
오전 8시, 김장재 사장이 준비한 ‘우리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김 사장은 이곳에 올 때 한식재료를 많이 준비해 왔다고 했다. 좋은 쌀에, 김치며 된장 그리고 밑반찬 등 우리 음식식자재를 카고백 하나를 따로 가지고 온 것이다. 전에 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직접 음식을 만든 경력이 있으므로 음식을 하는데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스스로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덕분에, 오늘 아침 김 사장의 배려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였으니 참 고마웠다.
* [벵카르를 출발하여 추모아를 지나다] — 산벚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마을
오전 9시, ‘벵카르(Bengkar, 2,630m)’에서 제2일의 트레킹을 시작했다. 행장을 차린 대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산길에 들어섰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길은 깊은 계곡이라 아직 햇살을 들지 않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네팔 친구들이 우리보다 앞서 카고백을 꾸려서 지고 길을 떠났다. 벵카르 마을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서 바로 현수교를 건넜다. 이제 길은 계곡의 동쪽 산 아래를 지나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고도를 높여 얼마 가지 않아 ‘추모아(Chhumoa, 2,760m)’ 롯지 마을 지난다. 계곡 부근의 산록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마을에는 돌담이 둘러친 텃밭도 있고 밭 언저리에 히말라야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은 아주 조용했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세 그루의 큰 나무가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무거운 카고백을 지고 우리보다 앞서 떠나는 네팔친구들
오른쪽 산록의 추모아(Chhumoa, 2,760m) 마을, 뒤쪽의 거봉이 쿰빌라
고개를 넘어서니 깊은 계곡이다. 제법 많은 수량의 맑은 물이 콸콸콸 흘러내린다. ‘만조콜라(Manjo Khola)’인데, 우리가 걷는 길의 동쪽에서 이어지는 탐세르쿠-캉데가-캉샤르-쿠숨 캉카루의 연봉의 여러 골짜기에서 내린 물들이 모아져 추모아와 몬조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동쪽의 골짜기를 올려다보면 키아사르(Kyashar, 6,770m) 설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의 철제 다리가 놓여 있다. 계곡에는 물레방아로 돌리는 ‘마니 벨’을 만들어 놓았다. 흐르는 물이 물레방아를 돌료 마니벨이 돌고 있는 것이다. 자연이 시간 속에서도 그들의 육자진언 ‘옴마니반메움’은 그렇게 밤낮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가로 내려가 계곡물에 손을 담그니 청랑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그재그의 가파른 돌계단을 치고 올랐다. 거기가 바로 몬조(Monzo, 2,835m) 마을이다. 드디어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비치기 시작했다.
추모아 마을을 지나며
만조콜라 - (콜라는 작은 계곡을 뜻하는 네팔어)
가파른 계단을 올라 몬조 마을에 들어서는 이진애 대원과 도우미 카일러
* [화사한 햇살이 내리는 몬조] — 사그라마타국립공원 체크 포스터, 마니 게이트
몬조(Monzo, 2,835m) 마을 초입의 길가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남매인 듯한 두 아이가 있어, 주머니 속의 ‘카라멜’을 꺼내주었더니 방끗 웃으면서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이 귀엽고 예쁘다. 첫돌 지난 우리집 ‘연서’가 생각이 났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는 천진난만하다. 일찍이 맹자(孟子)는 하늘의 착한 본성을 그대로 가지로 있는 것이 어린아이[赤子]라고 말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적자지심(赤子之心)을 지니게 되면 인자(仁者)가 된다고 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어린 아이들은 모두 예쁘다.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어디 사람뿐인가. 병아리든, 강아지든, 망아지든, 송아지든 모두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심지어 포악한 호랑이나 사나운 늑대도 새끼는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모두 하늘이 내려준 본성(本性)을 온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몬조마을 초입에서 만난 천진한 미소
몬조(Monzo, 2,835m)는 꽤 큰 롯지 마을이다. 사원도 있고 학교도 있고 와이파이 등 텔레콤이 통하고 ‘쿰부히말 체크포스트’(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다. 사실 197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사그르마타 국립공원’은 여기 몬조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들어가는 입구에 관문[Mani Gate]을 세워 놓았다. ‘사그르마타(Sagramatha)’는 ‘에베레스트’의 네팔 고유어이다. 지금까지 여정(旅程)은 이 관문에 들어오기 위해 걸어온 예비과정이었다. 이정표에 의하면, 루클라에서 13km, 팍딩에서 5km 올라온 지점이다. 오늘 우리들의 목표 지점인 남체는 6km를 남겨두고 있다. 사실 히말라야는 거리가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남체까지 거리가 아니라 고도의 문제이다. 몬조((Monzo)는 고도 2,835m, 남체(Namche)는 고도 3,440m이니,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도 600m를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아주 가파르게 내려가야 할 계곡 길과 또 가파른 오르막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해발 3,000m가 넘으면 본격적으로 고소증세가 나타나므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몬조마을의 돌계단길
쿰부히말 <사그라마타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 (체크포스트)
국립공원 입장을 위한 체크인을 하고 나면 ‘마니 게이트’(Mani Gate, 성지로 들어가는 관문)를 나서면 멀리 하늘을 찌르는 쿰빌라(Khumbi Yul Lha) 암봉과 그 앞의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산봉이 올려다 보인다. 아, 아득하다! 오늘 올라야 지점을 확인하고 나니, 길은 급격하게 아래도 쏟아진다. 돌로 만든 가파른 계단길이다. 길의 좌측 절벽에 흰색으로 써 놓은 불교경전, 길 한 가운데는 자연석 바위에 가득 적어 놓은 ‘마니 스토운(Mani Stone)’ 등을 보면 이 지역이 그들의 불국토임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진홍색의 랄리구라스가 만개해 있는 길목이다. 그리고 곳곳에 ‘마니 스토운’이 있다. 그 주변은 절벽과 숲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두드코시(Dudh Koshi) 계곡의 긴 현수교를 건넜다. 이제 길은 계곡의 서쪽 산록을 따라서 이어진다.
쿰빌라(Khumbi Yul Lha) 암봉과 그 앞의 산 능선이 우리가 오늘 올라야 할 고도이다.
그 능선 뒤쪽에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마을이 있다.
* [강변 마을 조르살레] — 조용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마을, 오전 9시 17분 강변 마을 조르살레(Jorsale, 2,740m)에 들어섰다. 가운데 마을길을 따라서 좌우로 크고 작은 롯지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비교적 길게 이어지는 마을길을 지나고 ‘타르초(Tarcho)’가 세워져 있는 ‘마니 월(Mani Wall)’를 지나고 나니 다시 현수교를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 계곡의 동쪽 물가를 따라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신선하고 맑은 아침 공기, 히말라야 계곡의 햇살은 눈부시게 화사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온몸이 생기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다.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가 흐르는 쾌적하고 산뜻한 계곡의 길이다. 계곡의 물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것이므로 색깔이 흐린 편이다.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다. 좌우에 가늠할 수 없은 높은 산봉과 절벽이 솟아있는 깊고 깊은 계곡이다. 계곡 가장자리의 험한 산길을 넘었다.
저 몬조의 고개를 넘어와 아래의 조르살레 마을로 오기 위해 건넌 현수교
깊은 계곡, 히말라야 소나무
* [두물머리 라르자 도반의 현수교] — 보테코시와 두드코시가 합류하는
오전 10시 06분, ‘라르자 도반(Larja Dobhan, 2,840m)’에 이르렀다. 이곳은 서쪽의 ‘보테코시(Bhote Khoshi)’ 계곡의 물이 동쪽에서 내려오는 두드코시(Dudh Khoshi) 계곡의 물에 합류하는 곳이다. ‘도반(Dobhan)’은 우리나라 말로 ‘두물머리’에 해당하는 합수처(合水處)를 말한다. ‘두드코시’는 초오유-교코 빙하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다가 ‘풍기텡가’에서 에베레스트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임자콜라]과 합수하여 내려오는 쿰부히말 계곡의 본류(本流)이다. ‘두드코시(Dudh Khoshi)’는 이곳 도반에서 ‘보테코시’를 만나 큰 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두드코시’ 계곡의 높은 상공에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현수교(懸垂橋)가 설치되어 있다. 얼마전 개봉되었던 영화 <히말라야>에도 등장한 바로 그 명물이다. 도반(Dobhan)의 계곡에서 올려다보면 두 개의 현수교가 아득히 올려다 보이는데, 아래의 것은 옛날의 것으로 지금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위의 것이 새로 만든 현수교인데, 남체를 경유하여 에베레스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 고공의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우리들도 남체에 오르기 위해서 오른쪽 산록의 길을 타고 올라가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라르자 도반(Larja Dobhan, 2,840m)의 고공 현수교 (위의 것이 통행로 - 남체로 가는 길)
* [한국의 산악영화 <히말라야>] — 산악조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 영화 <히말라야>는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히말라야의 탱크'라 불리는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은, 2005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다 조난을 당한 후배 산악인 '박무택'(정무 분)과 ‘장민’ 그리고 이들을 구하다가 조난을 당한 ‘백준호’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휴먼원정대’ 조직하여 목숨을 건 장정에 돌입한다. 엄홍길의 휴먼원정대는 해발 8,750m 에베레스트 데스존(Death Zone)으로 산악 역사상 시도된 적 없는 등반에 나선 것이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고봉설산에서 조난을 당해 주검으로 누워있는 동료 산악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한 그들의 처절하고도 눈물겨운 결행을 한다. 영화 <히말라야>는 이 장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것은 목숨처럼 뜨거운 우정이 만들어낸 위대한 도전이었다. … 우리나라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1985년 히말라야에 처음 오른 이후 22년 동안 38번의 히말라야 도전을 감행했다. 그 중에서 ‘엄홍길’ 대장과 후배 산악인 ‘박무택’은 2000년 칸첸중가, K2, 2001년 시샤팡마, 2002년 에베레스트까지 히말라야 4좌를 함께 등반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이자 친형제와 같은 우애를 나눈 관계였다.
* [라르자 도반의 고공의 현수교] — 높은 산, 깊을 계곡 장관을 바라보며
오전 10시 40분, 두드코시 계곡의 고공에 설치된, 오색 룽다르가 펄럭이는 현수교(懸垂橋)를 건넜다.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 높이가 수백 미터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엄청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높이였다. 현수교를 건너고 나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깊은 계곡으로 아득하게 흘러가는 계곡과 산록의 울창한 수림(樹林) 그리고 하늘을 받치고 솟아있는 높은 산봉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서쪽은 좌우의 깎아지른 절벽의 협곡에 흐르는 보테코시의 허연 물줄기가 아찔하게 보이고, 동북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산봉 사이로 하얀 설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환한 여인의 얼굴 같은 탐세르쿠(Thamserku, 6,680m) 설봉이었다.
라르자 도반(Larja Dobhan)의 현수교를 건너는 덩키(말과 노새의 교배종)
탐세르쿠(Thamserku, 6,680m) 설봉
* [고공의 현수교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 —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쉼터
오전 11시 45분, 이제 본격적으로 가파른 산길에 들어섰다. 오늘의 산행 포인트인 남체바자르(Namche Bazar)는 3,440고지에 위치해 있으므로 어기차게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무렇게나 돌이 박힌 길, 그것도 팍팍한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경사면이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산길은 험하고 벅찼다. 앞서 출발한 기원섭·김장재 대원은 꾸준히 앞서 올라간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았다. 나는 후미에서 이진애 여사와 신은영 양과 함께 산을 올랐다. 한참을 올라온 지점에서, 우리의 카고백을 지고 올라가는 ‘네팔 친구’(포터)들을 만났다. 그들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나마스테!”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니 환한 표정으로 반기며 응대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구김살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기운이 살아난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은 누구나 얼마간 짐을 지고 가는 여정이 아닐까. 사람마다 짊어진 인생의 무게는 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는 말이 떠올라 마음의 불을 밝힌다. 하늘의 천도(天道)가 그러하니 사람의 삶도 지성(至誠)이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내린 하늘의 뜻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험난한 산길
네팔 친구(포터)의 환한 미소
그렇게 지그재그의 가파른 길을 한참 동안 치고 오르다보니, 길목의 ‘너른 쉼터’에 이르렀다. 카고백이나 배낭을 놓을 수 있는 돌판으로 만든 받침대가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마당 같은 공간도 있는 곳이었다. 장중한 체구의 기원섭 대원이 먼저 올라와 후속대원들을 반겨주었다. 참 보기에 좋았다. 특히, 이곳은 수림(樹林) 사이로 멀리 에베레스트 설봉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다. 우리가 쿰부히말에 든 후 처음 만나는 에베레스트 모습이다. 살아있는 육안으로 에베레스트의 만나는 순간이다. 이 대장을 비롯한 후미의 대원들이 모두 도착했다. 기분이 좋은 기원섭 대원이 좌판의 아낙들이 팔고 있는 오렌지를 사서 우리 대원들과 동행하는 네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스스로 앞서 올라와 상당히 기분이 고조되어,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우정의 오렌지’를 나누어 먹고 환담을 나누면서 한참을 그렇게 쉬었다.
부테코시가 합류한 두드코시 계곡의 장관
* [쿰부히말의 중심, 남체바자르] — 고난의 행군, 체크포스터를 지나
12시 정각, 다시 산행(山行)을 시작했다. 날씨는 뜨겁고 길을 팍팍하여 발길마다 먼지가 일었다. 짐을 지고 올라가는 일군의 야크의 행렬이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켰다. 산록은 거대한 전나무,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12시 38분, 김준섭 대원과 함께 남체마을의 체크 포스트 앞을 통과하고 몇 동(棟)의 롯지가 있는 마을에 올라섰다. 급경사의 산비탈에는 다랑이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먼저 올라온 김장재 대원이 마을 초입의 롯지의 야외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라르자 도반’에서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왔으므로 다리가 매우 아프고 팍팍했다.
건너편 보테코시 계곡위의 절벽과 폭포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좁교의 행렬
남체마을 입구의 산록 - 다랭이밭
돌계단 갈림길에서 앞서 올라온 현지 가이드 ‘파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유숙할 숙소를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좌측의 길로 가면 타메(Thame)를 경유하여 티벳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우측의 계단을 넘어서니, 남체바자르(Namche Bazar) 본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은 거대한 소쿠리 모양을 한 지형인데 그 산비탈에 수많은 롯지 건물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의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길로 내려서니, 등산용품을 비롯한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여 번화한 느낌마저 들었다.
해발 3,440m 고지의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남체’는 원래 티벳트에서 넘어온 고산족인 셀파족의 전통마을인데, 에베레스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사그르마타국립공원>에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쿰부히말 교통의 요지이다. 그리고 에베레스트, 로체(8,516m), 초오유(8,201m) 등정이나 카라파타르나, 교쿄 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국경을 넘어 티벳으로 가는 기점(基點)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고 치과도 있고 은행도 있고 환전소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헬기 착륙장이 있고 군부대까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셀파족의 민속박물관과 네팔의 유명사진작가 ‘락파 소남 셀파’의 산악사진박물관도 있다, 무엇보다 남체(Namche)에는 토요일이면 시장이 선다는 것이다. 바자르(Bazar)라는 말이 ‘시장’을 가리키는 이곳 말이다. 히말라야 고산의 곳곳에 사는 사람들이 며칠이 걸려 이 시장을 보러 온다. 국경 넘어있는 티벳 사람들까지 이곳 바자르를 찾는다고 한다. 그들이 재배한 감자 옥수수 등 곡물이나 채소를 비롯하여 말이나 소까지 갖다 팔고, 또 운동화나 의류 등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간다고 했다. 우리의 유숙할 숙소 ‘잠링 게스트하우스’는 중심거리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가장 높은 산비탈에 있었다.
* [오늘의 기숙지 남체의 ‘짐링’ 게스트하우스] — 서서히 고소의 증세가 엄습하다
오후 2시경, ‘잠링(Zamling)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여장을 풀었다. 워낙 높은 곳이라 남체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대장을 비롯하여 뒤에서 올라오는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의 게스트하우는 깨끗하고 시설이 매우 좋았다. 롯지 식당은 물론 방도 깨끗하고 물과 전기가 원활하게 공급되었다. 더운 물에 샤워를 하거나 세탁을 하는 경우에는 일정액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머리가 띵하며 속이 약간 답답해지는 것 같다. 드디어 고소증세가 오고 있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런데 얼마 지나가 않아 갑자기 운무(雲霧)가 산을 뒤덮으며 이내 시공이 음산해지기 시작했다.
잠링(Zamling) 게스트 하우스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남체마을의 중심거리로 내려갔다. 각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바자르가 열리는 건너편 언덕에도 올라가보았다. 바자르(Bazar)는 1950년대 우리의 시골의 난장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산록의 공터, 땅바닥에 자리를 펴고 여러 가지 일용 잡화들과 산중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을 늘어놓았다. 내일이 장(場)이 서는 날인데도 이미 오늘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한 복판에 일렬로 지어 놓은 사각정이 있어 가보았더니 산에서 흘러내리는 청정수를 아래로 내려 보내는 데, 거기에 ‘마니 휠’을 설치하여 일종의 신앙적인 성수를 관리하는 시설이었다. 히말라야 산중의 사람들, 특히 티벳에서 넘어왔다는 셀파족의 불교에 대한 신앙은 삶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돌이면 돌, 바위면 바위, 물이면 물까지 모든 것을 신앙적인 대상으로 여겨 경외(敬畏)하고 신성시하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아주 엄숙해 보인다.
해발 3,440고지 남체마을의 중심거리
마을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물길따라 마니벨(Mani Bell)이 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