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신문] 무상행의 대봉공인, 구산 대호법 열반
한울안2022.09.06 / 조회수 49
교단과 국가 발전에 헌신한 무상행의 대봉공인, 구산 김호영 대호법이 9월 3일 열반했다.
구산 대호법은 1938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해 신심 깊은 부모와의 인연으로 일원가정에서 성장했으며, 고교시절 전주교당 학생회장 맡아 학생교화를 주도했다. 원기42년(1957) 용신교당 순교를 시작으로 서울교구 청년회장, 서울교구 청운회장, 서울교구 교의회 부의장, 서울교구 초대 원덕회장, 수위단회 전문위원, 화곡교당 교도회장, 훈련사업회장, 해산사업회·성지사업회 운영위원,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원불교대학원대학교 운영위원, 원음방송 이사 등을 역임하고, 교단의 숙원사업인 군종교무 파견에 큰 힘이 되었다. 일생을 “교단에서 필요로 하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한결같은 교단 사랑을 실천하고 교단의 대소사에 소리 없이 합력한 무아봉공의 거룩한 삶을 살았다. 교단에서는 그 공로를 기려 영모묘원 인허가 관련 종법사 표창, 성지 및 교단 대외분야 관련 교정원장 표창, 군종사업 추진 관련 교정원장 표창, 원경고등학교 예산지원 관련 교정원장 표창 등을 수여했다.
사회적으로는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농촌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1960년 4·19혁명 당시 전북대학교 총위원장직을 맡아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의정연구회(국회) 부회장, 국회 새마을금고 이사장, 상호복지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청조·황조·홍조훈장과 건국훈장 등을 수상했다.
원기69년 ‘구산(龜山)’이란 법호를 받고, 76년 정식법강항마위 승급, 88년 ‘대호법’ 법훈을 수훈했다.
전산 종법사는 “위공망사(爲公忘私)의 공부심으로 교단 토대를 세운 구산 대호법의 신성은 거진출진의 사표가 됐다”고 법문하며, 역대 종법사의 뜻을 받들어 교단 대소사에 앞장서 교단의 숨통이 된 구산 대호법의 열반을 위로했다.
구산 김호영 대호법의 세수는 85세, 법랍 83년,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5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에 해당한다. 천도재는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교구청 한강교당 대각전에서 열리며, 종재식은 10월 21일 오후 2시에 거행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타원 조정인 정사(화곡교당)와 자녀 성전, 성천, 인주, 인전, 혜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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