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한복(韓服, 문화어: 조선옷)은 고대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의 고유한 의복이며 한복의 기본적인 형태는 고대 북방민족의 스키타이계 복식이 원류인 호복입니다 대다수의 평민들은 흰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한복의 기본 구성인 치마와 저고리, 바지 등은 변치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복으로써 한복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활동성을 중시하며 딱 붙는 옷이 아니고 또한 천 자체를 보면 직선형이지만 몸에 입을 경우 곡선이 살아나게 도와주는 미적 특징도 나타나는데 이는 주머니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복은 호복이 아닌 기모노나 한푸 등 이웃 국가들의 복식과 달리 저고리와 치마, 즉 상·하의가 분리 되어 있어 형태상으로 구분되며 현대의 한복은 보통 조선 시대에 착용했던 한복과 유사성이 크며 명절이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량한복은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하고 있어 20세기 동안 그 외형이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복도 의복이므로 기성복처럼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색과 소재, 특징 등을 새롭게 접목하며 이러한 시도는 여러 한복 디자이너들에 의해 현재에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나라 여자한복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Google & 국립민속박물관
양반집 여자들의 저고리
평민 여자들의 치마 저고리
나인(궁녀)들의 치마 저고리
미혼여성 치마 저고리
치마 저고리
치마저고리는 여자 한복의 치마와 저고리를 뭉뚱그려서 부르는 말이다. 남자가 입는 바지저고리는 바지와 저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치마는 한 장의 천으로 된 스커트 모양의 아래옷을 말한다. 기장은 가슴에서 복사뼈까지이며, 어깨에서 끈으로 여미어 입게 된다. 저고리는 길이가 30 cm 정도의 짧은 상의로서, 통소매, 동정, 가슴에 늘어뜨리는 옷고름으로 요약된다. 저고리는 보통 치마보다 엷은색이 사용되며, 이 두 벌의 짝맞춤으로 여성의 의상이 된다. 소재는 비단이 많다.일본에선 조선학교 여학생이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는 경우도 있다.한복은 저고리가 짧고 치마가 긴 편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조선 중기 1580년경 청주 한씨 덧저고리 길이는 무려 81센티미터나 되었으나, 1616년에는 63센티미터, 1700년대에도 42센티미터 정도로 허리를 덮었다. 그런데, 1780년경에는 27센티미터가 되더니 1890년에는 무려19.5센티미터, 급기야 1900년대에는 14.5센티미터까지 짧아져 젖가슴이 보일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이 되었다. 너무 심하게 노출이 되자 여자들은 치마허리를 두르게 되었다. 1930년대부터는 26센티미터 정도로 다시 길어져 현재 모습으로 정착되었다조선시대에는 옷 색깔로 자신의 처지를 나타냈다.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는 다홍치마, 노랑저고리를 입었고, 새색시는 다홍치마, 연두저고리를 입었다. 결혼한 부인은 남치마, 옥색저고리를 입었다. 저고리의 끝동(소매)이 남색이면 아들이 있다는 표시이고, 자주색 고름을 달면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왕가나 명문세도가는 금박무늬를 새길 수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양반이 늘면서 금박이 일반화되었다
중전과 후궁들이 입던 당의
상궁들이 입던 당의
당의
당의(唐衣)는 조선 시대 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입었던 소례복의 한 가지이다. 여기서 소례복이란 예절에 맞게 간단하게 차려입게 만든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료에 따르면 삼국 시대 때 이 옷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어떤 기록에 따르면 남북국 시대 때 중국의 고대 왕조인 당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후자의 기록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옷은 오늘날에도 전해져 내려오면서 혼례식과 연회가 많이 차려질 때 입는 민족의상으로써 국외교포들과 한민족에게 많이 사랑을 받고 있다.
장옷
장옷 혹은 장의(長衣)는 여성들이 착용했던 쓰개의 일종으로서 부녀자의 얼굴을 가리려 했던 풍속에서 유래된 의복이다 비슷한 것이 쓰개치마인데 구분이 조금 어렵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 장옷 입은 여인 〉과 〈 처네 쓴 여인 〉에는 얼굴 가리개의 두 종류가 명확하게 대비되어 있다. 윗저고리를 변형한 것처럼 소매가 달리고 동정까지 있는,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의 가리개가 장옷이고, 단순히 치마를 둘러쓴 것 같은 모양이 일명 쓰개치마라고 생각하면 된다.장옷은 남자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바탕은 주로 초록색 명주, 소매 아래에는 흰색 옷감을 써 구분했으며 겨드랑이와 옷고름 및 깃도 옷감을 달리했다. 개화기가 되면서 여성들의 의복 변화 중 처음 일어난 것이 장옷과 쓰개 벗기로서 의복 개량 논의와 함께 처음에는 검정 우산을 쓰거나 양산을 써서 얼굴을 가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얼굴을 가리는 외투의 기능을 장옷이 했으므로 그리 무겁지 않은 소재로 만들어 얼굴을 가리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이는 상하층 구분 없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어 속박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혼례 때 입는 원삼
궁중용 원삼
상궁들용 원삼
원삼
원삼(圓衫)이란 한복에서 혼례복의 일종을 일컫는 것으로 원삼은 앞깃이 둥글기 때문에 둥근 원 자를 쓰며 활옷과 함께 대표적인 왕실의 혼례복이다. 대례복이며 색깔은 지위를 의미했으며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의 홍원삼(紅圓衫), 빈궁(嬪宮)은 자적 원삼(紫赤圓衫) 등으로 불려 지위에 따라 구분됐다. 그 중에서 녹원삼은 공주와 옹주 및 정조 때 이후로는 서민들에게도 퍼져 대부분의 서민들도 혼례 때만큼은 입도록 허용됐다. 원삼과 활옷과는 비슷하지만 소매나 옷길이가 좀 짧은 형태이다. 원삼의 시초는 통일신라 시대이며 당나라에서 많은 복식 제도가 들어오면서 이 형태도 들어온 것이다. 왕비의 원삼은 자적색, 또는 다홍색 길에 홍황두색의 색동을 써 여러 천을 사용한다. 후에 조선 초 명나라의 의복인 장배자의 영향을 받아 예복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삼은 특별히 대례복(활옷이나 원삼을 가리킴)으로 쓰이던 옷인 만큼 그 아름다움이 활옷과 비등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길상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자수를 새겨 특별한 일임을 강조했다 간혹 원삼이나 당의 등 의례복에는 표면 전체에 꽃이 표현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한 제한을 보면 원삼은 치마저고리 위에 덧입었으며 궁중에서는 원삼을 청색으로 입어 서민과 구분지었고 서민들의 녹원삼에는 금박장식을 할 수 없게 제한했다. 조선 말 이후 간소화되면서 원삼은 현재 폐백 복장으로 남아 있다.
활옷
활옷(闊-)은 활의(闊衣)라고도 하며, 원래는 조선 시대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이었으나 나중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이용되었다. 모양은 원삼과 비슷하지만 소매가 넓고 붉은색 비단에 노란색, 다홍색, 남색의 색동과 흰색 한삼을 달고, 가슴·등·소매 끝에는 연꽃, 모란 등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적의
왕비를 책봉할 시기가 되면 조선에서는 중국에 왕비가 입을 옷과 옷감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중국은 제후를 자처한 조선에 상응한 의복을 내렸다. 적의는 착용 시 적의 자체 뿐 아니라 하피·폐슬·후수·패옥(佩玉) 등의 부속의장품을 포함했으며 조선 고종 이후로는 그 제도가 바뀌어 꿩의 자수와 그 색에 대해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현재 궁중 의복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거의 남아 있는 것이 희귀해 각 1벌 정도만이 대한민국에 남아있으며 왕비의 적의로는 영친왕비의 것이 유일하다. 특별히 광무원년(光武元年·1897년)에 제정된 적의제도(翟衣制度)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서 110여 년 전 왕실복식을 나타내는 예술적 가치도 높다.
단삼
조선시대 초기에는 명나라에서 왕과 왕비의 예복을 받아 입었는데 단삼도 명나라에서 받은 예복 중 하나이다 깃이 둥글고 길이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으며 직금을 한 여러색의 비단으로 만들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들어오면서 거의 잘 입지 않게 되었으며 그 대신 당의가 단삼을 대신 했다고 한다 후궁들도 입었으며 상궁들은 진녹색 비단으로 만들었다 입었다고 한다
장삼
장삼은 비빈을 위시하여 상궁 나인에 이르기까지 입었다. 조선 전반기에는 매우 중요한 예복이었다가 중후기에 이르러 원삼과 당으로 집약되면서 없어져갔다. 왕비와 왕세자빈은 대홍색이나 5품이하의 정처에게도 착용을 허가했다 조선중기에 단삼과 함께 거의 잘 입지 않게 되었으며 원삼과 당의를 많이 입어서 점차 잘 입지 않게 되었지만 궁중에서는 조선말기 까지 장삼을 혼례복으로 착용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여성용 마고자와 두루마기
여성용 마고자는 상의(上衣)로 입으며 저고리 위에 덧입는 웃옷이라 하여 겹마고자라 불린다 여자들의 두루마기는 명절이나 제사 또는 예를 갖출때 입으며 평소에는 남자들 처럼 두루마기를 외출할 때 입는다고 한다
여성용 봄&가을 배자
여성용 겨울 배자
여자용 배자는 대부분 남자의 배자보다 길이가 짧다. 보물 제1660호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 가운데 1662년 복장된 여성용 배자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파평 윤씨(1735~1754)의 배자는 방령형 깃에 동정이 달려 있고, 앞중심에서 매듭단추로 여미고 겨드랑이에 끈을 붙여 앞뒤 자락을 연결한 형태이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도첩風俗圖帖』에 신부 큰상 받는 모습에 신부와 시어머니 모두 저고리 길이처럼 짧고 날렵한 소매 없는 배자를 입은 모습이 있다. 봄·가을용 배자는 얇은 옷감을 겹으로 깨끼 바느질하거나 가장자리에 짙은 색 선을 둘러 멋을 내었다. 여자용 배자는 소매는 없으며 원삼 깃에 동정을 달았다.
첫댓글 다음시간에는 그외 여러가지 특수 한복들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