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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셨죠? 시각장애인 재활 사이트 웹 아이프리의 미니 홈페이지에서 이곳 카페로 이전한 뒤 처음으로 올리는 책 추천입니다.
그동안은 자료 이관 때문에 죄다 옛날에 쓴 서평이었다면, 이번 감상문은 이제 막 읽은 신상이라는 거죠.
하지만 도서가 나온 지는 꽤 됐어요. 아시다시피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데이지도서는 점자도서보다 제작이 빨리 되지만 그렇다고 일반 도서들과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1월이 완전히 가기 전에 새로운 감상문이자 추천 서평을 남기게 되어 흐뭇합니다.
도서명: 경성 탐정 사무소 1~5권
저자: 박하민
* 이 책은 시각장애인 재활사이트 아이프리 도서관 문학에 일반소설 코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경성 탐정 사무소》를 읽게 된 건 의아함 때문이었다. 탐정이 나오면 일단 추리물일 텐데, 왜 일반소설 코너에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게다가 ‘경성’이라 하면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을 이르는 말이 아니던가? 혹시 역사 시대물인가 싶어 호기심도 생겼다. 그러나 어째 이번 도서 역시 제법 긴 장편 같았다. 선뜻 들어서 읽기 망설였다는 뜻이다.
내가 《경성 탐정 사무소》를 접했을 당시 3권까지 제작이 완료된 상태였는데, 분명 뒷권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혹시나는 역시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5권 완결이란다. 다행스러운 점은, 결국 욕구를 참지 못해 책을 들고 말았을 때 나머지 4~5권이 데이지도서로 만들어져 등록되었다는 부분이었다. 만세!
1권, 《경성 탐정 사무소》 시작 - 하녀 소녀와 젠틀한 탐정, 그리고 의학도 왕자님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이에요!”
작품의 무대는 휘황찬란한 불야성, 화려한 욕망의 도시 경성이다. 1권답게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먼저 혈혈단신 천애 고아, 가진 것은 씩씩함 하나뿐인 열여섯 소녀 박소화. 유명한 여배우와 부호 사업가 부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밀한 덫에 걸려들고 만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검은 손가방을 전해달라는 심부름에 궂은 날씨를 뚫고 거리로 나섰건만, 낯선 남자에게 강도를 당하지 않나, 지나던 웬 신사에게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았더니, 여배우이자 주인집 마님이 사라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소화가 훔쳤다고 형사를 부르기까지 한다. 문제는 그녀의 방에서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예의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이름만 알려드리면 경성을 다 뒤져 저를 찾으시겠습니까?”
한편 홀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청년 정해경, 그는 우연히 마주친 소녀를 봉변에서부터 구해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잊고 싶은 과거의 편린을 되새기게 된다. 그렇게 만난 둘의 인연은 해경이 누명을 뒤집어쓴 소화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깊게 진행된다. 결국 ‘사라진 반지 사건’은 해결됐으나, 소화는 하녀 일자리를 잃게 되고, 대신 임시로 해경의 탐정사무소에서 일을 거들며 생활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경성탐정사무소로 뜻밖의 의뢰가 날아드는데……. 그것은 운현궁, 즉 황실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망국의 국민에게는 긍지도 없다고 가르치나? 그건 아주 큰 오산이야.”
이환, 대원군의 장자 흥친왕 이재면의 삼남 이현용의 아들, 황실 인물이다. 간단히 말하면 왕자님 정도 될까? 아닌가? 황실 인물은 맞지만 황자는 아니고, 그렇다고 대군 같은 것도 아닌데. 그럼 왕손이 옳은 표기인가? 에이, 모르겠다. 그냥 왕자로 치자. 좌우지간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왕공족으로 불렸다. 소설의 각주 보면 알겠지만 ‘이환’이란 인물은 작가의 창작이다. 애초에 이현용 관련 설정부터가 완전 픽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릭터 가운데 이런 윗선과 닿은 인물이 있어야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법이다. 1권 마지막 이야기는 살인 용의자로 몰린 이환을 구하기 위해 경성탐정사무소의 해경과 소화가 동분서주하는 내용이다. 가와타 유사쿠라는 일본인 학생이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그와 심하게 다툰 적 있는 이환이 용의자이자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과연 왕족 이환이 진짜 범인일까? 해경과 소화는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2권, 《경성 탐정 사무소》 수수께끼 - 연쇄실종에 얽힌 끔찍한 비밀 실험
“그때 미스터 정은, 상상이 갈지 모르겠지만…… 가게에 식재료를 나르는 식품점 점원이었답니다.”
‘경성 탐정 사무소’라는 소설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탐정 정해경이다. 사건은 해결하는 탐정이라도 있지만, 바로 그 탐정의 비밀이자 과거는 대체 누가 풀어준단 말인가? 1권에서 얼핏 해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드러나긴 하지만 아직 다 밝혀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다짜고짜로 탐정이 된 건 아닐 거 아닌가. 해경의 조력자가 되어주는 향운정의 여주인, 인혜와의 인연도 궁금하다. 그래서인지, 2권의 첫 이야기는 탐정 정해경이 탐정이 되기 전의 내용이다. 그 당시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혜의 입을 빌려 소화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해경의 감춰진 비범함이 펼쳐진다. 과연 그는 인혜를 어떻게 도왔다는 걸까?
“이 사진 속의 계집을 찾고 있소. 가족들 말로는 일주일 전 대전에서 경성역으로 올라오는 기차를 탔다는데, 정작 경성역에서 이 계집을 본 자가 아무도 없소.”
2권의 두 번째 이야기부터 서서히 사건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명치정 일정목 45번지 경성탐정사무소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고리대금업자 송광만 사장. 그의 의뢰는 기차에서 실종된 자신의 신부를 찾아달라는 거였다. 그보다 한참이나 어린 소녀를 빚을 핑계로 꿀꺽 삼키려 하다니, 뭐 이런 xxx한 작자가 다 있나 싶다. 놀랍게도 그놈은 일본인 유지나 일본인 사업가도 아닌, 이름 보면 알겠지만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마뜩치 않은 실종 사건을 수임한 가운데, 예전 1권에서 인연이 있었던 소년 의뢰인 이주에게서 또 다른 실종 사건을 전해 듣는다. 같은 학교의 남학생 재영이 실종되었다는 것.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두 사건의 연결고리가 차츰 드러나는데……. 초보 소년 탐정과 해경의 활약으로 ‘사라진 신부 사건’은 괜찮은 결말을 마지했다. 그러나 경성에서의 실종 사건은 아직 매듭지어진 게 아니었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경성 실종 사건. 그 대상은 소년과 소녀와 중년과 노인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러다 사건의 실마리를 캐던 소화마저 행방이 묘연해지고……. 해경은 뜻밖의 인물, 이환으로부터 사건과 연관된 단서를 얻게 된다.
“최근 해부학 수업에서 쓰는 시체가 나는 암만해도 마음에 걸린다는 말입니다. 우리 실습에 들어오는 시체에 항상 멍이 들어 있어요. 알고 있습니까?”
의학도 최백훈, 이환과 같은 대학에 재학생인 그가 건넨 기노시타 교수의 논문에서 ‘경성 연쇄 실종 사건’의 단서가 나온다. 과연 행방불명된 소화는 무사할 것인가? 해경이 마주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3권, 《경성 탐정 사무소》 미궁 - 여학교 잠입과 골입된 호텔에서의 저격
“채플린은 아직도 무성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3권의 시작은 ‘극장 발화 사건’의 후속이다. 2권에서의 실종 및 살해 위협에서 겨우 벗어난 소화, 그녀를 가까스로 구한 해경. 둘이 휴식 겸 나들이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영사실에서 폭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건에 얽히게 된다. 다음날 극장 사장인 허경두가 화재 사건에 조사를 정식으로 의뢰하면서 해경은 복잡한 가정사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쭉 3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허경두 사장이 의심하는 인물 영사기사 윤철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한 극장 사장 허경두의 정처 금복,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변사가 된 찬용,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가십이 암암리에 떠돌고, 익명의 투서로 인해 보험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던 허경두 사장이 자택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며, 그의 애인으로 동거하는 하나코가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하게 되는데……. 결국 해경은 끝내 사건의 내막을 찾는다. 그러나 애써 발견한 증거물을 난로에 넣고 죄다 태워버린다. 그는 어째서 진실을 드러내는 게 아닌 잿더미로 만들어 묻어버리는 걸 선택했을까? 해경은 끝내 자신의 심경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영화 한 편을 보여주며 금복의 집에서 보인 행동에 대해 말한다. 양해를 구하거나 설명하지는 않겠다고, 자신이 한 일은 분명 어떤 점에서는 옳지 않지만, 그날 그 자리로 돌아간다면 다시 똑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비록 탐정의 동기가 명확하지는 않아도, 찰리 채플린의 작품 <거리의 등불(City Light)>과 연관짓다 보면 얼핏 해경의 마음이 엿보인다. 미국의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떠돌이 찰리와 꽃 파는 장님 소녀 사이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영화, 무성영화 말기에 발표된 그 작품은 채플린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그 영화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또 볼 수 있다고 해도 시각장애인인 이상 무성영화기 때문에 관람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영화가 퍽 인상적이었다.
“저 나무를 오래 보면 귀신 들린단다, 얘.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학교에는 정말로 귀신이 나온단 말이야.”
한편 3권에서는 소화의 잠입 수사도 볼 만한 재미 중 하나이다. 미리암 여학교에서 ‘유령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 남자인 해경이 직접 조사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다. 때문에 소화가 전학생이 되어 사건의 요모조모를 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2권을 다 읽고 여기까지 온 독자라면 아시다시피 뛰어난 기억력은 장점이지만 소화가 그렇게 영리한 편은 아니라서 말이다. 눈치도 빠르지 못해서 사건을 파헤치기보다 거의 정보 수집 활동에 가까운 일을 한다. 꽃다운 건 물론 집도 부유한 편인 사립 학교의 소녀들. 그러나 어둠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특히 한 소녀의 자살 사건이 있었던 바에야 그늘이 더욱 짙을 수밖에 없다. 기숙사 자치회의 장부를 관리하던 소녀, 그런데 친구의 돈을 빼돌린 도둑으로 지목된 소녀, 교내 따돌림이 심해지자 결국 압박감을 못 이겨 자살한 소녀. 미리암 여학교 기숙사에 나타나는 유령은 정말로 그 자살한 소녀일까? 그 소녀는 정말 도둑이었을까?
“의뢰의 범위가 어디까지요?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느냐 그 말입니다. 신변을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되는 자리요.”
3권의 끝에서는 경성탐정사무소의 도우미나 다름없는 이환이 등장한다.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시작한 그에게 날아온 초대장. 서경실업친목회 신년회가 있으니 필히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인데……. 환은 그 자리에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해경에게 동행을 부탁하고, 바늘 가는 곳에 실도 간다고, 소화 역시 신년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한편 ‘서경실업친목회’는 대표적인 친일 모임인 ‘대정실업친목회’의 분파라는 설정이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뜻밖의 위험스러운 인물들을 속속 만나게 되는 게 아닌가?
“경성탐정사무소의 정해경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런 미남은 쉽게 잊기 어렵지요.”
우선 인천항만주식회사의 권중만 사장이 있다. 그는 2권부터 등장해 해경에게 당혹과 경악을 안겨준 인물이다. 더불어 해경과는 선연은 결코 아닌 인연으로 접점이 있기도 하다. 그런 인물을 갑작스레 만나고 해경은 다시 자신을 사로잡는 과거의 악몽을 느낀다. 떨치려 하지만 불현듯 엄습하는 검은 그림자는 그의 발목을 잡아채는데. 하필이면 신년회 만찬에서 정전과 함께 저격이 발생하고, 해경은 이환을 감싸다가 어깨에 총상을 입고 만다.
“그 왜 와신상담이란 말이 있지 않아. 나는 누구와는 달리 애초부터 단것을 마시는 데는 취미가 없소. 누가 내 인생에 설탕을 부어 준 일이 없으니까.”
다음 인물은 이덕완, 일단은 환의 사촌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사촌 대접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게, 그는 자신이 영선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어느 날 나타났기 때문이다. 환에게 음험한 적의를 가진 사촌과 어딘지 꺼림칙한 인상을 풍기는 권중만 사장, 그런 수상쩍은 인물과 같이하는, 수상쩍은 의도를 가진 신년회에서 환과 해경, 그리고 소화, 세 사람은 그들을 노리는 모종의 인물과 마주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모습을 감춘 진실을 찾으려 하는데……. 하필 폭설로 인해 신년회가 있는 호텔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해경은 총상까지 입은 상황에서, 친일파 승냥이 떼로 득실대는 위험을 피하고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4권, 《경성 탐정 사무소》 과거 - 폭풍전야, 서서히 몰려오는 그림자
“우선 중병이 사실인지, 얼마나 살지가 가장 중요해요. 희한한 것이 간호부로 일했다는 소문은 있는데 그런 여자가 일했다는 병원은 한 군데도 없다는 거예요.”
윤자희, 금광 사업을 하는 남편의 아내로, 그녀 스스로도 이익 창출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4권은 그녀의 의뢰로부터 시작한다. 대형 금맥이 묻혀 있다는 부지를 매입하려는 윤자희. 하지만 땅 주인인 자산가 김석란은 학교를 설립할 부지라며 거래를 거절하고, 자희는 끝까지 그 땅을 포기하지 못하다가 김석란이 위독하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경성탐정사무소에 김석란에 대한 신변 조사, 즉 언제쯤 죽는지를 캐내달라는 의뢰를 맡기게 된 거다. 그깟 금이 다 뭐라고, 중병 걸린 이를 앞에 두고 참……. 그런데 알고 봤더니 김석란은 일전 유령 사건으로 방문한 적 있는 미리암 여학교의 설립자란다. 하지만 그 사실 외에는 이렇다 싶게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중년의 여성이라는 점, 금광 사업으로 대박이 났다는 것, 준수하게 생긴 비서가 유일한 연락 창구라는 것뿐.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생긴 해경은 소화와 함께 비밀스러운 여성 독지가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저 그런 흥미 이상의 위험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끝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춰야 하는 사람은 숨길 비밀이 있거나, 그 비밀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경우,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과연 금광 사업으로 거부가 된 김석란과 그녀의 조카이자 비서로 활동하는 장준학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부고가 왔소. 용정에서 부고가 왔단 말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 어떻게 된 것인지. 무엇이 어찌 된 것인지 전혀 모르겠소.”
그런 한편 작품 내에서 지속적으로 찜찜함을 유발시키는 나쁜 놈, 인천항만주식회사의 권중만 사장이 암암리로 작업을 걸기 시작한다. 이환에게 신뢰를 잃었고, 일본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그는 해경과 얽힌 악연을 정리하고자 뒷조사를 시작하고, 해경 또한 권중만에 관한 정보를 파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밤, 걸려온 전화 한 통과 죽은 자에게서 날아온 전보 한 통이 급박한 사건의 시작을 예고하는데……. 바로 상해 독립운동과 연관된 사건이었다. 권중만의 뒤를 캐던 환의 친구 기자 장순한의 부음과 그에게서 날아온 ‘덫에 걸렸네’라는 전보가 불온함을 암시하는 가운데, 점점 다가드는 그림자 앞에서, 과연 사건의 수수께끼는 풀릴 것인가?
5권, 《경성 탐정 사무소》 마지막 - 천망회회,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여도 촘촘하니
“마을에서 참판댁 나리라고 불렀던 남자의 이름은 정한주, 부인은 김화령이었습니다. 어린 남매 중 딸의 이름은 정아경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은…….”
5권은 4권 ‘폭풍전야’ 이야기의 연장으로 시작한다. 장순현 살인 사건과 연관된 권중만의 뒤를 캐던 중 그의 부친 권경천과 얽힌 ‘밀고 사건’을 접한 해경. 조사를 위해 춘천까지 내려갔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이정석, 그의 과거 이름. 이지순, 그가 찾는 누이의 가명. 정아경, 정해경. 양반가 남매였으나, 독립운동 밀고를 당해 집안이 몰락해 행방이 묘연한 아이들. 빛바랜 사진과 희미한 기억, 여러 이름들 사이에서 해경은 과거의 뼈아픈 배신의 흔적을 더듬는다. 한편 친구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중국 용정까지 찾아간 환은 해경과 얽힌 적 있는 장준학과 그의 동료인 의사 김 선생과 만나게 된다. 권중만에게 원한을 가졌는지, 그를 오래 전부터 예의주시한 장준학과 김 선생. 친구를 살인교사한 배후인 권중만의 실체를 밝히려 하는 이환. 누나의 흔적을 찾고 중만의 범죄를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소화와 해경. 그리고 독립운동 조직의 숨은 후원자이자 조력자의 얼굴과 친일파 사업가의 얼굴을 가진 권중만. 이들이 5권에서 본격적으로 접전을 벌인다. 권중만의 1차 목표는 그의 일을 묘하게 방해해온 경성탐정사무소의 정해경. 마침내 탐정은 그가 놓치 않고 버텨온 ‘희망’으로 인해 중만의 덫에 걸리고 마는데……. 예전 미리암 여학교에서 얽힌 적 있는 소녀 영신의 살인범으로 해경이 현장에서 체포당한 것이다.
“내가 더 빨리 왔어야 했어. 내가 널 구할 거야. 다시 만나자.”
이환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의학 지도 교수에게 증언을 부탁한다. 소화는 권중만이 부친을 살해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의 본가를 찾아가고, 해경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인으로 나선다. 수수께끼의 의사 김 선생, 해경이 그토록 찾던 인물도 동료인 장준학과 함께 반격을 준비한다. 천망훼훼, 하늘이 악인을 향해 짜낸 그물코가 완성되었다.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마지할 것인가?
암울한 시대에 낭만 로망스, 《경성 탐정 사무소》
“희망은 그 어떤 경우에도 헛되지 않습니다.”
소설 《경성 탐정 사무소》는 흔히 말하는 ‘정석’을 따르고 있다. 일단 캐릭터 설정부터가 그렇다. 탐정 정해경은 참으로 젠틀하다. 신식 교육을 받았고, 정중하며, 불의를 보고서 외면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외모까지 준수하다.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이따금 보이는 여린 면은 소위 모성애, 내지는 동생 같아 챙겨주고 싶다는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시리즈 작품에서 남주인공으로 꽤 알맞은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소화로 말하자면 한창 유행하는 ‘걸 크러쉬’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답답하고 좀 맹한 성격이나 행동 양식이 개연성을 얻는다. 외모도 제법 예쁜 것 같고, 기억력은 탐정을 능가하며, 가사 전반에 통달해 있고, 소심하지만 마음은 참 착하다. 간혹 답답해 보일 정도로 인성이 훌륭하다. 소화의 역할은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거나 각종 문서를 암기해 탐정을 돕거나, 잠입 수사 시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탐정과 얽힌 감정선을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류의 소설에서 여조수가 맡는 퍽 정석적인 포지션이다.
유명한 식당인 향운정의 여주인 인혜와 왕공족인 이환의 역할은 탐정에게 사건을 소개하거나 지원하는 일을 담당한다. 경제계 인사를 맡은 인혜와 검찰과 의료계 등 온갖 인맥을 자랑하는 왕공족 이환 또한 정석적인 조력자 포지션이다. 한편 이 두 사람은 이따금 침착한 탐정에게 장난을 걸 거나 놀리는 등 약방의 감초처럼 개구진 감칠맛을 낸다.
4권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의혹과 수상쩍음을 품은 악역처럼 굴다가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며, 나중에는 조력자로 돌아서는 장준학과 의사 김 선생은 긴장과 박진감, 어둑한 매력을 더하는 캐릭터들이다.
소설은 이런 인물 구성이 착착 맞물리며 진행되는데, 시대상이 워낙 엄혹한 설정이라서인지 틀에 박힌 듯한 인상이 들면서도, 책을 덮지 못하게 하고, 계속 이야기를 읽도록 만들었다. ‘경성 탐정 사무소’는 일단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다. 하지만 그 위에 역사시대물과 로맨스가 아주 살짝 얹혀진 구성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약간만 가미됐기 때문에 추리하다가 옆길로 새는 경우는 없다. 요컨대 한창 긴장감 넘치는 범인 검거 현장에서, 탐정과 여조수가 난데없이 눈이 맞아 키스를 한다든가 하는 장면이 없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특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심각 무드에서 러브 멜로가 깔리는 건 솔직히 삼류 느낌이 나니까.
아마 일제강점기에다 개화기, 모던보이니 신녀성이니 해도, 아직은 전통과 옛것이, 우리나라 특유의 고지식함이 남아 있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지 싶다. 배경이 이러니 만큼 탐정 해경이나 여조수 소화, 왕공족 이환과 한정식집 사장 인혜, 해경의 누이 아경 등의 팔자도 기구하기 짝이 없다. 내 감상문이자 서평에는 소위 말하는 스포일러, 천기누설이 많다. 지금도 많은데 더 늘릴 수야 없는 노릇이니, 주요 키워드로만 적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독립운동과 그로 인한 집안의 몰락, 이기와 탐욕에서 태어난 밀고, 죄책감으로 인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종살이, 인간 쓰레기 같은 글러먹은 한 작자에게서 기인한 원한, 자신의 뿌리를 몰라 불안 속을 헤매면서도 희망을 놓치 않기 위해 노력해온 여정, 패망한 국가의 지도층으로 약탈자들이 붙여준 감투로 살아가는 이의 고뇌와 책임감, 절망의 무저갱에서 복수심에 의지해 버텨온 삶……. 뭐, 대충 이 정도로 요약하겠다.
추리물이니 만큼 경성 이곳저곳을 무대로 해경과 소화는 여러 사건들의 진실을 찾는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할 때도 있고, 사건의 내막을 조용히 덮을 때도 있다. 그 사건들은 억울한 누명일 때도 있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에게서 비롯된 조작일 때도 있으며, 애틋하게 다가오는 가정사일 때도 있다. 소설을 읽으며 당시의 시대상, 신녀성과 가부장적 남성, 지주와 소작농의 역전된 관계, 옛것과 새것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꽤나 흥미로웠다. 다른 한편으로 일제의 만행으로 무구한 희생이 발생하거나, 사람의 탐욕과 이기에 애꿎은 주검이 생기는 걸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진실을 찾았으되, 그 진실을 밝힐 길이 없어, 조용히 묻히는 사건들. 그 사건 아래 지워진 무수한 이름들. 진실을 꿰뚫었으나 힘없는 식민지 나라의 국민이라 어찌할 바 없는 무력감과 서러움. 그럼에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사건에 뛰어드는 탐정과 그 동료들. 비록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지만, 사람들은 그 거리에서도 등불을 밝히며 삶을 영휘했다. 누군가는 이기적으로 굴었고, 어떤 이는 그로 인해 순수를 잃었으며, 그럼에도 선의를 가지고 손을 잡는 이들이 있었다. 복수로 삶을 불태우기도 했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에 몸서리를 치던 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엄혹한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찬란한 봄을 마지한, 곁을 내어주지 않는 이의 옆을 지키며 온기를 나눠준,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이야기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 탐정은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그 어떤 경우에도 부질없지 않다고. 그는 그 희망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 자신의 희망이 부질없을까 싶어서 겁에 질려 있었다. 한편 모진 여정을 겪은 탐정의 누이는 희망이 없어 절망했고, 절망했기에 거침없이 험로를 걸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없었기에, 그 길은 언제나 공허했다. 결국 이야기의 끝에서 탐정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다. 그의 희망이 부질없는 희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암울한 시대의 낭만적인 로망스로 남을 수 있었다.
소설 《경성 탐정 사무소》는 추리물이지만 그렇게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탐정만 잘 따라가면 이야기는 풀린다. 또 몇몇 사건, 가령 3권의 여학교 유령 소동 같은 경우 굳이 추리할 필요없이 사건의 내막이 보이기도 한다.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법의학 지식도 나오고, 관련 단체도 나와 현실성이 퍽 훌륭하다. 자료 조사하고 참고문헌을 뒤적이느라 고생한 작가의 노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간혹 내용 구성이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 탐정의 과거가 너무 초반부터 나온다 싶은 게 그렇다. 그래도 추리물답게 이야기를 끌고간 점은 매우 좋았다. 추리에 로맨스나 정치물 등을 가미하는 건 좋은데, 그게 너무 지나치면, 이게 대체 추리물인지 로맨스물인지 정치 및 암투물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제일 인상 깊게 다가온 인물은 탐정의 누이, 정아경이다. 그야말로 일제강점기판 ‘걸 크러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탐정의 삶도 재미있었지만 스핀오프 작품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최종 결론을 적자면, 《경성 탐정 사무소》 읽어서 나쁠 건 없는 작품이었다.
PS. 위에 책 1~5권 소개하며 적은 타이틀은 내가 임의로 지어낸 거다. 작가가 소설에 소제목을 달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시 오해 및 착각이 생길까 싶어 그 사실을 밝혀 적는다.
첫댓글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주인장님, 요즘 공무원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목민심서가 상기 됩니다.
바른 공직자의 모습을 그려낸 목민심서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