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 콜럼버스
-역사교육과 김 민 정
‘1492’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숫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연도는 못 외워도 1492 하면 ‘아, 신대륙 발견’ 혹은 ‘콜럼버스’를 쉽게 떠올릴 정도로 교과서에서든 다른 매체에서든 각인되어 온 그러한 숫자이다. 요즘은 의류 상품에서도 본 것 같다. 그렇다. 1492년, 이탈리아 출신인 탐험가 콜럼버스는 당시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을 저지르고 만다. 지구구형설을 믿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관이 만연했던 당시 유럽사회에서 바다를 건너 대륙에 이르고자 한 것이다. 리틀리 스콧 감독의 영화, <1492 콜럼버스> (1492: The Conquest Of Paradise, 1992)는 콜럼버스가 그의 어린 아들인 페르난도를 데리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배의 모습을 보고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자신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항해가 시작되고 인도로 착각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에 부왕(副王)으로서 자리하고 몇 번에 걸친 항해를 하다 스페인으로 돌아와 죽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솔직히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여서 그런지 픽션의 내용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되는 것이 있었다. 이사벨 여왕은 왜 콜럼버스를 지원했을까?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맨 처음 콜럼버스가 찾아 간 곳은 포르투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 퇴짜를 당한 콜럼버스가 건너간 곳이 스페인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철저한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영화 속 콜럼버스가 쌀라망카 대학에서 열린 위원회에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여긴 기독교인들은 바다 끝에 지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달랐다.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왜일까? 15세기 스페인의 정치 상황은 그야말로 예측 불허였다. 이복형제 사이인 왕족들이 벌이는 왕위 쟁탈은 점점 격심한 상황으로 빠져들었고,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들은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견제를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벨 여왕은 금, 은, 노예를 조건으로 내건 콜럼버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만일 성공하면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더 강화시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신대륙(아메리카)발견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 면은 이미 기존의 역사서에 나올 것이다. 그럼 부정적인 면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등을 파괴하는 만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더 크게 본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 영국이나 프랑스가 식민지를 건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려한 이유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그들의 식민지인 아메리카에서 엄청난 재물들을 가져오거나 인도 등지에서 향신료 등을 들여와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것에 부러움을 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콜럼버스의 신대륙(아메리카) 발견은 당시 사회상에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고 큰 사건이었으며, 스페인의 대륙 진출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역사적으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1492년 콜럼버스의 업적이 양면성을 가졌다고 할까요.. 실제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고 기독교적 세계관의 허와 실을 극명하게 증명했고, 스페인 왕가에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문명의 파괴 등의 행위를 본다면 그것마저 업적이라 할 수는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