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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둘레길 길동무 원문보기 글쓴이: 수명산
한남정맥종주 7구간(오봉산ㆍ백운산ㆍ광교산)
일자 : 2002년 5월 8일
구간 : 47번 국도 ~ 오봉산 ~ 백운산 ~ 광교산 ~ 버들치고개
도상거리 : 16.3km
산행시간 : 6시간 50분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인류 사회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번영과 축복은 가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기초가 튼튼하여야 든든히 서는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이것은 홈스위트 홈의 작사자인 존 하워드펜인이 노래한 것입니다. 가정의 포근함과 소중함을 잘 표현한 이 노래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원인은 정치문제도 아니요 경제문제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가정이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의무는 자녀를 잘 양육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식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인격 교육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지식은 없어도 살지만 신앙과 인격이 없을 때는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가정에서 자식을 잘못 길러 놓으면 그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목사를 했던, 아무리 대통령을 했던 그 책임은 부모에게 돌아갑니다. 잘 자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출가한 딸들과 아들이 달아준 빨간 꽃 한 송이가 지나온 삶의 피로가 풀리는 듯합니다.
09시 10분 47번 국도에서 시작부터 안양골프장(안양베네스트콜프콜럽)이 정맥을 가로막는다. 골프장 횡단을 포기한 정맥꾼들은 왼쪽으로 보도를 따라 조금 내려서다 만나는 용호고등학교 직전 오른쪽으로 개천을 끼고 어제 비로 흠뻑 젖은 흙 길이 정맥길 아닌 정맥길이다. 용호중학교와 옥천초등학교를 통과하고 고층아파트를 바라보며 돌아서니 때마침 새마을 열차가 지나는 경부선 철길이 보인다.
오늘따라 얌전해진 정맥꾼들이 철길 횡단을 포기하고 군포노인복지회관 옆으로 나있는 지하도를 이용한다. 정맥은 한세대학교 교정에 들어서면서 우측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학생복지관을 통과하여 숲길로 내려선 곳에서 정맥길을 지키고 있는 쌉밥집을 만날 수 있다. 술꾼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정맥은 쌉박집에서 곧바로 산길로 들어서면서 만나는 녹색의 철망 울타리, 울타리를 힘겹게 넘어서서 키를 넘는 회향나무 조림지 사이로 한동안 이어나가다가 다시 철망 울타리를 빠져나온다. 정맥길은 뚜렷하고 완만하게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만나는 아카시아 군락, 정맥의 숲은 온통 꽃향기가 그윽하고 시심이 떠오른 나선배가 한 수를 가르쳐준다.
커다란 바위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곧이어 이정표(고정동:600m, 정상:50m, 시청:600m, 병풍바위:500m)가 서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산불초소를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삼각점(안양 431, 87년 재설)이 있는 오봉산(△205.4m)이다. 조망이 트이며 수리산에서 지나온 능선이며 빼앗긴 능선까지 확인 할 수가 있다. 되돌아 내려서며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자칫하면 곧바로 내려설 수가 있는데 아마 많은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과외비를 치렀을 것 같은 느낌이다.
20여분간을 오봉산을 다녀오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정맥꾼들이 능선분기점으로 되돌아와 잡목으로 가려진 정맥길을 찾은 후 5분 정도 내려서면 No:7번 송전탑을 만날 수가 있다. 정맥은 송전탑을 통과하면서 곧바로 왼쪽으로 쓰러져 가로막고있는 나무를 타고 넘어서니 희미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절개지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돌아내려 선 곳이 좌측으로 고고리마을이 있는 고고리고개다.
횡단보도를 건너 의왕시 재활용센터입구, 이동고개 삼거리, 영동고속도로 1km등 교통표지판이 서있는 삼거리지점까지 도로를 따르다가 재활용센터 버스정류장을 뒤로 절개지로 철망 울타리를 따라 간다. 마침 울타리 안에 있던 직원이 상수도 구역이라 출입하면 안 된다고 만류하지만 정맥꾼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일...
정맥길은 낙엽과 솔잎이 어우러진 완만한 길, 절개지 아래로 4차선 도로의 과천 - 고색간고속화도로가 나타나고 백두대간 구룡령고개와 같은 고속화도로를 가로지르는 오봉산 생태계 연결통로를 통과하며 한차례 오르막길이 가파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지나온 오봉산 좌우로 군포시와 의왕시의 빌딩숲이 볼만하고 멀리 관악산은 몇 일간을 정맥꾼들의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170봉을 넘는다. 정맥길은 산책로가 되어 마치 고속도로 같고, 수원시에서 세운 의왕시 경계 금속팻말이 서있는 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다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능선분기점인 갈림길이 나타난다.
1번국도로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소리를 들으며 지지대고개로 내려서는 길목에서 만나는 지지대비, 지지대비는 조선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7년(1807) 화성어사 신현준의 건의로 세워진 비라고 한다, 정조는 생부의 묘를 지금의 수원인 현륭원으로 옮긴 후, 매년 참배를 드렸는데 현륭원으로 참배가는 길에 미륵당고개(지금의 지지대고개)에 이르러서는 행차의 더딤을 마음 아파하였으며,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 갈 때는 현륭원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행차를 멈추게 하였다 한다.
계속 돌아보는 정조의 더딘 환궁길에서 멀리서나마 현륭원을 볼 수 있는 이 고개에 돌을 쌓고 작은 대를 만들어 지지대고개라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 이 지지대는 없어졌고, 부왕의 지극한 효성과 행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정조의 아들 순조가 세운 지지대 비각만이 서 있다. 지지대비는 홍문관 제학 서영보가 지었고, 윤사국이 글씨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돌계단을 내려서서 우측으로 150m 지점에 있는 휴게소에서의 여유 있는 중식시간을 끝내고, 지지대고개와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이 지점을 통과하는 정맥꾼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통과방법을 결정하고 특히 안전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무사히 숙제를 끝낸 정맥꾼들이 북수원 나들목을 통과하는 자동차의 행렬을 뒤로 송전탑을 향해 절개지를 오른다.
송전탑 직전 왼쪽으로 훤히 뚫린 등산로, 오름길은 통나무계단이 연이어 나타나고 등산객들에게 버림받을 만한 나무의자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고도를 서서히 높이면서 버려진 작은 콘크리트 건물과 철조망이 나타나는 255봉,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면서 나무숲사이로 시설물이 들어 서있는 백운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솔밭길은 완만하게 이어나가면서 이정표가 서있는 범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잠시 내려선 안부가 좌우로 길이 나있는 수의사거리다. 이틀동안 내린 비로 더욱 푸르러 보이는 정맥의 숲을 한차례 가파르게 봉을 넘으며 광교산과 형제봉이 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정맥길...
북수원 나들목에서 30여분 거리의 광교헬기장(×367m)에 오른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에서 쉼도 없이 길을 재촉하는 정맥꾼들, 왼쪽(북)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한차례 떨어지는 듯하다가 이정표가 있는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갈림길을 만나면서 왼쪽으로 누군가가 한남정맥이라 화살표시를 해 놓았다. 식물박사 김종범씨의 나무이야기를 들으며 이어나가는 정맥길...
백운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스팔트 진입로를 따라 잠시 올라서니 미군시설물이 나타나고 철조망을 따라 밧줄로 안전시설이 되어있는 등산로를 따라 한차례 올라서면서 폭 1m정도의 콘크리트길을 만난다. 그리고 길고 긴 콘크리트 계단 길, 힘겨운 계단 길의 지루함을 잊으려고 하나 하나 세다보니 143개라는 김수남씨, 정맥은 다시 철조망을 만나면서 정맥길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백운산을 향해 왼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간다.
높이 564m의 삼각점(수원 451, 83년 재설)이 있는 백운산, 청계산과 광교산 사이에서 종주자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백운산, 빨간 나무판에 쓰여진 글귀, 시야에 도심의 빌딩숲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정상에는 주인 따라 올라온 작은 2마리의 개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주인 말을 빌리면 힘들다는 표현이라는데 사실은 개들은 데리고 산에 올라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와 광교산 시루봉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광교산은 수원시 북쪽에 있는 해발 582m의 산이다. 한남정맥의 주봉으로 수원을 비롯한, 성남, 용인, 의왕시 등에 그 산자락이 걸쳐 있고, 최고봉인 시루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백운산(564.2m), 남쪽으로는 형제봉(448m)을 거느리고 있다.
이 산은 풍수 지리학 상으로 수원의 진산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대동여지도에도 수원의 진산이 광교산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본국산경에서는 광교산이 광주 서남 오십리에 있고, 수원 동북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이는 옛 수원 읍치를 중심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수원시 영역 내에서는 이의동, 상광교동, 하광교동 등에 걸쳐있다.
그리고 하광교 소류지와 광교 저수지를 포함하고 있는 이 산은 수원권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정 지역으로, 지난 1971년 지정된 상수도 보호 구역이란다. 또 다시 나타나는 시설물과 송신탑, 시설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바위지대가 나타나며 바윗길이 미끄럽다. 밋밋한 정맥은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봉을 넘으면서 마주치는 등산객들...
억새라곤 눈을 크게 떠도 찾아 볼 수 없는데 억새밭이라니, 이정표가 서있는 억새밭을 통과한다. 예전에 광교산은 광악산, 광옥산 등으로 불리어졌는데 고려 야사에 의하면,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옥산이라 부르다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서기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광옥산 행궁에서 머물면서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었는데,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친히 광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1987년 경기도에서 발간한 지명유래집에 아주 먼 옛날 수도를 많이 한 도사가 이 산에 머무르면서 제자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후세에 빛이 되었다고 해서 광교산이라 하였다나 믿거나 말거나... 경기방송 송신탑이 볼썽사납다. 정맥에 이런 시설물들 이젠 더 이상 설치하지 말았으면... 수원의 아름다운 경치 8군데를 모아 놓은 수원 팔경 중의 광교적설은, 한겨울 눈에 덮인 광교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하는 것인데 이른 봄 최정상인 시루봉에 내리는 눈과 겨울 동안 쌓인 잔설 역시 손꼽을 만한 비경으로 꼽힌다나... 이번 겨울 광교적설을 한번 보러와야지...
한차례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통나무계단을 오르고 이어 만나는 노루목, 그리고 녹색천막과 운동기구가 자리잡고 있는 정맥길은 통나무계단으로 올라 밋밋한 봉을 지나면서 이정표(정상:120m, 형제봉:2,541m, 억새밭 1,094m)와 ‘99년 수원북중 장세영이 쓴 광교산이란 시를 볼 수가 있고, 조금 더 오른 곳이 능선분기점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바윗길을 따라 100여m 거리의 광교산 시루봉에 오른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멀리 여주, 이천, 서쪽으로는 경기만의 서해 5도, 그리고 남쪽으로는 용인, 평택, 안성, 북으로는 서울의 북한산이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또한 사시사철 삼림이 울창하여, 옛날에는 인근의 5개 부읍 주민들이 땔나무 걱정없이 살았다는 광교산, 그리고 냉이, 씀바귀, 두릅, 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머루, 다래, 버섯, 대추, 감, 약초 등 임산물이 늘 풍부하며, 꿩, 토끼와 같은 짐승도 야생한다나...
광교산은 수원 하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사계절 내내 흘러내리는 물은 관어동 폭포가 있는 계곡을 타고 동서남북으로 흘러가서, 수원, 용인, 안양, 화성 등의 거의 모든 하천을 이루고 있다.
동으로는 동막천과 풍덕천을 이루다가 숯내(탄천)로 합류하고, 서쪽으로는 미룩골과 일림으로 흘러 만석거, 서호등에 머물다가 장지천으로 해서 오목천과 합류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광교저수지에서 머물다가 화홍문을 거쳐 수원을 관통하는 수원천이 되고, 남서쪽 계곡에서 비롯된 물줄기는 이의동 산의실을 지나 원천리천을 이룬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고천으로 해서 안양천과 합류한다고 한다.
능선분기점으로 되돌아와 내리막길로 한차례 뚝 떨어지는 내리막의 바위길이 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울창한 숲길이 한결 시원해 보이고, 안부를 통과하면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은 종달새에 울음소리가 정맥꾼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어서 올라오라는 팔각정이 있는 비루봉을 바라보며 토끼재를 통과한다.
광교산은 많은 고적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명 우성위보, 우성위평, 우평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백제왕 온조가 지금의 광주산성 지역인 하남위례성에 도읍하고 사위 우성위와 딸을 보내어 이 곳에 살게 하였는데, 우성위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도랑을 만들고 보를 막은 것이라고 한다. 온조왕은 딸과 사위를 보기 위해서 이곳에 가끔 찾아왔는데, 이 때문에 온조왕을 위한 행전을 지었으며, 왕이 먹는 우물인 정자산 고정(亭子山古井)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종대봉과 문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고, 창성사를 비롯한 89암자가 고려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광교산에 전하는 고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는, 김준룡 장군의 전승지및 전승비가 있다. 토끼재를 뒤로 가파르게 오르는 정맥길은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바윗길을 따라 오르다가 만나는 전망대 바위, 이어 올라선 팔각정이 있는 비루봉에 선다. 북으로 지나온 광교산, 그리고 이제 마지막 넘어야하는 형제봉이 이제 가깝게 다가와 있다.
조망을 즐기며 제각기 편한 자세로 늘어져 한차례 휴식을 취하는 정맥꾼들, 오늘 쭉 같이한 윤정길씨 그리고 김수남씨와 식물박사 김종범, 마시고 먹고, 그리고 다시 재촉하는 정맥길, 광교저수지와 수원시가지가 정겹다. 한차례 뚝 떨어진다. 긴 내리막 끝에 평탄해지며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양지재를 통과한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붉나무가 반기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서 왼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며 밧줄에 매달리고 다시 전망대 바위를 지나 한차례 올라선 곳이 바위봉인 형제봉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버들치고개로 내려서는 정맥능선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구간인 소실봉으로 이어지는 정맥능선을 찾아보니 아파트 단지로 변해 찾을 길 없다. 답답한 마음이 뿐...
한차례 다리쉼을 한 정맥꾼들은 왼쪽으로 또 다른 봉우리인 형제봉을 눈길만 주고 오른쪽으로 경기대 방향으로 수직에 가까운 바윗길은 내려선다. 그리고 100여m 내려선 곳에서 만나는 박재삼의 시 한편, 정맥은 여기서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팍 꺾으며 내림길이 시작된다. 능선분기점에서 7분 뒤 이정표가 있는 백년정상, 여기서 수원에 거주한다는 50세정도의 여성 등산객은 정맥꾼들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장송과 참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책로로 변한 정맥능선, 백년정상에서 5분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따르던 경기대를 향하던 정맥길이 왼쪽길인 이의동 방향으로 따라야 한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수원시에서 세운 이정표, 친절한 안내자와의 헤어짐...
천년약수 안부를 통과한다. 이어 송전탑을 지나고, 정맥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올라선 곳이 글씨가 없는 삼각점(?)이 있는 270봉이다. 48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또 다른 송전탑으로 지나며 뒤따라온 젊은 군인들의 대열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다.
좌측으로 정맥능선 가까이 산허리를 뚝 잘라버린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선 곳이 버들치고개다. 오늘은 어버이 날, 어머니의 부드러운 품속 같은 광교산을 넘으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