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명국의 행복을 부르는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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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아들 떠난 지 2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픔에 몸부림쳤던 시간이 지나고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하늘로 보낸 아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밟히지만 땅 위에 남은 식구들은 영길이 몫까지 살자고 다짐하며 눈물 대신 웃음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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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 5년 넘게 백혈병으로 투병했던 막내아들과 끝내 이별한 김명국 부부의 쓰린 마음이 바로 그런 경우다. 막둥이 유골을 눈물과 함께 바다에 뿌린 지 벌써 2년을 훌쩍 넘겼지만, 요즘도 길에서 그 또래 남자 아이만 보면 문득 아들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행히 요즘은 건강하게 자라준 큰딸 소슬이 덕분에 웃음을 많이 되찾았다. 슬픔을 딛고 행복한 삶 꾸려가는 세 식구와 먹성 좋은 애완용 돼지 한 마리가 함께 모여 사는 아기자기한 아파트 문을 열어봤다.
결혼 15년 만에 처음 번듯하게 장만한 집
집 안은 화사했다. 꽃무늬 벽지와 컬러풀한 패브릭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마치 신혼부부의 집을 보는 것 같았다. 공간마다 서로 다른 포인트 벽지를 붙이고 딸 방은 예쁜 핑크빛으로 아기자기함을 더했다. 널찍한 거실은 한여름인데도 맞바람이 불어 제법 선선했다. 거실 한쪽 벽은 가족사진 갤러리로 만들었다.
“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어요. 아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게 밝은 인테리어로 꾸몄죠. 15년 가까이 고생하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집을 가졌거든요. 사실 두 아이한테 예쁜 방 하나씩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건 좀 늦었네요. 그래도 딸이랑 아내가 널찍한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돌이켜보면 막내가 떠난 후에도 가족들은 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영길이를 보내고 세 식구에게 남겨진 것은 비단 그리움뿐만이 아니었다. 사랑을 담뿍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부모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던 큰딸의 서운함, 제 잘못으로 아이가 떠난 것 같은 부모의 죄책감은 하루아침에 치유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의 힘겨웠던 투병 생활과는 또 다른 형태의 괴로움이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딸이 많이 힘들었나봐요. 우리가 온통 영길이한테만 정신을 쏟고 있었잖아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는 누나잖아’‘동생은 아프잖아’ 하면서 딸한테는 희생만 강요했던 것 같아요. 동생이 아프니까, 엄마 아빠는 힘드니까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린 아이였는데 말이에요.”
마음속의 상처들은 앞으로 살면서 천천히 치유해야 할 숙제 같은 것. 한창 예민할 나이의 딸과 여린 가슴에 아들을 묻은 아내를 위해 김명국이 가족들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이 아파트였다.
“환경을 바꾸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았어요. 아마 영길이도 우리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랄 거예요.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예쁘게 꾸민 가족들의 새 보금자리가 큰 도움이 됐죠. 둘째는 갔지만 건강한 큰아이가 아직 우리 곁에 있으니까 더 기운 차려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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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알뜰살뜰 살림 잘 하는 남자
김명국과 한 살 연상 아내 박귀자씨 부부는 결혼 후 바로 첫아이 낳고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다. 영길이가 5년 넘게 병마와 싸우는 통에 그동안 집을 예쁘게 꾸미거나 오붓한 가정생활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사글세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한 후 작년까지 전세를 옮겨 다녔다. 예전 집은 거실도 없는 좁은 부엌에 매트리스 하나 깔면 안방이 꽉 차는 곳. 허리띠 졸라가며 저축한 돈으로 작년에 겨우 아파트를 마련해 번듯하게 꾸며놨으니 애착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얼굴 제법 알려진 연기자인데 오랫동안 어렵게 살았다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실 김명국은 15년 넘는 무명 생활을 거치며 잔뼈가 굵어온 배우다. 연극 무대에 설 때는 한 달 내내 공연하고도 겨우 월급 10만원을 챙긴 적도 있었다.
아내도 연극 무대에서 처음 만났다. 김명국이 극단에서 일할 때 박귀자씨는 극단 객원 연기자로 활동하던 배우 선배였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고 결혼을 결심할 무렵, 연극 무대에서 고생하는 막내딸이 못마땅한 마당에 사위까지 연극을 한다니 처가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요즘은 장모님 지갑에 턱 하니 사진이 들어 있을 만큼 사랑받는 사위다. 사극에서 보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집에서는 설거지와 요리 등 못하는 살림이 없는 가정적인 가장인 덕분이다. 살림 꼼꼼하게 챙기는 남편 중에는 성격이 까탈스런 사람도 많다는데 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반찬 2~3가지에 찌개 하나 놓고 소박하게 식탁 차려요. 남편은 맛있는 찌개 하나면 다른 반찬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사람이거든요. 보증금 500만원짜리 집에서 부엌 하나를 세 집이 같이 쓰던 신혼 시절 기억 때문인지 얼마나 알뜰한지 몰라요.” 근사한 보양식으로 건강 챙기는 사람도 많지만 이들 가족의 건강 비결은 규칙적인 세 끼 식사다. 여기에 헛개나무와 오미자, 도라지, 민들레 등 9가지 재료 넣고 끓인 차를 물 대신 먹는다. 영길이 아플 때 대체요법 배우면서 스스로 개발했는데 하루에 2리터 이상씩 마시면 이것저것 챙겨 먹지 않아도 건강관리엔 문제없다. 쉬는 날이면 부부가 함께 자루 들고 지인이 운영하는 과수원에 가서 민들레 따오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먼저 떠난 아들 위해 생명나눔기증본부에서 봉사
1 감각적인 커튼이 돋보이는 주방, 손님 좋아하는 안주인 성격 덕분에 넉넉한 6인용 식탁을 맞췄다. 2 중학생 딸 소슬이 방은 나이에 맞게 사랑스러운 핑크빛으로 꾸몄다. 에어컨 호스의 꽃 장식은 엄마 솜씨다.
아내는 김명국의 건강관리사면서 한편으로는 매니저이기도 하다. 그에게 방송 출연 섭외나 인터뷰 요청을 하려면 무조건 아내를 거쳐야 한다.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해와도, 아내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모두 거절했다.
“내 스케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처가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제일 편해요. 섭외 전화 올 때 돈 얘기 하면 민망한데, 집사람은 ‘김명국씨 얼마는 주셔야 일 하는데…’ 이런 얘기도 잘 하거든요(웃음).”
연극 무대에서 만났고 남편이 배우이다보니 지인들은 가끔 ‘두 사람이 같이 연기 한번 해보라’고 제의한다. 김명국도 내심 아내와 함께 무대에 서는 상상을 해보지만 현장을 오래 떠나 있던 아내는 늘 고개를 젓는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바깥일을 어떻게 하겠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 사실은 아들과의 이별을 경험해보니 딸과 오붓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무대에 함께 설 용기는 없지만 그녀가 꼭 남편과 함께 하는 일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명나눔기증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제대혈 기증 캠페인에 참가하는 것. 아들의 백혈병 투병으로 받았던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덜 겪게 해주고 싶어서다. 소아백혈병 환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부부가 함께 애쓰는 것. 그것은 영길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세 식구는 요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며 편안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놓은 널찍한 집에서 웃음을 찾아가는 가족을 보며, 하늘의 막내아들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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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어컨호스를장식으로 가려주는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