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숙 동시집 『포도송이가 부른다』(아꿈, 2023)를 읽고
서향숙 작가는 명지대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아동문학평론 동시, 새벗문학상 동화로 등단했다.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등 다수 수상. 저서로는 『연못에 놀러온 빗방울』 외 10권의 동시집과 2024년에 역사 동화집 『삼별초의 꿈』을 펴냈다.
보고 느낀 것에 새롭고 따뜻한 생각을 보태서 탄생한 귀한 동시집을 만났다.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시인의 눈에 비친 달과 별, 산과 호수는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 “자연물들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신비스러운 일들도 마음속 동시 나라에 가져왔어요.”라고 밝히고 있다. 시인이 규정한 새롭고 따뜻한 세계에 감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맛보기로 몇 편의 시를 만나보자.
호수 둘레의
물안개는
나무도
돌도
물도
모두 감췄지.
봄 햇살이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냈지.
_ 「보물찾기」 전문 (p17)
시인은 집 근처 조각배 어린이공원에 있는 호수를 걷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호수를 걸으며 동심을 길어 올리는 모습은 천생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안개가 모든 것을 감췄지만, 봄 햇살은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낸다. 어린이들에게도 숨겨진 보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작가가 스스로 봄 햇살이 되어 하나하나 보물들을 찾아 준 어린이들이 착하고 예쁜 모습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달은
망원경
지구 속속들이
살펴보고 있다.
엄마의 텃밭에서
매달려 있는
작은 애호박도
공원 놀이터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가도.
_ 「달」 전문 (p26)
달이 망원경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시인의 이야기를 읽으니 ‘옳다!’라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대한 우주 저편에 동그란 문이 열리면서 달을 통해 지구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참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과 별이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이제, 둥근 보름달을 볼 때면 달의 저편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게 될 것이다.
어깨동무
하고 있는 걸
풀어버리면
큰일이지.
놀이터
정글짐 좀 봐!
어깨동무
하고 있는 걸
풀어버리면
큰일이지.
저기 저
산들 좀 봐!
_ 「어깨동무」 전문 (p29)
어깨동무한 정글짐. 산들의 비밀도 작가는 쉬이 읽어내고 있다. 어깨동무를 풀어버리면 안 되는 것은 또 있다. 우리 착한 어린이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한다. 어깨동무하고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거라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시로 읽힌다.
밤하늘 까만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별들이
바둑을 둔다.
누가 더 반짝이는지
서로 자랑하려고
이쪽에서 반짝
저쪽에서 반짝
시합이 끝나고
바둑돌들을 쏟아내자
다 함께 반짝이며
흐르는 은하수.
_ 「바둑 두기」 전문 (p67)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누가 더 반짝이는지’ 경쟁한다고 말한다. 어디에서건 서열을 정하고, 시합하게 되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빗대어 말한 것은 아닐지. ‘시합을 끝내고 다 함께 반짝이는 은하수’가 더 아름답듯이 어린이들도 서로 어울려 다 함께 살아가자고 말해 주는 따뜻한 시다.
맨 몸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있어.
나뭇잎들을 떨어뜨리고
다음 해에
꽃과 잎에게 줄
색깔들을 고르는 게지.
미리미리 옷 입어보는 게지.
햇빛 옷
달빛 옷
별빛 옷……
걸친 것 봐!
_ 「겨울나무」 전문 (p90)
겨울나무가 ‘미리 옷을 입어보고 있다’라는 생각이 참 새롭다. 여러 가지 옷들을 입어 보느라 긴 겨울도 지루하지 않겠다는 안심되는 생각을 갖게 해 줘서 고마운 시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즐겁게 해 보는 계절. 시인이 어린이들에게도 그것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이젠 겨울나무를 볼 때, 쓸쓸했던 마음 대신 부지런하고 바쁘게 옷을 갈아입는 겨울나무를 생각하며 응원의 마음을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고 규정하는 일이 시인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읽힐 수 있도록 한 지점이 더욱 좋았다.
자연물의 현상에서 어린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린이다워야 하는 생각을 들려주는 동시들이 어린이들에게는 새로움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잊었던 동심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동시로 마음의 눈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귀한 동시집을 주신 시인님 덕분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 시인님도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