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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원 신부(작은형제회,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 거주)
우리 신앙인들에게 삶은 ‘순례의 여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지순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과 같고, 삶의 의미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따라서 성지 순례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서 당신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물까지 전부를 우리들에게 내어 주셨던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나의 삶의 모습을 재조명해 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지 순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아는 것만큼’ 보고 느낄 수 있으며, ‘아는 것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탈출기의 여정을 따라 이집트에서 요르단을 거쳐 성지 이스라엘을 순례하신다면 최소한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과 신약의 4복음서를 통독하시길 권고 합니다.
성지 이스라엘만 순례 하신다면 최소한 4복음서를 통독하고 오시고, 터키와 그리스를 순례 하신다면 신약성경을 통독하시고 떠나시길 권고 합니다.
성경을 모르고 순례를 하는 것은 일반 여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갈 것인가?
시간적인 제약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삶의 우선순위, 중요도가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지(聖地)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장소인 팔레스티나 전역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예수님과 관련한 장소를 ‘거룩한 땅’ 즉, & #39;성지& #39;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리고 차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사도들, 순교자들 그리고 여러 성인들과 관련된 장소까지 거룩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와의 관련성 안에서 관계 맺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를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성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와 공생활의 장소 그리고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예루살렘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둘째: 그 다음에 중요한 성지는 성모님과 사도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장소들입니다. 성모님 성지는 교회가 확증한 성지들이며, 사도들의 성지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장소와 순교지입니다.
셋째: 그 다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계시하고 있는 구약 성경의 장소들일 것입니다. 셋째를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순례하면서 어떤 순례팀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장소들을 도외시 하면서 구약성경의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성경의 장소도 아닌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하곤 합니다.
넷째: 그 다음으로 언급할 수 있는 성지는,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 성녀들의 성지입니다.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성인들의 삶의 장소를 순례하는 것도 신앙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는 예수님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곳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장소의 우선성을 언급하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신약에서 구약성지의 모든 것과 아울러 성모님과 사도들의 성지를 한꺼번에 순례 하려는 태도를 경계하라고 권고하고 싶어서입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순례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
그럼 기간은 얼마나?
장소가 선정이 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기간입니다. 성지 순례는 무엇보다 여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장소에서 성경의 말씀을 읽고 음미하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후다닥 사진 찍고 돌아서는 순례는 순례가 아니라 관광입니다.
많은 욕심을 버리세요. 순례의 시작은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입니다. 여러 장소들을 찍고 다니지 말고 스펀지에 물이 잠기듯 성지의 장소에서 묶고 머무르며 기도 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처음 순례를 계획하시는 분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계산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보통 성지 이스라엘을 4박 5일 기간으로 순례를 합니다. 출애굽 경로를 따라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을 보통 10일 일정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이탈리아를 포함해서 2주일 기간으로 계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굉장히 짧습니다. 오고 가는 시간(비행기)을 빼고 나머지는 이집트에서 시나이산을 거쳐 이스라엘로,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들어오게 되는데 대부분 버스 안에서 시간이 소비됩니다.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에 들어오면 녹초가 될 수도 있겠지요.
출애굽 경로를 따른 성지순례는 대단히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간입니다. 순례자들이 차를 타고 이집트에서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출애굽의 경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을 걸어갔던 & #39;길& #39;입니다. 그 광야는 & #39;머무름& #39;의 장소입니다. & #39;영혼의 쉼터& #39;입니다. 군인들이 행진하듯 힘차게 걸어간 길이 아닙니다.
그 길 안에서 머무르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만났고 또 하느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광야의 여정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 #39;바라보는& #39;(관광) 장소가 아닙니다. 뙤약볕을 걷고 체험해야 하는 체험의 영역에 속한 곳입니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순례를 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짧은 시간이라면 우선순위의 장소를 선택 하시고, 그 다음으로 넉넉한 기간을 갖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만 순례를 하더라도 최소 10일 정도의 기간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중요한 장소에서 머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 함께 머무르자고 권했지만, 이제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다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루카 2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