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백운포 해군작전사령부 기지에 입항한 미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9만7000t급)호. 조지워싱턴호에는 전폭기인 슈퍼호넷 (Fⓒ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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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미군사동맹의 성격은 변화를 겪어 왔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동맹은 더욱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됐고, 한국의 전투력은 미국의 (제3국에 대한) 군사 점령을 지원하게 됐다. 애쉬튼 카터가 미 국방장관에 임명됨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침공이나 폭격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12년 9월 나토와 개별적인 동반자 및 협력프로그램에 서명했는데, 이 때 한국은 완곡하게 표현된 “다국적 평화지원 작전”을 포함하는 나토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협정의 문구들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호주와 나토간에 체결된 협정과 유사할 것으로 보여진다. 호주와 나토간에 체결된 협정은 양자의 동반자관계가 “나토의 작전과 임무에 대한 지원을 향상”시키는 것을 포함하며 “나토의 전략적인 목적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호주 군대는 “모든 있음직한 나토의 임무”를 돕게 될 것이다. 이는 동반자관계에 대한 나토의 정책을 반영한 것인데, 나토가 이끄는 작전과 임무들에 대한 증진된 지원을 전략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나토는 이미 태평양의 세력이다
명목상 서유럽의 방어연맹으로 만들어진 나토는 그러나, 결코 방어를 위해 행동한 적이 없다. 대신 이 동맹은 꾸준히 확장하여 이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영역을 침범해왔고 이제는 도발적인 자세로 러시아의 문 앞에 서서, 자신이 지정한 적(러시아) 주위에 군사적 올가미를 조이고 있는 중이다. 1999년 나토는 유고슬라비아의 모든 도시들을 폭격함으로써 광범위한 죽음과 파괴를 가한 최초의 침략전쟁을 시작했다. 그 후 나토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점령을 지원했고, 이어서 정부를 전복하고 이슬람 민병대들의 무정부적인 혼란을 가져온 리비아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다.
나토와의 협정 이전에도 한국은 미국의 점령을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간에 소규모의 부대들을 보낸바 있다. 2011년에 한국은 5년 동안에 걸쳐 아프간의 정부군과 개발계획에 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들은 나토의 생각에는 충분치 않았다. 나토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나토의 정무ㆍ안보정책담당 사무차장보인 더크 브랭겔만은 “작전을 확대할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 서울의 한국 외교부 관리들을 만났다.
2014년 10월 한국과 나토간의 제7차 정책 협의에서 양측은 그들의 동반자관계를 “강화하고 업그레이드”하기로 동의했다. 이 일이 있기 며칠전 한국의 대표단은 워싱턴에서 미국의 관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당시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우리는 윤병세 외무장관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이러한 국제적 문제들에 관련하여 우리와 긴밀하게 협력을 계속하고 많은 면에서 기여를 높이기를 원한다는 데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양측은 동맹을 세계적 동반자관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했다.
나토 본부의 전략 개입팀에 속한 제프리 레이놀즈와 대서양 위원회의 멤버인 배리 페이블은 공동으로 작성한 글에서 나토가 이미 태평양의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나토의 아시아 개입이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추구함에 따라 “그 지역의 다른 나라가 반발하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일 것이지만, 나토은 그러한 결과에 대해 준비해야하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놀즈와 페이블은 “동맹에게 훨씬 더 위험한 선택은 아시아를 멀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맹은 세계의 떠오르고 있는 중요지역(basin of consequence)의 안보에서 건설적인(constructive) 역할을 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나토의 유고나 리비아에 대한 영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고려한다면, 나토가 아시아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건설적(constructive)”이 아니라 “파괴적(destructive)”이라는 단어로 더 적절히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놀즈와 페이블은 이어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는 나토에게 중요한 기회다”라고 밝혔다. “나토는 지역 동맹이지만, 위상에서는 세계적이며 그 방향은 태평양이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미국은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나토와 유사한 군사동맹으로 재편하기 위해 압력을 가해 왔다. 미국의 합참의장 마틴 뎀시 장군은 “우리는 우리의 동맹국들이 양자 동맹을 넘어 더 큰 다자간 안보 협력의 시대로 향하도록 권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의 한 미국의 군사관리가 인정하듯이 “아무도 이 지역이 가까운 장래에 나토 같은 형태의 안전보장 구조로 이동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은 NO라고 말할 때
아시아에 나토를 확장하거나, 혹은 아시아에서 나토와 유사한 형태를 구축하는 데는 많은 해가 걸릴 것이다. 좀 더 시급한 계획은 나토의 아시아 동반자들이 미국의 공격전쟁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애쉬톤 카터 미 국방장관은 1999년 당시 나토가 유고의 기반시설을 파괴할 때 그의 비전을 밝힌 바 있다. “포스트냉전 시대의 나토의 주요한 전략적, 군사적인 목적은 나토의 영역을 넘어 힘을 투사할 수 있는 군사적으로 강력한 ‘의지의 연합(coalitions of the willings)’이 형성될 수 있는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카터는 나토의 동반자 프로그램이 “당면한 평화 유지라는 초점을 넘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목적은 “동반자들을 준비시켜 나토의 구성원들과 함께 ‘의지의 연합’을 구성하고, 나토의 새로운 임무들에서 모든 범위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반자 프로그램을 통해 “비 나토 회원들”과 “나토 회원국들의 경험이 가능한 한 유사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카터의 관점에서는 나토의 동반자들이 자신들의 개입을 공격 ‘이후’의 지원작전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들은 나토가 다음의 불운한 희생자를 공격할 때 나토와 함께 싸울 전투병력을 보내야만 한다. 앞으로 한국은 과거에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서 한국이 했던 역할을 반복하도록 하는 (미국의) 억압적인 전술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이 제국주의의 도구가 됨으로써 얻을 것은 없다. 한국은 그러한 압력에 저항하여야 한다. 지금은 세계의 민중들이 군사적 광기에 분명하게 NO라고 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