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년,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韓國(한국)을 통치했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게 주려고 하였다. 吏譯(리역)의 전달이 다름과 같음이 있어, 臣幘沾韓(신책첨한)이 분노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이 때 (대방)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는 병사들을 일으켜, 이들을 쳤다. 궁준은 전사하였고, 2개의 군(낙랑과 대방)은 마침내 韓(한)을 멸망시켰다.
*우리가 초짜 시절에는 韓(한)을 마한 전체를 가르키는 걸로 착각하고 그랬었는데, 그게 아니고, 臣幘沾韓(신책첨한)에서 앞부분이 생략된 韓(한)으로 인식하게 되었지요.
臣幘沾韓(신책첨한)이 단독으로 낙랑/대방에게 대들었다가 망하여, 어부지리로 초고왕이 낼름 경기도 북부의 땅을 나눠먹는 걸로..
246년은 고이왕 시절이 아니고, 초고왕 21년이지요.
<백제본기> 고이왕 13년은 246년 국제 관계 때문에 기사를 슬쩍 집어 놓았고,
<백제왕기>에서는 초고왕 246년 기사는 없죠.
70~80년대는 이병도 썰이 워낙 강하다 보니, 신지격한분 썰이 강하다가, 90년대 들어서 신진 학자들이 연구하여, 썰을 바꾼 것이죠.
또한 기리영을 황해도 麒麟山(기린산) 또는 麒麟城(기린성)으로 추정.
대동여지도에도 나올지도 모르죠.
저는 과거에 대동강 상류 쪽에서 낙랑군 산을 하나 찍어서, 추적해 본 적이 있었죠.
신분고국, 백제국이 보이죠.
臣幘沾韓(신책첨한)처럼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1930년대 일본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해요.
통행본 (급고각본 등):
'신지격한분(臣智激韓忿)' ➔ "신지(삼한의 지배자)와 한인들이 격분하여"로 해석.
남송 소흥본 / 백납본 (송본):
'신책첨한분(臣幘沾韓忿)' ➔ "신책첨한이 분노하여"로 해석.
송대 정초의 《통지(通志)》 인용본:
'신분고한분(臣濆沽韓忿)' ➔ "신분고한이 분노하여"로 해석.
*역시, 通志가 대단해요~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 말송보화)는 1954년 발표한 저서 《신라사의 제문제(新羅史の諸問題)》 중 〈신라건국고(新羅建國考)〉 등에서 이 판본 간의 차이(교감기)를 주의 깊게 다루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발간한 《조선사》 편찬 과정의 교감 성과를 이어받아, 송본(소흥본)에 등장하는 '신책첨한(臣幘沾韓)'이라는 해괴한 글자가 사실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신분고국(臣濆沽國)'의 '신분고한(臣濆沽韓)'이 필사 과정에서 잘못 씌어진(오기) 것이라는 해석을 체계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