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되었다. 그 사절단은 고려를 방문하고 고려의 여러 가지 인쇄기술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또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필사본에 '고려왕이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선교사들)을 환대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발견했다는 언론기사도 있다. 적어도 교류는 있었다는 얘기다.
또 금속활자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지만 시사주간지 '타임'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와 직지의 제조법이 유사하다는 기사를 실은적이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진명의 새 장편소설 '직지'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직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개연성이 있는 '합리적 허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가는 "책을 쓰면서 직지의 위대함에 대해 놀라운 것들이 너무 많았고, 직지가 너무 세상에 묻혀 있었구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대로 직지는 너무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구덴베르크가 찍은 '45행 성서'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 故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찾아내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박병선 박사가 글자체를 하나하나 분석해 이 책이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금속활자의 종주국이 됐으며 직지를 발간했던 흥덕사지가 있던 청주는 인쇄문화의 발상지가 됐다.
'직지'의 존재는 동양에서도 변방(邊方)에 위치한 고려가 당시 세계문화의 최선진국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구한말 정작 직지를 눈여겨 본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초대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트로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1907년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가 1911년 드루오 고서 경매장에 내놓은 것을 부유한 보석상이자 고서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단돈 180프랑(지금 돈 65만원)에 낙찰 받았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다른 한국 책 80종은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1943년 앙리 베베르가 숨지자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직지는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금속활자의 발명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것은 지식을 담은 책을 대량생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고,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는 '개인적 지식'이 '공적 지식'의 영역이 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유럽은 우리보다 금속활자를 늦게 개발했지만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정보와 지식이 폭넓게 확산됐다.
구덴베르크를 낳은 프랑크프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은 지금도 유럽 출판의 중심지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부터 재개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매년 가을, 닷새간 펼쳐지는 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출판업자, 에이전트, 서점·도서관 관계자, 작가,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 인쇄업자, 영화 제작자,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공급자 등이 모여든다. 도서전은 전세계 출판사들의 신간 도서가 소개되고 국제적인 저작권의 판매, 협상, 교류가 이뤄진다. 또한 최근 출판 미디어의 동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국제 미디어 시장으로서 기능한다. 한마디로 세계 출판 시장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고 앞으로의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출판계 최대의 축제다.
하지만 금속활자의 산실인 청주는 어떤가. 혁신적인 인쇄문화의 발상지다운 도시인가. 세계인들은 직지의 도시 청주를 얼마나 아는가. 2015년부터 직지의 세계화를 위한 종합 미디어문화 축제로 직지코리아 페스티벌을 열고 있지만 시민들도 모를만큼 존재감이 없다. 금속활자를 낳은 청주시의 역대 시장들은 위대한 직지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마인드와 비전이 있었는가. 직지는 박제화(剝製化) 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김진명은 소설 직지에서 구덴베르크 49행 성서의 뿌리는 흥덕사지 금속활자라는 부각시키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청주시는 직지를 통해 무엇을 찾고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