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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인 송순례 부부, 버지니아 후레데릭스버그
글/윤시내
연꽃과 시인
워싱턴에서 약 40마일 남쪽에 있는 신흥도시 후레데릭스버그 (Fredericksburg)에 살고 있는 변해인, 송순례 부부 댁을 2003년 11월 29일 찾았다. 추수감사절 귀성객으로 길은 복잡한데 교통사고까지 나서 고속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달려 변해인씨 댁에 도착했을 때는 11월의 짧은 해가 진 뒤였다.
육십 중반에 들어선 변해인씨는 축구단의 주장 선수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 키가 크다. 먹물을 흠뻑 묻혀서 굵은 붓으로 힘차게 그린 것 같은 짙은 눈썹, 이마가 환히 드러나도록 뒤로 빗어 넘긴 반백(半白)의 흰머리, 번쩍이는 커다란 눈, 찬바람을 맞으며 뛰어 노는 소년처럼 발갛게 혈색 좋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웃음,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음성 -- 언뜻 보아서는 한국사람이기보다 이태리 포도원 주인이나 남미 계통의 쾌활한 신사를 연상시킨다.
어두운 주차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대뜸, "무청 잡수시죠?"하고 묻더니 트럭 뒤에 실려 있던 상자를 번쩍 들어 우리 차에 옮겼다. 무청이 웬 것이냐고 물으니 사연이 있다고 하며 흙 묻은 무가 들은 상자도 하나 더 우리 차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를 뒤뜰로 데리고 갔다. 나무로 가장자리를 둘러 사각형으로 밭을 만들고 그 위에 비닐 종이를 씌운 텃밭에서 그는 온갖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쑥, 돌미나리, 마늘, 파, 등은 일년 내내 따서 먹고, 중국사람이 준 씨를 뿌렸더니 겨울인데도 싹이 나서 파랗게 자란 배추와 무밭이 있다. 채소밭과 이웃하여 아름드리 통을 20개쯤 땅에 묻어서 만든 연 밭도 있다.
미국에서 황연을 찾은 변해인 선생
변해인씨가 연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미주현대불교 김형근 편집인으로부터 황연(黃蓮)을 구해달라는 청을 받고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것을 구해 뉴욕으로 보내고 나서 연을 기르기에 적당한 통을 사고 뒤뜰의 진흙땅을 손수 파서 통을 묻고 연근을 심었다. 젊은이 힘에도 벅찬 일이었지만 그는 즐겁게 했다. 연꽃이 피면서부터는 새벽녘에 뜰로 나가 해가 떠오르면서 피기 시작하는 연꽃을 관찰하고 그 향내를 맡고 연꽃에 찾아드는 곤충들을 살펴보았다.
개구리 소리를 들었으면, 하고 있던 어느 날 마당에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가까이 가는데도 두꺼비는 도망치지 않았다. "야, 이놈아, 내가 이 집 주인이다!" 하고 호령을 해도 두꺼비는 눈만 꿈벅거렸다. "하, 이놈 봐라, 내가 주인이라는데 꼼짝도 않네." 그는 신기해서 두꺼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두꺼비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마음 속으로 전해지는 소리가 있었다. "이 넓은 세상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어요. 누구든지 와서 살면 주인이지." 두꺼비의 점잖은 책망이었다. 따져보면 그 말이 맞았다. 그는 슬그머니 일어서며, "그래, 내가 주인인 것처럼 너도 주인이니까 우리 사이좋게 같이 살자,"하고 말했다. 그제야 두꺼비는 연통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변해인씨는 생업으로 Mr. D's 라고 하는 음식점을 부인과 함께 경영한다. 생선튀김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밥이 맛있으면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인이게는 밥과도 같은 빵을 맛있는 것을 쓰기 위해 그는 근처에서 굽는 빵을 매일 받아서 쓴다. 추수감사절 전날, 아침에 가게에 갔더니 문 앞에 빵이 배달되어 있었다. 모두 15 다즌이라고 명세서에는 써있는데 세어보니 6 다즌밖에 없었다. 숫자가 틀리게 배달하는 경우가 그 동안 한번도 없었음으로 그는 이상히 여겨 빵집으로 전화를 했다. 분명히 15다즌을 배달했는데 6 다즌 밖에 없다면 어느 놈이 훔쳐간 것이 분명하다고 배달원은 화를 내며 발뺌을 하려들었다. "알았어. 누가 가져갔다면 다행이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죽 가난했으면 남의 빵을 훔쳐갔겠나. 내가 그런 사람을 일부러 찾아서 도와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운데 그 사람이 와서 빵을 가져갔으니 잘된 일이지. 걱정할 것 없네. 15다즌 값을 주면 되니까." 화를 내던 빵 배달부는 미안하다고 하며 도둑 맞은 빵을 다음에 꼭 채워주겠다고 약속했다. 빵이 없어져서 당황하고 속상해하던 부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는 송순례씨가 가게문을 닫고 와서 부지런히 마련한 저녁상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이런 것 보셨어요? 윤 여사 오신다는 전화를 받고 어제 만든건데 한번 잡숴보고 뭘로 만든건지 알아 맞춰 보세요," 하며 접시에 담긴 연한 쑥색 떡을 권한다. 속에 콩이 들은 떡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데 재료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니, 연잎을 가루로 만들어서 쌀가루와 섞어 만든 떡이라고 한다. 손님에게 진귀한 것을 대접하려는 곱고 정성스러운 마음씨를 가진 부인은 자그마한 키에 이목구비가 아기자기하게 곱다. 변해인씨와 1970년에 결혼하여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손이 귀한 집에 태어난 아들은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고 성품이 착해서 주위의 귀여움을 혼자 독차지하며 자랐는데 2001년 암으로 사망했다. 아들의 보내고 나서 변해인씨가 쓴, "부처님의 눈 <푸른 연꽃>"은 미주현대불교 2001년 11월 호에 실려있다.
소년다운 솔직함과 열정과 호기심을 갖고 삶의 현실을 직시하듯이 변해인씨는 죽음에 대한 준비도 게으르지 않다. 부모의 상을 당해서 관을 선택하고 묘지를 마련하고 비석을 세우는 등 여러 문제를 두고 형제들이 의견충돌이 되고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목격한 그는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 관에서부터 묘지까지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해 놓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체의 마찰도 사소한 의견차이도 없이 조용하고 엄숙하게 장례가 진행되는 것을 본 조객들이, 이처럼 평화스러운 장례식을 처음 보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들 부부의 사후에 관해서도 일체 준비를 해두었을뿐 아니라 가죽 묘지 앞에 대리석으로 세울 기념비도 이미 장의사와 계약을 했다. Mother's Love Everlasting (어머니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제목 아래 아들이 세계시인대회에 2등으로 입상한 시, Queen of My Heart (내 마음의 여왕)와 자작시 Mother (어머니)를 영문으로 색일 예정이다.
"여기가 바로 천당이고 극락이에요. 어디 딴 곳, 저 먼 하늘나라에,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구요. 마음먹으면 사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없어요." 그의 검고 번쩍이는 큰 눈동자 속에는 삶이 그에게 가한 치명적인 타격에도 굴복하지 않고 선(善)에 의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려는 그의 노력이 배어있다. 즐겁게 살며 남에게도 즐거움을 나눠주는 삶이란 괴로움의 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쳐서 건너편 언덕에 도달하려는 굳은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 낮에 그는 토마토를 사러 농부들 시장 (Farmer's market)에 갔었다. 바람이 불고 추운 날이라 야채를 팔러 나온 트럭이 주차장에는 딱 한 대였다. 토마토 품질이 별로 좋은 것은 못되지만 추운데 떨고 있는 노인이 불쌍해서 10불을 주고 한 박스를 샀다. 그 노인은 전에도 많이 거래를 했던 분이었다. 500 에이커가 넘는 농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운영을 하지 않고 약간의 현금을 얻기 위해 밭에서 뽑은 야채를 들고 시장으로 오곤 했었다.
가게로 와서 부인에게 노인이 혼자 있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그렇다면 노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바비큐(마늘을 듬뿍 넣고 만들어서 손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기 품목)랑 감자 튀김이랑 레모네이드 음료수를 갖다 주라고 하며 싸주었다. 점심을 들고 다시 가니 노인은 너무 추워서 아예 차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문을 열고 점심 보따리를 주니, "이걸 도대체 누가 주문했지? 나는 안 했는데,"하고 노인은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 갖고 왔으니 아무 걱정 말고 어서 잡수시라,"는 대답을 듣고는 너무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주차장에는 상자가 4-5개 남아있어서 저게 뭐냐고 그가 물으니 무청 (turnip)이라는 것이다. 맙소사! 집집마다 터키가 남아서 돌아가는데 누가 저걸 산다고 추운 날 갖고 나왔을까. 엔간히 돈이 궁한 모양이었다. 한 박스에 10불, 40불을 주고 무청 4 박스를 사버렸다. 가지고 오면서 이걸 다 어떻게 처분하나 고민했는데 우리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옳다! 윤 여사가 오면 주어야지," 했다는 것이다. 우리 차에 실어놓은 무청에 얽힌 사연이었다.
푸짐한 식탁에는 진귀한 술도 있다. 삼,사일이 지나고 나면 후두두둑 떨어지는 연꽃잎이 아까워서 변해인씨는 연꽃잎을 일일이 주어다가 술을 담것다. 향이 좋고 맛이 독특하여 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한 잔 따라주었더니 한잔만 더 달라고 애원했지만 주지 않은 귀한 술이라며 변해인씨는 내 잔에 연꽃술을 따른다. 그는 불교가정에서 자랐는데 결혼과 더불어 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그의 탐구와 정진은 어느 한 종교의 테두리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의 거실 탁자 위에는 관음상과 성모상이 있고 그 앞에는 촛불이 켜있고 향이 타고 있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달마선사 그림 아래 책상에는 연을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구해놓은 책들이 쌓여있다.
예전에는 범종도 있었다고 한다. 종에 새겨진 글로 미루어 목사 벼슬을 한 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종이 절에 있지 않고 그의 집 거실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근처의 친구가 비싼 값을 줄테니 팔라고 하는 것도 거절하고, 이 종을 어디에 기부할가 고민하다가 미주현대불교 사무실로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얘기를 듣더니 아주 고마워하며 즉석에서 찾아오겠다고 나섰다. 얼마 후 종을 가지러 온 사람이 김형근씨였고 그것을 인연으로 서로 알고 자주 찾게 되었다. 종은 절에 있어야 된다는 그의 뜻을 따라 김 형근씨는 종을 꼭 필요한 절에 보냈다고 한다.
연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3 년밖에 안되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깊게 파고 들어가 알기를 원하는 변해인씨는 연에 대해서도 전문가 못지 않다. 지난 해, 서울에서 혜민 스님이 오셨을 때 들은 얘기를 직접 실험해 본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연 봉오리에게 노래를 불러주면 활짝 핀다는 말을 혜민 스님에게서 들은 그는 어느 날 새벽, 작정을 하고 연 봉오리 앞에 앉았다. "자, 내 노래를 한가락 부를 터이니 들어봐라," 하고 말한 다음 목청을 가다듬어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18번은 아리랑.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 아리랑이 들어간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이게 웬일인가. 꼭 다물고 있던 봉오리가 살살 피다가는 아주 활짝 손바닥을 젖힌 듯이 만개하는 것이었다. 혜민 스님 말이 과연 맞는구나! 변해인씨는 무릎을 쳤다.
꽃이 핀 것까지는 좋은데 그 뒤가 좋지 않았다. 연꽃이란 의례 아침 일찍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꽃잎이 오무라지고 다음날 다시 피기를 한 3-4일 하고 지는 것이 보통인데, 아리랑을 듣고 한꺼번에 만개한 꽃은 오후가 되었는데도 오무라들지 않고 계속 피어 있다가 이틀 후에 후두둑 꽃잎이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꽃 모양도 너무 헤벌어져서 연꽃의 단아한 모습이 아니었다. 다시는 연꽃에 노래를 불러주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노래 대신 정성어린 기도가 연꽃을 피운 일도 있다. 동네에 사는 불자 한 분이 변해인씨 댁에 연꽃이 피는 것을 알고 가게문을 열러 나가기 전에 꽃을 보러 들리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들릴 때는 아직 해가 뜨기 전 어둑어둑한 새벽이었음으로 피어있는 연꽃을 볼 수가 없었다. 부인은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면 연꽃 핀 것을 보겠느냐고 변해인씨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 자기 전에 기도를 드리세요. '연꽃아, 네가 널 볼 수 있는 시간은 꼭두새벽 뿐이니 날 위해서 내일 아침에는 제발 한번만 피어다고.'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이튿날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쁨이 듬뿍 배인 목소리였다. "글세 오늘 새벽에 댁에 들렸더니 연꽃이 피었어요."
밤은 깊어서 벌써 열시. 아직 못다한 얘기는 훗날로 미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눠주고 필요한 곳에 어디든지 도움의 손길을 뻗는 변해인씨 내외를 착한 두꺼비, 비둘기, 개구리, 풍뎅이, 그리고 또 뒤뜰에서 자라고 있는 겨울 야채들이 지켜줄 것이다.
2004년1월호
법정(法頂) 스님은 동국역경원 출판 (1988년), 신역(新譯) 화엄경에서 선지식(善知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착한 벗. 덕이 높은 사람. 훌륭한 지도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사람. 가르침을 설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
이러한 넓은 의미로서의 선지식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선한 일을 하며 곤경에 처한 사람의 벗이 되며 밝은 사회와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많이 참고 손해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고 우리의 마음은 깨끗해진다. 우리의 각박한 삶에 잠시나마 여유로움과 지혜로움, 청정함과 감사함을 줄 선지식을 찾아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주변의 선지식을 찾는 일에 독자들의 동참을 간곡히 부탁한다. (이메일 주소는 seenaeyoon@msn.com 이고 한글이나 영어로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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