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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如來正覺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正覺了知一切法이니 無二離二悉平等하며
自性淸淨如虛空하사 我與非我不分別이로다
如海印現衆生身일새 以此說其爲大海인달하야
菩提普印諸心行일새 是故說名爲正覺이로다
譬如世界有成敗나 而於虛空不增減인달하야
一切諸佛出世間이나 菩提一相恒無相이로다
如人化心化作佛에 化與不化性無異인달하야
一切衆生成菩提에 成與不成無增減이로다
佛有三昧名善覺이라 菩提樹下入此定하사
放衆生等無量光하사 開悟群品如蓮敷로다
如三世劫刹衆生의 所有心念及根欲하야
如是數等身皆現일새 是故正覺名無量이로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일체 법을 바르게 깨달아 분명히 아니
둘도 없고 둘을 떠난 것도 없어 모두 평등해
제 성품 청정하기 허공과 같아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하지 않도다.
바다가 도장을 찍듯이 중생의 몸 나타내나니
그러므로 큰 바다라 말을 하듯이
보리가 모든 마음 움직임을 널리 다 나타낼새
그리하여 이름을 바른 깨달음이라 하도다.
비유하면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져도
허공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듯이
일체 모두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시나
보리는 한 모양이며 모양 또한 없도다.
사람이 마음을 변화하여 부처님을 지으나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거나 그 성품 다르지 않듯이
일체 중생이 보리를 이루거니와
이루고 안 이루고 증감이 없도다.
부처님께 삼매가 있어 그 이름 선각(善覺)이라
보리수 아래에서 이 선정에 들고
중생의 수와 같은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여러 중생 깨우치기 연꽃이 피듯 하네.
세 세상 여러 겁의 세계와 중생
그들의 생각이나 근성과 욕망
이와 같이 많은 수효 몸을 나타내니
그러므로 바른 깨달음을 한량없다 하도다.
*
여래정각(如來正覺)의 중송(重頌)
*
이시(爾時)에 :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 보현보살마하살이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다시 이 뜻을 거듭 펴려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기를
*
정각요지일체법(正覺了知一切法)이니 :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하면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에 정각 하나만 더 붙었다. 깨달은 이 모든 법 분명히 아시니
무이이이실평등(無二離二悉平等)하며 : 둘도 없고 여의어서 실평등하여, 이런 것을 우리가 흔히 뭐라 하는가?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생사열반본평등(生死涅槃本平等)’ 그렇게 이야기한다.
자성청정여허공(自性淸淨如虛空)하사 :자성청정여허공하야 이런것은 성정본각의 여실공경(如實空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제성품의 청정함이 허공과 같아서
아여비아불분별(我與非我不分別)이로다 : 아여비아를 불분별한다. 아(我)가 어디 붙고 비아(非我)가 어디 붙는가? 허공에 무슨 잡맛이 있고 짠맛이 있고 단맛이 있는가? 없다.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하지 않는다. 무념이라서 무분별이다.
무연대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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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인현중생신(如海印現衆生身)일새 : 바다에 중생의 몸이 다 나타나듯이, 아까 저 앞에서 했다.
이차설기위대해(以此說其爲大海)인달하야 : 그러므로 큰바다라 말을 하나니
보리보인제심행(菩提普印諸心行)일새 : 보리가 널리 인(印)친다. 모든 심행(心行), 마음 행에 나타난다. 도장 친다, 인친다라고 한다.
시고설명위정각(是故說名爲正覺)이로다 :이러한 까닭으로 설명위정각이다. 그래서 정각이라 한다. 그 정각 속에는 누가 있느냐? 일체 중생이 부처님 안에 다 있다, 이 말이다.
온 세상을 사랑하는 대자대비한 부처님 몸에 한 중생도 빠뜨릴 수 없다. 마치 저 바다에 모든 물상이 다 비치듯이 그것이 제대로 된 깨달음인데, 우리는 분별심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내 마음에 있고, 치고 닦고 보면 그것도 몇 되지 않는다. 나하고 안 친한 사람은 전부 다 남이라.
부처님 입장에는 그렇지 않고 동체(同體)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동체대비(同體大悲)다, 이런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바다는 다 받아들인다고 바다라 한다. 비도 받아들이고 이 강물 저 강물 끝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다다. 바다라 하니까 잘못 받아들여서 제바달다는 들이받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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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세계유성패(譬如世界有成敗)나 : 비유컨대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져도
이어허공불증감(而於虛空不增減)인달하야 : 허공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다. 산이 하나 꺼져도 허공이 늘어나는 법도 없고 산이 하나 생겨도 허공이 더 줄어드는 법도 없다.
제가 QR코드를 만들다 QR코드 모양을 찌그러뜨려 봤다.
이렇게 찌그려 보아도 QR코드 속 내용이 그대로 나왔다.
‘야 이렇게 찌그려 봐도 내 마음은 그대로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늘려 봐도 마음은 그대로 있고 늘어나지도 않고 찌그려 봐도 그대로다.
제가 QR코드로 실험해 봤다.
‘QR코드 작은 것은 좀 자료가 적게 들어가지 않을까?’
‘벽시계는 시간이 크고 시계 작은 거는 시간이 작지 않은가?’
안 속으신다.
크고 작은 것은 사판(事判)의 문제다.
이(理)의 문제에서는 크고 작은 것이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이(理)와 사(事)를 겸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말씀이다.
그 대신에 살펴보면 고래같이 큰 것은 오래 산다. 고양이는 쥐보다 오래 살고, 고양이는 또 호랑이보다 오래 살지 못하고, 나무도 큰 나무는 작은 나무보다 오래 산다. 풀보다도 오래 산다.
그렇게 사(事)를 견주어서 사득이융(事得理融)이다, 이수사변(理隨事變)이다, 하면서 하나하나 화엄의 이치를 가지고 이판사판에 견줘 볼 수 있다.
사람이 악명이 높은 사람도 오래 간다.
부처님처럼 덕명이 높은 분도 오래 가신다.
되게 악명이 높으면 호적에서 파내버린다. 살아 있을 때도 지워버린다. 그 정도 해놓고 진도 조금 더 나가겠다.
세계가 이루어지거나 무너져도 허공은 덜하거나 보탬이 없고
마치
일체제불출세간(一切諸佛出世間)이나 :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거나
보리일체항무상(菩提一相恒無相)이로다 : 보리라고 하는 것은 늘 일상항무상이로다.
부처님께서 천 부처님이 태어나도 보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이 다 소멸하셨다 해도 보리가 더 쪼그라든 것도 없다. 왜 그러냐? 그 일상(一相)은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다.
제가 강의하다 늘 잘 쓰는 말이 ‘본래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인데 거기서 위로를 많이 받는다.
본래 없는 것을 우리는 현전일념(現前一念)이라 하고 이것을 화두일념(話頭一念), 염불일념(念佛一念)이라 한다.
현전일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전의 일념은 과거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을 현전의 일념이라 한다. 그 일념은 시명일념(是名一念)이고 무념(無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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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화심화작불(如人化心化作佛)에 : 사람의 마음을 화하여 부처를 지었으나
화여불화성무이(化與不化性無異)인달하야 : 화하고 화하지 않고 성품이 다르지 않아
일체중생성보리(一切衆生成菩提)에 : 일체중생이 보리를 이루거니와
성여불성무증감(成與不成無增減)이로다 : 이루고 안 이루고 증감이 없네. 무증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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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유삼매명선각(佛有三昧名善覺)이라 : 부처님께 삼매가 있어서 그 이름을 선각이라 하는데 선각은 정각일 것이다. 본각이고 시각이고 시성정각이다.
보리수하입차정(菩提樹下入此定)하사 : 보리수 아래서 이 선정에 드시고는
방중생등무량광(放衆生等無量光)하사 : 한량없는 중생의 수만큼의 방광을 했다. 광명을 놓아서
개오군품여연부(開悟群品如蓮敷)로다 : 모든 중생을 일깨워서 연꽃을 피우듯이.
입법계품의 37번째 개부일체수화주야신(開敷一切樹華主夜神)
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자비를 뜻한다. 27번째는 누구인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관세음보살이다. 17번째는 무염족왕(無厭足王) 일곱 번째는 휴사우바이(休捨優婆夷)인데 전부 자비를 뜻하는 자비엔트리다. 자비엔트리 럭키세븐이다.
이러면 안까먹겠지, 그래도 까먹는다. 욕을 먹은 것은 안 까먹는데 공부는 순식간에 콩나물 시루에 물 빠지듯이 우리가 다 까먹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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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삼세겁찰중생(如三世劫刹衆生)의 : 삼세겁에 여러 겁에 세계와 찰과 중생이 큰 것과 아주 큰찰세계와 조그만 중생이 중생세간, 기세간, 지정각세간
소유심념급근욕(所有心念及根欲)하야 :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근기와 욕망이
여시수등신개현(如是數等身皆現)일새 : 이렇게 많은 등의 몸을 모두가 나타낼새
시고정각명무량(是故正覺名無量)이로다 : 이러한 까닭으로 정각을 무량이라고 한다. 부처님을 무량이라고 한다.
8. 如來出現의 轉法輪
(1) 法輪의 體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의 轉法輪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如來가 以心自在力으로 無起無轉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恒無起故며 以三種轉으로 斷所應斷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離邊見故며 離欲際非際하야 而轉法輪이니 入一切法의 虛空際故며無有言說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不可說故며 究竟寂滅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涅槃性故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세 가지 굴림으로써 끊을 것을 응당 끊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법이 치우친 소견[邊見]을 떠났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욕심의 경계와 경계 아닌 것을 떠나서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법의 공한 경계에 들어간 연고니라. 말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끝까지 적멸하게 법륜을 굴리나니, 일체 법이 열반의 성품임을 아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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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출현(如來出現)의 전법륜(轉法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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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法輪)의 체성(體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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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의 체성이라. 법륜의 그 바탕, 본체의 성질이 어떤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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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운하지여래응정등각(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의 : 마땅히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부처님의
전법륜(轉法輪)고 : 전법륜 부처님의 법륜 굴리시는 것은 어떠냐? 답은 무엇인가? 굴리신 바가 없다.
당신의 입장에서 굴리신 것이 아니고, 내 주의 주장을 해서 ‘나를 따라 오라’ 이런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사람한테 딱 맞는 걸 갖다가 굴려주되 굴린 바가 없다.
‘그 정도 밖에 이해 못하니까 그 정도만 굴려 주겠다’
이렇게 컨닝해 놓고 넘어가는 것이 좀 수월하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應如是知)니라 : 응당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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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如來)가 : 부처님께서는
이심자재력(以心自在力)으로 : 마음이 자유자재하다. 자유자재한 힘으로 완전 법력으로써
무기무전(無起無轉)하야 : 일어남도 없고 무생무멸이다.
출발점도 없고 중간에 전개되는 과정도 없다. 무기 무전 하야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니. 이럴 때 기분이 좋다. ‘이럴 것이다’ 해놓고 경전을 딱 읽었을 때 그 내용이 딱 맞아떨어지면 아주 상쾌하다. 그러면 거의 안 까먹어진다. 가슴에 팍 문신처럼 새겨진다. 그다음 구절은 줄을 쭉 긋겠다.
지일체법(知一切法)의 : 지일체법의
항무기고(恒無起故)며 : 항무기고라.
일체법이 항상 일어난 바가 없다. 불생불멸인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고 하셨구나’ 부처님께서 하도 말을 빨리 하셔서 빨리어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닌데요?’이런 사람이 있다. 그래 그분한테 또 말씀드린다면 ‘우이독경이라고 압니까?’‘모릅니다.’‘그거는 소 두 마리가 경 읽는 것을 우이독경이라 한다’ 저보고 참 무식한 강사가 강의한다고, 무슨 뜻인지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은 더 무식하다.
오늘 날이 좀 서늘하지 않는가? 이럴 때는 제가 말씀드릴 것은 중구난방이다. 중 아홉 명이 모이면 뜨겁다. 중구난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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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종전(以三種轉)으로 : 세 가지 굴림으로써
단소응단(斷所應斷)하야 : 끊을 것을 끊고 단소응단이라. 응당히 끊어야 될 바를 끊고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지일체법(知一切法)의 : 일체법이
이변견고(離邊見故)며 : 아주 치우진 소견을 여읜 연고이니라. 치우친 소견에는 단견, 상견,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이런 것이 있지 않는가? 이 변견을 여읜 연고이니라. 그러니까 부처님은 중도설법이다. 중도설법은 설법한 바가 없다 이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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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욕제비제(離欲際非際)하야 : 욕심의 경계나, 시간이나 공간의 경계를 제(際)라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국제라고 하고 시간을 시제라고 한다. 과거시제, 현재시제, 현재제, 미래제 하듯이 공간도 그렇다. 차제, 피제, 이쪽, 저쪽이라 한다.
욕심의 경계와 경계 아닌 것, 비제를 여의고서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입일체법(入一切法)의 : 입(入)은 증득해서 확실히 깨달아 들어간다는 뜻이다. 어떻게 들어가는가? 일체법이
허공제고(虛空際故)며 : 허공제라. 거기에 줄 긋겠다.
‘일체법이 허공제라’
허공제가 무엇인가?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런 것이다.
요달삼세실공적(了達三世悉空寂)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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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언설(無有言說)하야 : 말이 없이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지일체법(知一切法)의 : 지일체법이, 아까 승혜보살장(勝慧菩薩章)의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를 참고해 보시라고 말씀드렸었다. 자성이 없다.
그리고 야마천궁게찬품의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범행품 제일 밑에 ‘지일체법(知一切法) 즉심자성(卽心自性)성취혜신(成就慧身)불유타오(不由他悟)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남을 인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알아차리는 것이다. 망상이라는 것은 다른 데서 훈습되는 것도 있지만 분별자심이다, 이렇게 했다.
모든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불가설고(不可說故)며 :불가설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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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적멸(究竟寂滅)하야 : 끝까지 적멸하게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지일체법(知一切法)의: 모든 법이
열반성고(涅槃性故)니라 : 열반의 성품임을 아는 연고니라.
(2) 法輪의 相用
以一切文字와 一切言語로 而轉法輪이니 如來音聲이 無處不至故며知聲如響하야 而轉法輪이니 了於諸法眞實性故며於一音中에 出一切音하야 而轉法輪이니 畢竟無主故며無遺無盡하야 而轉法輪이니 內外無着故니라
“온갖 글자와 온갖 말로써 법륜을 굴리나니,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연고이니라. 소리가 메아리와 같은 줄을 알고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깨달아 아는 연고이니라. 하나의 음성 가운데 일체의 음성을 내어서 법륜을 굴리나니, 필경에 주체가 없는 연고이니라. 남김도 없고 다함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안과 밖에 집착이 없는 연고이니라.”
*
법륜(法輪)의 상용(相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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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의 모양과 작용, 법륜을 생멸로 따져보자, 어떻게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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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체문자(以一切文字)와 : 일체 문자와
일체언어(一切言語)로 : 일체 언어, 문자와 언어로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기는 한다마는 그러나 여래음성(如來音聲)이 : 여래의 음성이
무처부지고(無處不至故)며 : 무처부지고며, 여래의 음성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는 연고이다. 이 생멸로 따졌을 때
*
지성여향(知聲如響)하야 : 소리가 메아리인 줄 알고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려야 된다
요어제법진실성고(了於諸法眞實性故)며 :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아는 까닭이며,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은 무엇인가?
요지일체법 진실한 성품은 자성이 무소유다.
*
어일음중(於一音中)에 : 한 음성에서
출일체음(出一切音)하야 : 일체 음성을 내어서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필경무주고(畢竟無主故)며 : 필경에, 구경에 주제가 없는 연고이니라. 계곡에서 ‘아’ 하면 ‘아’ 하고 울리는데, 대답하는 누군가가 있는가 하면, 계곡에는 아무도 없다.
금강경에 그 구절이 나온다.
*
무유무진(無遺無盡)하야 : 남김도 없고 다함도 없다. 원효스님 기신론 서문에 보면 무유무진이라고, 이 본성에 대해서 자세히 나온다.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 : 법륜을 굴리나니
내외무착고(內外無着故)니라 : 안도 밖도 집착이 없는 연고이니라.
(3) 體性과 相用의 譬喩
佛子야 譬如一切文字語言이 盡未來劫토록 說不可盡인달하야 佛轉法輪도 亦復如是하야 一切文字로 安立顯示가 無有休息하며 無有窮盡이니라 佛子야 如來法輪이 悉入一切語言文字호대 而無所住니 譬如書字가 普入一切事와 一切語와 一切算數와 一切世間出世間處호대 而無所住인달하야 如來音聲도 亦復如是하야 普入一切處와 一切衆生과 一切法과 一切業과 一切報中호대 而無所住하야 一切衆生의 種種語言이 皆悉不離如來法輪이니 何以故오 言音實相이 卽法輪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如來轉法輪에 應如是知니라
“불자여, 비유컨대 모든 글자와 말을 오는 겁이 끝나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부처님이 법륜을 굴리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글자로 잘 정돈하여 나타내기를 쉬지 아니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불자여, 여래의 법륜이 모든 말과 문자에 다 들어갔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나니, 비유하면 마치 글자가 모든 일과 모든 말과 모든 산수(算數)와 모든 세간과 출세간으로 널리 들어가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여래의 음성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처소와 모든 중생과 모든 법과 모든 업과 모든 과보 가운데 두루 들어가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느니라. 일체 중생의 갖가지 말이 다 여래의 법륜을 떠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말과 음성의 실상이 곧 법륜인 연고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법륜 굴리는 것을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
체성(體性)과 상용(相用)의 비유(譬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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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체문자어언(譬如一切文字語言)이 : 비유컨대 모든 글자와 말을
진미래겁(盡未來劫)토록 : 오는 겁이 다하도록
설불가진(說不可盡)인달하야 : 말하여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불전법륜(佛轉法輪)도 :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심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이와 같아서
일체문자(一切文字)로 : 일체문자로
안립현시(安立顯示)가 : 잘 정돈하여 안립해서, 잘 세워서 제시하는 것, 나타내는 것이
무유휴식(無有休息)하며 : 끝없이 나타내더라도
무유궁진(無有窮盡)이니라 : 다 할 수 없느니라. 허공을 지울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차라리 저 쏟아지는 빗줄기는 헤아릴 수가 있지만 허공의 넓이는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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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법륜(如來法輪)이 : 여래의 법륜이
실입일체어언문자(悉入一切語言文字)호대 : 모든 말과 글자에 다 들어갔지만
이무소주(而無所住)니 : 머무는 데가 없다. 이무소주니
비여서자(譬如書字)가 : 비유하건대 글자가
보입일체사(普入一切事)와 : 보입일체사와
일체어(一切語)와 : 일체어와
일체산수(一切算數)와 : 일체산수와, 모든 일과 모든 말과 모든 산수와
일체세간출세간처(一切世間出世間處)호대 :일체 세간과 출세간으로 널리 들어가지만 모든 일과 모든 말과 모든 계산 모든 세간 잘난 곳 못난 곳에 다 들어가지만 글자가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무소주(而無所住)인달하야 : 이무소주라, 글자에는 뜻이 있지만 글자는 뜻이 아니다.
*
여래음성(如來音聲)도 : 여래의 음성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아서
보입일체처(普入一切處)와 : 보입일체처와
일체중생(一切衆生)과 : 일체처와 일체중생과
일체법(一切法)과 : 일체법과
일체업(一切業)과 : 일체업과
일체보중(一切報中)호대 :일체과보 가운데에
이무소주(而無所住)하야 : 이무소주라. 두루 들어가지만 그 어디에도 머무르는 데가 없다. 그런 줄을 알고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
*
일체중생(一切衆生)의 : 일체중생의
종종어언(種種語言)이 : 종종어언이,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일본말 한국말 어릴 때 쓰는 말, 사투리 서울말 다 있지만
개실불리여래법륜(皆悉不離如來法輪)이니 : 다 여래의 법륜을 떠나지 않았으니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언음실상(言音實相)이 :언음실상이
즉법륜고(卽法輪故)니라 : 즉 법륜인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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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여래전법륜(於如來轉法輪)에 : 법륜을 굴리는 것을
응여시지(應如是知)니라 : 응당히 이와 같이 알아야 된다.
(4) 如來法輪의 原因
復次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欲知如來所轉法輪인댄 應知如來法輪의 所出生處니 何等이 爲如來法輪所出生處오 佛子야 如來가 隨一切衆生의 心行欲樂이 無量差別하사 出若干音聲하야 而轉法輪이니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이 有三昧하니 名究竟無礙無畏라 入此三昧已하야는 於成正覺한 一一身과 一一口에 各出一切衆生數等言音이어든 一一音中에 衆音具足하사 各各差別하야 而轉法輪하야 令一切衆生으로 皆生歡喜하나니라 能如是知轉法輪者는 當知此人이 則爲隨順一切佛法이요 不如是知면 則非隨順이니라 佛子야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佛轉法輪하야 普入無量衆生界故니라
“또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여래가 굴리는 법륜을 알려거든 마땅히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을 알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인가. 불자여, 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행과 욕망이 한량없이 차별함을 따라서 여러 가지 음성을 내어 법륜을 굴리느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이 삼매가 있으니 이름이 ‘끝까지 걸림 없고 두려움 없음’이니라. 이 삼매에 들고 나서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낱낱 몸과 낱낱 입에서 각각 일체 중생의 수효와 같은 음성을 내고, 낱낱 음성에서 여러 가지 음성이 구족하여 각각 차별한 것으로 법륜을 굴리어서 일체중생들을 모두 기쁘게 하느니라.
능히 이와 같이 법륜을 굴리는 것을 알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순종함이요, 이와 같이 알지 않는 이는 곧 순종하지 아니함이니라.
불자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부처님의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중생세계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
여래법륜(如來法輪)의 원인(原因)
*
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욕지여래소전법륜(欲知如來所轉法輪)인댄 : 여래가 굴리는 법륜을 욕지(欲知) 알고자 하거든, 욕(欲)자는 조동사로 알 지(知)자 본동사를 받쳐준다. 여래의 굴리는 바 법륜을 알고 싶을진대
응지여래법륜(應知如來法輪)의 :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법륜의, 부처님의 법륜이
소출생처(所出生處)니 : 생긴 곳을 알아야 하는 것이니.
‘어디서 부처님의 법륜이 나옵니까?’
나오기는 뭘 나오는가?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여래법륜소출생처(爲如來法輪所出生處)오 :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인가? 중생이 있으면 당연히 중생을 따라서 설할 것이다. 이제 감이 싹싹 잡히지 않는가?
제가 강의하기는 뭘 하는가? 사람 있으니까 강의해야지.
*
불자(佛子)야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는
수일체중생(隨一切衆生)의 : 모든 중생의 무엇을 따라서?
심행욕락(心行欲樂)이 : 심행의 욕락이
무량차별(無量差別)하사 : 무량차별이라. 독한 놈도 있고 선한 놈도 있고 아주 지저분한 사람도 있고 깨끗한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 형편에 맞춰서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나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로다, 그래서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이로다. 마음과 행과 욕망이 한량없이 차별함을 따라서
출약간음성(出若干音聲)하야 : 가지가지 약간종종심(若干種種心)이라고 금강경에 나온다. 여러 가지 음성을 내어서
이전법륜(而轉法輪)이니라 : 이전법륜이니라.
여러 가지 음성을 내는 것은 중생 눈높이에 맞춰서 낼 뿐이지 부처님이 음성을 낸 것은 아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님 49재 한 번만 막재만 지내면 안 될까요?”
“아이고 뭐 바쁜데 막재만 지내세요.”
“스님 49재 일곱 번 다 지내야 되지요?”
“그럼요. 원칙대로 해야지.”
“스님 초재 3재 5재 7재 네 번만 지내도 되지요?”
“아이고 그렇게 하세요.”
“스님 잿날이 다른 일하고 겹쳐서 일요일 날 하면 안 될까요?”
“그래 하면 돼요.”
제가 대답하는 건 아니고 ‘예 그래 하면 됩니다’‘예 그래 하면 됩니다.’‘예 그래 하면 됩니다’가 저의 대답이다.
부처님의 법문도 ‘예 그래 하면 됩니다’이다.
중생이 원하는 대로 ‘초재만 지내면 되지요?’‘예 그래하면 됩니다.’‘막재만 지낼까요?’‘예 그래 하면 됩니다.’
그러면 스님이 한 번 지내도 된다 했다, 세 번 지내도 된다 했다, 자기들끼리 싸운다.
어느 날부터 제가 깨달았다.
학인들하고 하도 오래 살다 보니까 처음에 겁을 준다.
‘열심히 글을 읽어야 돼’ 여기 오신 두 분도 아마 자기들끼리 일곱 명인데, 몇 명 되지도 않으면서 ‘이제 죽었다’ 이제까지 공부 안 하고 편하게 살았는데 ‘우와 독한 강사 왔다. 이제 죽었다’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지내보니 안 읽어도 뭐라 안 하거든. 그러다 또 죽는 수가 있다.
“열심히 하세요.”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이 : 여래 응 정등각이
유삼매(有三昧)하니 : 삼매가 있으니
명구경무애무외(名究竟無礙無畏)라 : 이름이 무엇인가?
구경무애무외라.
이 이름은 여래출현품 저 앞에, 보현보살이 부처님한테 광명을 받을 때 나왔다. 그 광명이름이 무애무외대광명(無礙無畏大光明)이었다.
하나의 광명은 미간에서 방광한 여래출현광명(如來出現光明)이고 또 하나는 입에서 방광한 무애무외대광명(無礙無畏大光明)이었다.
여래 응 정등각이 삼매가 있으니 그 이름이 끝까지 걸림이 없고 두려움이 없음이라.
입차삼매이(入此三昧已)하야는 : 이 삼매에 들어가서는
어성정각(於成正覺)한 : 바른 깨달음을 이룬
일일신(一一身)과 : 하나하나의 낱낱 몸과
일일구(一一口)에 : 일일의 입과
각출일체중생수등언음(各出一切衆生數等言音)이어든 : 온갖 중생의 수와 같은 음성을 내고
일일음중(一一音中)에 : 일일 음성 중에
중음구족(衆音具足)하사 :중음구족하여, 선구천녀(善口天女)라고 저 앞에 있었다. 여러 가지 음성이 구족하여
각각차별(各各差別)하야 : 각각 차별한다. 소나무가 있으면 그 솔잎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같은 이파리가 하나도 없다. 방향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탄력도 다르고 해마다 다르다.
이전법륜(而轉法輪)하야 :이전법륜 하여 법륜을 굴린다.
소나무 한 그루가 그만큼 다른데 모든 산의 소나무가 이파리가 같은 것은 더더욱 없다.
사람도 모든 업이 차별된다. 그런 것을 알고부터는 ‘아 나하고 차이가 나는구나. 그럼 이해해야 되겠다’ 이 생각이 든다.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느냐?
개생환희(皆生歡喜)하나니라 : 모두 기쁘게 하느니라.
*
능여시지전법륜자(能如是知轉法輪者)는 : 응당히 이와 같이 알고 법륜을 굴리는 사람은
당지차인(當知此人)이 :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이
즉위수순일체불법(則爲隨順一切佛法)이요 : 일체 불법에 수순하는 것이 된다.
불여시지(不如是知)면 : 이와 같이 알지 못하고, 굳이 자기 고집대로 남을 갖다가 ‘이렇게 해야 된다’고 빡빡 우기면 이 사람은
즉비수순(則非隨順)이니라 : 순종하지 아니한다. 수순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라밀행이라고 한다. 깨닫는 것은 득입이라고 한다. 증득해서 들어간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제보살마하살은
응여시지불전법륜(應如是知佛轉法輪)하야 :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부처님의 법륜을 굴려서
보입무량중생계고(普入無量衆生界故)니라 : 널리 무량한 중생계에 널리 들어간다.
(5) 如來法輪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如來法輪無所轉하야 三世無起亦無得하니
譬如文字無盡時하야 十力法輪亦如是로다
如字普入而無至하야 正覺法輪亦復然이라
入諸言音無所入하야 能令衆生悉歡喜로다
佛有三昧名究竟이라 入此定已乃說法호대
一切衆生無有邊에 普出其音令悟解로다
一一音中復更演 無量言音各差別호대
於世自在無分別하야 隨其欲樂普使聞이로다
文字不從內外出이며 亦不失壞無積聚로대
而爲衆生轉法輪하니 如是自在甚奇特이로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여래의 법륜은 굴리는 바가 없으며
세 세상에 일어남도 없고 얻음도 없나니
비유하면 글자들이 다할 때가 없음과 같이
열 가지 힘 법륜도 그와 같도다.
글자가 들어가도 간 데 없듯이
바른 깨달음의 법륜도 그와 같아서
모든 말에 들어가도 든 데 없으나
중생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도다.
부처님께 삼매가 있어 이름이 구경(究竟)이라
선정에 들어가서 법을 설하여
가없고 그지없는 일체 중생에게
그 음성 널리 내어 깨닫게 하도다.
낱낱 음성 가운데 각각 차별한
한량없는 말들을 다시 또 연설하지만
세상에 자재하신 이 분별없어서
중생들 욕망 따라 널리 듣게 하도다.
문자는 안팎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무너지고 쌓이지도 아니하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법륜 굴리니
이와 같이 자재함이 매우 기특하도다.
*
여래법륜(如來法輪)의 중송(重頌)
*
이시(爾時)에 : 이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 보현보살마하살이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시려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을 말씀하시기를
*
여래법륜무소전(如來法輪無所轉)하야 :여래의 법륜은 굴리는 바가 없었다. 부처님은 굴리는 바가 없었고 중생이 와서 한 바퀴씩 굴리고 갔다, 이말이다.
삼세무기역무득(三世無起亦無得)하니 : 과거 현재 미래가 일어난 바가 없고 역무득이라. 이것은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득 미래심불가득이라고 몇 번씩 했다
비여문자무진시(譬如文字無盡時)하야 : 비유컨대 문자도 다 쓸 수 있을 때가 없다. 중생의 숫자만큼 계속 써야 되고, 글자가 계속 시대를 바꿔가면서 계속 알아먹도록 써야 된다.
십력법륜역여시(十力法輪亦如是)로다 : 부처님의 힘이, 십력이 부처님의 힘이다, 법륜을 굴리시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의 문자가 한문을 이해할 사람은 한문으로 쓰지만 한문은 화엄경이 아니고, 한글로 하는 사람은 한글로 쓰지만 한글은 화엄경이 아니다. 영어로 화엄경을 쓰지만 영어도 화엄경이 아니다.
문자는 화엄경이 아니나 희한하게도 거기에 다 뜻이 묻어간다.
*
여자보입이무지(如字普入而無至)하야 : 글자가 온 세상에 다들어가도 다 이른 데가 없듯이
정각법륜역부연(正覺法輪亦復然)이라 : 부처님의 법륜 굴리심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입제언음무소입(入諸言音無所入)하야 : 모든 말 속에 다 있지만 그러나 그 말 속에 들어간 바가 없나니
능령중생실환희(能令衆生悉歡喜)로다 :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려고 그렇게 했을 뿐이지 부처님이 실제로 간 바는 없다.
저 뒤에 가면 비유가 이렇게 나온다.
‘저 하늘에 태양이 비추면 태양이 그릇그릇마다 연못 연못마다 태양이 다 가지만 태양은 무거무래라 그 연못에 한 번도 간 바가 없다.’
*
불유삼매명구경(佛有三昧名究竟)이라 : 부처님께 삼매가 있으니 이름이 구경이라고 하는데
입차정이내설법(入此定已乃說法)호대 : 그 삼매에 들어서 이에 설법을 하시되, 삼매에 들고 입정수가(入定授加) 가피를 입어서. 반드시 삼매에서 깨어 나와서는, 입정을 마치고는 설법을 하게 되어 있다.
일체중생무유변(一切衆生無有邊)에: 일체 중생이 그지없거늘, 중생이 한도 끝도 없다. 무량 무변한데 무유변한데
보출기음영오해(普出其音令悟解)로다 : 그 음성을 나타내어서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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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음중부갱연(一一音中復更演) : 낱낱의 음성 가운데 다시 또 그 각각의
무량언음각차별(無量言音各差別)호대 : 차별한 무량한 언음에 각 차별이 있는데 한량없는 말들을 다시 연설하는데
어세자재무분별(於世自在無分別)하야 : 세상의 생멸법에 자유 자재해서 분별심이 없으나
수기욕락보사문(隨其欲樂普使聞)이로다 : 분별심이 없지만, 중생이 한 번 제사 지내고 싶으냐, 일곱 번 제사 지내고 싶으냐, 그 욕망을 따라 다 맞춰준다. 보사문이로다. 욕망에 따라서 다 듣게 하나니
*
문자부종내외출(文字不從內外出)이며 : 글자는 안팎에서 나지도 않으며
역부실괴무적취(亦不失壞無積聚)로대 : 쌓이고 무너지고 쌓이지도 않지만 그러나
이위중생전법륜(而爲衆生轉法輪)하니 : 중생을 위해서 한량없이 법문을 설한다.
여시자재심기특(如是自在甚奇特)이로다 : 이와 같이 자유 자재함이 매우 기특하다.
재심기특(在甚奇特)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면, 세계최고금속활자 직지에 보면 제일 뒤에 심능기특(甚能奇特)이로다, 하는 대목이 하나 나온다.
9. 如來出現의 涅槃
(1) 涅槃의 體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의 般涅槃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欲知如來大涅槃者인댄 當須了知根本自性이니 如眞如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實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法界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虛空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法性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離欲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無相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我性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一切法性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며 如眞如際涅槃하야 如來涅槃도 亦如是하니 何以故오 涅槃이 無生無出故니 若法이 無生無出인댄 則無有滅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큰 열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근본자성을 알아야 하느니라.
진여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실제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법계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니라.
허공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법성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욕심의 경계를 떠난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니라.
모양 없는 경계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나의 성품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모든 법의 성품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니라.
진여의 열반과 같이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니, 왜냐하면 열반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벗어나는 일도 없는 연고이니라. 만일 법이 생겨남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면 곧 멸함이 없으리라.”
*
여래출현(如來出現)의 열반(涅槃)
*
열반(涅槃)의 체성(體性)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운하지여래응정등각(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의 : 응당히 이와 같이 알아야 된다. 여래 응 정등각의
반열반(般涅槃)고 : 반열반을,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열반에 드시는 것을 알아야 하는가? 반열반할 때 반(般)은 들어가다, 내지는 퍼펙트라는 뜻이다.
반열반은 구경니르바나다. 구경열반반야심경이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반열반이다. 아주 완벽한 열반은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무여열반을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무여열반에 들어가는 것, 열반에 들어가는 걸 한문으로 번역하면 뭐라 하는가? 입적(入寂), 원적(圓寂)이라고 한다.
그때 입(入)에 해당하고 원만한 데 해당하는 글자가 앞의 반(般)자다. 반열반, 구경이라는 뜻이다.
대반열반경, 구경반열반경, 반니원경 이런 것이 있잖은가.
그것이 그 뜻이다. ‘열반에 들어가다’ 이렇게 보면 되겠다.
열반에 드는 것을 알아야 하느냐?
앞에는 부처님의 정각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부처님의 법륜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부처님의 열반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부처님께서 탄생하시고 도를 이루시고 설법을 하시고 열반에 드시고 이런 것이 여래출현 현상에서 나타난 일들이지 않은가? 그런 것을 쭉 설명해 놓았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욕지여래대열반자(欲知如來大涅槃者)인댄 : 만약에 여래의 대열반 큰 열반을 알고자 하자면
당수요지근본자성(當須了知根本自性)이니: 마땅히 모름지기 요지해야 된다. 무엇을 요지해야 하는가? 근본자성을 알아야 된다. 근본자성은 어떻다고 했는가? 무자성이다. 그러니까 열반도 당연히 무열반이다. 안 그렇겠는가?
열반이고 정각이고 전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자성이다.
자성이 본래 무성인데 그것을 야무지게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깨달았다고 자꾸 헛소리를 한다.
깨는 제가 달아놨다. 깨 달아놨으니까 와서 깨치고 싶으면 깨를 한 번씩 툭툭 치고 가시면 된다. 샌드백처럼.
*
여진여열반(如眞如涅槃)하야 : 진여의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그러하고
여실제열반(如實際涅槃)하야 : 실제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 그러하다. 이 실제라고 하는 것은 십회향품에서 배워 아시겠지만 예를 들어서 삼처회향이라고 할 때,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이라고 하지 않는가.
중생이나 보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은 유상, 수상, 모양이 있는 생멸의 회향이고, 실제회향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離相) 모양을 떠난 회향이다. 그것을 실제회향이라고 하고 오위백법(五位百法) 중에서 허공무위, 진여무위, 부동무위, 택멸무위, 비택멸무위 하고 따지는 것이 있지 않은가.
여기의 열반 자체를 ‘허공이다, 진여다, 택멸이다, 비택멸이다, 부동이다’ 라고 한다는 것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상식을 약간 알고 있으면 이 내용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실제라고 하는 것은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 바로 실제다.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한다.
치문에서 ‘실제이지(實際理地)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나 불사문중(佛事門中)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다’ 실제 진리의 땅에서는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 허공청정이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본다.
진여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혓바닥을 가지고 아무리 낼름거려봤자 허공의 맛을 못보는 것이 여기 지금 다 써 놓은 것이다.
실제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다.
여법계열반(如法界涅槃)하야 :법계 열반처럼 법계도 전부다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무자성이다.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응관법계성하라 일체유심조다’라고 나왔었지 않은가. 법계의 열반과 같아서
여래열반(如來涅槃)도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한 그러하고
*
여허공열반(如虛空涅槃)하야 : 허공의 열반과 같아서
여래열반(如來涅槃)도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한 그러하고
여법성열반(如法性涅槃)하야 :법성의 열반과 같아서
여래열반(如來涅槃)도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한 그러하다.
본래 없다는 이야기다.
여리욕제열반(如離欲際涅槃)하야 :욕심의 경계를 여읜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한 그러하고
*
여무상제열반(如無相際涅槃)하야 : 모양이 없는 경계의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또한 그러하고
여아성제열반(如我性際涅槃)하야 : 나의 성품이 본래 없다.
나의 성품의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 그렇게 이해하고
여일체법성제열반(如一切法性際涅槃)하야 :일체 법의 성품의 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며 :그러하고
*
여진여제열반(如眞如際涅槃)하야 : 진여제열반처럼
여래열반(如來涅槃)도 : 여래의 열반도
역여시(亦如是)하니 : 또한 이러하니
하이고(何以故)오 :어떠한 까닭인가. 다음 대목을 줄을 긋겠다.
열반(涅槃)이 :열반이
무생무출고(無生無出故)니 : 무생무출고라.
열반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무생이 열반이다. 정각이 무생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극락을, 무념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라. 불생불멸이 바로 본심이고 열반의 세계다.
약법(若法)이 : 만약에 법이
무생무출(無生無出)인댄 : 무생무출, 출생함이 없다면
즉무유멸(則無有滅)이니라 : 즉무유멸이라.
무생이면 무멸이다.
무생무멸이 계속 반복돼서 나온다.
무생이면 무멸이요 무멸이면 무진이요 무진이면 무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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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7 27 37 자비
제
시제
미래제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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