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AIL70회 3/18-3/21 북경3박4일 소감 및 결산보고]
1970년2월20일 전수부3기를 졸업한 인연으로 만나서 40년이 흐른 2010년3월18일-3월21일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 22명은 한마음일심동체로 북경관광을 감동을 느끼며 무사히 추억을 남기고 돌아왔다고 자부드리고 싶읍니다.
<북경관광 2일차 뻐스속 동영상 기록>
**===가운데 ▶를 클릭하여 동영상 감상하세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로만 듣던 중국북경을 직접 체험하고 온 22명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북경여행이 일생의 추억에 남았으며 즐거움을 느끼고 왔다니 감개무량합니다.


북경여행 과정 중 미숙한 부분은 초석의 다지는 계기로 삼고 제2차 해외여행을 8-11월 추진하고자 합니다.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여러분!
북경3박4일동안 어마어마한 만리장성, 명13능, 이화원, 천안문광장, 자금성등을 관광하면서 느낀 감회가 어떻하는지요?
금번 중국 여행이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재에 머물지 않고 다음 여행의 행선지가 어디가 되는 간에 세계인들과 함께 경험하고 느끼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여 나 자신과 세계가 공존하며 살아가기를 KORAIL70회전수부3기생은 꿈꾸어 즐거움과 행복한 인생이 될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3/19 관광 일정
아침 만리장성을 관광하기위해 호텔에서 7:30분 출발하여 뻐쓰를 약1:00시간을 달려 팔달령 산아래 도착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걸어서 케이블카 승차 장소로 이동 3명씩 1조로 2조가 한번에 탈수 있는 케이블카를 10여분을 타고 산을 오를 때의 짜릿한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 산정상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만리장성이 능선을 따라 끝없이 굽어다 보였는데 왜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지 중국의 인구를 실감나게 하였고 한국 관광객 또한 어느나라 관광객 못지 않게 많았다.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당대에 그 무거운 돌을 옮겨 성을 축조했을 민초들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문화유산 아닌가.
만리장성은 미국의 한 탐험가가 한곳도 빼놓지 않고 걸어서 완주해보니 꼭 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금번 중국여행에서 겨우 30분 정도 머물러 발끝만 더듬고 온 느낌이다.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다음 여행 코스로 명13능 관광하다
명조 3대황제부터 최후 황제까지 13명의 황제가 묻힌 묘역으로 정원의 탑 안에는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 시주한 돈이 수북이 나뒹굴고 있었다.


<관광설명표지판에 한국어로 설명되어 있어 중국관광국에서 우리한국관광객에게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수 있을것 같다>
명나라 3대 황제부터 최후 황제까지는 16명이었으나 1, 2대는 남경 부근에 있고 한사람은 왕을 2번이나 하였기에 13명이 묻혀있는 묘역 외부인으로부터 도굴 등을 피하기 위하여 묘위에 위장을 위해 나무 등을 심어 외부로부터 알 수 없도록 하였고, 경비병만 약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만리장성과 가까워서 유사시 비상병력으로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명13능을 관광하고 나서 서태후의 별장 이화원을 관광하다.
이화원은 청나라 시대의 별궁으로서 서태후(西太后)가 해군의 예산을 별궁에 쏟아 부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하루식사에 300가지의 안주와 200종류의 요리를 만들게 하여 식사를 하며 즐기던 곳이다. 특히 곤명호(崑明湖)의 절경과 호반에흩어져 있는 건물을 잇는 전장(全長)718m의 복도는 "입구에서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 남녀가 밖으로 나올 때 는 이미 결혼을 했더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길고 복도에는 조각과 서사 풍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옛 전재권력의 참모습을 여기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희귀목 수백년 묶은 아름드리의 백송나무를 감상하다.
당시 서태후는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지만, 태후라는 한계 때문에 고궁(故宮)에 머물기보다는 이화원을 자신만을 위한 궁전, 정원으로 만들어 주거처지로 삼았다고 한다. 황실의 정원이었던 이화원에 각종 전각과 사원을 추가해 본격적인궁전 형태로 변모시켰는데, 막대한 재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군비 500만 냥을 끌어다 쓰는 바람에 1894년 일본과의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사리와 사욕은 나라도 망하게 한다는 교훈의 대가가 너무도 비싼 것 같다.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알려진 이화원,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 15km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년)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다시 이화원은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만㎡이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서태후는 특히 이화원을 만들고 나서 저녁이면 곤명호 가득히 연꽃 모양의 등불을 물에 띄워 놓고 난간에 등을 다 매달아 마치 천상의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며 즐겼다고 하니 과연 중국의 최고 권력자다운 사치스런 놀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국 해군 군비로 지은 이화원 때문에 중국의 해군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결국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배해 홍콩을 100년간이나 내어줄 수 밖에 없다고 하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여행일정을 끝내고 피로를 풀기 위해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은 전신맛사지를 받다.
남자는 18세정도의 젊은 종업원아가씨가, 여자는 18세정도의 젊은 종업원이 1시간30정도 전신맛사지로 오늘 여행의 피로를 말꿈히 풀다. 팁은 약20달러(한화 1인당 25,000원)을 지불하다.
맛사지를 받고 나오면서 1,000-2,000원씩 팁을 손에 쥐어주니 젊은 종업원들은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구뻑하며 만만디하다.
3/20 관광 일정
오늘은 왕부정거리, 천안문광장,자금성,천단공원을 관광하는 날로 6:00에 기상 6: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7:30분에 관광을 위해 호텔을 나와 버스 있는곳으로 나가니 세찬 바람과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짙은 황사로 우리들 일행은 마스크를 쓰고 버스에 오르다.
첫 번째 코스로 왕부정거리를 심한 바람과 황사로 마스크를 착용하며 중국이라는 대국을 체험한다는 보람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1km구간을 걸어보다.

북경시 최대 번화가로 시 동편에 길게 늘어선 상점거리다. 약 1km가량의 거리 양편으로 약 100여개의 각종 상점이 들어서 있는데, 우의상점과 신화서점 등의 유명 상점을 비롯해 우의빈관과 같은 호화호텔도 자리하고 있다. 거리의 서쪽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북경 백화점이 서있으며, 동쪽에는 신동안(新東安)시장이 있다.
이곳은 일찍이 황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황실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황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곳은 아직도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상점과 빌딩이 많으며 유리창거리가 우리의 인사동거리와 비교되는 것처럼 이곳은 우리의 명동, 압구정거리쯤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거리로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왕부정거리를 구경하고
천안문광장에 도착하니 세찬 바람과 짙은황사 때문에 모두들 마스크를 차야만 했다.
천안문광장은 끝없는 관광행렬로 세계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기념촬영하는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천안문 광장은 북경의 중심이며 중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광장은 1959년 건국10주년 기념으로 정비, 확장했는데 40만 ㎢의 면적에 100만명 이상의 인원이 집회를 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이다.
1989년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 때 중국당국이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을 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의 지탄을 받았으며 등소평의 개방 시장경제가 몇 년 간 후퇴한 계기가 된 곳이다. 또한 천안문은 고궁을 둘러싸고 있는 황성의 정문이며 천안문에서 황성으로 들어가는 문을 오문(午門)이라 한다.
천안문은 명나라 시대에 승추문이라 부르던 것을 청나라 세조가 중건하면서 천안문이라 바꾸어 불렀으며, 천안문에 있는 아치 모양으로 된 5개의 통로가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궁전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천안문 누상에서 땅에 굽어 앉은 문무백관들을 내려 다 보며 권위와 위엄을 떨쳤고 1949년 모택동 주석이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수립을 선언하면서부터 천안문 광장을 인민의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월1일 메이데이나 10월1일 국경절기에는 광장에서 성대한 식전행사를 갖는 다고 한다.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 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 개의 인상 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 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 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천안문을 직접 가서보니 “우~와 !! 정말 크긴 크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말로만 듣던 천안문 광장을 눈으로, 발로 직접 디디고 서서 돌아보니 100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평원 같았다.
천안문을 통해 자금성 남쪽의 오문을 들어섰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들이 눈에 들어오고 많은 관광인파가 붐빈다.
紫禁城-황족만이 산다는 자주빛세계라서 일반백성의 출입을 금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자금성!
도교의 교리에 따라 옥황상제만이 10,000칸에서 산다하여 1칸을 부족하게 해서 지은 9,999칸의 황성.
년인원 백만명이 동원돼서 14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중국의 대표적 상징이다.
베이징관광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문화유적이 바로 자금성이다.
백성의 죽음과 고혈,피와 땀과 눈물,한숨 등이 응축된 자금성은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중국을 관광부국으로 만들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과 북쪽 위치에 있는 황제가 개인적 생활을 영위하는 내정 등 여러 건물들을 한춘매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살펴 보았다.
크고 작은 많은 건물과 장벽, 그리고 문이 정연하게 배치되고 황유리기와와 붉은 칠을한 기둥들이 어우러져 집단미를 이루는 이 호화롭고 웅장한 대궁전을 보고 명나라, 청나라 시대 중국의 강대함을 다시 실감 하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 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과 같다’는 데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가장 완전한 황제의 왕궁이며, 중국 최대의 박물관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7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소장, 전시되고 있다.
방어 목적으로 궁전밖에는 10m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다.
자금성은 넓이 72만㎡를 매일 100만 명씩 동원하여 15년 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하였다니 설명보다 눈 앞에 위용을 자랑하는 실물에 그저 망연자실해질 뿐이다.
땅밑 7m까지 파고 돌과 벽돌을 채움으로써 밖에서 땅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오는 것을 막는 공사로부터 시작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왕궁 주위에는 높이가 3m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왕궁장벽 밖에는 넓이가 52m의 성을 보호하는 하천(護城河)이 둘러서 흐르고 있어 하나의 성채가 경계가 삼엄한 고성요새를 이룬다.
또한 방화시설로서 360개의 동으로 만든 큰 방화수통을 갖추고, 겨울이면 물이 얼지 않도록 불까지 땔 수 있게 했다는 참으로 용의주도한 준비이며 설계였다.
자금성에는 9,999개의 방이 있으며, 한 왕자가 태어나서 매일 방을 바꾸어가며 잠을 잔다고 해도 한 바퀴 돌아 태어난 방에 이르면 27세가 되고, 두 바퀴를 돌고 나면 54세로 죽음을 준비할 때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의 방대함이 가히 짐작할 만 할 것이다.
200톤의 단일 대리석에 9마리의 용이 조각된 자금성은 호화의 극치이며, 과연 대륙의 대국다운 모습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고궁의 주요건축은 외조(外朝-정사를 보는 곳)와 내정(內廷-살림하는곳)의 두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심축에 남쪽에 자리잡은 것이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으로 모두 3층짜리 한백옥(漢白玉-한나라때부터 만들기 시작한 백옥석)으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이전 황제들이 정사를 보거나 의례를 집행할 때 사용하였던 장소로 외조(外朝)라고중심축의 북쪽에 있는 곳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및 그 양측의 동서 6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일컬어서 ‘3궁(宮)6원(院)’이라고 하였다.
이 건물들은 황제의 비빈들이 거주 하였던 곳으로 “내정(內廷)”이라고 하였다.
점심후 쇼핑을 하고 천단공원 관광에 나서다.
북경 외성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천단공원은 중국에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이다.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천단공원'이란 명패가 걸린 붉은 벽의 커다란 문이었다.
그 문을 들어서면 여러 가지 원형 건축물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을 듯이 널찍한 광장이 나타난다. 부지 면적이 무려 273만㎡로 천안문 광장보다 7배나 더 크다고 한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붉은 색의 갖가지 시설과 장식물, 보는 이를 압도하는 커다란 건축물, 사통팔달의 널찍한 광장은 어디를 가나 중국의 특징이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광장을 통과하면 황제가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원구단, 역대 황제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황궁우, 황제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던 높이 32m의 기년전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하늘을 형상화한 흰대리석 재질의 3층으로 되어 있는 원구단의 제단은 읽은 제문을 태우던 천심석을 중심으로 하여 부채꼴 모양으로 9단의 돌이 원을 그리고 있는데, 1단에 9개의 돌, 마지막 9단에는 81개의 돌들로 거대한 원을 이루고 있다. 9는 황제의 수로서 천단에 오를 수 있는 이는 오직 황제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황궁우는 흰대리석 기단 위에 세워진 원형 목조 건물로 매우 섬세하고도 화려한 모습이었다. 소리가 벽을 타고 벽을 타고 다시 돌아온다는 건물 주위의 회음벽(回音壁), 손뼉 소리가 첫 번째 돌에서 치면 한 번, 두 번 째 돌에서 치면 두 번, 세 번째 돌에서 치면 세 번 메아리가 들린다는 건물 중앙 바닥의 삼음석(三音石)이 호기심을 끌었지만, 너무 많은 관람객 탓인지 그 소리들을 직접 들을 수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기년전은 흰대리석 제단 위에 전각을 올린 것으로 4계절을 뜻하는 4개의 기둥을 근간으로 하여 열두 달을 뜻하는 12개의 기둥과 바깥쪽의 하루 12시간을 뜻하는 12기둥을 세워 전각에 작은 우주를 담고 있었다.
주나라 때부터 행해진 제천의식은 한나라 이후는 모든 황제의 의무가 되어 주로 동지 때 추수감사제의 뜻을 담아 밤에 원구단에 올라 섶을 태워 하늘에 연기를 올려 보내는 것으로 의식을 치렀는데, 제단이며 전각들은 엄청난 규모를 과시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러나 천단공원의 놀라움은 제단과 전각의 규모, 엄청난 부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공원 속을 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의 눈과 가슴을 더욱 놀라게 했다.
제단이며 전각을 돌아 공원 외곽으로 나오니 경쾌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몇 사람들의 여인네들이 조그만 녹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날렵한 사위로 율동 같기도 하고 운동 같기도 한 춤을 즐기고 있었다. 흥을 누르지 못한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그 여인네 속으로 뛰어 들어 함께 스텝을 맞추어도 여인네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사위의 즐거움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회랑으로 나오니 난간에 무리를 지어 앉아 마작이며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는 노인들이며 여인들이 보였다. 약간의 지전(紙錢)들을 앞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놀음을 놀고 있는 듯했지만, 눈에 핏발을 세워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난간 안쪽에서는 오, 육십 줄은 족히 되었음직한 중로의 두 여인이 서로 주고받으며 제기를 차고 있는데, 발로 받았다가, 이마로 받았다가, 가슴으로 받았다가, 몸을 한 바퀴 돌려받았다가, 다리를 뒤로 제쳐 받았다가 하는 품이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했다. 여간 놀라운 재주요, 기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곡마단의 여인 같지도 않고 여염집의 평범한 주부일 듯한데 그 기술이 여간 놀랍지가 않았다. 그 두 여인뿐만 아니었다. 회랑을 벗어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껏 기술도 부려가며 제기들을 차고 있고, 제기를 들고 와 사 달라고 조르는 장사꾼도 많이 보였다. 일설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고안된 축국(蹴翹) 놀이에서 제기차기가 연유되었다고도 하여 그 시기를 중국의 전설적인 왕 황제(黃帝, B.C.2700년경) 때로 보는 견해가 있어 이 놀이의 뿌리가 깊은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오늘날까지 이토록 생활화되어 만인이 즐기는 놀이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제기차기 놀이 구경에 잠시 침잠하고 있으려니 공원 또 한쪽에서 굉음 같은 음악소리가 고막을 심하게 진동시켰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 가보니, 백여 명은 될 듯한 일군의 노소 남녀들이 가장자리 한 쪽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함께 흥에 겨워 춤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춤꾼들이 모두 일행 같지도 않고, 아주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삼십대에서 칠십대 정도까지 각색 각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두어 쌍의 남녀는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안기도 하며 스텝을 맞추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울려' 있다기보다는 함께 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생활 문화일지는 몰라도 이방인의 눈에는 사뭇 신기하고 놀랍게만 보였다.
이 천단공원의 놀라움을 보면, 지금 중국은 체제에 눌려 사는 사회주의 나라도 아닌 것 같고, 귀한 물자에 거친 인심 속을 사는 공산주의도 아닌 것 같다. 사회 개방 이후 날로 성장해온 경제 때문일까. 천성으로 간직해온 대륙적인 기질 때문일까. 사람들은 활기에 넘치고 여유가 충만한 것 같다. 다른 데는 몰라도 천단공원에서이기에 사람들이 활력에 넘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중국여행에서 둘러본 자금성이며, 이화원이며 하는 것들은 모두 황제와 권력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천단공원은 나라에 풍년들기를 비는, 그래서 백성의 삶도 살펴준 황제의 마음이 담긴 곳이라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삶을 잘 살펴주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 평화로운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겠다.
3/21 귀국일 관광 일정
오늘은 귀국날이라 간단한 일정으로 부국해저세계를 구경하고, 북경역 탐방, 북경의 명물 인력거투어를 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족관인 부국해저세계 는 북경 제일의 5성급 해저 수족관이다.
1997년 11월 오픈된 해에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했으며, 1998년에 부국해저세계는 북경여행국에 의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총 2,350만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아시아 최장 길이인 20m의 아크릴 투명 지하 터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광객이 마치 바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사방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북경 공인체육관(工人體育館) 인공호수 밑에 위치해 있으며, 건축 면적은 7800㎢이다.
450만ℓ의 인공 소금물로 채워진 중앙 탱크는 자연 생태계에서 살던 수천마리의 물고기들이 살수 있게 해 준다.
이 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6000여 종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어서 거의 모든 열대성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데, 상어, 가오리, 뱀장어, 산호초, 랍스터, 해마, 불가사리 등의 수천종의 해양 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메인 탱크 외에도, 18개의 각기 다양한 테마를 지닌 전시관이 있다.
또한 하루에 두번씩 물고기와 상어들에게 먹이를 주는 전문 다이버를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여행계획에는 없지만 북경역을 탐방하기위해 뻐스기사에게 팁을 50,000원주고 북경역에 뻐스를 주차 30여분동안 번화한 북경역을 살펴보고 기념촬영하다.


인력거를 2명이 한조로 “후통”체험을 하다.
관광객 두 사람을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일주하는 것인데
울퉁불퉁한 길을 힘겹게 페달을 밟는 것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듯하게 잘 포장된 관광지가 아닌 실제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는 짧은 시간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북경의 골목길을 '후퉁'이라고 합니다.
일행의 수만큼 인력거가 팀을 이뤄 줄지어 따라갑니다
그 팀에는 최고참이 앞장을 서게 됩니다
후퉁 투어의 묘미는 사합원 방문 입니다. 사합원은 북경의 옛 주거형태로 마당을 중앙에 두고 집의 건물이 [ㅁ]자형태로 지어진 것을 말합니다.
사합원은 예전에는 당 간부 등 유명인사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한데, 현재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지역으로 한 집에 3~4가구가 거주하며 공공화장실을 이용하는 빈민지역과도 같은 곳이다.
후퉁이란 우물을 뜻하는 몽골어 'HOTTONG'에서 유래된 말로, '좁은 길' 또는 '뒷골목'을 뜻한다. 칭기즈칸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베이징을 원대에 재건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후퉁은 1950년대에는 6000여 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북해공원 북문 건너편 등지에서는 큰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미로처럼 이어지는 후퉁을 만날 수 있는데 고궁이나 천안문 광장에서 느꼈던 중국의 거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인력삼륜차를 타고 후퉁을 둘러본다면 중국 서민의 생활상을 훔쳐볼 수 있다.
후통을 관광하고 북경의 낭만호수 십찰해(什刹海, 스싸하이)를 구경했지요.
십찰해는 본래 몽고어로 열 개의 사찰이라는 뜻이다. 호수주변에 10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고,그 대신 음식점과 분위기있는 카페, 호프집이 즐비해 연인들과, 무리지어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수다가 가득하다.
몽골 징기스칸이 와서는 처음보는 넓은 호수를 보고 바다라고 우기며 북경의 바다라고 명명했단다
아직도 그래서 십찰해라며 바다라 불리워 지고 있다
이 호수는 진시황이 14년의 공사기간으로 양자강과 연결시켜 놓았다니 중국은 크고 넓고 길고 높고 ....
이화원 자금성과도 십찰해가 연결되어 있어 명나라 청나라시절의 왕과 48년간 중국을 섭정한 서태후도 배를 이용해 십찰해를 유람했답니다.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22명)께서 말로만 듣던 거대 중국의 5000년 역사를 느껴보니 실로 3/18-3/21 중국북경여행 가슴속 깊이 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KORAIL70회전수부3기생 중국북경여행단 여러분!
여행기획 후기를 말씀드리면,
해외여행을 처음 기획하다보니 여행지선정, 여행비, 가이드선정, 여행사선정등 공감하지 못한부분이 다소 있었으나 2차 해외 여행시에는 더욱 치밀한 계획과 의견교환으로 행복여행이 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중국 북경여행에 있어서 똑 같은 코스로 비슷한 숙박. 비슷한 식사로 여행사마다 여행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알찬 여행과 가이드를 만나서 뜻깊고 감명깊은여행을 했는가로 이것으로 판단해야 될것 같습니다.
4월에 중국북경행을 떠난다는 친구의 여행경비는 하나투어 패키지관광으로 65만원선으로 계약이 되었더라고요.
앞으로 회장단은 중년인생의 우리들 여정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해주는 마음으로 부부행복여행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3월19일 온양에서 북경여행을 왔다는 일행은 39만원에 여행비를 지불하고 여행을 하고 있더라고요.
39만원에 북경여행을 한다...분명 추가옵션관광이 따릅니다.
금번 북경여행을 거울삼아 떡고물이 있다면 우리들이 공동기금으로 사용되도록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처음하는 해외관광이라 비행기를 중화항공에서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꾸어 계약을 체결하는관계로 여행설계비용 59만원을 57만원으로 낮추어 책정하다보니 총무는 미쳐 떡고물을 못 챙겨 죄송한 마음입니다.
신일고속관광여행사 김성민부장, 한춘매국제여행사가이드,정명가이드보조 3명이서 북경3박4일동안 북경여행에 협조 해주어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 KORAIL70회 전수부3기생 22명은 비행기출국수속부터 여행마칠때까지 한마음일심동체로 행동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중국북경여행 공동경비 수입지출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