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브라이언, 그는 자유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집에서 독립한 이후 17여 년간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원하는 곳에 가서 살았다. 대학에서는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했고, 8년 전에는 한국어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 ‘서울 라이프’를 경험하고자 서울로 왔다. 아리랑 TV의 간판 MC로 지난해에는 영화 <괴물>에도 출연하고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까지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늑대들의 본능 토크> 패널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피력하는 출연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언젠가 배워보리라 마음먹은 이종 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3개월 일정으로 태국에 머무는 중이다.
이런 그에게 스위스는 언젠가 한 번 가겠다고 벼르던 나라 중 하나. 그가 짠 가상의 신혼여행 루트는 남부 티치노 지역에서 시작된다. 루가노 호수 주변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은 스위스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루가노에서 배로 30분이면 닿는 간드리아Gandria는 호수에서 솟아오른 사면에 집들이 늘어서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산에 새들이 둥지를 튼 것 같다. 배에서 내려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이곳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자동차의 접근이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체구가 큰 사람은 몸을 모로 돌려 움직여야 할 만큼 좁다. 이어지는 비탈길과 돌 마루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다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와 낭만적인 모습! 그 속에 있노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샘처럼 솟는다. 시간이 지나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이렇게 작은 마을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산도 높고 계곡도 깊은 알프스 산맥에 기찻길을 만든 스위스인들이기에 가능했을 테다.
국토의 70%이상이 산악 지대인 스위스에는 전국에 걸쳐 철도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데, 높은 산 중턱, 계곡 사이사이로 기찻길이 지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간드리아를 가는 관문인 루가노는 티치노 주 최대의 도시로 기차역에 내려 돌길을 따라 걸으며 둘러보면 좋다. 특히 오래된 식료품점과 약국 등이 늘어선 페시나 거리가 매력적. 가반니라는 할아버지가 일대에 꽃집, 와인 가게, 치즈 가게 등 15개의 가게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반니 거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활기가 넘친다. 시장이면서 관광지여서이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이고 정열적인 이탈리아인 기질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1중세풍 건물과 카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루가노의 구시가지에서. 2스위스는 산, 호수, 빙하 등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만년설부터 야자나무가 무성한 호반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기차 여행은 추천 코스. 3, 4티치노 지역이 ‘스위스 속 이탈리아’라면 간드리아는 ‘스위스 속 이탈리아의 이탈리아’라고 할 수 있다. 호수에서 솟아오른 사면에 집들이 늘어서 있어멀리서 보면 산에 새들이 둥지를 튼 것 같은 모양새로 루가노에서 배로 30분이면 닿는다.
세계문화유산인 3개의 고성이 있는 벨린조나에 이어 브라이언 씨가 선택한 곳은 로카르노다. 영화제 등을 통해 그 이름이 익숙한 이곳은 인구 1만5천 명의 작은 도시. 그러나 역에 내리면서부터 이곳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오가는 사람들의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범상치 않은 패션 스타일. 알고보니 로카르노는 예술가의 도시라고 할 만큼 록 음악가, 연주자, 화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영화제가 열리는 8월이면 대광장에 유럽 최대 규모의 스크린(26X14m)이 설치되고 7천 명 이상의 관객이 최신 화제작을 함께 감상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TV, 신문, 잡지 등에서 영화제 소식을 전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1로카르노의 상징인 ‘마돈나 델 사소’는 성 프란체스코가 성모 마리아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꿈을 꾼 뒤 그 자리에 지은 교회라고. 교회의 회랑으로 내려다보는 호수와 로카르노의 경치가 장관이다. 2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카스텔 그란데’. 최근 내부 공사를 해서 레스토랑, 박물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실질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3기차 여행의 묘미는 스위스의 다채로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4벽화와 아치형 화랑이 아름다운 벨린조나 시청 내부.
체르마트의 마테호른을 아세요? 우리나라 관광 문화를 선도하는 여행사들 덕분에 한국인들에게 스위스의 대표 명사는 융프라우로 통한다. 융프라우도 명봉이지만 사실 이곳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명산은 마테호른이다. 스위스의 유명한 랜드마크이자 그 형태가 독특하여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 이미지에도 등장하고(별이 둘러쳐진 그 안에 있는 산이 바로 마테호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체르마트는 4478m의 마테호른을 비롯하여 4000m급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일 년 내내 알프스의 산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조용하고 맑은 공기는 이곳만의 특징. 아스팔트길이 깔려 있지 않은 오지에도 흙먼지 폴폴 날리며 휘발유 차량이 오가지만, 이곳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휘발유 차량의 진입을 전면 금지한다. 리조트 내에서는 전기 자동차와 마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학교 다닐 때 배구 선수이기도 했던 브라이언 씨는 야구, 농구, 서핑, 스키, 수상스키 등 모든 운동에 능하다. 그의 아버지 또한 운동 마니아로 일흔이 넘은 요즘에도 티베트, 네팔 등지로 트래킹을 다닐 정도라고. 브라이언 씨가 와보지도 않은 체르마트에 대해 기억하게 된 것도 이곳을 다녀온 그의 아버지가 선물로 사다준 체르마트 로고가 쓰인 야구 모자 때문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이 연인과 함께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일 년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수려한 산을 감상하고 오르는 것 외에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번화가인 반호프슈트라세 거리에는 유명 시계, 구두, 디자인 숍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소의 목에 거는 종, 나무 신발, 국기 문양이 새겨진 컵, 티셔츠, 모자 등 스위스 관련 소품 등이 다양하게 있어 선물을 사기에도 좋다. 산악인의 마을로 유명한 만큼 등산 용품이나 스키 용품 등이 많은데, 스키철이 아닌 비수기에는 세일도 많이 한다고. 중심가 끝자락에는 제법 규모가 큰 교회와 묘소가 있는데, 다양한 모양의 묘비와 묘비명을 읽으며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구 시가지 쪽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발레 주의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편이다.
1로카르노 대광장 근처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비스트로 라티노(Bistrot Latino, 091-751-01-70)에서 맛볼 수 있는 파테.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담당하는 파티셰와 메인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가 만들어내는 요리 맛이 기막히다. 2페시나 거리의 터줏대감인 기바니 씨가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 3중세의 건축물로 둘러싸인 로카르노 대광장.
마테호른을 보려면 맞은편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정석. 4000m에 이르는 전망대까지는 등산 철로를 타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느긋하게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산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 그 자리에 서서 360도 빙 둘러가며 주변 풍광을 살펴본 후 다시 바라보는 방향 역시 마테호른이 있는 쪽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만년설로 덮인 그곳에서 마테호른을 대면하고 서 있는 순간의 느낌은 ‘벅차다’, ‘감격스럽다’, ‘멋지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물들어가는 마테호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고르너그라트 철도의 새벽 열차 투어를 이용할 것. 주변이 어두운 이른 새벽에 체르마트 역을 출발, 일출을 감상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알프스의 야생 동물을 관찰하면서 하이킹을 즐기는 코스.
1마테호른을 보려면 맞은편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정법. 4000m에 이르는 전망대까지는 등산 철로를 타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느긋하게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마테호른을 대면하고 서 있는 순간의 느낌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 ‘벅차다’, ‘감격스럽다’, ‘멋지다’라는 단어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2낭만적인 분위기의 간드리아. 3번화가인 반호프슈트라세 거리에는 유명 시계, 구두, 디자인 숍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 바젤 스위스 북서쪽 라인 강 상류에 위치한 바젤은 프랑스와 독일로 둘러싸인 3국의 국경 지점. 문화의 교차 지대로 중세시대부터 문화와 예술이 번영해 전시회나 국제회의가 많이 열린다. 특히 보석 시계 박람회인 바젤 페어와 전 세계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아트 페어가 유명하다. 박람회가 열리는 기간에 숙소를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 물가도 약간 비싸지므로 시계나 미술품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이 시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브라이언 씨처럼 시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둘러 예약하는 것은 필수다.
1스위스 사람들이 연인과 함께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는 체르마트의 구시가지. 이곳에는 발레주의 전통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엽서 같은 사진이 나오는 스위스.
앞서 갔던 곳에서 자연의 힘에 감동받았다면 바젤은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다. 우선 이곳의 구 시가지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세시대에 그려진 그림 속 모습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당시의 건물, 거리와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화려한 붉은색 외관이 특징인 5백여 년 된 시청 청사는 바젤의 랜드마크.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내부에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헤르조크&드 뫼롱의 샤울라거 미술관, 마리오 보타의 팅겔리 뮤지엄, 렌조 피아노의 베이옐러 미술관 등 현대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베이옐러 미술관은 갤러리 경영자이자 딜러였던 베이옐러가 모은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고흐와 세잔 등 인상파 화가의 거장부터 피카소, 클레, 마티스 등 현대 예술에 이르는 약 2백 점의 명작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모네의 작품 <수련> 연작이 전시된 공간은 미술품과 건축물의 기막힌 조화로 회자되는 곳이다. 모네의 작품과 전시장 통유리창 밖에 있는 실제 연못과 풀이 함께 어우러져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인공조명 대신 은은한 태양광이 전시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방대한 컬렉션을 감상해야 할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공간을 분할하는 한편, 전시장 밖에 펼쳐진 정원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지혜가 모여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굳이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도시 곳곳에서 예술품을 마주할 수 있는 나라다. 바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거리 예술품은 쿤스트할레 앞에 있는 장 팅겔리의 움직이는 분수. 무대 장치를 재사용해서 만든 9개의 작품이 제각기 움직이며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무척 희극적이다. 장 팅겔리는 키네틱 아트로 유명한 조형 작가로 그의 아내는 <뚱뚱한 나나> 연작 등 풍만한 여성 조각에 화려한 색감을 입힌 작품을 만든 니키 드 생팔이다.
1피에로 포르나세티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생활 소품들. 바젤의 쇼핑 거리에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감각적인 제품이 많이 있다. 2쿤스트할레 앞에 있는 장 팅겔리의 움직이는 분수. 9개의 작품이 제각각 움직이며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무척 희극적이다. 3신시가지 쇼핑거리에는 파텍 필립, 프랭크 뮬러, 바쉐론 콘스탄틴 등 스위스 명품 시계 매장이 줄지어 서 있다. 4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베이옐러 미술관. 특히 모네 작품 <수련> 연작이 전시된 공간은 미술품과 건축물의 기막힌 조화로 회자된다. 5라인 강 상류에 위치한 바젤은 중세시대부터 문화와 예술이 번영한 도시로 전시회나 국제회의가 많이 열린다.
신시가지는 쇼핑의 거리로 파텍 필립, 프랭크 뮬러, 바쉐론 콘스탄틴 등 스위스 명품 시계 매장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숍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렇지만 쇼핑의 거리도 예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생활 용품, 문구류 등 소소한 것들까지 아이디어가 넘치고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노트 한 권을 포장하는 데에도 어찌나 세심하고 멋스럽게 해주던지…. 생활 속 작은 부분까지 예술적 감성이 스며들어 있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위) 바젤역의 야경.
티치노 지역에서 체르마트를 거쳐 바젤로 마무리되는 신혼 여행길에 브라이언 씨가 동반하고 싶은 여성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원하는 배우자의 첫째 조건은 ‘반드시 이해심이 많을 것’이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당장 내일 먹을 거리가 없어도 하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편감으로서 그의 점수가 낮아질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여자 고생시키기 딱 좋은 캐릭터니까 말이다. 그러나 여행 루트를 짠 그의 감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라. 낭만적인 간드리아,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마테호른, 예술 감각 가득한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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