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6
불면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어떤 일이 화가될지 복이 될지는 모르는 게 사실이어도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에선 그렇게 긴 호흡으로 멀리 보는 눈이 감기기 쉽다.
그동안 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온이 높더니, 오늘 바람이 세게불며 기온이 강하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더 춥다고 하니 슬슬 동장군이 오나보다. 어제는 공동체 마지막 회식을 했다. 12월 5일 총회를 시작하니, 지난 4년간 함께 살던 공동체원들도 재배치되면서 이합집산이 있겠지. 하는 일 없이 있음에 존재가 미안하다.
2022. 11. 27
대림 첫 주일이다. 오늘 마태오 복음은 좀 더 상세하게 루카복음에도 나온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같은 내용의 루카복음 본문을 알레고리적 (우유적) 으로 해석하면서 세가지 형태의 삶을 뜻한다고 했다. 요란을 떨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과학적 성서해석 방법론도 한바탕 찻잔속의 태풍으로 잦아들고 여전히 교부들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성서해석의 주류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관심을 가졌던 부류는 성직자 부류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들의 일을 밭에서 하는 일로 비유한바 있다.
고린도전서 3:6 나는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만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직자들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들 모두가 착하지는 않다. 그중에서도 구원받거나 그렇지 못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수도자들이다. 그들은 잠자는 사람처럼 조용한 사람들이다. 수도자라 해서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평신도들이다. 세상은 맷돌처럼 돌아간다. 맷돌을 돌리는 자가 있고 그에 갈리는 이도 있다. 맷돌에 갈리는 이에게 화가 있으리라!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론 요지는
필립비서 2: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구원이란 무슨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중 무심코 하게 되는 선택에 달렸음을 오늘 복음은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적극적으로(능동적으로) 수동적이 되라!
몸이 불편하여 글을 쓰는데 따르는 여러 부수적 어려움 중에도, 힘이 없다보니 예전처럼 다른 문헌을 찾아 확인하는 과정 없이 기억에만 의존하니 뭔가 미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