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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5월 28일 수요일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아레오파고스에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하여 증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제자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7,15.22─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아레오파고스 연설을 전합니다. 바오로는 먼저 아테네 시민을 대단한 종교심을 지닌 이들로 치켜세우며 그들의 예배소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사도 17,23)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지의 신, 그러나 숭배받아 마땅한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니, 바오로의 이 설교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보내셨지만, 그 일은 인간의 말재주가 아닌 ‘십자가의 복음’으로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믿는 이들을 구원하셨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2-24). 말재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내주는 어리석은 사랑의 길,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지성이 아닌 근원 곧 마음에서부터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고 또 그 사랑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보내 주시고자 하는 성령이십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적대자들이 가득한 언덕 위에 외로이 홀로 서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바오로 수도회와 가톨릭평화방송 TV가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아레오파고스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 청중이라고는 프로그램 종사자들 빼고는 거의 없이, 카메라만 응시하며 성모님에 대해서 총 10번이나 강의를 녹화했었는데,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적대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바오로 사도가 생각났습니다. 때로 군중으로부터 욕설이나 비난도 날아오고, 때로 돌맹이도 날아왔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쁘게 복음을 선포했던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레오파고스라는 단어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일종의 지명입니다.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낮은 언덕을 말합니다.
초창기 아테네 귀족 회의가 열리던 장소였는데, 나중에는 아레오파고스라는 말의 개념이 확장되어 회의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회원들은 왕의 자문위원회 역할을 수행했고, 행정, 종교, 교육 분야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장소 아레오파고스 한가운데 섰습니다. 당대 난다긴다하던 석학들과 당시 사회를 주름잡던 세력가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여러 첨예한 주제에 대한 토론과 비판의 전문가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자칫 엉뚱한 말이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할 경우, 그 자리에서 고발당하고, 매질 당하고, 투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무엇에도 거칠 것이 없이 당당하고 의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오로 사도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아테네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심기를 사정없이 긁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 상이나 은 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지적을 감안할 때, 당시 아테네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나 잡신에 깊이 빠져 살았습니다. 이미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든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복수심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던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오로 사도는 목슴을 걸고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놀랍도록 담대하게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그토록 담대하고 의연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 그 배경에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진리의 영, 협조자 성령이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3절)
오늘 우리 안에도 항상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현존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하시길 청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바오로 사도처럼 목숨을 불사하고 진리의 말씀을 이웃들에게 선포하길 바랍니다.
누가 참 말씀의 전달자가 되는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감당할 능력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들으시는 것만 그대로 이야기하시는데 어떻게 말씀하시는 분을 감당하게 할까요?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배 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베드로와 같은 존재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제자들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서 하는 행동과 말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더 옳다고 여기면 그대로 따라서 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에게 받아 그대로 알려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전해주시듯,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받은 것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서 전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완전히 죽지 않는다면 그대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완전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께 분명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엔 분명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 잘못된 해석과 전달입니다. 욥은 죄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냥 세상에 욥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 그런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성경을 옳게 해석해서 전해준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틀렸던 것입니다.
욥 친구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느님의 수준처럼 되지 못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민수기 13-14장)에 관한 내용을 살펴봅시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보다 눈앞의 어려움에 압도되어 백성들을 낙담시켰고, 이는 결국 40년간의 광야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느님을 믿고 쳐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 둘만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는 인간이 하느님의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여깁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의 능력이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도 포기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성경해석도 제한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해석해봐야 그 틀이 완전한 성령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한 성당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프레스코화 ‘에체 호모’를 아마추어 복원가가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모습을 심하게 훼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작자의 의도와 작품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겸손함 없이 임의로 해석하고 개입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그러한 능력이 없는데도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었던 성모 마리아처럼 되어야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쓰나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2004년 태국 푸껫에서 있었던 쓰나미, 그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를 기억합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휩쓸려갔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자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푸껫도 후쿠시마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무너졌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마음의 쓰나미’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관계가 깨어지고, 예상치 못한 고난이 덮쳐올 때, 우리는 너무나도 약하고 흔들리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 속 욥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하느님을 잘 믿던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산도, 자녀도, 건강도 모두 잃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쓰나미를 맞은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때 감사했다면, 나쁜 것을 주실 때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덧붙입니다. “나는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고,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하루에 두 번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한 분은 결혼한 지 53년 된 형제님입니다. 이미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고, 자매님은 이른 새벽 저를 찾았습니다. 눈물이 맺힌 자매님의 얼굴을 보며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형제님을 위해 울지 마시고, 함께 기도합시다. 형제님이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시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또 한 분은 결혼 27년 된 자매님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잘 자라고, 이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치료 도중에는 허리와 심장까지 이상이 생겼습니다. 몸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이었습니다. 불면증과 불안, 체중 감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병자성사를 드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몸도 치료해야겠지만, 마음이 먼저 치유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매님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기를, 성령께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 사람들에게 부활을 전합니다.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다음에 듣겠다”라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바오로 편에 서서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디오니시오와 다마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해도, 믿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오시면, 쓰나미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비추어 주십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한 마디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만이 모든 것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믿음을 지켰기에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병상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쓰나미 같은 고통을 겪는 우리 모두도, 이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바로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나는 고난은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벗어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욥처럼, 바오로처럼,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도 그 시작을 믿음으로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제르마노 (Germanus)
활동년도 : 496?-576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리(Paris)
같은 이름 :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496년경 프랑스의 손에루아르(Saone-et-Loire)에 있는 오툉(Autun) 근처에서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에우세비아(Eusebia)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신부인 사촌 스카필리온(Scapilion)의 도움으로 아발롱(Avalon)과 뤼지(Luzy)에서 공부하였다. 530년에 그는 오툉의 주교인 아그리피누스(Agrippinus)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 오툉 근처에 있는 생-생포리앵(Saint-Symphorie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555년 그가 파리에 들렀을 때 마침 에우세비우스 주교가 세상을 떠나 파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불굴의 투지와 용맹을 보였다. 그는 파리에 유명한 생제르맹(Saint-Germain) 수도원을 세웠고, 576년 5월 28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인의 유해는 빈첸시오 성당 입구의 생-생포리앵 경당에 안치되었다가, 754년 성대한 예식과 함께 성당 안으로 옮겨졌다. 이때부터 이 성당은 생제르맹데프레(Saint Germain-des-Pre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성 베르나르도 (Bernard)
활동년도 : 923?-1008년?
신분 : 신부
지역 : 멘톤(Menthon)
같은 이름 :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벨라도
사보이아(Savoia,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와 접하는 옛 지방의 이름)의 멘톤(또는 몽주 Montjoux)에서 태어난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들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 사제로 아오스타(Aosta) 교구의 총대리가 되었고, 40여 년 동안 알프스에서 선교 사업에 종사한 위대한 선교사였음은 확실하다. 그는 자신의 교구 내에 학교와 성당을 세웠지만, 가장 높이 칭송받은 일은 알프스 산을 넘는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들을 돕기 위하여 세운 알프스 산의 두 숙박소이다. 이곳은 그가 사망한 뒤에 ‘큰 베르나르두스’, ‘작은 베르나르두스’라고 이름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노바라(Novara)에서 선종한 그는 1681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2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하여 등산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마리아 안나 (Mary Anne)
활동년도 : 1618-1645년
신분 : 동정녀, 은수자
지역 : 키토(Quito)
같은 이름 : 낸시, 니나, 마리아나, 마리안나, 메리, 미리암, 애나, 애니, 앤
마리아 안나 (1618 - 1645)는 남미 에쿠아도르 키코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 일본에 가서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살아 있는 순교를 하기로 결심하였디.
재속 3 회 착복을 하고 가난·정결·순명의 세가지 수도 서원을 하였다.
그 후 은수자처럼 집에서 살며 전례에 참례하거나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집을 벗어났다.
그녀의 기도와 회개 생활에 대하여 하느님게서는 보상으로 많은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녀의 전구로 환자들이 치유되기도 하였으며 그녀는 예언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사를 받기도 하였다.
1950 년 비오 12 세가 시성하였다.(작은형제회홈에서)
성녀 마리아 안나 아 예수 데 파레데스(Maria Anna a Jesu de Paredes)는 당시 에콰도르의 수도였던 페루비안 마을에서 태어났고, 마리아 안나 데 파레데스 이 플로레스(Maria Anna de Paredes y Flores) 즉 ‘키토의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에스파냐 귀족의 딸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뛰어나서 언니들과 더불어 로사리오와 십자가의 길의 기도 바치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12세 때에는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일본인들을 개종시키려다가, 키토 교외 산에서 은수자로 살려는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고해신부인 예수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당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독수자처럼 생활하였다.
또 그녀는 관을 하나 마련한 뒤 매 금요일마다 그 속에서 지내며 죽음을 묵상하기도 하였다.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고행자가 입는 말총 속옷을 입었으며, 가시관과 쇠못관을 만들어 고행하였다. 음식은 극히 소량만 먹었고, 물은 그리스도의 갈증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입을 축이는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예언과 기적도 일어났다. 1645년 키토 지방에 지진과 더불어 전염병이 번졌다. 사순 제 4주일의 강론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백성의 희생물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지진은 멈추었으나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1950년에 시성되었다. 그녀는 마리아나 데 파레데스(Mariana de Paredes)로도 불린다.
복녀 마르가리타 폴(Margaret Pole)
활동년도 : 1473-1541년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말가릿다
영국 왕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3세의 조카인 마르가리타 플란타제넷 폴(Margarita Plantagenet Pole)은 헨리 8세에 의해 리처드 폴(Richard Pole) 경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즉위했을 때에는 마르가리타는 5명의 자녀를 둔 과부였다. 5명의 자녀를 데리고 사는 그녀는 영국에서 성녀로 불릴 만큼 덕이 출중하여 헨리 8세가 솔즈베리(Salisbury)의 백작으로 그녀를 임명하는 등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앤 볼린(Ann Boleyn)과 결혼하자 그녀는 왕가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녀의 넷째 아들인 레지날드 폴(Reginald Pole)이 왕의 수장령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이 사건으로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녀 역시 헨리 8세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1541년 5월 28일에 참수형을 받고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복자 란프랑코 (Lanfranc)
활동년도 : 1005-1089년
신분 : 주교
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같은 이름 : 란프랑꼬, 란프랑크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출신인 란프랑코는 고향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한동안은 변호사로 지내다가 1035년경에 프랑스로 갔다. 그는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브랑슈(Avranches)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또 가르치기도 하다가 1042년 베크(Bec)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불과 3년 뒤에 그곳 수도원의 원장 겸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그의 성덕과 학문이 크게 알려졌다.
그는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와 성체성사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이 때문에 그는 교황 레오 9세(Leo IX)의 초청으로 로마 회의에 참석하여 베렌가리우스가 단죄를 받는데 큰 몫을 하였다. 1063년경에 그는 캉(Caen)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1070년에는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노르만 전례를 영국 교회에 이식했고,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시달한 1076년의 윈체스터(Winchester) 시노드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는 중세시대의 주요 저서로 널리 읽혀졌다. 캔터베리에서 선종한 그는 공적인 공경에 관한 그 어떤 내용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늘 복자라는 칭호와 함께 불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