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이가 낮시간에 잠을 자니 한가로움이 심신을 늘어지게 합니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벌려놓은 다시멸치 다듬기작업이 마음에 걸려 속이 편하질 않습니다. 한박스를 사왔으니 이걸 언제 다하나 싶은 마음이 종일 괴롭혀대서 늘어진 심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임합니다.
우리집 다시멸치 참 많이 먹습니다. 된장찌개, 콩나물국, 김치국, 떡볶이할 때 듬뿍 넣습니다. 완이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영흥도집에 갔다가 선물들어온 멸치가 있어 가지고 왔더니 다시멸치하기에는 좀 작은 중멸치. 그래도 써먹으려고 필요한 음식에 넣어보았더니 완이가 잘 먹질 않습니다.
멸치 건져먹는 게 큰 취향인데 중멸치는 원하는 맛에 미치지 않는 모양인가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사실 알고보면 맛보다도 동일한 재료라도 형태나 크기가 달라지면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속성때문입니다. 새로운 것 시도에 너무나 취약해서 약간만 달라져도 불안이라는 습성을 그냥 붙여버립니다. 완이에게 불안은 철과 같아서 별 것 아닌 것도 자석처럼 여기고 들러붙을 준비를 하는 듯 합니다.
멸치 건져먹는 것 아주 보기좋았으니 중멸치가 아직 많아도 다시멸치로 바꿔주려면 하루의 노고가 들어가야 합니다. 해도해도 끝없이 나오는 멸치들, 그래도 한박스 다듬어놓으면 2-3달은 충분히 먹을 듯 합니다.
입맛도 까다롭고, 많이 먹지도 않는데다가, 식사참여도 버릇이 들지않았고, 먹는 시간도 한없이 늘어지는, 그야말로 지켜만봐도 답답한 유형이라 잘 먹는 것들 위주로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저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 합니다. 근래들어 꼭 고쳐야하는 부분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쪼임이 강하게 들어가는데도 친밀전선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도파민을 올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만들기 랍니다. 심히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밉다밉다 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모습은 모든 것을 다 녹게 만드는 마술이 숨어있습니다.
혼내야할 때 진부한 말로 '이게 다 너를 위해 그러는거야!' 그렇게 외치곤 하는데요, 진실로 그런 마음이라도 혼나는 당사자야 심기가 편할리가 없겠지요. 혼내야하는 일이 잦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관계소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취향을 알아주고 맞줘주는 것 입니다. 좋은 관계유지는 어떤 것 하나 부당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서도 안되는 균형이 필수입니다.
이 균형 속에 입맛을 헤아려 주는 것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있습니다. 밥상의 묘약이라고나 할까요. 취향에 맞는 음식제공은 관계유지를 지속시켜주는 큰 바탕이 됩니다. 너를 위해 혼내는거야!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대체 보상이기도 해서 혼내는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마음쓰기도 음식으로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다시멸치를 다듬는 것은 성가셔도 해놓아야 합니다. 이래저래 취향저격에 꼭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멸치로 대변되는 완이와의 감정대립 균형은 현재까지는 잘 유지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약발이란 그야말로 현물이 최고입니다. 당장 눈 앞에서의 만족의 누적이 훈육의 고통을 앞지를 수 있다는 깨달음. 이 어려운 관계유지는 그래서 때로 긴장의 연속이지만 언제나 제가 승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더 큰 긴장이라고나 할까요.
저 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그럴 겁니다. 모성애 부성애란 무기로 좋은 관계유지를 커버해가지만 부모가 승자가 되어야만 하는 하기에 승자의 법칙에는 균형에의 노력이 꼭 필수입니다. 혼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가 느낄만한 만족의 기쁨을 주는 것, 그게 진심일 때 약발이 더 커진다는 것, 완이같이 어려운 양육케이스의 모범답안인 듯 합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양육에 어려움이 많은 우리 부모님들, 아이의 취양파악은 좋은 관계유지에 최고랍니다. 내가 세운 잣대나 의도에 아이를 꿰맞추려고 들 때 그 균형은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관계법칙의 기본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저도 다시멸을 고추장으로 볶으면 지리멸보다 더 좋으니 완이와 저는 같은 과네요.^^
한상자 다 다듬느라 넘 힘드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