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출전 : 현대문학, 1952
○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인식론적
○ 어조 : 갈망의 어조
○ 표현 : 의미의 점층적 확대(단계적인 의미의 심화 과정)
?(나→ 너→ 우리, 몸짓→ 꽃→ 눈짓)
○ 특징 : 명명(命名) 행위에 의한 인식을 바탕으로함
○ 구성 :
①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무의미한 존재(1연)
② 명명에 의해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옴(2연)
③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3연)
④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4연)
○ 제재 : 꽃
○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 길잡이 :
김춘수 초기시의 특징인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존재의 의미를 조명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의도를 가진 이 시는, 주체와 대상이 주종(主從)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주체적인 만남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인 시여서 정서적 공감과 함께 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 감상 :
한 때 청소년들의 애송시의 선두 자리를 다투던 작품이다.
그들은 대체로 이 시를 하나의 연가(戀歌)쯤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제3연과 4연은 미상불 절창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 인식'이라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향의 작품이다. (물론 연가로 읽는다고 해서 오독(誤讀)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제1연에서 '이름을 불러 주기'는 명명 행위(命名行爲)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그는 무(無)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몸짓'은 장미꽃이나 민들레꽃과 같은 구체적인 꽃이 아닌, 어떤 낯설고 정체 불명인 관념이다. '몸짓'의 상징 의미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제2연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는 정체를 드러내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은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만물은 본질에 따라 이름지으며, 시인의 사명은 성(聖)스러운 것을 이름짓는 데 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준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는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꽃'은 '의미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제3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이 표출되어 있다. 주체인 '나'도 대상인 '너'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 없는 주체도, 주체 없는 대상도 무의미하며,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연상해 보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는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제4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것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꽃'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임이 확인된다. '눈짓'은 '꽃'과 동격의 이미지로서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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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정끝별(시인)
김춘수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무의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 꽃무늬 책받침에서 였다
‘그’가 ‘너’ 로 되기, ‘나’ 와 '너‘ 로 관계맺기, 서로에게 ’무엇‘ 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 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 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시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 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世界一花 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花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