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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9月. 맑음
우리가 이틀 동안 할 수 있는 일들.
등장하는 사람들.
천지암天池菴 주지스님
하월거사
송태중 처사
공양주보살
볼라거사
환희심보살
주목거사
길은화보살
묘자영보살
무진주보살
현화백
로망이
춘풍이 등등...
처음 시작은 약소弱小할지라도.
“그러면 8월 세 번째 주 일요법회를 마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는 주 수요일인 24일부터 그 다음 주 금요일까지 열흘 동안 우리 절 공양주보살님 휴가가 있습니다. 지난 하안거 동안 엄청 더운 날씨에 고생을 많이 하셨고 또 휴가도 제대로 갖지 못해서 이번에 좀 여유 있게 열흘간 휴가를 드렸답니다. 자아, 모두 성불하십시오.” 법당 안 대중들에게 합장을 한 뒤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주지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법회를 마친 천지암 신도들은 각자 깔고 앉아 있던 좌복을 들어 법당 한 구석에 쌓아놓았다. 일요법회 대중들이 소리 높여 함께 읽어가는 초기경전도 각자 한 권씩 들고 와서 불단 아래 척척 쌓아놓았다. 쌓아놓은 경전 앞에는 말라서 날개가 부서져있는 나방 한 마리와 다리가 가늘고 긴 벌레가 죽어있었다. 무진주보살이 복도에 나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서 신중단神衆壇 탱화 아래서부터 쓱쓱 쓸어오기 시작을 했다. 법당 앞 쪽문으로 한 줄기 바람이 밀려들어오자 쓰레받기에 담으려고 모아놓은 벌레의 주검들이 부서진 채로 이리저리 날아가버렸다. 무진주보살이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쌓아놓은 초기경전 주변을 더 꼼꼼히 쓸어내어 한 군데 모아놓고 이번에는 영단靈壇으로 걸어가 빗질을 하며 이쪽으로 쓸어오기 시작했다. 가방을 챙겨들고 법당 안을 두리번거리던 묘자영보살이 무진주보살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무진주보살이 묘자영보살의 말에 대답하는 동안 경전 앞에 모아둔 벌레들의 잔해는 쪽문으로 쳐들어온 서늘한 바람에 또 이리저리 흩어져버렸다. 길은화보살이 불단위의 마지 밥을 들어내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법당안의 서너 명 거사들도 손바닥으로 허리를 두어 번 두드려보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일요일의 눈 푸른 정오가 산기슭의 키 큰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쉬고 있던 주목거사가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보, 공양주보살이 수요일부터 휴가랬지?” 길은화보살이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잠그면서 말했다. “예, 수요일부터라고 했어요.” 그러자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면서 주목거사가 말했다. “그러면 오늘이 벌써 금요일인데 내일은 절에 한번 가보시구랴. 공양주가 없으니 누구라도 절에 한번 얼굴을 내다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길은화보살이 행주로 싱크대 가장자리의 물방울을 닦아내면서 매끄러운 목소리로 톡하고 던지듯 말했다. “남자들은 간단하게 한번 절에 들려보라고 말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도 절에 가게 되면 공양이라도 먹을 수 있게끔 챙겨드려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남자들은 한번 가보라고 그저 말만 앞세우고 계신단말이지요.”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주목거사가 찻잔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말했다. “아니, 특별히 뭘 하라는 게 아니라 평소 일요법회 때처럼 공양이라도 한두 번 차려드리는 게 좋겠다는 말이지 뭐.” 그러자 길은화보살이 말을 바로 받았다. “그러니까 평소 일요법회 점심공양이라도 남자들의 생각처럼 대충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주목거사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흐흠, 비가 한바탕 내리더니 이제야 가을이 문 앞에 온 것 같군.” 저만큼 밭뙈기 너머로 시월이가 컹컹~ 하고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목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혼잣말처럼 했다. “고라니가 밭에 내려왔나. 여보, 그나저나 알았지요?”
“삘리리링.. 삘리리링.. 삘리리링.. 베란다에 놓여있는 작은 화분에 물을 주던 무진주보살은 스마트폰 벨소리를 듣고 거실 소파에 놓여있는 폰을 열어보았다. 천장암 묘자영이라고 문자가 떴다. “응, 보살님 무슨 일이에요?” 삐익 하는 기계음 사이로 묘자영보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보살님, 나아. 지금 전화통화 괜찮지?” 무진주보살은 마치 묘자영보살이 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하고 말했다. “그럼요, 괜찮아요.” 그러자 스마트폰을 타고 동산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양주보살이 휴가를 갔잖아요. 그것도 열흘 동안이나. 벌써 절에 공양주 없이 사흘이나 지났는데 그래도 가까운 동산에 사는 우리들이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무진주보살은 또 눈앞에 묘자영보살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했다. “글쎄요. 스님께서 지난 수요일부터 휴가라고 했으니까 벌써 사흘이나 지나버렸네요. 그런데 이럴 때는 가봐야 하는가요?” 그러자 묘자영보살이 습관처럼 하하~ 하고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말했다. “뭐 꼭 가봐야 한다든가 이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요법회팀에서 신경을 좀 써야할 것 같고 또 우리가 동산에서 사니 거리상으로도 제일 가까워 그냥 지나치기에는 좀 마음이 부담스러워서요.” 무진주보살은 묘자영보살 말을 듣는 동안 어제부터 비가 온 뒤 갑자기 선선해진 바람이 베란다를 통해 거실 안으로 들어와 목덜미를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다니는 것을 느꼈다. 무진주보살은 가볍게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났다. 몸을 움찔하고는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긴팔을 입어야할까 보다고 생각을 했다. “묘자영보살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잠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말이네요.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 건지 무진주보살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건데요. 하여튼 시간 되는대로 다시 연락을 하든지 할 게요.” 전화통화를 마치고 무진주보살은 다시 물뿌리개를 들고 베란다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하얀 솜사탕처럼 아련하게 들려왔다. 무진주보살은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보았다. 여고시절 하얀 칼라가 있는 동복을 입고서 친구들과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깔깔~ 대고 웃었던 추억들이 가슴에서 솟아났다. 그때 제일 친했던 은명이 생각이 갑자기 났다. 2학년 9월인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가슴속에 남아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또렸한 친구였다.
요새 스마트폰 소설에 재미를 붙여 의자에 몸을 깊숙하게 파묻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에게 볼라거사가 말을 건넸다. “여보, 공양주보살이 수요일부터 휴가라고 했지요?” 그러자 건넌방에서 환희심보살이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시킨 채 대답을 했다. “네, 수요일부터 열흘 동안 휴가라고 했어요.” 볼라거사는 손에 들고 있던 연필 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콩콩 찧으면서 말했다. “여보, 그러니까 말이요. 오늘이면 벌써 사흘 째 공양주 없이 지냈다는 이야긴데 내일 쯤 공양물을 약소하게나마 준비를 해서 절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소?” 건넌방에서 바로 대답이 날아왔다. “내일요?” 볼라거사도 눈앞의 컴퓨터 화면에 눈을 고정시켜놓은 채 말했다. “예, 내일요.” 건넌방 의자에 푹 파묻혀있던 환희심보살의 얼굴이 쑤욱 올라오더니 거실을 향해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럼 내일 천지암에 템플스테이를 가지는 말인가요?” 볼라거사도 화면에서 눈을 떼고 건넌방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템플스테이라기보다는 절 식구들에게 공양이라도 좀 챙겨드리러 내일 절에 갔으면 어떻겠냐는 말이지요.” 잠깐 침묵이 흐르다 환희심보살의 활달한 목소리가 거실 안으로 울려 퍼졌다. “내일 절에 가면 모레 일요법회까지 한꺼번에 보고오자는 말씀인가요?” 그 말을 듣고 볼라거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그렇지요. 그러니까 내일 절에 가서 시간이 되면 점심공양부터 준비를 해드리고 저녁공양도 뭐 간단하게 준비를 한다면 좋지 않겠소?” 그 말을 듣고 환희심보살이 의자를 거실 쪽으로 돌려 앉으면서 말했다. “간단하게 준비를 한다고요? 남자들은 말을 쉽게 해버리지만 직접 해야 하는 여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한 끼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일요일 아침공양은 어떻게 하고요?” 볼라거사가 아내의 예리한 질문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이 찬찬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공양까지면 되겠는데요, 어차피 일요법회가 끝나고는 점심공양은 일요법회도반님들과 함께 준비하면 될 테니까.”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어서 말했다. “내일 아침에 코스트코 문이 열리자마자 득달같이 들려서 몇 가지 먹을 만한 것을 구입을 해가지고 바로 절에 도착을 해서 점심은 맛난 빵으로 하고요, 짜장면과 라면을 준비해서 저녁공양은 짜장면으로 하든지 하고요, 그리고 일요일 아침공양은 떡국떡을 준비해가서 멸치육수라도 뽑아 떡국을 끓여낸다면 어떨까하고 생각을 해봤거든요.” 드디어 환희심보살이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걸어왔다. “여보, 내가 음식을 잘 못하는 걸 알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세 끼나 공양을 올릴 수 있겠어요?” 볼라거사가 목소리를 낮추어가며 호흡이 길고 굵은 설득조로 말법을 바꾸어 대화에 임했다. “그러니까 토요일 점심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세 끼 공양이지만 점심은 빵, 저녁은 짜장면, 아침은 떡국으로 준비를 한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음식솜씨와는 거의 상관없는 식단이 아니겠소? 육수만 뽑을 줄 안다면 빵, 짜장면, 떡국은 나라도 도와줄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요?” 환희심보살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뭔가 잠깐 생각을 해보는 눈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요. 그러면 먼저 떡국떡하고 짜장면을 준비해놓고 내일 아침에는 일찍 코스트코에 들려서 빵을 사가지고 바로 절로 달려가야겠네요. 그런데 점심공양시간까지 맞출 수는 있을까요?” 볼라거사는 아내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글쎄요, 아침 8시에 문을 여니 시간만 잘 맞춘다면 11시에 시작하는 점심공양까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내일이 토요일이라 고속도로가 얼마나 밀릴지 그것을 예상할 수가 없네요. 여하튼 당신이 찬성을 한다면 일단 지금부터 이것저것 준비를 했으면 좋겠소만.” 환희심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천지암天池菴 가는 길.
볼라거사와 환희심보살은 먼저 새마을시장으로 가서 떡국떡을 산 뒤 송파마트로 달려가 짜장면과 팔도면을 묶음으로 여러 뭉치를 구입했다. 그리고 복숭아도 한 상자를 사고 환희심보살의 제안으로 빵을 먹을 때 속을 편하도록 하기 위해 맥콜도 몇 병을 구입했다. 그런 뒤 집으로 돌아와 달걀을 찌고 나서 이모저모 확인을 해보았으나 특별히 더 준비를 할 것도 더 사야할 것도 없는 듯했다. 환희심보살이 대충 가방을 꾸려놓고 볼라거사에게 말했다. “여보, 하월거사에게 우리가 내일 아침에 점심공양시간에 맞추어 갈 거라고 문자를 보내야 할까요?” 볼라거사도 배낭 꾸리던 손을 멈추고 환희심보살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서울에서 출발시간은 알 수 있지만 도로사정으로 인해 절에 도착하는 시간은 알 수가 없으니 점심공양시간에 간다고 말을 전해놓으면 자칫 우리 때문에 공양도 못 들고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일 아침 절로 가면서 도로상황을 봐가면서 연락을 하도록 하는 것이 났지 않겠소?” 환희심보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러네요.” 새벽에 일어난 환희심보살은 먼저 봉은사 새벽기도에 다녀왔고, 볼라거사도 일찍 일어나 절에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침 7시15분경에 집을 나섰다. 올 여름의 맹렬한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간은 푸른 하늘과 선선해진 날씨를 차를 몰아 도로를 달려가는 우리들 앞에 가지런히 줄 세워놓았다. 코스트코에 도착을 한 시간이 아침7시35분이었는데 벌써부터 와서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침8시 5분 전에 현관을 개방하자 우리는 바로 음식코너로 달려가 제일 앞에 줄을 섰다. “빵을 몇 개나 사야할까요?” 볼라거사가 물었다. 그러자 환희심보살이 말했다. “절에 몇 분이 계시지요?” “어, 주지스님, 한달스님, 하월거사, 송태중처사 해서 모두 네 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다 우리 부부 하면 점심공양에 참석하는 사람은 여섯 명 가량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빵을 열 개정도 사면 될 듯싶은 데요” 그러자 환희심보살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쩌면 일요법회 도반님들이 올지도 모르고요, 혹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좀 더 여유 있게 한 열다섯 개정도를 구입하면 되겠네요. 그러면 불고기 베이크 하고 치킨 베이크 열 개, 그리고 핫도그 다섯 개로 하지요.” 볼라거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럽시다.”
열다섯 개의 기다란 빵과 소스를 은박지에 둘둘 말아 카트에 담아 밀고나오는데 현장 근무자가 깨끗한 상자를 하나 가져다줘서 그 안에 빵들을 알뜰하게 담아올 수 있었다. 나름 바삐 서둘렀지만 벌써 시간은 아침8시20분을 지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끌어내어 부랴부랴 차를 힘차게 몰아 과천-의왕 간 외곽도로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 입구를 향해 차를 몰았다. 다행히 외곽도로까지는 그다지 차가 밀리거나 정체되지 않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당연히 그래야할 것처럼 차가 앞차의 꼬리를 물고 서행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하도 이 길을 많이 지나다녀 이제 익숙해진 길이지만 이렇게 천천히 지나가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風景이나 광경光景들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어제 서울 미세먼지농도가 15였는데 오늘 아침 서해안 미세먼지농도도 그에 못지않게 깨끗해보였다. 어젯밤 배낭을 꾸리면서 혹시 절에서는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쌀쌀 할지도 모르니 긴팔을 하나 넣어가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긴팔 티셔츠 하나 넣어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 서늘한 차창車窓 밖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볼라거사가 말했다. “앞으로 서평택까지 19Km 정체라고 전광판에 뜨는 걸 보니 여기에서만 40분가량 지체가 될 듯싶네요. 어쩌면 11시 점심공양까지 시간을 맞춰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절에 도착을 해봐야 알겠지요.” 그러자 환희심보살이 말했다. “그러면 일요법회 카톡방에는 문자를 올릴까요? 우리 절에서 점심공양 함께해요. 라고요.” 볼라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좋은 생각이요. 일요법회 카톡방에는 소식을 올리는 게 좋겠네요.” 환희심보살은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어 재까닥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바로 동산의 묘자영보살로부터 답 문자가 들어오고 이어서 전화가 왔다. 환희심보살과 묘자영보살의 전화 통화내용은 바로 옆자리에 운전을 하면서 앉아있는 볼라거사의 귀에도 그대로 전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토요일쯤에는 절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환희심보살의 문자를 보고 동산에 사는 묘자영보살께서도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점심공양시간에 맞추어 절로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서평택을 지나 행담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차량의 지체가 풀리는 기미가 보여 환희심보살은 하월거사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서울에서 점심공양을 준비해가니 주차장까지 내려와 주셨으면 좋겠고, 동산에 들어서면 다시 구체적인 시간을 보내드리겠다는 내용들이었다. 일요법회 카톡방에 문자를 보내놓고 차를 몰아 천지암으로 달려가면서 두어 사람 더 연락이 오지 않을까하고 기다려보았으나 묘자영보살 이외에 더 이상 연락을 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카톡방을 확인해보지 않았거나 각자 다른 일정 등으로 바쁜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당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뻥 뚫린 서해안고속도로가 천지암으로 가는 최상의 지름길로 보였다. 그렇게 8월의 햇살아래 명주실처럼 하얗게 풀려있는 길을 시간을 재촉해가면서 냅다 달려보았다.
아무리 시간이 급해도 동산휴게소에는 잠깐 들려야했다. 주차장이 차들로 북적거려 볼라거사는 차안에 그대로 남아있고 환희심보살만 차에서 내렸다가 금세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는 재빠르게 동산휴게소를 빠져나와 또 달토처럼 내달려 해미IC를 지나 천지암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마침 하월거사가 차를 가지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그때 묘자영보살도 주차장에 도착해서 함께 하월거사의 차를 타고 천지암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서 천지암으로 올라가는 S자 급경사는 하월거사의 사륜구동 차가 아니면 오를 수가 없어서 공양물이나 짐이 있을 경우에는 꼭 하월거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성우당 마당에 차를 주차시키고 공양간으로 들어가 점심공양을 차렸는데 묘자영보살께서 맛난 김밥에 사각이는 튀김에다가 볼라거사가 좋아하는 우유와 까맣게 잘 익은 포도까지 준비를 해오는 바람에 식탁에 예기치 않은 빵과 밥과 과일의 정감情感 있는 풍요豐饒가 넘쳐흘렀다. 공양간 안쪽 차실에는 송태중처사가 혼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절에는 우리가 예상을 했던 네 분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세 분만이 계셨다. 동안거를 천지암 선방에서 나기 위해 미리 와있던 한달스님은 공양주보살이 휴가를 떠나자 곧 절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런데다가 송태중처사는 웬일인지 평소의 식욕을 보이지 않으면서 별로 점심공양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듯 했으나 결국 주지스님의 권유로 함께 잘 먹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점심공양이 빌미가 되어 송태중처사는 오후동안 심한 체증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하월거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 며칠간 송태중처사가 음식에 무척 집착을 해서 이것저것을 수시로 먹는데다가 오늘 새벽에는 홀로 공양간에 내려와 컵라면과 남아있는 밥을 다 먹어버렸다고 했다. 그것을 모른 체 점심공양에 함께 하기를 우리들이 권했고 그런 상태에서 또 먹어버린 송태중처사의 속이 불편해진 것이었다. 볼라거사도 점심 공양을 맛나게 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 약간 시장도 하려니와 좋아하는 김밥과 갓 튀겨내어 사각거리는 튀김에 우유까지 있어서 밥상위의 젓가락을 분주하게 놀렸다. 치킨 베이크와 핫도그에는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어서 먹기에도 좋았다. 평소 즐겨하는 핫도그에 양파와 케찹과 겨자를 섞은 소스를 올리고 한 입씩 베어 먹었다. 달콤하고 새콤한데다 코끝이 간질거리는 겨자 맛과 핫도그 맛이 서로 잘 어울려 입안 가득한 행복감이 혀를 따라 사르르 몰려다녔다. 그러고 나서 치킨 베이크도 하나를 다 먹었다. 점심공양을 잘 마치고 난 뒤에는 복숭아와 포도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은 토요일 지루할 만큼 태평한 천지암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면서 차실과 공양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원래 저녁공양은 짜장면으로 하려했는데 지난 사흘 동안 매 공양마다 짜장면 아니면 라면을 끓여먹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언가 계획을 바꿔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주방에 짜왕 봉지가 한군데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환희심보살은 동성의 길은화보살에게 전화통화를 해보아야겠다면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길은화보살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환희심보살은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서 아마 오후에는 길은화보살이 절에 와서 어쩌면 저녁공양은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희심보살과 묘자영보살은 공양간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볼라거사는 차실에서 나른한 낮잠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몸은 나른하게 누워있으면서도 귀로는 바깥의 소리들을 다 듣고 있고 머리는 몽롱하게 잠에 취해있는 듯한 이런 상태를 비몽사몽非夢似夢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몸과 마음이 절반가량 허공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도 때에 따라서는 영육靈肉의 괜찮은 환경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순간 매끄러운 목소리로 톡하고 던지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길은화보살이 절에 왔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연암산의 서늘한 바람과 기운을 맛보면서 볼라거사는 차실바닥에 깔아놓은 좌복에 등을 대고 한동안 그렇게 누워있었다.
볼라거사는 조금 전부터 오른편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고 미닫이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바닥에 점박이처럼 몽실몽실 떠있는 양털구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반공일이었던 토요일에 학교를 파하고 친구와 넓은 운동장을 걸어 나오면서 바라보았던 ‘60년대 고향의 하늘색과 무척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볼라거사는 하늘의 한 점 몽실거리는 하얀 구름덩이에 초점을 맞추고 기억의 실을 길게 이어보았다. 그리고 그가 장흥에서 국민학교 3학년을 다니던 해의 하지夏至 날을 기억해냈다. 토요일에는 평일보다 더 많은 장사들이 학교 교문 주변에 장사진을 치고 꼬마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로 칡이나 꼬챙이에 세 개씩 꿰어놓은 고구마나 물에 우려낸 감과 번데기와 강가나 하천에서 잡아온 다슬기 삶은 것을 봉지에 담아 파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돗자리를 펼쳐놓고 헌책을 팔거나 임시 만화가게가 들어서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날 길 위의 만화가게 앞에서 쭈그려 앉아 보았던 만화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어느 천재 과학자가 비뚤어진 마음에 세상 사람들을 골려주려고 약품을 개발하여 비가 내릴 즈음에 비행기를 이용해서 공기 중에 살포하자 이 비를 맞은 사람들 얼굴에서 꽃이 자라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꽃을 없애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서 세면장으로 가서 비누로 세수를 한 번만 하면 말끔하게 사라지지만 그 대신 과학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바뀌어 천재 과학자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 될 야욕을 남몰래 품고 있었는데, 한 탐정의 활약으로 이 무서운 계획을 저지한다는 해피엔드 줄거리였다. 그날이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라는 것을 어린 볼라거사가 알고 있었고, 등을 따스하게 내리쬐는 이 햇살과 이런 밝은 느낌들을 오랫동안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을 내어 의식적으로 그 생각들을 단속했던 기억이 났다. 겨울이면 학교 등하교시에 길고 추웠던 장흥교와 그 아래 햇살에 반짝거리는 은어가 떼로 몰려다니던 탐진강의 푸른 물이 생각이 났다. 차실 미닫이창 밖으로 겨자 색 모닝이 굴러 지나서 성우당 마당으로 들어갔다. 볼라거사는 처음 보는 차이고 처음 보는 스님이라고 생각을 했다. 세 보살님들은 공양주보살이 없는 주방으로 들어가 이것저것을 들쳐보면서 마음껏 저녁공양 준비를 시작했고 송태중처사는 자꾸 차실을 들어 다니면서 누워있는 볼라거사에게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공양간으로 들어오면서 주방의 보살님들께 된장을 좀 얻으러 왔다는 말을 했다. 차실에 누워있던 볼라거사는 언젠가 들어봤던 목소리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길은화보살이 주방에서 나와 그 스님을 응대를 해드렸고 볼라거사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조금 전 겨자 색 모닝을 타고 온 스님인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스님이 차실로 들어와 앉자 볼라거사와 환희심보살, 길은화보살, 그리고 묘자영보살도 주위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스님은 우리 주지스님의 사제師弟되는 스님으로 선암스님이라고 했다. 수덕사 옆 작은 토굴에서 혼자 수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된장이라든가 반찬이 필요해서 사형 되시는 우리 스님에게 온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스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절이나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되지만 분위기에 따라서 개별적이거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평소에 잘 모르던 개인사를 아는 계기가 되기도 해서 친숙한 도반님들과 더 가까운 정을 주고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잘 해주시는 묘자영보살님의 이야기도 다소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바이올린을 키셨고, 아버님께서도 바이올린을 켰다는 말을 듣고 그 시기에 동산지역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킬 줄 알았던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고, 여동생도 있는 오남매 중의 하나인 묘자영보살님의 어린 시절과 불교신행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친밀하게 차실 안을 돌아다녔다. 이왕 천지암에 오셨으니 저녁공양을 맛있게 해드릴 터이니 공양을 꼭 하고 가시라는 길은화보살님 말에 선암스님이 그러겠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둘러 앉아 있던 보살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공양간 주방으로 향했다. 길은화보살님이 오늘 저녁공양은 오징어 덮밥을 맛나게 해주겠다는 말을 하고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오빠시.
매콤한 오징어덮밥이 입맛에 잘 맞았다. 점심공양 때 먹은 빵으로 인해 아직 배가 채 꺼지지 않았는데도 한 그릇을 달게 먹고 밥을 조금 더 퍼 와서 오징어볶음을 덮어서 또 먹었다. 길은화보살님은 몸도 날렵하지만 손이 재빨라서 무엇이든지 척척 잘 하신다. 그런 연고로 우리 일요법회 도반님들은 곧잘 주목거사님이 주장主將이신 동성의 흥부농장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길은화보살님의 정성과 손맛이 담겨있는 식사를 대접받고는 했다. 하지만 아직 몸의 원기가 100% 상태가 아니라서 쉽게 피곤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내가 한의학韓醫學이나 내가기공內家氣功에 조예가 있다면 보살님의 원기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가끔 볼라거사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때난 방법이 없으니 그저 만날 때마다 밝게 웃으면서 합장인사를 하고 두 손을 맞잡아 따스한 악수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길은화보살님이 예전보다 원기가 훨씬 좋아졌고 항상 밝고 씩씩하게 행동을 하니 보기에 참 좋다고 생각을 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초파일 때 걸어두었던 연등 철거를 위해 모두 법당 앞으로 올라갔다. 묘자영보살님만 혼자 주방에 남아 뒷정리 겸 공양주보살이 없는 틈을 타서 대대적인 주방 청소에 들어갔다. 나무와 나무 사이,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려있는 줄을 풀어내고 줄에서 연등을 떼어냈다. 연등이 걸려있을 때는 밤에 연등에 불이 들어와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예뻐서 좋다고 했는데 막상 연등을 철거하자 이번에는 경치가 툭 트이고 눈길이 시원해서 좋다고들 했다. 연등에서 건전지와 태양열 집등장치를 떼어낸 뒤 따로 자루에 담아 보관하기로 했다. 일을 다 마친 줄 알았는데 돌계단 옆 단풍나무 무성한 가지사이에 연등이 몇 개 숨어있는 듯이 걸려있었다. 볼라거사는 A자 알루미늄 사다리를 단풍나무 아래 세워놓고 그 위에 올라가 단풍나무 잎에 둘러싸여있는 연등을 떼 내려고 손을 뻗었다. 자루에 연등 담는 일을 마치고 목장갑은 벗어놓았기 때문에 맨손을 뻗쳐 가지에 묶여있는 철사에 손을 대려는 순간 왼손바닥 엄지 아래 두둑한 부분에 따끔한 느낌이 있더니 즉시 심장으로 전기가 관통하는 듯한 쩌르르르~한 충격이 몸 안을 치고 지나갔다. 볼라거사는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움츠리면서 사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연등 위쪽에 붙어있는 건전지에 전기가 남아 있어서 건전지에 맨손이 닿자 전기가 몸 안으로 흐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볼라거사는 처음 겪어보는 일에 순간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하월거사가 알루미늄 사다리에 올라가 다시 그 연등을 떼 내려고 단풍나무 가지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하월거사도 깜짝 놀라면서 손을 움츠리며 급히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벌이 있어요. 벌이 쏘는데요.” 하월거사가 손등과 목을 쓰다듬으면서 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별로 크지는 않지만 엉덩이에 노란 줄이 있으면서 야무져 보이는 벌 한 마리가 연등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그때서야 볼라거사도 왼손바닥을 쳐다보았더니 침으로 찌른 듯한 작은 상처가 보였다. 몸 안의 심장에는 여전히 찌르르르~한 전기가 들쑤시고 다니는 것처럼 아팠다. 성묘 때 벌초를 하다가 벌에 물려 병원에 실려 갔다거나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사실이었겠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볼라거사는 지금 이보다 강도가 조금 더 셌더라면 나도 그렇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옆에 서있던 평소 누구보다 호기심好奇心과 탐구심探究心이 강력한 주지스님께서 긴 막대기를 들고 와 나뭇가지에 걸린 연등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그러나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더 힘차게 막대기를 흔들어 연등을 퉁퉁 건들었다. 그러자 연등 위쪽으로 몇 마리 벌들이 몰려나왔다.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모두 아이쿠, 깜짝이야!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니까 몇 달 동안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연등 안에 벌집을 지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벌들이 들어 있는 것인지 아무튼 연등이 천연의 벌집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볼라거사 왼손바닥은 아프기는 하지만 붓지는 않는 반면에 손등과 목 두 군데를 벌에 쏘인 하월거사는 목과 손등이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을 했다. 손등보다도 목에 쏘인 자리가 붉게 번져가는 것이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환희심보살이 앞장을 서고 볼라거사와 하월거사가 그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묘자영보살이 가르쳐준 대로 동산 의료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로 가는 도중 이번에는 볼라거사의 왼손바닥이 점점 붉게 부어오르고 하월거사는 벌이 쐰 자리가 부어오르는 것이 그만한 정도에 멈춰있었다.
토요일 오후6시30분경 지방 국도는 한산했고 다행히 동산 의료원 응급실은 국도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산 의료원 응급실 안은 한산했다. 우선 접수를 마치고 간호사가 지정을 해준 침대에 가서 볼라거사와 하월거사가 이웃해서 앉아있었더니 간호사가 혈압을 재는 기계처럼 생긴 것을 끌고 와서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러자 모니터에 심장이 뛰는 그래프가 나타나고 심장박동수인지 혈압인지 숫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안경을 쓴 젊은 의사가 왔다. 벌을 쐰 자리에 침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심하게 아프면 진통제를 놓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볼라거사는 옆 침대에 앉아있는 하월거사를 가리키면서 “저 분도 같은 장소에서 벌을 쏘였는데 손등과 목 두 군데인지라 저분부터 먼저 봐주세요.” 라고 말을 했다. 의사가 하월거사에게 다가가 목과 손등을 살펴보고 침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다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심하게 아프시면 진통제를 놓아드릴 건데 그 정도가 아니라면 벌이 쐰 자리에 얼음찜질을 하면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볼라거사가 물어보았다. “만약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나 집으로 간 뒤에 더 심해지는 경우는 없습니까?”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면 여기 응급실까지 오는 도중에 벌써 문제가 일어났겠지요. 얼음찜질을 잘 해주시고 접수했던 곳에서 접수취소를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천지암에서 동산 의료원 응급실까지 갈 때나 동산 의료원 응급실에서 천지암까지 돌아올 때나 내비게이션을 켰을 때 37분이 찍혀지는 것은 동일했다. 그러니까 차를 몰아 37분 후에는 천지암에서 동산 의료원 응급실까지도, 동산 의료원 응급실에서 천지암까지도 위치를 바꿀 수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과 거리의 관계이지만 시간과 거리의 관계에다 방향을 집어넣으면 시간과 변위의 관계로 바뀌게 된다. 즉 시간과 거리의 관계인 속력速力에 방향을 추가시키면 속도速度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인생도 속력速力으로 측정을 할 것인가 혹은 속도速度로 측정을 할 것인가에 따라 인생의 의미意味나 가치價値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결국은 인생의 범위나 크기도 빠르기만이 아닌 방향성까지 따져보았을 때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 나타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천지암으로 돌아올 때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의사의 진료와 믿음이가는 한 마디 조언이 이렇게 마음을 다스려주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절에 돌아와서는 공양간에 모여앉아 도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월거사의 목과 손등에 천지암 약수를 흠뻑 빨아들인 수건으로 환희심보살이 계속 찜질을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응급실에서 돌아올 때까지 묘자영보살은 공양간 주방에서 무언가를 치우고 정리하고 있었다.
어쩌다 토요일 밤에 공양간에 모여앉아 도반님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40여 년 전 처음 불교입문과 신행생활에 관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었고, 신행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인연 절 이야기가 나오자 삼국시대 이래 불교의 전래 이야기와 한글과 고古 드라비다어와의 상관관계라든지,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을 비롯해서 세종대왕의 인간적人間的인, 너무도 인간적人間的인 이야기가 연이어 나오게 되었고, 태평성세太平盛世를 이루었던 세종이 있었다면 혼란과 무능의 대명사인 명종과 선조 이야기가 당연히 나오게 되었고, 거기에다 임진왜란이라는 국운을 좌우하는 큰 전쟁을 온몸으로 막아냈던 이순신장군과 원균장군에 대한 이야기와 조선 오백 년의 당쟁黨爭에 관한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역사歷史란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되풀이 되는 교훈이며, 한 민족이 온 힘을 다해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아온 흔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언제라도 이야기하고 또 들어봐도 유익하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떠들다보니 뱃속이 궁금했던 길은화보살이 앞장을 서서 낮에 잡아놓은 육수를 이용해서 국수를 몇 그릇 말아가지고 공양간으로 들어왔다. 길은화보살과 묘자영보살, 그리고 하월거사 모두 국수 한 그릇씩을 개운하게 비웠는데 송태중거사가 함께 먹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했으나 송태중 거사 몸 상태를 감안해서 오늘 밤 야식은 절대 삼가도록 주의를 주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볼라거사와 환희심보살은 진한 육수에 맛나게 보이는 김 오르는 국수발까지 몇 번이고 쳐다보다가 그만 참기로 했다. 저녁공양으로 맛나다면서 너무 많이 먹었던 오징어덮밥이 아직 뱃속에서 소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 되고 시계를 보았더니 거의 밤10시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피곤한 얼굴빛이 언뜻 보이던 묘자영보살이 지금 집으로 가갔다가 내일 아침 절에 다시 오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볼라거사가 아래 주차장까지 배웅을 해주겠다고 하자 하얀 두 손을 내저으면서 괜찮다고 했으나 이 시간에 주차장까지 묘자영보살 혼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길은화보살이 그렇다면 내 차로 함께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오자는 말에 모두가 찬성을 했다. 그래서 마당으로 몰려나가 보았더니 아뿔싸! 밖에는 소리 없이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벌써 마당이 젖을 정도라면 경사 급한 언덕이 비에 젖어있을 것이고 내리막 오르막길에 차가 미끄러워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시 공양간으로 들어가고 볼라거사만 묘자영보살을 배웅해주기로 했다. 각자 우산을 하나씩 챙겨 머리위에 쓰고 스마트폰을 열어 앞을 비추면서 나란히 걸어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우산을 쓰기에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로 맞자니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로 마치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도인처럼 투욱.. 투우욱.. 투욱.. 하는 가락을 울리면서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묘자영보살과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난 뒤 후미등을 붉게 밝히고 산길을 내려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참 여인女人들이 강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각자 자신의 일과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요일이나 절 명절이면 절로 한 걸음에 달려와서 정성을 다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재능이나 노력으로 봉사를 하고 그 피곤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항상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우리 일요법회 도반님들의 하나같이 일관되고 있는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손에 두 개의 우산을 쥐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열어 앞을 비추면서 천천히 언덕을 올라 공양간으로 돌아왔다. 하월거사는 숙소로 들어갔고 환희심보살과 길은화보살은 차실에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볼라거사도 성우당 2층 숙소로 배낭을 들고 올라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깜깜한 토요일 밤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