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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겸손과 순명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루카 12,35-38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모기는 아주 작지만 매우 귀찮습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물기 때문입니다. 밤에 잠자리에서 모기에 물리면 짜증이 나고, 결국 불을 켜고 모기를 잡기 마련입니다. 책은 사소한 일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기와 같은 사소한 일 뒤에 커다란 코끼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꽉 끼는 신발을 신으면 발의 뒤꿈치가 까질 수 있습니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탔을 때 누군가 실수로 발을 밟으면 평소와는 달리 더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신발 속에 감추어진 뒤꿈치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감추어진 상처는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 간섭받는다는 생각, 나의 허물을 들추어낸다는 생각, 실패한 일들에 대한 생각들은 나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작은 일을 통해서 주체하기 어려운 ‘화’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님의 기일을 지내면서 어머니, 형수, 조카들과 추모관엘 다녀올 때입니다. 연도를 하고, 기분 좋게 돌아오면서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마침 어린이 날이라서 중국집에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습니다. 40분 정도 기다렸는데 우리보다 더 늦게 온 손님에게 음식을 갖다 주었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곧 우리가 주문한 음식도 나왔지만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족들은 주문한 음식을 먹고 나왔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직원이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을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참지 못하고 화를 낸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주문한 음식을 먹고 나왔으면 좋았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나왔기에 집에 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또 화가 났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부당한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계급이 있었고, 하급 병은 그런 것쯤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화를 낸 이면에는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진 편리함이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면 으레 음식이 먼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릴지라도 먼저 앞자리로 가라는 권유를 받곤 했습니다. 순례를 가는 버스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조별로 자리를 바꾸었지만 저는 자리를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민박집에 가서도 독방을 마련해 주곤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불편하게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자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모습이 제게 있었습니다. 사제복 안에 겸손, 희생, 나눔, 봉사, 인내가 있어야 했는데 권위, 자존심, 가식, 허영,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화’를 낸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의 무례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지만 사제라는 이유 때문에 참아 주셨습니다. 화가 난다면 그 현상 뒤에 숨어있는 코끼리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님의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는 죄와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결과는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담의 불순종 뒤에 있던 코끼리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비열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 뒤에 있던 코끼리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사람이 되신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들고 깨어 있는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렇게 깨어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은 어떤 등불인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가식, 교만, 게으름, 허영, 분노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그 등불은 본인과 이웃에게 큰 상처를 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희생, 나눔, 겸손, 온유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그 등불은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 환하게 피어나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조재형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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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실수를 아끼지 마라」
얼마 전 텔레비전의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뜻밖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바보(바라볼수록 보배인 것 같은 사람이라고는 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만 순수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나라의 수도 맞추기, 사칙연산, 맞춤법, 쉬운 영어 단어 쓰기, 사자성어 맞추기 등의 문제를 내서 풀도록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자신의 무식함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 출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잘 하는 것 하나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내가 잘 하는 것을 그들이 못한다고 해서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도를 못 맞췄다고, 사자성어가 틀렸다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고 부끄러워해서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에도 그저 당당합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제가 저 프로그램에 나가서 문제를 맞혀야 하는 상황이 돌아온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몇 개는 틀렸습니다. 그런데 그 틀린 사실에 대해서 무척이나 부끄럽고 창피해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실수를 아끼지 마라. 하나도 틀리지 않는 사람들보다 각광받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틀리는 사람이다. 실수를 피하지 마라.”
내가 자신 있어 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니까 틀리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틀렸으니까 다음에는 맞힐 수 있을 거야.
***<행복하려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라. 행복을 준 만큼 행복해진다(아브라함 링컨)>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루카 12,35-38)
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
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
(ルカ12・35-38)
Blessed are those servants
whom the master finds vigilant on his arrival.
(Luke 12:35-38)
年間第29火曜日
행복하여라,
ヘンボッカヨラ。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チュイニ ワソ ボル テエ ケオ イッヌン チョンドル!
(루카 12,35-38)
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
슈진가 카엣테키타 토키
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
메오 사마시테이루노오 미라레루 보쿠타치와 사이와이다
(ルカ12・35-38)
Blessed are those servants
whom the master finds vigilant on his arrival.
(Luke 12:35-38)
Tues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Luke 12:35-38
Jesus said to his disciples:
"Gird your loins and light your lamps
and be like servants who await their master's return from a wedding,
ready to open immediately when he comes and knocks.
Blessed are those servants
whom the master finds vigilant on his arrival.
Amen, I say to you, he will gird himself,
have them recline at table, and proceed to wait on them.
And should he come in the second or third watch
and find them prepared in this way,
blessed are those servants."
2025-10-21「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9火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み心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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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12・35「腰に帯を締め、ともし火をともしていなさい。36主人が婚宴から帰って来て戸をたたくとき、すぐに開けようと待っている人のようにしていなさい。37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主人は帯を締めて、この僕たちを食事の席に着かせ、そばに来て給仕してくれる。38主人が真夜中に帰っても、夜明けに帰っても、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ルカ12・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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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ゼヒョン神父様の黙想文『蚊の後ろに隠れた象』です。
今、「蚊の後ろに隠れた象」という本を読んでいます。
蚊はとても小さい存在ですが、非常に厄介です。音もなく近づいてきて刺すからです。
夜、寝ているときに蚊に刺されると腹が立ち、結局は電気をつけて蚊を退治しようとします。
この本は、些細なことで「怒り」を抑えられなくなる理由を説明しています。
それは、蚊のように小さな出来事の背後に、大きな「象」が隠れているからだと言います。
きつい靴を履くと、かかとが擦れて傷になります。
その不快な靴を履いたまま地下鉄に乗り、誰かが誤って足を踏んだとき、普段よりも強く怒ってしまうでしょう。
靴の中に隠れているかかとの傷があるからです。
体の傷は見えるけれど、心の傷はなかなか見えません。
「無視された」「干渉された」「欠点を指摘された」「失敗した」などという思いが、
心の奥に隠れていて、小さな出来事をきっかけにして抑えきれない「怒り」となって現れることがあります。
父の命日を迎え、母や義姉、甥たちと一緒に追悼館へ行った時のことです。
祈りを唱え、良い気分で帰る途中、中華料理店で遅めの昼食を取ることにしました。
その日はちょうど子どもの日で、お店はとても混んでいました。
注文を済ませて待っていたのですが、40分ほど経って、私たちよりも後に来た客に先に料理が運ばれたのです。
その瞬間、怒りがこみ上げました。
すぐに私たちの料理も出てきたのですが、私は席を立って外に出てしまいました。
家族は残って食事をしましたが、きっと心は穏やか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
店員の単なるミスを笑って済ませることもできたのに、怒りを抑えられなかった自分が恥ずかしくなりました。
料理を食べてから出ればよかったのに、怒って出てしまったため、帰り道で空腹になり、
またそのことでさらに腹が立ちました。
思い返せば、軍隊にいた頃は理不尽なことがあっても怒りませんでした。
階級があり、下級兵はそれを受け入れるものだと思っていたからです。
今考えると、私の怒りの裏には「象」がありました。
司祭としての生活の中で、いつのまにか便利さに慣れてしまっていたのです。
食事の時間になれば、いつも料理が準備されていました。
列に並んでいても、前の席へどうぞと勧められました。
巡礼のバスでも、いつも一番前の席に座っていました。
班ごとに席を替えても、私は席を替えた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
民宿に泊まるときも、個室を用意してもらいました。
他の人たちが不便に感じながら同じ部屋を使っていても、「一緒に寝ましょう」と言う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
イエス様が叱られたファリサイ派や律法学者の姿が、まさに私自身の中にありました。
司祭服の中には、謙遜・犠牲・分かち合い・奉仕・忍耐があるべきなのに、
そこには権威・自尊心・偽善・虚栄・欲がありました。
それが露わになった瞬間、私は怒りを爆発させたのだと思います。
考えてみれば、私の無礼な態度のせいで多くの人が怒りを感じたことでしょう。
しかし、彼らは私が司祭だからという理由で、それを我慢してくれたのです。
もし怒りを感じたなら、その現象の裏に隠れている「象」を思い起こすと良いでしょう。
今日の第一朗読で、使徒パウロはアダムの不従順とイエス様の従順を語っています。
アダムの不従順の結果は罪と死でした。
イエス様の従順の結果は義と永遠の命です。
アダムの不従順の背後にあった「象」は、神のようになろうとする傲慢でした。
自分の過ちを他人に押し付けようとする卑怯さでした。
イエス様の従順の背後にあった「象」は、
神の御子でありながら人となられた謙遜でした。
世界を救おうとする十字架の犠牲でした。
今日の福音で、イエス様は「灯をともして目を覚ましている僕」の話をされます。
そのように主を待つ僕は幸いだと語られます。
今、私が手にしている灯はどんな灯でしょうか。
偽り・高慢・怠惰・虚栄・怒りの灯であれば、その灯は自分と隣人を傷つける灯になるでしょう。
犠牲・分かち合い・謙遜・柔和の灯を持つなら、その灯は希望の灯になります。
愛が明るく咲く灯になるでしょう。
「腰に帯を締め、ともし火をともしていなさい。36主人が婚宴から帰って来て戸をたたくとき、すぐに開けようと待っている人のようにしていなさい。37主人が帰って来たとき、目を覚ましているのを見られる僕たちは幸いだ。」
(ルカ12・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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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福音を読み、謙遜と従順、目を覚ましているキリスト者となれ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