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난처이며 힘이 된 신앙
이미나
20살 때였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몸이 좋지 않아 학교를 휴학한 상태였다. 나와 집사님 두 분과 엄마는 교회 집사님이 운전하시는 승용차로 홍성의 갈산에 있는 한 교회로 향했다.
가는 내내 가슴이 떨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내 심경을 달래듯이 집사님이 “미나야 오늘 오시는 전도사님은 병원에서 진단하지 못하는 병까지 하나님이 꿰뚫어 보게 하시고 치료해 주신단다”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자꾸만 초조해져서 속으로 ‘하나님 저를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제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고 깨끗이 고쳐주세요“하고 계속 되뇌었다.’ 그간 온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녔지만, 신체적으로는 큰 이상이 없고 다만 깊은 우울증이 있다고만 하였다.
여태껏 여러 아이에게 지속적인 놀림과 괴롭힘 등을 당했으나 나는 늘 맞서 싸울 힘이 없어서 속으로만 울분을 삼키며 살아온 날들이 태반이었다. 거기다 더욱 기막혔던 사실은 부모님은 교육자니, 자녀인 나의 일에 어떤 보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대중의 잣대 때문에 나는 줄곤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한테 얻어맞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부모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그런 세상에 환멸을 느꼈고 부모님도 원망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심리적 위축이 되고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음산한 기운들로 인해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내게 손 내밀어 주는 이는 없었다. 유일하게 내 상황을 하소연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나를 계속 놀리는 여자애에게 강한 오기가 생겨 “너 한 번만 더 나를 모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위협적으로 고함을 지르자 4년간의 그 질긴 놀림이 끝이 나 버렸다. 진작에 왜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놀림은 일단락이 되고 내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짝도 생겨서 학교생활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대학교를 입학하고 내 마음의 병은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다시금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화병이 다시 가슴으로 치솟아 올라왔다. 급기야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고 대전에서 홍성집으로 내려왔다. 우두커니 집안에 누워 있었고 계속 눈물만 솟구쳐 올라왔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힘겨운 기억들 속에 갇혀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과 울분에 치를 떨었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자 의사의 진단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의 소견은 깊은 우울증이며 치료책은 긍정적인 생각과 즐거운 생활을 하면 된다는 너무나 의례적인 말뿐이었다. 조금도 내가 겪은 아픔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이해하려는 사랑과 관심의 마음은 없었다. 더군다나 의사는 내 목소리까지 변하게 하고 잠만 재우는 독한 약만을 처방해 주며 신경을 마비시켜놓고는 많이 개선된 것처럼 행세하였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교회 집사님들이 나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시고 며칠 뒤 신유 은사를 받으신 전도사님이 대전에서 홍성으로 내려오신다는 소식을 전해주셨고 답답했던 나는 두 귀가 번쩍 띄었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되었다.
집회를 여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설교가 끝나고 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차례대로 줄을 만들어 앉아서
전도사님의 안찰을 받았다. 성도들이 누우면 전도사님은 마치 사람의 몸을 꿰뚫어 보듯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알아맞히셨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성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서서히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조바심에 화장실을 여러 차례 오갔다. 이윽고 나는 전도사님 목전에 앉게 되었다. 전도사님은 대뜸 엎드려 누워 보라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엎드려 누웠다. 그러자 전도사님은 내 척추를 손가락으로 누르셨다.
그리고 엄마와 집사님들과 그곳의 성도들에게 “ 여기 미나의 척추는 왼쪽과 오른쪽이 짝짝이입니다”
“등이 휘었어요”,“어렸을 적부터 어떤 심리적 압박에서 인지 허리를 습관적으로 숙이고 다닌 것 같습니다”,“ 몸의 중심인 척추가 휘었으니, 온몸이 아프고 계속 짜증이 나는 것이지요”
하며 명쾌하게 원인을 알아내셨다. 전도사님이 손가락으로 누르는 곳이 너무나 아팠다. 그러고 나서 내 휘어진 척추가 곧게 펴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척추는 일자로 펴졌고 이를 목도한 성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통증도 깨끗이 없어졌다. 머리도 안수 기도 받자 개운해졌다. 이어서 심장, 신장, 위 신체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아픔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기도를 받는 동안 감았던 눈을 뜨자 내 몸은 새롭게 되었고 새로운 세상이 열려 있었다. 나는 전도사님께 힘없이 내 살아온 날들이 타인들에 의해 상처로 온통 멍들어 있음을 알렸다. 전도사님은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시며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말씀하셨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하시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아갈 것을 권유하셨다.
나는 환희를 느꼈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오랜 기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낮은 자존감과 분노들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을 전도사님께 말씀드렸고 전도사님은 당신의 신학교 재학시절 은사님이신 기독교 심리학 여자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처음 교수님을 뵈었을 때 심리검사를 통해 내 안에 깊은 분노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하셨고 여러 회 상담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리셨다. 나는 교수님과의 상담을 통해 나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시면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교육자 자녀라는 이유로 어떤 보호와 도움도 받지 못한 힘겨웠던 유년에 많은 동정을 보내주셨다.
그분의 진심 어린 사랑과 응원 덕분에 나는 깊은 감정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와 마침내 따사로운 빛을 쬘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짙은 상처와 분노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감싸면서 사그라들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각인된 열등감은 명백한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성과도 이루게 되었다. 내 내면이 밝은 빛으로 채워지자 자연스럽게 좋은 친구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원만한 사회생활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매일의 삶을 지내면서 지나온 어둠의 자국 속에서 극적으로 전도사님과 교수님을 만나게 하시어 나를 치유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 인생의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 지금도 행복하고 건강한 삶 속에 그때의 감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느새 가슴이 벅차다!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으랴! 아! 오늘도 내일도 그분의 사랑을 널리 전하며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