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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영어, 그리고 아이들의 삶
- 초등 교사들이 바라본 영어교육
초등국어교과모임 김강수
1. 교사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하는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은 국가에 의해 주어진 국어나, 사회, 수학 따위 과목의 내용들을 아이들의 말로 가르치고, 아이들이 그 내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절한 설명과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은 교사에 의해 주어진 과목의 내용을 배우면서, 혹은 이해하거나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안목을 기르며 한 단계 높은 사고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아직 사고과정이 잘게 나눠지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는 이유로 몇 개 되지 않는 과목을 한 명의 교사에 의해 배우고, 중 고등학교로 갈수록 여러 명의 교과담임으로부터 보다 많은 과목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 각 과목들은 나름의 이유와 논리에 의해 배워야할 필요성이 있는 과목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과목을 가르치는 중 고등학교 교사에 비해 초등학교의 교사는 교과 전문성이 부족하다고들 말한다. 교과를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과목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초등학교 교사들의 관심은 가르치는 것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들은 가르칠 과목에 대해 보다 열려있다고 할 수 있으며, 내심 어떤 과목이든지 내용만 주어진다면 별 거부감 없이 가르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실제로 이번에 만드는 8차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화여대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학교의 국어시간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 찬성의 뜻을 표시하며 초등학교 교사들은 모든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국어시간을 줄이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교육학과 교수가 말한 것이라고 했을 때, 놀랄만한 일이다.
그러나 교사에게 교육이라는 것이 그저 그런 주어지는 것을 되파는 장사꾼의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교사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사도 사람인 이상 이따금씩은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순간에 교사는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의 의미라든가 성격, 요컨대 그것을 무엇 때문에 가르쳐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가르치는가 하는 것에 비추어서만 비로소 의미 있게 해답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이홍우, 교육의 목적과 난점
바꾸어 말하면 초등학교의 교사는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여러 가지 과목의 뜻이라든가, 성격 요컨대 그것을 무엇 때문에 가르쳐야하는 가를 이따금씩 생각해볼 수밖에 없고, 그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앞서 예를 들었던 교수님은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무엇을 가르치든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각 과목 사이의 연결과 각각의 과목이 아이들의 삶과 어떤 뜻을 나누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아이들의 안목을 키우고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초등학교의 교사들은 국가가 만든 또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과정이라는 것에 가장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일테면 경제학자들은 경제적인 중요성에 의해 교과가 만들어지길 원할 것이고,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순위에 의해, 문화계는 문화적인 순서에 의해 과목이 만들어지길 원할 것이며, 이들 모두의 뜻을 받아서 교육과정을 만든다는 정부는 그들이 생각하는 어떤 순서에 의해 교육과정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에 비해 초등학교 교사의 눈이 다른 것은 정부는 이들 각 단체의 의견을 나름의 순서에 의해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이지만,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말 그대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교육과정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이러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가장 바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2. 아이들이 일본말이나 독일말을 배우지 않는 이유
앞서 말했듯이 초등학교에서는 여러 교과를 가르치고, 각각의 교과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 때문에 하나의 교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교과가 교과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대로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면서 과목의 시간이 줄어들기도 하고 늘기도 하며 심지어는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교과가 변한다는 것은 교과라는 것이 아이들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사회적 필요성이나 경제적 이유, 정치권력에 의해 새롭게 변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아이들의 삶과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될 언젠가는 다시 되돌려지게 된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교육 그 자체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삶이라고 본다.
그런 눈으로 보자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곳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로써 살아간다. 사랑도 말로써 하고, 싸움도 말로써 하고, 놀이도 말로써 하고, 잔치도 말로써 한다. 교육도 말로써 하고, 정치도 말로써 하고, 경제도 말로써 하고, 마침내 신앙도 말로써 한다. 말이 삶의 연모라고 하는 것은 이런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말과 삶, 삶과 말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다. 말이 고우면 삶이 고와지고, 말이 거칠면 삶이 거칠어진다. 말이 쉬우면 말이 쉬워서 편안해지고, 말이 어려우면 삶이 어려워 고달파진다. 말이 곳 삶이다.” - 김수업, 배달말 가르치기
말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들은 말을 배우면서 커간다. 우리말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독일말을 배우고, 일본말을 배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겨레가 있고, 그들이 쓰는 수만 가지 말이 있다. 우리가 말을 배운다고 했을 때, 말은 그 수만 가지 겨레가 쓰며 살아가는 말이다. 그런데 왜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초등학교에서는 그 수만 가지 말을 선택해서 제각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하지 않고, 우리말을 처음으로 가르쳤을까? 말이야 뜻만 통하면 되기 때문에 아이가 독일말을 배워서 독일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수도 있기 때문에 독일말을 처음 가르쳐주거나 영어를 처음 가르쳐주거나, 일본말을 처음 가르쳐주면 되지 어째서 우리말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었을까?
나는 그 이유가 앞서 인용한 김수업 선생님의 글 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곧 삶이고, 교육을 한다는 것은 삶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소리의 뜻만 통하여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사용한 겨레가 어떻게 살아오고, 지금 어떻게 살며 앞으로 어떤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살아야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우리말을 먼저 배우는 이유는 그 아이가 영국 겨레의 아이나 프랑스 겨레의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는 우리말을 처음 배우면서 우리 겨레의 삶을 배우고, 아이들이 차츰 커가면서 삶의 바탕이 넓어지게 되면 다른 겨레의 말을 배우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말 중에는 영어도 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두고 효과가 있다,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국수주의다, 영어조기교육이 공교육을 무너뜨린다며 말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그 효과나 결과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교육을 왜 하고, 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본다. 일테면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공식적인 교육이 처음 시작되는 시기에 영어와 우리말을 나란히 배우는 문제는 우리 아이들을 삶이 어떠하고, 그 아이들이 만들어야할 삶의 터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때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멀리서 지켜보는 교육, 직접 해보는 교육
앞서 말했듯이 교사들은 국가가 던져준 교과를 가지고 이리저리 아이들의 삶에 맞게 가르치려고 한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하면 할수록 교사들은 교과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알려고 하고, 그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교육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리서 보고 있을 때에는 ‘아 이러저러한 것들을 가르치면 되겠구나’ 싶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르치고 나서야 교육이라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이러저러한 것을 가르쳐야겠구나.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교육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초등학교에 영어가 처음 도입될 때, 정부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영어가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사교육비가 많이 들고, 미국이나 영어권 나라들로 조기유학을 가는 아이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차라리 영어를 초등학교에서부터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낫겠구나. 또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제대로 배워서 그들과 똑같은 말로 의사소통을 해야겠는데, 영어를 어렸을 때부터 배우면 훨씬 배우기가 쉽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해 영어 학자나 언어학자들에게 영어조기 교육에 관한 보고서를 쓰게 하였을 것이고, 비판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쪽으로 영어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 다음 정부가 한 일은 전국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영어일반연수, 영어 심화연수라는 것을 만들어서 한 사람당 200만원이 넘는 돈과 두 달이 넘는 시간을 꼬박 영어교육을 위해 바치도록 하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교육부는 그동안 한 과목에 이렇게 많은 교사연수를 실시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꼈든지,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시골학교를 중심으로 영어 원어민 교사라는 것을 두어서 비싼 돈을 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였고, 교육부의 영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경기도청에서는 영어마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였다.
나는 한 번도 영어마을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차례, 영어연수라는 것을 받아보기도 하였고,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였기 때문에 학교현장에서의 영어 교육에 대해서는 몇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현장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정부가 멀리서 보고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영어 조기 교육의 필요성 및 결과에 관한 것이 정부의 노력이 애석하게도 정부의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은 첫째로 제시했던 영어에 대한 사교육비와 영어 조기유학에 관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초등학교의 영어교육이 시행되고 난 뒤 그에 비례해서 영어 사교육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주변에 영어만을 가르치는 학원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곳곳에서 영어 사교육을 광고하는 광고 전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어 조기 유학도 이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평범한 사실이 되고 있으며, 서울 아파트촌의 아이들은 방학을 이용해서 비싼 돈을 주고 영어 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통계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사교육이라는 것이 늘 공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 중에서 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일테면, 대학 시험에서 논술이 중요하다고 하면 논술 사교육이 많아졌고, 수학 시간이 늘어나면 수학 사교육 기관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정규 수업으로 가져오면 초등학교 영어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야기할 것은 영어를 어렸을 때부터 배우면 훨씬 잘 배우고 익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 정부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이미 이 생각부터 먼저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든다.
어쨌거나 정부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기어이 영어를 초등학교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영어 시범학교를 운영하였고, 영어로만 말하는 학교를 만든다고 하기도 하였고, 한때 새로 취임한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 전국 초등학교 영어시간이 영어로만 진행된다고 선전하기도 하였다. 그런 발표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다투어 발표를 하였고,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기대와 걱정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또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초등학교의 교사들을 영어교육을 위한 영어교육 연수로 내몰았으며, 영어 원어민 교사들을 채용하기 위해 정해진 월급 외에 살 집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다른 교과나 초등 교육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형편없는 차별대우였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인 것이 제대로 성공하고 있느냐고 했을 때 적어도 현장 교사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영어시간에 하는 재미난 활동이나 게임에 집중할 때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올라갔다고 말하거나 영어에 흥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알아야할 단어가 많아지고, 조금씩 어려워지면서 영어에 흥미를 잃는 아이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 무엇인가 새로운 교과를 배운다는 설레임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초등학교에서 한차례 실패를 맛본 아이들이 다시 가까이가려 했을 때는 새로운 결심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점점 어려운 교과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이런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통계를 들이대며 영어 조기교육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하려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영어를 초등학교에 도입하면서 이 교과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불운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지만 교과라는 것이 아이들의 삶을 다룬다고 했을 때, 영어는 아이들 삶의 저쪽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주어진 교과를 배울 때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으로 느끼고 오감을 통해 배운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머리로 생각을 해서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고, 이것은 저학년이 되어갈 수록 점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는 사고력을 강조하는 수학조차 몸으로 가르치려 하고, 언어는 더더욱 몸을 움직여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몸을 움직여서 얻는다는 것은 삶에 가까이 있도록 교과를 배치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은 숫자를 배울 때도, 그 숫자가 우리에게 어떻게 쓰이며 어떤 뜻을 담고 있는가를 살면서 배우고, 우리말을 배울 때도 삶의 이러저러한 상황 속에서 그것의 뜻을 해독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런데 영어교육은 국어교육과 마찬가지로 언어교육이면서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나서 그것이 다시 반복하거나 쓰는 곳은 영어 학원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이라는 것이 쓰이지 않으면 있을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아이들의 말글살이가 우리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도입해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말을 없애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여 아이들의 말글살이를 모두 영어로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4.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앞서 말했듯이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교육을 바라보았을 때에도 이치에 맞지 않고, 지난 나날동안 경험을 보았을 때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초등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은 거의 대부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초등학교 1,2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시범학교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고 나가려 하고, 지켜보면 알겠지만 초등학교 1,2학년에도 기어이 영어교과를 도입할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영어 사교육 시장을 넓혀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영국이나 미국, 호주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학교에 처음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우리말의 공식적인 언어가 두 개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도 아닐 것이고,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가끔씩 이러저러한 충격을 주어서 놀라게 하려는 뜻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일로 삼고 있는 나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상이 막 일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교육부라는 것이 하나의 단체이다 보니, 누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왜 하는지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속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으려 해도 누구에게 물어야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정부에서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점을 이용해서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들이 이것 한 가지는 꼭 알아야할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공상을 실험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저런 경제 논리, 정치적 압력 따위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은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고, 우리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만약 교육부에서 한순간 그릇된 생각을 하여,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초등학교 1,2학년 영어도입을 강행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당신들에게 되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